소설리스트

톱스타가 정치도 잘한다-44화 (44/132)

〈 44화 〉 카메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대표님께서 카메오 출연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나리오도 보지 못했고 현장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데,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리 카메오라고 하지만 드라마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물론 그 문제에 관해서 감독님만큼 고민이 많은 분이 없으실 것이기에 어련히 알아서 판단하셨겠지만, 순간적인 욕심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신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로서야 예나가 출연하는 드라마기에 감독님의 그 제안이 내심 반가운 일이지만, 그래도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딱히 특별한 것은 없어요. 한 배우가 온 것을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니까. 아까 한 배우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작가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작가님이 30분만 달라고 하셨거든. 그러니 부탁 좀 할게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지 혹시 알 수가 있겠습니까?”

“원래 없었던 신이긴 한데 우리 드라마가 좀 많이 밋밋한 느낌이 없지 않거든요. 한 배우도 알고 있는지 몰라도 순정효황후란 분이, 우리 국민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이잖아요. 그래서 비록 역사적으로 남겨진 기록은 없지만, 상황을 하나 그려 넣어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어떤 내용으로요?”

핵심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될 텐데, 괜히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이 마땅찮았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집어넣으려고 이러시는지 몰라도, 일단은 출연하기로 한 나에게는 확실하게 어떤 내용을 추가할 것인지는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혹시 다음에 한 번만 더 시간을 내주실 수가 있어요?”

“예?”

“시간만 내주신다면 회사와 따로 계약해서, 출연료를 지급할 수도 있고요.”

“시간이야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출연료를 책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출연료라고 해봐야 내가 아직 신인이니,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몇 푼 되지도 않는 출연료에 연연하기보다는, 출연료 대신에 차라리 감독님이나 작가님과 인연을 맺어두는 것이 내게는 훨씬 이익이다.

“지금 작가님이 추가하려는 내용이, 왜놈들이 명성황후 시해 때처럼 사무라이를 보냈는데, 호위무사가 그놈들을 격퇴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계기로 순정효황후가 신분상의 이유로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호위무사에게 연정을 품고 가슴앓이를 한다는 그런 전개입니다.”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내가 탑배우 반열에 오른 후에는 정치를 할 생각이니, 드라마 속에서나마 왜놈을 물리치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를 지켜줬다는 그런 내용은, 내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켜줘야 할 대상인 순정효황후 배역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예나이니, 예나가 내게 연정을 품는 그 장면 또한 그 어느 장면보다 자연스러운 장면이 될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나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정효황후 윤 씨의 표정 그러니까 예나의 그 표정이, 이번 드라마를 대표하는 장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무라이 역을 할 분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곧 도착할 겁니다. 한 배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김 감독에게 전화해서 부탁했거든요.”

“제가 출연하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럼 우리 서 배우에게 애원하든지 아니면 협박을 하든지 했겠지요.”

내가 출연하겠다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감독의 머릿속에는, 내 카메오 출연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던 모양이다.

배우도 그렇지만 감독님 역시 시청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드라마의 성공을 바라는 예나도, 감독님의 카메오 출연 부탁을 냉정하게 자르긴 힘이 들었을 것이다.

내 상대로 액션스쿨 ‘투(鬪)’ 소속의 액션 배우들이 투입된다고 하니,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아도 그들과 합을 맞추는 부분은 크게 걱정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지겹도록 서로를 향해서 칼질을 해댔던 사이였으니 말이다.

“사부!”

“사부라니? 누구십니까?”

“에이~ 왜 그러십니까?”

“서울까지 왔으면서 여자 친구는 만나러 찾아오고, 사부에게 인사는커녕 전화 한 통도 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사부?”

액션스쿨 ‘투(鬪)’ 식구들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나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조수석에서 김영웅 감독님께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김영웅 감독님께서 살짝 삐지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양산에는 한 번도 오지 않으셨어요? 양산 오시면 부산으로 모시고 가서 싱싱한 회를 대접해드리려고 대기하고 있는 데요.”

“회 한 접시 먹겠다고 부산까지 갈까? 그 돈이면 여기서 몇 접시는 먹겠다.”

“에이~ 아니라니까요. 수조 안에 갇혀 있던 생선하고, 갓 잡은 생선하고는 때깔이 다르다니까 그러시네.”

액션스쿨까지 찾아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툴툴거리시긴 했지만, 사실 나는 액션스쿨 ‘투(鬪)’를 수료한 후에도 의식적으로 김영웅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었다.

이 양반의 제자를 자처하는 선배 배우들이 우리 액션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전생의 삶에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내 배우생활에도 액션이 내게 커다란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니, 김영웅 감독님의 그 인맥을 신경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한테 회를 대접하고 싶으면, 거기 같이 내려간 애들에게 사줘. 은향이는 네가 좀 특별히 챙겨주고.”

“그러지 않아도 지난주 촬영이 일찍 끝난 날, 이기대 선착장에 단체로 가서 푸짐하게 먹고 왔습니다.”

푸짐하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었겠지만, 액션스쿨 식구들을 모두 데려가서 회를 대접했던 것은 사실이다.

정말 그 식구가 모두 배가 부를 정도로 푸짐하게 회를 대접하려고 한다면, 아예 내 출연료를 다 털어 넣어야 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아무튼 합은 맞춰 봐야지.”

“예. 오랜만에 씩씩하게 칼질 한번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감독님께서 데리고 오신 선수들을 보니, 액션스쿨에서도 제법 능숙하다 평을 듣는 선수들이었기에, 별 걱정할 것 없이 날뛰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무리 진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칫 합이 맞지 않으면, 자칫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액션연기다.

그랬기에 맨손으로 하는 격투가 아닌 칼질에는,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선수가 필요한 것이다.

“휘~유~ 대단하네.”

“저놈은 배우를 할 놈이 아니야. 조선 시대에만 태어났더라도 장군감이지. 칼만 잘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체력도 대단하고 검도뿐 아니라 각종 무예를 골고루 섭렵한 놈이거든.”

“저런 애를 거긴 누가 보냈기에?”

“장 감독이. 장 감독이 처음에는 기본기만 좀 가르치라고 하기에 대충 내버려뒀는데, 나중에 은향이 이야길 들어보니 보통이 넘어서 실전 무예 쪽으로 돌렸던 거지.”

“아무튼 김 감독 덕분에 그림 하나는 죽여주게 뽑을 수 있겠다.”

“내 덕분이 아니라 저놈을 물어온 예나 쟤 덕분이지. 그런데 요즘 젊은 애들은 불꽃이 그렇게 금방 튀나 봐.”

“왜? 저 친구가 서 배우와 사귄다니까 질투가 나?”

“그게 아니라 은향이가 은근히 저놈을 맘에 두고 있는 것 같았거든.”

“은향이 걔가 나이가 더 많잖아?”

“요즘 애들이 그런 걸 따지기나 해? 오히려 연상연하 커플이 대세라면서 설치는 애들인데.”

내가 액션스쿨 ‘투(鬪)’ 식구들과 합을 맞추는 동안, 두 분 감독님은 나에 관한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오랜만에 맨주먹이 아닌 칼질을 하니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자! 스톱!”

감독님께서 스톱을 외치자, 우리는 서로에게 겨눈 칼을 내렸다.

“한 배우, 이 정도 대사는 별문제가 없겠지요?”

“예. 충분합니다.”

“그럼 괜히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갑시다.”

촬영현장에서 시간을 아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법이다.

시간이 바로 돈과 직결되고, 특히 외주를 주지 않고 방송국에서 직접 제작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특히 PPL을 넣기가 곤란한 사극의 경우에는, 제작비는 다른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가면서도 광고수익 이외에 다른 수익은 거의 없는 상황이니, 빨리 촬영을 끝내는 것이 제작비를 아끼는 지름길이다.

우선 준비된 철릭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순정효황후의 거처 앞에서, 담을 넘어 습격한 사무라이들과 대치하는 장면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액션! 스타트!”

이 양반의 디렉션은 또 달랐다.

하긴 ‘레디! 액션!’이나 ‘액션! 스타트!’나, 연기를 하는 배우만 알아들으면 될 일이니 상관은 없었다.

“마마! 방 안에서 절대 나오시면 아니 되옵니다!”

“난, 염려 마시오! 위장은 신속히 저 무도한 무리를 처단하시오!”

“예! 마마! 이 한목숨 바쳐 마마를 보위 하겠나이다!”

나는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칼집을 아예 바닥에 버렸다.

무사가 칼집을 버린다는 것은, 그 싸움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의미다.

그리고 내가 조선의 궁궐을 호위하는 오위장의 한 사람인 이상,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었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와라!”

“아이츠 난테 잇테루다 (あいつ何て言ってるんだ?)”

내 귀에는 제대로 들렸는데, 음향감독님 귀에는 발음이 어색했던 모양이다.

“컷! 그게 아니잖아. 아이스가 아니라 아이츠, 그리고 난데가 아니라 난테.”

“죄송합니다.”

“다시 갑시다. 액션! 스타트!”

첫 대사에서 NG가 나왔다.

대역배우들뿐 아니라 조 단역 배우들 같은 경우는, 한 마디밖에 되지 않는 대사조차도 대사가 갑자기 주어지게 되면 버벅대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말도 아닌 일본어를 하라고 하니 NG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다시 촬영이 재개된 후에도, 그 한 마디의 고개를 넘기가 쉽지가 않았다.

“됐습니다. 그쪽 대사는 따로 후시녹음을 할 테니까 입만 벙긋거려요.”

결국 감독님은 대역배우에게서 대사를 따는 것을 포기하고, 후시녹음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촬영을 계속했다.

“가서 전하라! 우리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절대 네놈들이 우리 강토를 침탈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사무라이로 분장한 대역배우가 모두 쓰러지고 난 후에, 나는 정말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시나리오에도 없었던 한 마디를 웅장하게 내뱉고, 칼을 바닥에 꽂은 채 힘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미 내 몸 구석구석은, 왜놈 사무라이들의 칼날에 난자당해 엉망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왜놈들이 동료의 시체를 끌고 황후의 처소를 빠져나갈 때까지는,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어 애써 칼끝에 내 몸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끝으로 내 첫 카메오 출연 첫날의 촬영이 모두 끝이 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