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내 서방 예쁘게 봐주세요.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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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께서 커피트럭을 보내셨어?”
“직접 가서 네 눈으로 봐. 사고도 초대형 사고다.”
“그게 무슨 말이야. 초대형 사고라니.”
진수도 이야기해줄 생각이 없는 표정이었기에,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한 배우님, 잘 마시겠습니다. 토스트 맛있었어요.”
“아, 예.”
동작이 빠른 스태프들은 이미 커피를 손에 들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그들은 나를 향해 빙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강수야! 너 인마,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형님, 뭐가요?”
“예나 말이다.”
“예나가 왜요? 예나가 무슨 사고라도 쳤답니까?”
“저기 봐라.”
주차장 쪽에 다다르자, 지훈이 형이 나를 발견하고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내게 달리듯 오셨다.
그리고 황당한 표정으로, 스태프들과 조 단역배우들이 몰려 있는 커피트럭 쪽을 손으로 가리키셨다.
[내 서방 예쁘게 봐주세요.]
“어......."
커피트럭의 지붕 쪽에는, 현수막이 아닌 아예 간판이 고정된 상태로 걸려있었다.
그것도 예나와 내가 며칠 전 찍었던 사진과 함께, ‘내 서방’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새겨진.......
그리고 트럭 좌우에는 [예나 서방, 한강수가 쏩니다!]라는 글자가 적힌 배너에도, 예나와 함께 찍었던 사진이 걸려 있었고 말이다.
“봐라! 이제 강수 너 장가는 다 갔다. 이제 어쩔래?”
“도대체 이게.......”
“이게 뭐....... 예나가 강수 넌, 이제 완전히 예나 제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지.”
기가 차서 아예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물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뒷말을 할 사람들이야 있겠지만, 지금 이 상황은 솔직히 나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다.
예나의 예전 행동을 잘 알고 있는 배우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면서도, 예나가 갑자기 이렇게 변하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또 그들 중에는 지훈이 형처럼 예나의 변화를 반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손가락질하거나 뒷담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가 그다지 크게 나올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또 그렇게 뒷담을 해봐야 별 볼일도 없는 놈이 예나와 같은 잘나가는 여배우를 물어 팔자가 폈다는 정도일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지금까지 예나를 꼬드기려고 들이댔던 애들이 한둘도 아니었지만, 성공한 놈이 한 놈도 없었는데.”
“솔직히 저도 얼떨떨합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예나가 장난을 좀 심하게 치는 걸 겁니다.”
“제 서방이라고 떡하니 써놓은 저게 장난이라고? 아마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인터넷이 난리가 날 텐데? 그걸 예나가 모르고 저랬을까?”
그러고 보니 인터넷의 영향력을 간과하고 있었다.
분명 여기에 있는 스태프들이나 조 단역배우들 중에서 기자와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고, 굳이 기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몇몇 사람들은, 이미 트럭의 사진을 찍어 개인의 SNS 계정에 올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뭐가?”
“인마, 커피트럭.”
“고맙지?”
“그래 커피트럭은 눈물 나게 고마운데, 우리 서방이라고 써두면 어떻게 해. 구설에 오르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어?”
“구설은 무슨 구설? 자기하고 나하고 사귀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자기가 이제 내 서방이니까 아무나 와서 자기에게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인데.”
“하~아!”
예나는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 행동이 앞으로 자기에게 얼마나 손해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예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예나와 이야기해봐야 더는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예. 예담기획입니다.”
“신인배우 한강수입니다. 혹시 대표님과 통화가 가능하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미 회사 또한 지금 이 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란의 주인공이 나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아예 대표님과 통화를 신청했다.
“한 배우, 무슨 일이야?”
“소식은 들으셨지요?”
“무슨 소식? 커피트럭?”
“커피트럭이 문제가 아니고 문구 말입니다.”
“아! 그거. 알아서 하라고 했어. 그게 문제가 될 것이라도 있나?”
“서방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 예나의 배우 생활에 지장이라도 생기게 되면.......”
“한 배우 인기에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저야 타격받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니, 노이즈마케팅이라도 해야 할 판인 걸요.”
“그렇다면 됐네. 그리고 한 배우 걱정하는 만큼 문제가 될 일도 없을 걸세. 그리고 이 정도 일을 가지고 인기가 떨어질 것을 걱정할 정도라면, 차라리 배우생활을 그만둬야지.”
부전여전이었다.
예나야 자기가 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하겠지만, 선 대표까지 이러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선 대표가 예나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소속사 대표로서 나도 모르는 예나의 상품가치에 대한 또 다른 지표를 가지고 시도해볼 수도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일이 공개되면 대한민국이 떠들썩해질 수도 있는 일이고, 만약 예나와 내가 결혼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자기 딸이 공개적인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일임에도,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느긋한 것인지 답답하기까지 했다.
“대표님은 뭐라고 하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만 하시네.”
“대표님께서 우리 한 배우를 사윗감으로 확실하게 낙점하신 모양이네.”
“하~아~ 사람 감정이 그렇게 계산대로 되냐?”
“왜? 너는 서 배우가 성에 차지 않아?”
“성에 차고 말고를 떠나서 내가 예나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잖아. 너나 나나 배우로서의 예나만 알지 예나가 어떤 애인지 따로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있어?”
하지만 이렇게 진수와 둘이 떠들어봐야 결론은 달라질 것이 없다.
내가 대놓고 예나와 결혼할 사이가 아니라고 해버린다면, 그 결과는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지는 뻔하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예나와 결혼하기 전에 파경을 맞게 된다 치면, 그때는 내가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는 것 또한 확실했다.
아무튼 그런 가운데서도 촬영은 별 무리가 없이 진행되었다.
“아~우~ 죽겠다.”
“빨리 숙소로 가자. 숙소에서 내가 안마나 좀 해줄게.”
“됐어. 징그럽게 안마는 무슨. 그냥 목욕탕이나 가.”
촬영시간 대부분이 치고받는 장면이었기에, 촬영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뻐근했다.
그리고 아무리 사전에 합(合)을 맞췄다고 하지만 난전(亂廛)을 벌이다 보면, 이곳저곳 몽둥이로 얻어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에, 내 몸 구석구석은 시퍼렇게 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솔직히 액션스쿨에서 훈련을 받는 강도보다 촬영장에서의 액션이 훨씬 강도가 셌기에, 온종일 촬영을 마친 후에는 내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곤 했다.
“손님, 저희 사우나에는 문신하신 분들은 입욕할 수 없습니다.”
오늘 또 태클이 들어왔다.
평소 다니던 사우나가 무슨 일인지 문을 닫았기에 인근의 사우나를 찾아서 옷을 벗자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보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내가 해명을 하기도 전에 사우나의 종업원이 들어와서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이거 문신 아니에요.”
“손님, 죄송합니다.”
“에이~ 아저씨. 지금 영화 찍는다고 그냥 그려 넣은 것이라니까요.”
“영화라고요?”
“예. 내년 초에 개봉하는 ‘네 안의 야수’라는 영화를 찍는다는 소리는 들어보셨죠.”
“그건......”
촌스럽게 무슨 문신을 그리느냐고 했지만, 장 감독님께서는 그래도 폭력조직의 보스인데 그럴싸한 용 문신은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시는 통에, 등판에다 용 문신을 그려 넣었다가 사우나에 올 때마다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사우나 종업원뿐 아니라 사우나에 오신 손님들에게까지, 내가 출연하는 영화인 ‘네 안의 야수’ 영화의 기사를 클릭해서 내가 이 영화의 조연을 맡은 배우임을 증명해야 했다.
“그럼 아저씨가 서예나 배우의 남자친구?”
“예. 어쩌다가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서예나 배우하고 결혼하시는 건가요?”
“아직은 서로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이야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역시 이곳에서도 서예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네 안의 야수’에 출연하는 조연 배우인 한강수란 사실을 알게 되자, 손님들은 벌거벗은 것도 잊은 채 내 곁으로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고, 예나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에 접속하니 난리가 났다.
이건 열애설 정도가 아니라, 조만간 결혼이라도 해야 할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로선 어떻게 할 방법도 없으니, 그냥 물이 흘러가는 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잘 잤어?”
“응. 아침부터 웬일이야?”
“자기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지. 그런데 지수 내 집에 와 있으라고 하면 안 될까?”
“그건 왜?”
“여자 혼자 그 집에 있으면 무섭잖아. 여긴 1층에 보안요원들이 있기도 하고 김 실장 언니도 같이 있으니까.”
“걔가 혼자 있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야. 정 심심하거든 지수에게 물어보고 그러든지.”
사실 지수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파트라면 보안요원들이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이 없지만, 내가 사는 집이 단독주택이었기에 여고생인 지수 혼자 집에 두고 온 것이 내심 걱정이었는데, 예나 또한 마찬가지 생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지수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우선 지수의 의견을 물어보라고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또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러 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패싸움을 하는 신이 자주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합이 맞지 않아 소소하게 다치는 경우가 이따금 일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촬영을 중단할 만한 큰 사고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수경 사범의 빼어난 무술 실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화면에 비친 하수경 사범의 화려한 액션이 스크린에서 펼쳐지면, 관객 중에서는 하수경 사범의 배역인 은향이 누님의 존재가 누굴까 하고 궁금해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 사범님도 이참에 아예 본격적으로 전업을 생각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전업?”
“액션 배우로 말입니다. 사범님 정도 마스크라면 어디 가서 꿀릴 마스크도 아니고, 액션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요.”
“아무리 액션 배우라고 하더라도 무술 실력만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사범님은 마스크도 되지 않습니까.”
“물론 나도 한때는 배우를 꿈꾸기도 했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대사를 못 치잖아.”
“예? 그게 무슨?”
“한 배우는 아직 잘 모르는구나. 난 싸우는 장면이 아닐 때는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해. 이상하게 입이 굳더라고.”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싸울 때 말고는, 하수경 사범이 대사를 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싸움이 끝나고 승리의 기분에 도취해서 서로 웃고 떠들면서 술잔을 기울일 때도 하 사범님은 소리 소문도 없이 빠져 있었고, 심지어 어떤 때는 싸움이 끝났다 싶으면 정말 시크하다 싶을 정도로 혼자 뚜벅뚜벅 현장을 떠났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