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인연인가?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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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커피숍 안으로 들어서자 김 실장님이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예나를 내게서 빼앗다시피 하고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순간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예나와 김 실장님을 따라나섰고, 스타일리스트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한 것인지 멍하게 서서 석상이 되어 버렸다.
“너 미쳤어?”
“왜?”
“빨리 차로 가. 한 배우님도 빨리 따라오세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뜬금없이 바깥으로 끌어내더니 차로 가자니 말이다.
혹시 하는 생각에 고개를 숙여 옷차림을 확인해봤지만, 옷이 조금 구겨진 것 이외에는 특별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 없었다.
“얘가 정말 미쳤어!”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아이고 미친년. 하긴 미친년이 지가 미쳤다는 것을 어찌 알겠어.”
“미치다니 자꾸 누가 미쳤다고 그래? 계속 그러면 나 화낸다.”
“이년아 거울부터 보고 네 꼴이 어떤지나 확인해봐.”
승합차에 타서 문을 닫자마자 김 실장님은 다짜고짜 예나의 등짝을 후려 패면서, 연신 미쳤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 실장님이 예나에게 거울을 내미는 순간 내 눈은 자연스럽게 예나의 얼굴로 향했고, 예나의 얼굴은 온통 립스틱이 뭉개져, 조금 전 열정적인 키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헤~ 진작 말하지.”
“이년아, 네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확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지금이 밤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대낮이었다면 어쩔 뻔했어?”
“그러게. 다행이긴 하네.”
“여하튼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바로 그 짝이다.”
“치! 좋은 걸 어떻게 해. 그런데 언니, 나 또 하고 싶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키스 한 번만 더하고 닦으면 안 될까?”
“아이고 미친년! 외삼촌이 아시면 어지간히도 좋아하겠다.”
“아빠에게 얘기할 거야?”
“그럼 이런 대형 사고를 치고도 외삼촌이 모를 것으로 생각했어?”
“힝~”
아무리 예나의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예나에 대한 김 실장님의 관심이 매니저와 연예인의 관계치고는 특별하단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예나와 김 실장님의 관계가 외사촌지간이었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김 실장님,”
“됐어요. 어차피 이년이 미쳐 날뛰었을 것이 뻔한데....... 우선 한 배우님도 얼굴부터 닦으세요.”
그러면서 김 실장님은 내게도 손거울과 화장 솜을 내미셨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자라면 기겁을 하던 년이, 갑자기 이래 미쳐 날뛰면 나보고 어떻게 하란 건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이러다가 너 정말 스캔들 터진다.”
“스캔들은 무슨 스캔들이야. 이미 우리 사귄다고 기자회견까지 했는데.”
“이년아 사귀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그렇게 난리 치면 어지간히도 가만히 있겠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 강수 씨만 보면 키스하고 싶어서 온몸이 간질간질해.”
“진짜 이년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네. 내 앞에서 그런 소릴 하고 싶니?”
“피! 언닌데 어때.”
둘 사이가 외사촌지간인데도, 이야기하는 것만 보면 마치 친자매처럼 느껴졌다.
“한 배우님.”
“예. 김 실장님.”
“얘가 미쳐 날뛰면 남자인 한 배우님이라도 조금 자제할 수 있도록 컨트롤 하셔야지요. 여자가 덤벼든다고 얼쑤 좋다고 가만히 계시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하긴 김 매니저 이야길 들어보니 한 배우님도 모솔 이랬으니......”
그러면서 김 실장님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다.
“언니, 이참에 확 결혼이나 해버릴까?”
“결혼하면 잘 살 자신은 있고? 아니 밥이라도 할 줄 알아?”
“밥은 강수 씨가 하면 되잖아.”
“그럼 넌 뭐하고?”
“난 아기 낳고, 뜨개질도 배우고........”
“아이고, 이 철딱서니라고는 약으로 쓰려고 해도 없는 년....... 아무튼 얼굴 예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걸 누가 데려가려는지......”
“강수 씨도 날 사랑한다던데. 그럼 당연히 강수 씨가 데려가겠지? 자기야 내 말이 맞지?”
옆에서 듣기에도 정말 철딱서니가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어쩌면 지수보다도 훨씬 더 생각이 어릴 것 같은 예나였다.
그런데 그런 예나가 밉질 않았고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내 눈에도 콩깍지가 한 꺼풀 제대로 씐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예나를 보면서, 빙긋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두 사람을 저울에 올려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을 사람들일세. 저런 철딱서니 없는 걸 보고 좋다고 웃고 있는 사람이나, 밥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그걸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나....... 정말 천생연분이라는 것이 있긴 한가 보다보다.”
김 실장님은 아예 해탈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내가 김 실장님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대책이 없는 예나의 말과 행동에는 그럴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예. 대표님. 지금 부산에 있는 송정해수욕장입니다.”
“.......”
“한 배우와 만나서 커피 한잔 마시고 올라가겠다고 해서요. 지금 곧 출발할 예정입니다.”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 실장님 휴대전화로 선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 배우님, 많이 늦었지만 회사에 잠시 들렀다가 가셔도 될까요?”
“전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대표님께서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요.”
“아빠가 왜?”
“네가 나중에 딸을 낳아서 키워봐. 그럼 외삼촌이 지금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
“치! 언니가 그렇게 사사건건 고자질을 하니 아빠가 걱정이 많지. X-탑 수원이 걔는 남자하고 자기도 했다던데?”
“너 걔하고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
“딱히 알고 지낸다고 하기보다는 작년 연말 시상식에 초대가수로 왔었잖아. 그때 번호를 주기에 이따금 연락하고 지내.”
“앞으로 걔하고는 거리를 둬.”
“왜?”
“그냥 언니가 그러라면 그렇게 해. 전화번호도 지우고!”
김 실장님의 반응이 예상 밖으로 단호했다.
물론 나는 걸 그룹의 가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김 실장님이 저러는 것을 보면 방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X-탑의 수원이라는 친구에 대해서, 김 실장님이 따로 아는 무엇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전생에서도 나는 내가 연기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세상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작품이 끝이 나면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서 뒹굴 거리거나 소일거리 삼아 민물낚시나 했던 것이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작품에 올인하고 난 후에는 세상만사가 귀찮아져서, 마땅한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는 세상과는 단절된 상태로 살고, 또 해보고 싶은 역할이 생기면 촬영장과 집을 오가면서 몸을 혹사하다시피 하면서 지냈던 삶이, 내 전생의 기억 전부였다.
도대체 그때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었던 것인지.......
“그럼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자기 나하고 같이 타고 가자.”
“내가 이 차에 타면 다른 분들이 불편해져.”
“피! 그럼 언니들보고 진수 씨 차를 타고 가라고 하면 되지.”
“까분다. 너 운전면허증 없지?”
“응.”
“나중에 운전을 배우게 되면 운전을 해봐. 자기가 몰던 차가 아니면 차를 바꿔서 운전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게 될 테니까.”
“그럼 자긴 운전면허증이 있어?”
“당연하지!”
사실 전생에서 정치에 입문하고 난 후에는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그 이전 배우생활을 하면서는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군 입대를 생각하면서, 처음엔 요령을 피울 생각에 운전병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 해서 운전면허증을 따두기도 했다.
하지만 가사사유로 하여 정상적인 입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해병대 자원입대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요령을 피우겠다는 생각은 허무한 꿈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 예나에게 한 말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다.
실제 운전면허증을 받은 이후에는 운전대를 잡아본 기억조차 없는 장롱면허였으니 말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더니.......”
“뜬금없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까 네 얼굴이 어땠는지 알아? 그 사진을 찍어 뒀어야 했는데.......”
“지랄한다. 그렇게 날 개망신 주고 싶어?”
“앞으로 널 좋아할 팬들이 보면 엄청 즐거워할 사진이잖아.”
“됐다. 시작하기도 전에 흑역사 만들 일 없어. 그런데 컨디션은 괜찮아?”
“온종일 쉬었는데 컨디션이 나쁠 이유가 뭐 있어. 그리고 원래 내가 운전 체질이잖아.”
“아무튼 회사에 날 내려주고 넌 먼저 집에 가서 쉬어.”
“회사? 이 시간에?”
“응, 대표님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좀 들르라고 하시네.”
“한 배우, 아무리 대표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네. 아무리 자기 딸이 관련된 문제라고 하지만 이건 사적인 문제인데, 소속사 대표가 배우를 한밤중에 회사로 나오라고 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
자정이 넘어 서울에 도착할 것이고 또 내가 종일 촬영한 것을 알고 있는 진수는, 밤늦게 선 대표가 부른다는 말에 잔뜩 골이 난 표정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다는 말처럼, 내가 헛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쩌면 선 대표가 내 장인어른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몸이 좀 피곤하다고 오라는 소리를 듣고도 그걸 거부할 수는 없다.
만약 예나와 결혼을 하게 될 일이 생긴다면, 평생을 함께 가야 할 가족이 될 양반이니 말이다.
“그런데 네 생각은 어때?”
“무슨 생각?”
“서예나 배우 말이야. 내 느낌으로는 서 배우가 널 엄청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넌 서 배우에 관해서 아무 생각도 없는 무덤덤한 상태 같아서.”
“그런 것 같지? 솔직히 나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정말 내가 예나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나가 다시 충격을 받을까 봐 그냥 예나의 행동을 받아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 판단해. 여기서 조금 더 관계가 깊어지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니까.”
“그러게. 그런데 네가 보기엔 예나가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
“그게 희한한 일이란 말이지. 지금이 무슨 60년대도 아닌데 처음 보고 반했다는 것이 말이나 돼? 그런데 서 배우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딱 그렇잖아.”
나만 예나의 행동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예나가 과거 경험했던 그 일 때문에 지금까지 남자라고 하면 기겁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갑자기 나타난 나에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아니면 정말 조금 전에 했던 김 실장님의 이야기처럼, 예나와 나 사이가 무슨 천생연분인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서울을 향해 밤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