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첫 키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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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안에서 마주한 예나의 표정이 심상찮았고, 심지어 예나의 입술은 아예 파래져 있었다.
“어디 아파?”
“아니, 내 얼굴이 많이 이상해?”
“아예 환자 같다. 어디 몸이 불편한 것은 아니지?”
“응.”
“아이고, 누가 네 얼굴을 보게 되면 응급실로 데려가겠다.”
“그 정도로 이상해?”
“김 실장님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 보지 못했어?”
“몰라. 나도 지금 어째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걸.”
“이러면서 나하고 사귀자고 큰소리쳤던 거야?”
“사귀는 것하고 지금 상황하고 무슨 상관인데?”
“지금 오늘 찍을 키스 신 그러니까 정확하게 표현하면 뽀뽀하는 장면 때문에 이러는 것 아니야?”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문지훈 선배에게 이야기 다 듣고 왔는데.”
입으로야 아니라고 했지만 키스 신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오자, 예나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남녀 사이 친구라면, 그냥 자연스럽게 어깨를 살짝 안아준다든지 하면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겠지만, 예나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어설픈 스킨십은, 오히려 예나의 긴장감만 더 높이게 될 것 같았다.
전생에서도 이른바 연애 고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여자를 꼬드기는 일에는 그리 관심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기에, 내 전생의 기억을 소환한다고 해봐야 별 도움이 될 것이 없었다.
“청심환 하나 갖다 줄까?”
“청심환? 아까 김 실장 언니가 줘서 먹었어.”
정말 내가 도와줄 것이 없었다.
오늘 이전에 손이라도 잡았던 일이라도 있었더라면 가만히 손만 잡아줘도 훨씬 더 안정될 텐데, 아직 손조차 잡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냥 가벼운 이야기로 지금 상황을 조금이나마 잊게 하여, 예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한 상태가 되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지수를 꼬드겨야 하는데, 이럴 때 여자들은 어떻게 하면 돼?”
“지수를 왜?”
“집에 카메라를 설치할 생각이거든. 그런데 지수가 동의해줄 것 같으면서 아닌 척하고 있거든.”
“카메라는 왜 설치하는데?”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더라도, 우리 사이가 기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란 것을 직접 확인하게 하려고.”
“그럼 내가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자기 집에 가서 자고와도 돼?”
“그거야 지수 맘이지. 네가 지수하고 자지 나하고 자냐?”
집에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이야기에, 예나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카메라를 설치하는 이유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예나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는 것 때문이라고 하자, 조금 전까지의 불안 초조해 하던 눈빛은 어디로 간 것인지 아예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순간 이게 정답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지금 분위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지수가 뭘 좋아해?”
“걔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뭘 물어보기만 해도 툴툴거리는데.”
“치! 어떻게 오빠가 되어서 여동생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냐?”
“어릴 때는 인형을 좋아했는데, 중학교 가고부터는 아예 제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아 맞다!”
“뭐? 뭐 좋아하는데?”
“소고기. 걔가 좋아하는 게 소고기였네.”
“소고기 싫어하는 사람 있어. 소고기야 다 좋아하지.”
“아닌데, 나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훨씬 좋아하는데.”
“정말? 그럼 어떻게 해?”
“뭐가?”
“난 돼지고기 잘 못 먹는단 말이야.”
“그럼 고기 먹을 때는 따로 가면 되겠다.”
순간 등짝이 아릴 정도로 ‘철썩!’하는 소리가 들렸고, 정말 무슨 여자 손이 이렇게 맵나 할 정도로 고통이 밀려왔다.
“야!”
“뭐?”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때리고 그래? 그리고 무슨 여자 손이 이렇게 맵냐.”
“자기가 가만히 있었다고? 어떻게 사랑한다면서 밥 먹으러 가면서 따로 간다고 해?”
“사랑하면 밥도 같이 먹어야 해?”
“당연하잖아. 손도 잡고, 팔짱도 끼고, 그리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다니고.”
“아닌데. 난 아직 손도 잡은 적도 없고, 여자하고 팔짱도 껴본 적이 없는데.”
엉뚱한 데서 일이 풀리고 있는 느낌이다.
예나 입에서 먼저 손을 잡는다느니 팔짱을 낀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정말 뜬금없이 예나 입에서 그런 말이 술술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예나의 눈빛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말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기 나 사랑해?”
“사랑하지 않으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을까? 어젯밤에도 계속 보고 싶었었는데.”
“정말?”
“그런 걸 뭐하려고 거짓말해.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전화를 하려다가 잘까 봐, 차마 전화를 하지 못 했는데.”
“치! 그럼 전화를 했었어야지.”
마치 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키스 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입술조차 파랗게 질려있던 예나의 입술은, 어느새 선홍색을 띠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사실 말로는 사귀기로 했다고 했지만, 실제 예나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진척도 없었다.
그냥 예나 스스로 나를 남자친구로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그냥 예나의 장단에 맞춰줬다는 것이 솔직한 내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나는 상상 속에서 혼자 세상을 그리는 것인지, 언젠가부터 나를 요즘 흔한 표현처럼 남자 사람 친구에서 남자친구로 격상시켰고, 또 지금에 와서는 갑자기 애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 나로선 나쁠 이유가 없었고 또 오늘 촬영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나는 예나의 그런 말과 행동에 장단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나 자기 한번 안아 봐도 돼?”
“인마, 그건 원래 남자가 하는 거야. 이리와 봐.”
“치!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안을 거야.”
그러더니 예나가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서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목덜미를 잡고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가져간다.
순간 부드러우면서도 물컹한 느낌이 내 얼굴에 느껴졌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번 생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고 전생에서도 그렇게 여자를 경험한 것이 많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여자의 가슴에 안겨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예나의 가슴 콩닥거림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내 얼굴은 나도 모르게 벌겋게 달아올랐고, 내 손이 나의 의지와는 달리 자꾸 예나의 탱글탱글한 엉덩이로 향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용을 써야 했다.
“나 키스하고 싶어.”
“으~응?”
“나 자기랑 키스하고 싶다고.”
“여기서?”
“응. 촬영하면서 하는 키스가 첫 키스가 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해.”
그러더니 예나의 얼굴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예나의 눈은 살포시 감겨 있었고, 내 눈에는 예나의 빨갛게 반짝거리는 입술만 가득했다.
나는 살며시 내 입술을 부드럽게 예나의 입술을 덮었고, 예나의 입술이 살며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술 사이로 예나의 뜨겁고 달달한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고, 그 예나의 혀는 내 혀를 찾아 휘감아 오기 시작했다.
“하~아~”
긴 숨을 내쉬면서 우리 둘의 첫 키스는 끝이 났다.
예나의 가슴 속에, 어떻게 이런 뜨거움이 숨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정말 한참을 미친 듯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마치 전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물고 빨고 하다가 보니, 어느새 내 손은 그녀의 봉긋하고도 부드러운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렇게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 거칠고도 강렬한 키스를 끝낸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촬영을 위해 받았던 메이크업이 엉망이 되었고, 입술의 립스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김 실장님을 불러야겠지.”
“응, 그런데 언니들에겐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하긴 뭐라고 해.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될 텐데.”
“킥! 킥! 재미있다.”
“재미있기도 하겠다. 난 쪽팔려 죽겠는데.”
“치! 남자가 뭘 이런 걸 가지고 쫀쫀하게 그래.”
예나가 김 실장님께 전화를 걸어 메이크업 담당자와 함께 대기실로 오라고 했고, 잠시 후 대기실로 들어온 김 실장님은 아예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 배우님!”
“언니, 아니야. 내가 먼저 하자고 한 거야.”
“뭐?”
“우리 지금까지 사귀면서 손조차 잡아보지 못했잖아. 그런데 오늘 키스 신을 찍잖아. 그럼 첫 키스를 남들 다 보는 데서 해야 하는데 그게 억울해서.......”
예나와 나의 모습을 발견한 김 실장님은, 이제야 정신을 추스른 것인지 날이 선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어진 예나의 변명에 아예 황당한 표정이었다.
“예나, 너 정말 괜찮아?”
“그럼 괜찮지 뭐가 문제야? 애인하고 키스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게 아니라.......”
아무튼 우리 두 사람의 첫 키스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벌어졌고, 또 김 실장님과 메이크업 담당자에게 들킨 것으로 끝이 났다.
아마도 김 실장님은 몰라도 메이크업 담당자는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촬영장뿐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은 우리 둘이 키스를 했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될 것이다.
“서 배우님 준비됐습니까?”
“예.”
“한 배우님은요?”
“저도 준비됐습니다.”
메이크업을 모두 새로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감독이 우리를 찾았다.
“자 갑시다! 레디~액션!”
드디어 장수한 감독님의 입에서, 액션신호가 떨어졌다.
“나 원래 오빠를 사랑했었단 걸 오빠도 알고 있잖아.”
“......”
“내가 더러운 여자라서 그래?”
“인마, 네가 더럽긴 뭐가 더러워.”
“그게 아닌데 왜 날 거부하는데? 내가 만구 그 새끼에게 몸을 줘서? 내가 주고 싶어서 준 게 아니었잖아?”
“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왜? 난 오빠랑 자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오빠 아기를 가지고 싶고!”
그러면서 예나가 오열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예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살포시 예나를 안았다.
“예나야, 괜찮아. 이렇게 불안해할 이유는 없어. 내가 널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네가 그래서가 아니라 이번 싸움에서 내가 어떻게 될지 그걸 몰라서일 뿐이야. 사랑해.”
“사랑하면 날 가져야지. 세상이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어.”
예나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되었고, 나는 그런 예나의 얼굴로 내 입술을 가져가 예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핥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예나 눈에서 흐른 눈물을 모두 핥고서, 나는 예나의 도톰한 입술 위로 내 입술을 덮었다.
“오케이! 컷!”
장수한 감독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지만 예나의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어쩌면 조금 전 장면에서, 예나는 자신이 겪었던 그 일로 인하여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랑이란 감정이 깨어나게 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동시에 그동안의 비참했던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억울함이 가슴 북받쳐 오른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말을 종합해 보면, 예나는 그동안 정말 자기의 잘못이 하나도 없었으면서도 남들에게 수치에 가까운 오해를 받아왔었고, 한창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할 나이에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절대 넘을 수 없는 높은 성벽 안에 갇혀 살아 왔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