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관찰 카메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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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우님, 어서 오세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현장에 도착하니 조감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촬영감독님과 함께 이번 추격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드론 기사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이야 우리가 해야지요. 이왕이면 화끈하게 한 방에 끝내죠.”
B 팀이 찍을 장면은 단순했다.
물론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드론이 동원되었지만, 가능한 재촬영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예 드론을 두 대를 띄워 추격 신(scene)을 찍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첫 신(scene)은 B 고등학교 인근 갓길에서였다.
“일단 저놈들이 민간인들이 있는 곳에선 습격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좀 나가면 찜질방이 있는데, 저놈들을 잡으려면 그곳에서부터 구 양산 초입까지나 아니면 양산시청 지나서 부산으로 가는 도중에 사송 쪽에서 샛길로 빠져서 두드려 잡는 방법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래?”
“형님께서 생각하기에는 어느 쪽이 편할 것 같습니까?”
“편하다는 것보다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토끼몰이를 하는 것이야 사송 쪽이 훨씬 낫지. 애들을 뒤로 빼서 뒤를 치게 하고, 굴 안쪽에 몰아넣은 후 양쪽에서 놈들을 두들기면 되니까.”
그렇게 두 대를 슬쩍 뒤로 빠지게 하고, 우리는 다시 놈들을 유인해서 양산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형님, 저놈이 우리를 제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뭘 어째. 밟아!”
동생들에게 이야기한 찜질방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민가가 보이지 않자, 우리 앞을 가로막으려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탄 차에 넷이나 탄 때문인지 결국 추월을 허용하게 되었고, 그러자 이놈들은 우리 차 앞에서 연신 급브레이크를 밟아대면서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조금만 가면 곡각지점이 나와. 그때 들이받아 버려!”
“예?”
“언제까지 앞에 거치적거리는 놈들을 놔둘 거야. 이러다가 사송까지 가기도 전에 앞뒤로 막혀서 당하게 돼.”
희한하게도 현실에서뿐 아니라 시나리오에도 이곳 양산이 내 고향이었던 덕분에, 이곳 지리에 대해서 내가 훤하다는 것이 장점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곡각지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밟아!”
“오케이! 한 대 날리고!”
룸미러에는 앞서가다가 우리에게 들이박힌 승용차가, 논두렁을 구르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뒤따르던 차 중에 한 대는 급정거해서 구르는 차를 향해 달려가는 놈들의 모습이 보였고, 나머지 두 대는 독기를 잔뜩 품고 우리를 쫓고 있었다.
양산대로를 미친 듯 달리던 우리는, 양산시내에 접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꼭 잡으십쇼!”
운전대를 잡은 찬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차는 ‘끼~익!’하는 마찰음과 함께 조수석 쪽으로 쏠렸고, 잠시 후 균형을 잡은 차는 미친 듯 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송으로 향하는 국도에 접에 들었다.
“저쪽에 샛길 보이지? 내리막길이니까 살짝 브레이크를 잡아준 후에 내려가. 그리고 바로 좌회전이야!”
솔직히 지금 장면을 드론이, 제대로 따라와 찍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직접 촬영에 임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당시에는 전혀 겁먹지 않고 촬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내 도로를 빠져나오면서 다른 차들을 피하려고 곡예 운전을 하는 통에, 아예 내 혼이 탈탈 털린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끼~이~익!’하는 브레이크 마찰음과 함께, 차가 공중으로 훌쩍 나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덜컹하는 느낌과 함께 차는 또다시 급격하게 기울어졌고, 그 기울여졌던 것이 채 원상복구가 되기도 전에, 또다시 브레이크 마찰음과 함께 차의 뒷부분이 번쩍 들렸다.
차가 급정거를 하자마자, 우리는 미리 준비한 야구방망이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저 병신들!”
“가자!”
우리를 쫓아온 만구 파에 새로 영입된 애들은, 갑자기 나타난 내리막길에서 차를 제어하지 못하고 내리막길 끝에 있는 언덕에 부딪혀서, 차가 아예 뒤집히거나 정면으로 언덕과 박치기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결론은 단 한 가지였다.
일방적인 사냥!
처음 계획은 우리를 쫓아온 애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게 되면, 상어파 동생들이 뒤를 들이받아 충격을 준 후 양쪽에서 협공하는 것이었는데, 제 놈들이 알아서 언덕을 구르고 부딪쳐서 반쯤 전도된 상황이니 굳이 뒤에서 들이받을 필요조차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충격으로 목덜미를 잡고 나오는 놈들을 순서대로 몽둥이찜질하는 그것이 전부였다.
“컷! 정말 죽여줍니다!”
드디어 양산에서의 촬영이 끝이 났다.
조감독과 촬영감독님은 연신 모니터를 보면서 희열에 찬 표정이었고, 나도 조금 전의 장면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기 위해서 모니터 쪽으로 향했다.
“한 배우님, 심장을 어디 딴 데다 떼놓고 오셨어요?”
“예?”
“여기 이 장면 보세요. 이렇게 숨 막히는 순간에 저런 묵직함이라니....... 그리고 저 순간에 담배를 물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아무래도 저 순간의 강수는 담배 생각이 간절할 것 같아서요.”
“캬~아~ 아무래도 저 장면은 이번 영화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감독님들께서 잘 찍어주신 덕분이지요. 감사합니다.”
내가 봐도 숨 막히게 초조한 순간의 기분을, 아주 잘 표현한 것 같았다.
그리고 차량 내부에 설치되어 내 얼굴을 잡은 그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여성 관객들뿐 아니라 남성 관객들에게도 입에서 절로 멋있다는 말이 튀어나올 명장면이 될 것 같았다.
“감독님, 시간 여유는 좀 있으시죠?”
“당연하죠. 솔직히 서너 번은 더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 방에 끝내셨잖습니까.”
“그럼 우리 대충 정리하고 밥이나 먹죠. 비싼 것은 대접하지 못하지만 부산진구 쪽에 가면 선지국밥을 끝내주게 하는 곳이 한군데 있습니다.”
물론 저녁식사 비용이야 제작비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 멀리까지 촬영을 위해 내려온 스태프들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었고, 마침 전생에 이따금 찾아갔었던 가야공원 쪽의 선지국밥 집이 떠올라 그곳의 선지국밥을 대접하기로 했다.
“한 배우님은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제 고향이 아까 촬영한 양산입니다. 그리고 양산하고 부산하고야 하나의 생활권이다 보니 알게 된 곳이지요.”
오랜만에 찾아온 이곳 선지국밥의 맛은 여전했다.
그리고 스태프들과 배우들 역시, 시원하고도 얼큰한 맛에 연신 탄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밥값은 진행비로 처리하면 되는데.......”
“그거야 저도 알죠. 그런데 손님이시잖습니까. 경상도 촌놈들은 성질이 지랄 맞아서, 손님들에게 밥값을 내라고는 못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스태프들끼리 모여서 소주 한 잔씩 하시면 되잖습니까.”
의례적인 겸양의 인사가 오가고, 나는 방금 현금으로 계산한 식대 영수증을 조감독 손에 건넸다.
물론 제작사에서 제공한 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현금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누군가 밥값을 대신 내줬다는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이렇게 누군가 대신 밥값을 계산하게 하는 것 또한 이 바닥에서는 조감독의 능력으로 인정하는 것이 보통이니, 제작사에 밥값을 청구해서 타내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오늘 밥값은 한강수 배우님께서 내셨습니다.”
어차피 알려질 일이고 또 나중 스태프들끼리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나올 일이지만, 조감독은 아예 공개적으로 오늘 밥값을 내가 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리고 나중 서울로 돌아가서 오늘 영수증을 챙긴 그 돈으로, 스태프들끼리 오붓한 술자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촬영은 잘했어?”
“응. 오늘은 일찍 왔네?”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오빠가 먼저 할 얘기가 있다고 하고선 오빠가 늦으면 어떻게 해.”
“미안하다. 양산 로케를 다녀왔거든.”
“아무튼 할 이야기가 뭔데?”
집으로 돌아오니 지수가 벌써 야자를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나는 지수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집안 몇 군데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야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지만 내 민얼굴이 나갈 수도 있단 말이잖아?”
“네가 아무 생각도 없이 1층으로 내려오게 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하~아~ 예나 언니를 생각하면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예나 언니 때문에 내 프라이버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일을 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정히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정말 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네가 내키지 않는데, 어떻게 오빠가 억지로 하라고 하냐.”
지수의 표정은 전혀 내키지 않은,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수는 그냥 맨입에는 해줄 수가 없고, 또 이왕이면 제대로 된 값을 받아내려는 눈빛으로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여동생인 지수를 한두 해 봐온 것도 아니니, 그런 얕은수에 넘어가 안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내가 느긋해지면 느긋해질수록 지수가 안달을 내게 될 것이고, 그럼 그때 지수가 납득할 만한 무엇을 제시하면 될 일이었다.
“알았어. 그럼 하지 말자.”
“응?”
“하지 말자고. 괜히 집안 여기저기에 카메라가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잖아. 자고로 집이란 곳은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데.......”
분위기가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예전의 지수는 이 정도라면 먼저 적당히 조율하자는 눈치를 보이고, 그때 내가 지수가 혹(惑)할만한 것을 내미는 것으로 거래가 성립되었는데, 오늘은 얘가 약을 빤 것인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예상 밖의 반응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운 내 기분은 전혀 모른다는 것처럼, 지수는 쿨한 표정으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다가섰다.
“야! 한지수.”
“응?”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천연덕스러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욕구가 가슴 저 밑바닥부터 끓어올랐다.
“예나가 놀러 오지 않으면 심심하지 않겠어?”
“에이~ 나야 언니가 심심할까 봐 상대해주는 것이지······. 수험생인 내가 심심할 겨를이 어디 있어.”
“그렇구나. 알았다.”
분명 속마음은 아니란 것을 알겠는데, 지수는 표정조차 바꾸지 않은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등을 돌렸다.
“너 한 방 먹었다.”
“그렇지?”
“그냥 꿇어앉아서 사정해. 오늘 지수 쟤가 여우 짓을 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지수가 뭘 원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거래를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아예 그걸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이니 답이 없는 것이다.
무작정 들이대다가는 정말 감당하기 버거울 조건을 내세울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