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늦게 배운 도둑질에.......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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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네 안의 야수’ 엔딩장면 촬영이 끝나고도 촬영은 계속되었다.
지금부터는 경상남도에 있는 양산이라는 소도시에서 옛 상어파 핵심들과 내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서 세력을 키우고, 결국 서울에 다시 진출하여 만구 그 인간이 보스로 있는 상두파와 옛 상어파 영역을 접수하는 장면을 찍게 된다.
그리고 양산에서의 촬영은 오늘 촬영을 끝내고 서울에 올라갔다가, 모레부터는 이곳 양산에서 약 한 달 동안 강행군하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촬영 끝냈어.’
‘그래? 지금 자기 어딘데?’
‘지금 고속도로에 올리려고, 고속도로 쪽으로 가는 중이야.’
‘그럼 고속도로에 올리지 말고 부산으로 와.’
‘뭐?’
혹시 집에서 잠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해서 톡을 보내니, 뜬금없이 부산으로 오라고 했다.
어차피 차에는 예나와 항상 함께하는 김 실장님을 비롯한 스태프들뿐일 것이기에 전화를 걸었다.
“왜 아직 서울에 올라가지 않고 있었던 거야?”
“응. 이왕 부산에 온 김에, 부산 구경이나 좀 하고 가려고.”
“지금 있는 곳은 어딘데?”
“여기 송정해수욕장이라고 하는데. 바다 보기에는 해운대보다는 송정해수욕장이 훨씬 좋다고 하더라고.”
“알았어. 송정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전화할게.”
예나가 지금 부산에 있다고 하니 송정해수욕장에서 커피만 마시고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에 도착하게 되면 자정을 넘기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수업 중인 지수의 휴대전화로 오늘은 많이 늦을 것 같으니,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자라고 문자를 보내고 진수와 함께 송정해수욕장을 향해 출발했다.
“지금 어디쯤 있어?”
“해수욕장 중간쯤에 있는 C 커피숍이야.”
천천히 해변도로를 따라가면서, 예나가 얘기한 C 커피숍의 간판을 찾았다.
“실장님, 저녁은 드셨어요?”
“간단하게요. 한 배우님은 현장에서 바로 오시는 길이세요?”
“예. 서울로 올라가려다가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었거든요. 그런데 서 배우는요?”
커피숍에 있는 줄 알고 들어갔더니, 커피숍에는 김 실장님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나는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모래사장에 나갔다고 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요?”
“아까 대기실에서......”
“아. 그게......”
이 양반이 자리에 앉자마자 돌 직구를 날린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살짝 간을 보고 난 후에 직구든 커브든 날리는 법인데, 이 양반의 성격도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한 배우님의 행동을 탓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대표님께서 엄청 궁금해 하고 계셔서요. 저 또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사실이고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얼떨떨합니다. 그런데 아까 그 일을 대표님께서도 아신다고요?”
“예나 아빠잖아요. 또 예나가 그 미친놈 때문에 그 일을 겪고 난 후부터,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던 분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딸이 외간남자와 부둥켜안고 키스를 했다는 사실까지, 보고한다는 것이 말이나 된단 말인가?
하지만 김 실장님은 그게 매니저로서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일말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다음 말을 재촉하는 분위기다.
“혹시 예나하고 제가 모르고 있는 다른 일이라도 있었나요?”
“다른 일이라니요?”
“그게 그러니까....... 그런 거 있잖아요. 강제로 하고 나서 여자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는......”
“강제로 하긴 뭘 강제로 합니까. 저도 예나가 갑자기 입술을 부딪쳐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니까요.”
“키스가 아니라 그거 있잖아요.”
“예? 미쳤어요?”
무슨 말인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김 실장이라는 이 여자의 아이큐가, 두 자리 숫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김 실장 말대로라면 그 일이 있고 난 후 지금까지, 손조차 잡아본 남자가 없다면서 어떻게 강제로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이며, 또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면 어떻게 예나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인가?
평범한 삶을 살면서 남녀 사이의 사랑을 꿈꾸는 아가씨라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상대 남자와 그런 경험을 하고 난 후에는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혹시 자기가 생각하던 사랑이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나 하는 불안감으로 많이 흔들리는 법인데 말이다.
하긴 저런 얼토당토않은 상상까지 한 양반이었으니, 마약 이야기까지 나온 것일 것이다.
“미안합니다. 제가 갑자기 흥분해서.......”
“아니에요. 제가 크게 결례를 범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굳이 그런 사소한 일에 화까지 낼 필요가 있나 싶어서 재빨리 사과했고, 김 실장님 역시 내게 사과를 해왔다.
한동안 서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불편한 시간이 지속되었다.
“자기 왔어? 우리 나가자.”
“됐어. 모래사장에 들어가 봐야 신발에 모래만 그득할 텐데.”
“치! 바다 가까이에서 파도 소리 듣는 게 얼마나 좋은데. ‘촤~르~르~ 쏴~아~’하면서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소리를 들어보기나 했어?”
“내가 중학교 때까지는 양산에서 살았었어. 그래서 바다 구경이야 수도 없이 해봤고.”
솔직히 서울 촌놈으로서 모래사장을 걷고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가 있을지 몰라도, 수없이 바다구경을 했었던 나로서는 신발 안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는 그것이 오히려 귀찮을 뿐이었다.
“한 배우님, 예나가 저렇게 간절히 부탁하는데 같이 다녀오시죠.”
“예?”
내가 덤덤한 표정으로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자, 이번에는 김 실장님이 나서서 나보고 백사장에 같이 다녀오라고 등을 떠민다.
아마도 예나가 오랜만에 기뻐하는 모습 때문에, 그 기분 좋은 상태를 깨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 매니저.”
“예. 실장님.”
“한 배우 모솔이지?”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니. 학창시절부터 친구였다면서 대답이 뭐 그리 흐리멍덩해?”
내가 예나를 따라 바깥으로 나온 사이에, 김 실장님은 진수에게 나에 대해서 질문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질문의 요지는 내 여자관계와 인간성에 관한 그런 내용이었다.
“아무튼 지금까지 사귀었던 여자는 없었다는 말이네?”
“예. 고등학교 때야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한 배우도 아르바이트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대학 때 따라다니던 여자는 없었고?”
“혼자 좋아했던 여자애들은 몇 있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배우가 아예 눈길조차 주질 않으니 제풀에 떨어져 나간 거지요.”
“한 배우 집이 그렇게 가난해? 집만 보면 그렇게 악착같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던데?”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유산을 가능한 한 쓰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어려서 부모님을 잃다 보니 최악의 상황에 몰리기 전까지는,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예금통장에조차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심지어 고등학교 때도 방학 때는 노가다를 뛰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진수 입을 통해서, 나에 대한 호구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예나 뒤를 따라다니면서 한껏 고조된 예나의 기분을 맞추느라 바빴고........
“자기야, 우리 부산까지 온 기념으로 사진 찍자. 언니,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줘.”
아예 내 의견은 무시되었고, 예나는 자기 휴대전화를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넨 후 팔짱을 끼고는 포즈를 취했다.
“자기 앞으로 죽을 때까지 평생 내 옆에 있어 줄 거지?”
“응.”
“그럼 앞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해.”
“뭐?”
“남자들 애인 생기면 하고 싶은 것 있잖아. 이제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예나가 말하는 내용이 조금 요상하게 느껴진다.
흔히 사랑하는 남녀가 하는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닌다든지 아니면 심야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아간다든지 하는, 그런 통상적인 것이 아니란 뉘앙스였던 것이다.
“나 자기랑 키스하고 싶다.”
“응? 여기서?”
“응, 지금 당장!”
“인마.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보긴 누가 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키스하는데 누가 좀 보면 어때?”
예나의 상태가 잠겨 있던 둑이 터진, 그런 상태인 것 같았다.
그동안 예전에 경험했던 아픈 기억의 후유증 때문에 아예 남자의 접근조차 회피했던 그것이 갑자기 해소되자, 아예 댐이 터진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조금씩 제동을 걸어줘야 하는데, 나조차도 이른바 모태솔로였기에 예나의 그 말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예나의 말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 입술에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예나의 입술이 겹쳐지고 있었다.
“어머! 예나야!”
당황스러워하는 스타일리스트의 말이 내 귀에 아련하게 들려왔고, 예나의 적극적인 키스에 나는 반쯤은 정신을 잃은 혼미한 상태가 되어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예나의 혀는 마치 뱀처럼 내 입안을 휘젓고 다녔으며, 입술을 통해 넘어오는 예나의 침은 마치 감로수처럼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예나의 키스는 격렬했고, 그녀의 양손은 내 목덜미를 꽉 안아 내가 숨쉬기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예나의 허리를 안고 있던 내 손은 아래로 내려가 예나의 탱글탱글한 엉덩이 살을 꽉 쥐었고, 예나는 몸을 바짝 내 쪽으로 붙여왔다.
“하~아~ 사랑해~”
“......”
“자기 꺼, 되게 크다.”
“뭐?”
순간 확 깨는 느낌이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내 몸의 한 곳으로 힘이 쏠렸고, 예나에 그것이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예나의 과거 그 일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예나의 그 말이 정말 제법 많이 논 여자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을 정도의 내용이었다.
“꽉 안아 줘.”
예나의 말에 미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몸을 뗐더니, 예나는 더욱더 강하게 나를 안고 몸을 붙여왔다.
순간 나는 더는 진도를 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연신 애국가를 부르면서 내 몸이 진정되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치! 남자가 뭐 그래?”
“뭐가?”
“여자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는데, 자꾸 도망가는 법이 어디 있어?”
“도망가긴 누가 도망을 가. 계속 이러다가 정말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쩌려고 이래.”
“치! 바보~”
예나의 거침없는 대시에, 오히려 내가 불안해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조만간 사고를 치지나 않을까 하는 것과, 분명 스타일리스트는 김 실장님과 마찬가지로 오늘 이 일을 선 대표님께 보고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아무튼 서울 집에 지수가 혼자 기다린다는 말로 예나를 설득해서 커피숍으로 돌아왔고, 커피숍에 들어설 때까지 예나는 보통의 사랑하는 남녀 사이처럼 팔짱을 꽉 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