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내 서방 예쁘게 봐주세요.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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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지내는 사흘 동안, 예나는 아예 집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생각조차 않고 집에만 붙어 있었다.
지수를 데리러 가는 밤에는 학교 앞까지 나오곤 했으니 100% 집 안에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겠지만, 잠자는 시간 말고는 내 곁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튼 예나가 사흘 동안 지수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몰라도, 지수는 아침을 먹다가 뜬금없이 ‘카메라 설치하라고 해!’라고 한 마딜 던지고 쿨하게 등교를 했다.
“그럼 촬영이 끝날 때까지 서울엔 올라오지 못하는 거야?”
“너도 잘 알잖아. 빨리 끝나도 여섯 시고 또 늦어도 여덟 시만 되면 촬영이 시작되는데, 어떻게 그 시간에 서울과 양산을 왕복할 수가 있겠어?”
“그럼 자기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화상통화를 하면 되지.”
“치! 난 자기하고 안고 키스하고 싶은데.”
“지금 진수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촬영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하자.”
나도 예나의 이런 반응이 싫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빨리 타오른 장작은 빨리 꺼지는 법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화~르~륵 타올랐다가 꺼지게 되면,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안길 뿐이다.
그렇게 예나는 김 실장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진수와 함께 고속도로에 올랐다.
“한동안 지수가 혼자 지내야겠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서 배우하고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시간이 좀 흐르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거야.”
“그럼 넌 서 배우한테 별다른 감정이 없어?”
“네 생각에는, 나하고 예나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어울리지 못할 것은 또 뭐가 있어.”
“남녀가 사귀는 것이야 서로 마음만 맞으면 가능한 일이지만, 결혼은 서로 최소한의 조건이 맞아야 하는 법이야. 그걸 놓고 생각해 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대표님은 허락하셨잖아.”
“지금이야 예나가 예전의 그 일 때문에, 나 말고는 편해하는 남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으신 거지. 그런데 예나가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양산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진수는 예나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보통의 남녀처럼 시작된 관계였고 지금처럼 달아오른 관계였다면 뭐라고 할 말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예나가 보이는 말과 행동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나 스스로 예나에게 별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당분간 시간을 두고 양산에서 촬영을 핑계로 만나는 것을 자제하면서, 예나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어~ 일찍 도착했네. 푹 쉬었어?”
“예. 덕분에 푹 쉬고 왔습니다.”
“오늘부터 현장이 좀 빡세게 돌아간다는 것은 알고 있지?”
“예.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선 장수한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고, 촬영 감독님과 오디오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다시 함께할 선배 배우들을 기다렸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형이라고 하라니까.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아직 제가 습관이 되질 않아서요.”
“앞으로 자꾸 선배라고 하면 너하고 안 논다.”
내가 형이 없다 보니 그런 것인지, ‘형’이란 소리가 입에서 잘 나오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대학을 다니면서도, 과의 선배들에게조차 형이라고 불러본 기억이 없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보통 내가 졸업한 방송연예학과나 연극·영화학과 같은 경우는, 선후배 간의 규율도 세고 그러면서도 자주 부대끼다 보니,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지게 되는 덕분에 서로 형 동생 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 수업 시간 이외에의 대부분 시간을 거의 아르바이트 하는 것으로 보낸 탓에, 선배들과는 물론이고 동기들과도 제대로 어울려본 기억이 없이 왕따 아닌 왕따로 4년이란 시간을 보냈었다.
덕분에 인맥이라곤 만들 기회조차 없어, 인맥이 중요시되는 이 바닥에서 전생의 삶에서는 변변한 배역 하나 얻어걸리지 못했고, 덕분에 뻔질나게 오디션 자리만 전전하고 다녔었고.
“사범님, 안녕하십니까.”
“한 배우, 오랜만이네요.”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에이~ 액션스쿨에서야 강습생이지만 여긴 현장인걸요.”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그냥 동생처럼 대해주십시오.”
앞으로 찍을 신에서 하수경 사범과의 분량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시나리오에는 하 사범과 나의 관계가 서로 호감을 느끼는 그런 관계로 진행될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분위기 연출을 위해서라도, 하 사범님과 내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있었다.
“자~ 갑시다! 액션!”
감독님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지역 폭력조직으로 분장한 단역 배우들과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누님, 가릅시다.”
“뭐?”
“저 새끼들을 갈라놓자고요.”
“어떻게?”
“우리가 숫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니 누님하고 저하고 앞에 서고, 애들을 뒤따르게 해서 중간을 가로지르자는 거죠.”
열 배가 넘는 숫자가 떼로 몰려왔기에, 정면으로 붙어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배수진을 칠만한, 아니 배수진이라기보다는 저쪽 ‘남부시장 파’ 조직원들의 공격을 받더라도, 한쪽만 막으면 될 그런 장소도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맞붙어 싸워봐야 우리 쪽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기에, 은향이 누님과 내가 앞장서고 그 뒤를 동생들이 따르면서 저쪽의 대열을 갈라치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은향이 누님의 검도 실력이 어쩌면 나보다도 살짝 윗줄일 수도 있다는 그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윤호야. 네가 뒤에서 애들 절대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챙겨!”
“알겠습니다!”
“간다!”
은향이 누님과 내가 앞에서 그리고 윤호가 뒤에서 애들을 챙기면서, 동생들을 중앙에 배치해 보호하면서 돌파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아주 큰 약점이 존재한다.
만약 저쪽에 고수가 있어 누님과 내가 가로막혀 앞으로 돌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우리 조직원 모두가 포위되어 궤멸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중간에 낙오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떼로 몰려온 남부시장 파와 대결에서,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은 정면 돌파 말고는 없다.
“괜찮아?”
“허~억, 헉~ 괜찮아요. 누님은요?”
“나도 아직은 괜찮아.”
“윤호야 준비됐어?”
“예.”
말이 필요 없었다.
아니 말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이미 세 차례나 남부시장 파 조직원을 갈라치기 한 탓에 나뿐 아니라 모두가 거친 숨을 헐떡거렸고, 조금 전의 격렬한 싸움 덕분에 우리 조직원 중에는 몸이 성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동생들은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하나같이 모두의 눈에는 독기가 어려 있었다.
“저 새끼들 지금 바짝 졸아 있으니 한 번만 치대면 나가떨어질 거다. 그러니 힘내자!”
“예! 형님!”
“가자!”
비록 우리가 서울에서 세 불리를 느끼고 쫓겨 내려왔고 숫자로도 중과부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명색이 전국구 주먹들이었다.
그러니 죽을 때는 죽더라도, 이런 지방의 양아치 수준의 작은 조직과 싸움에서 쪽수가 밀린다는 이유로 꼬리를 내린다는 것은, 가오를 따지기 이전에 쪽팔리는 일이다.
우린 눈에 독기를 가득 품은 채,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듯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잠깐! 저 새끼들 지금 뭐하는 거야?”
우리가 달려들자 갑자기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은향 누님과 내가 앞장서서 앞으로 내달리자,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홍해가 갈라지던 것처럼, 저놈들이 알아서 반으로 쫙 갈라지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은향이 누님과 내가 달려가는 곳마다 ‘남부시장 파’ 조직원들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기에 바빴고, 우리는 대열 끝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전력을 다해 100m 달리기를 하면서 헛심을 쓴 꼴이 되어버렸다.
“보소, 우리한테 와 이러는데?”
“꿇어라!”
“꿇을 때는 꿇더라도 이유는 좀 알아야 할 거 아니요. 도대체 우리한테 와 이러요?”
“같이 좀 먹고 살자고.”
“시발, X만 한 동네에 뜯어 먹을 게 뭐가 있다고. 도대체 어디서 왔소?”
어차피 우리 애들도 많이 지친 상태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라도 체력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왜? 호구조사라도 해볼래? 나 강수라고 한다.”
“강수? 독고다이 한강수? 시팔! 네가 한강수면 난 시라소니다.”
“저 시팔 놈이!”
“윤호 넌, 가만히 있어.”
내가 이름을 밝히자 ‘남부시장 파’ 맏형쯤으로 보이는 놈이 비아냥거렸고, 그 비아냥거림에 윤호가 발끈했다.
당연히 믿기지 않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전국구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상두파의 최고 주먹이라는 내가, 이런 깡촌에 와서 이른 드잡이질을 한다면 누구라도 믿기 힘들 것이니 말이다.
“그럼 형씨 옆에 있는 깔치는 누구요?”
“저 씹새 주둥이를 찢어버릴까 보다! 너 이 새끼 이리 와봐. 누님이 직접 알려줄게.”
“시발! 니미 누군지는 알아야 무릎을 꿇든 말들 할 것 아니요? 더럽게 값 튕기시네.”
“너 은향이 누님이라고 들어는 봤니?”
“헉! 상어 파의······. 누님! 사랑합니다!”
아무리 시골의 허접스러운 조직이라고 하지만, 무슨 삼류 코미디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닌데 이 꼬맹이들이 은향이 누님의 이름을 듣고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사랑합니다!’라니.......
“컷! 오케이! 잠시 쉬었다가 갑시다.”
그렇게 장수한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한 배우, 잠시만 와 봐.”
오케이 사인을 내신 장 감독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촬영이 끝나고 나면 지금처럼 종종 불려가거나 아니면 내가 먼저 감독님 쪽으로 가서, 방금 찍은 신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지금도 그 문제 때문에 부르시는 줄 알고 나는 털레털레 감독님이 계시는 모니터 쪽으로 갔다.
“자, 이거 마셔.”
“예? 아, 감사합니다.”
“아니, 고맙다는 인사야 내가 해야지. 그런데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된 거야?”
감독님께 다가가니 장 감독님이 커피를 내미시면서, 뜻 모를 미소를 지으신다.
“커피가 고프신 분들은 주차장으로 가시면, 한강수 배우님께서 쏘신 커피 트럭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장수한 감독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얼떨떨해 있는데, 조감독님의 목소리가 메가폰을 통해 울려 퍼진다.
“아무튼 한 배우, 잘 마실게.”
“선 대표님께서 커피 트럭을 보내셨습니까?”
“직접 나가서 봐. 가서 토스트도 하나 먹어보고. 엄청나게 맛있더라.”
촬영장에 커피 트럭이 오는 것이야 종종 있는 일이다.
물론 나처럼 생짜 신인의 이름으로 오는 커피 트럭이야 찾아보기 힘들지만, 지훈이 형 정도의 주연급이나 비록 주연은 아니라고 하지만 연예계에 발이 넓은 배우들과 아이돌 가수 같은 경우는, 가까운 연예인이나 팬들이 커피 트럭이나 밥차를 보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나야 아직 그럴 깜냥도 아니니, 커피 트럭을 보냈다고 해봐야 소속사인 예담기획에서 보낸 것이 확실했다.
내가 감독님께 인사를 하고 커피를 들고 돌아서니, 진수가 다가와 패딩을 걸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