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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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와 내가 사귀는 것을 공식화한 이상, 예나가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가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빈번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실제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둘이 동거를 하느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올 것은 분명했다.
물론 요즘 세상에 동거한다는 것이 남들로부터 크게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배우인 예나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은 분명하다.
예나의 아버지인 선 대표가 그 문제에 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고, 또 회사 차원에서 헛소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하셨지만, 그것이야말로 사후약방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자네가 말인가? 어떻게?”
“아직 여동생의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여동생과 의논해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카메라를 설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2층 옥상에도 카메라를 한 대 설치하고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관찰카메라 그런 식으로 말인가? 그렇게 되면 많이 불편할 텐데?”
“예. 맞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해소시켜줄 생각입니다.”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야 당분간은 배우로 살아갈 상황이고, 진수는 내가 배우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전생에서의 삶과 마찬가지로 내 매니저로 살아갈 것이니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연예계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갈 지수에게는 많이 불편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몇 달만 지내게 되면, 사람들이 더는 나와 예나 사이의 일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사정을 지수에게 차분하게 설명한 후에 지수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럼 지수 양하고 이야기가 원만히 해결되거든 이야길 하게. 카메라는 직원들을 보내서 설치하도록 할 테니까.”
단어 선택이 조금 거시기한 상황이지만 딸의 결백(?)을 밝히는 일이어서인지, 선 대표님은 내가 이야기한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셨다.
아무리 요즘 세태가 성적으로 개방도니 세대라고 하지만, 그래도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은 다른 것이다.
“대표님, 예나가 또 잠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하나. 집주인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지.”
선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수와 함께 2층에 올라가 있던 예나가 또 잠이 든 모양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대표님께서도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내가?”
“어차피 댁에 들어가셔도 혼자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나까지 어떻게?”
“어차피 김 실장님은 2층에 올라가서 주무실 것이니, 대표님께서 주무시고 가실 방은 있습니다.”
“그럼 아침은 주나?”
“아침밥이야 당연히 차려드려야지요.”
조금 무례하게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내친김에 선 대표께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갈 것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의외로 선 대표님은 농까지 곁들이시면서, 주무시고 가시란 말에 반색하시는 표정이다.
순간 옆 노는 땅에 건물을 하나 더 지어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도 여기서 잤어?”
“딸도 자는데 아빠라고 자고 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
“강수 씨한테 미안하잖아.”
“딸이 자고 가는 것은 미안하지 않고?”
“나야......”
아침에 깬 부녀의 표정은 정말 잠을 푹 자서 개운한 표정이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진수와 내가 아침을 준비했고, 지수는 등교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우리 집의 아침은 시작되었다.
“여긴 어떻게......”
“만구 오빠가 오빨 죽이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거기에 남아 있겠어?”
“그럼 지금까지는 어디에서?”
“진구 씨가 거처를 마련해줘서 거기에 있었어. 오빠가 양산으로 내려간다니까 나보고 오빠 따라서 양산으로 가려면 가라고 해서.”
찔린 상처가 대충 아물었기에, 퇴원 수속을 밟고 양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병실을 나섰다.
그렇게 병원을 출발하려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예나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만구 형한테 돌아가. 양산에서 다시 시작하려면 여기와는 달리 많이 힘들어. 그리고 솔직히 위험할 수도 있고.”
“싫어! 오빠는 내 마음 알잖아.”
난감한 상황이었다.
진구 말고는 예나와 나 사이에 관해서, 우리 조직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윤호를 비롯한 상어파 애들은 예나를 만구 그 새끼의 정부(情婦)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병원까지 찾아와 양산에 따라 내려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으니 황당한 표정들이다.
“형님, 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결국 윤호가 먼저 차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차로 향했다.
“예나야. 네가 사라지면 만구 형이 어떻게 나올지 알잖아.”
“그렇다고 오빠를 죽이려고 한, 아니 나까지 죽이려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런 사람 옆에 있으라고?”
“어차피 나만 사라지면 만구 형이 널 어쩌진 않아.”
“싫어! 나 오빠 따라서 양산에 갈 거야.”
“하~아~”
어떻게 해서 고아원 식구끼리 이런 관계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어릴 때부터 예나와 나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을 퇴소하자 만구 형이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고, 형이 하는 일을 거들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두파에서 만구 형 다음으로 3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상두 형이 은퇴하고 만구가 조직을 장악한 뒤로는, 내가 조직의 2인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예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나와 함께 생활하면서 직장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고아원에 있을 때부터 예나에게 집적대던 만구가 예나를 강제로 덮치게 되었고, 그날 이후 예나는 만구의 애인으로 조직원들에게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순간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었고 말이다.
하지만 여자보다는 의리란 생각에 나는 예나와의 좋았던 기억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른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예나를 꼬박꼬박 형수로 대접했었지만, 내 여자를 빼앗았다고 할 수 있는 만구는 항상 그 점이 목에 가시처럼 느껴졌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결국 상어파를 와해 직전까지 몰아넣은 후에, 이제 강북에서는 더는 조직을 위협할 세력이 없다고 판단되자, 나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고 말이다.
결국 예나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나는 예나를 차에 태웠다.
“은향이란 친구는 같이 안 가나?”
“누님은 며칠 후에 내려오실 겁니다.”
“특별히 따로 가야 할 이유라도 있어서?”
“누님이 데리고 있던 애들을 챙겨서 내려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상어파 애들 중에서, 은향이라는 그 여자가 가장 궁금했다.
솔직히 정면으로 맞붙어서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할 정도의 고수였기에, 정말 목숨을 걸고 하는 실전은 몰라도 제대로 된 대련은 해보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몇 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새로운 터전이 될 양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형님! 아무래도 뒤에 따라오는 차의 느낌이 찜찜합니다. 꼬리가 붙은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였어?”
“천안을 지나면서부터 한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노골적입니다.”
“일단 고속도로에서는 괜찮을 거야. 그러니 다른 애들에게 주의시키고 고속도로를 벗어나면서부터 대비하도록 해.”
드디어 이번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돈이 가장 많이 깨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탑승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 훨씬 위험하다는 판단에 전직 레이서 출신의 액션 배우가 대역으로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고,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촬영 또한 이곳이 아닌 양산 통도사 쪽의 국도에서 촬영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덕분에 촬영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도착해서 요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시파! 저년이 꼬리를 달고 온 것이 아닐까?”
“그렇겠지. 만구 그 새끼 첩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꼭 강수 저 새끼에게 형이라 불러야 해?”
“인마, 주둥이서 나오는 대로 씨불이다가 한 방에 골로 간다. 강수 형님이나 우리나 똑같은 신세야. 강수 형님 아니면 진작 우리 조직은 끝장이 났을 거라는 것은 생각도 안 해?”
“죄송합니다. 형님!”
그러는 와중에도 상어파 조직원들 마음속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칼을 들이대던 사이였던 나에 대한 불만과, 갑자기 나타나서 합류하게 된 예나에 대한 의심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아가씨, 몇 시에 마쳐?”
“10시 교댑니다.”
“아가씨 얼굴을 보니 잔뜩 고파 보이는데 오늘 밤 한 게임 어때?”
“고객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지랄! 되게 비싸게 구네.”
“정민아, 그만해라.”
“예! 형님!”
그렇게 한심하다는 표정의 요금 수납원 아가씨의 표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오늘 이곳에서의 촬영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내 촬영은 끝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스턴트 배우가 내 역할도 대신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내 역할이라는 것이,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조수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기에 내가 직접 차에 탑승해서 찍는 것이 훨씬 사실적일 것이라는 핑계로, 감독님과 선 대표님을 설득한 끝에 내가 직접 조수석에 타서 찍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진수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 차량 추격 신(scene)이 벌어질 양산을 향해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감독님하고 대표님이 대역을 쓰자고 하셨는데, 굳이 왜 위험한 장면에 직접 나서려고 해?”
“야! 그 신(scene)이 단독 샷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장면이잖아. 그런 기회를 왜 스스로 걷어차.”
“하지만 위험하니 그러지.”
“위험하긴 개뿔! 어차피 운전은 전직 카레이서가 하고 나야 안전띠만 단단히 매고 있으면 끝이야. 물론 이 잘생긴 얼굴에 피 칠갑을 해야 한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말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이미 전생에서 한번 죽었던 나로서는 겁을 낼 장면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전생에서 죽음을 경험하면서 그때 내 수명이 최소 70 이상이란 점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진수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내가 이번 장면에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나선다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이번 신(scene)에서 전혀 겁먹지 않은 담대함으로 무장하여 감독님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한강수란 배우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생각이었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 때문인지 평소와는 달리 끊임없이 툴툴거리는 진수의 잔소리를 듣다가 보니, 어느새 우리가 탄 차는 통도사 톨게이트에 도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