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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가 정치도 잘한다-31화 (31/132)

〈 31화 〉 자넬 믿겠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기자회견도 아닌, 그렇다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사담도 아닌 이야기가 끝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도 K 일보의 장기훈 기자는, 자기의 본분인 기자란 직업 본연의 자세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서예나, 선준호 대표의 딸로 밝혀져!]

[선준호 대표, 자식의 앞길을 막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숨겼다.]

[선 대표, 딸의 행복을 위해서 비록 신인배우지만 흔쾌히 교제를 허락했다.]

며칠 동안 써야 할 기사를 한꺼번에 다 써내려가는 장기훈 기자의 표정은, 힘겹다는 표정 대신에 어깨를 아파하면서도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화로 수시로 바깥을 들락거리면서도, 특종 이상의 특종을 잡았다는 것으로 뿌듯해 하고 있었다.

“한 배우님. 혹시 서예나 배우가 선준호 대표의 따님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장수한 감독님조차 오늘 이 자리에서 아신 사실을, 제가 어떻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혹시 사전에 내가 두 부녀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받았지만, 나는 간단하게 답을 마무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지기인 장수한 감독님조차 모르고 있던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으니, 그 정도 답으로도 충분했다.

“그럼 서예나 배우가 먼저 사귀자고 이야기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사귀자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친구로 지내자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야 대충 짐작하시다시피, 그냥 잘나가는 배우가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 한 것으로 생각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서 배우가 한 배우님 집을 찾아가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아주 특이한 사고를 지닌 친구로 생각했었지요.”

“특이하다니요?”

“그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보통사람들이 우러러볼 수도 없는 엄청난 부자가, 가난한 집 아이에게 같이 놀자고 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만 갖다 두라는 그런 심정이었지요.”

사실 당시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신인배우라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Top 여배우가, 이제 막 연예계에 첫발을 디딘 신인배우에게 그런 관심을 보일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심심해서 잠시 가지고 놀 장난감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것이 당시 내가 예나의 말로 느꼈던 감정이었고, 그 말은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아예 없었던 일이 될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나의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Top을 달리는 여배우와 잠시만의 인연이라도 있는 그것이 결코 내게 손해가 날 일이 아니었다는 계산과 함께, 혹시 이 친구가 편하게 말을 걸 상대조차 없는 성에 갇혀서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공주 같은 신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쌍하다는 마음이 아주 조금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예담기획 소속으로 활동하실 계획이십니까?”

“선 대표님께서 예나의 아버님이란 사실과 제가 예담기획과 계약한 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배우란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회사와 계약해서 활동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우선 제 가치를 예담기획에서 알게 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신다면 예담기획과의 인연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세상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이야 예나가 내가 아니면 마음 편하게 의지할 남자가 없고, 또 우리 집이 예나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지만, 언젠가는 예나의 그런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어차피 인간이란 존재는 변하기 마련이고, 지금이야 남자라면 끔찍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남자와의 만남이 자연스러워지는 것 또한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또 언젠가는, 예나가 나를 떠나게 되는 날도 올 수가 있을 것이고.

밤이 이슥하도록 선 대표님과 스태프와 배우들 간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덕분에 그 자리에 참석한 유일한 기자였던 장기훈 기자는, 쉴 틈도 없이 기사를 송고하느라 연신 손목을 주무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궁금증을 해소해준 선 대표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연 저녁 회식자리는 파하게 되었고, 나와 예나는 선 대표님을 따라 경기도 외곽의 한 커피숍에서 마주 앉았다.

“많이 놀랐나?”

“아닙니다. 대표님 말씀을 듣고 보니 당연히 그렇게 하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놀라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내가 놀라지 않았으면서 놀랐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그랬다.

어차피 인간이라는 존재는 웬만큼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훤히 드러나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랬기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였다.

“아빤 사전에 말도 없이 그런 자리에서 터트리면 어떻게 해?”

“미안하다. 들리는 소문에 너하고 한 군하고 사이에 얄궂은 소리까지 나온다는 말이 있어서.”

“얄궂은 소문? 무슨?”

“인마, 그런 게 있어.”

“치! 그런 사람들 머릿속에 든 생각이야 뻔하지. 그냥 우리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었어?”

무슨 말인지 대충 알만했다.

하긴 예나 말처럼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기자들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뻔했다.

미친 척하고 ‘서예나, 신인배우 한강수와 동거?’ 이 정도 제목으로 갖은 소설을 써댈 것이고, 대중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게 될 것이니까.

그렇다고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을 거느린 연예기획사로서는 확실히 뭐라고 특정 짓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소송조차 낼 수가 없으니, 선 대표의 오늘 행보는 그런 자극적인 내용이 기사화되기 전에 더 큰 이슈로 그런 시도를 아예 덮으려고 한 행동일 것이다.

“한 배우.”

“예. 대표님.”

“지금까지보다 많이 불편할 걸세. 그 점은 내가 미리 사과하지.”

“아닙니다. 서 배우가 제집에 찾아오던 날부터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서 배우인가?”

그러고 보니 예나와 나 사이에, 아직 호칭 정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분명 언젠가부터 예나는 나를 ‘자기’라고 호칭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 ‘너’ ‘네가’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무튼 앞으로 동생처럼 잘 보살펴주면 좋겠네.”

“아빠! 우리 사귄다니까. 한국에서 여동생하고 사귀면 그건 근친이야!”

“인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기자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치! 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여기에 손님도 우리뿐인데.”

선 대표님의 딸이란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예나는 대놓고 무남독녀 외동딸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강수 씨하고 결혼한다면 아빤 어떻게 할 거야?”

“결혼은 네가 하는 거지 아빠가 해? 예전부터 아빠가 한 말이 있잖아. 정말 널 사랑하고 또 그 사람이 널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바로 네 짝이 될 사람이라고.”

“그럼 강수 씨가 스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딸, 인기라는 것은 한순간이야. 아빠도 그랬지만 너도 지금 네가 누리고 있는 그 인기가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이란 생각은 하면 안 돼. 그런 생각을 가지는 순간 배우는 망가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또 대중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그 배우의 삶은 누구 이상으로 피폐해지게 되어 있어. 그러니 지금 딸이 누리는 인기는 딸을 사랑하는 누군가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알았어.”

딸인 예나와 이야기하면서 드러낸 선 대표가 가진 배우가 지녀야 할 자세는, 배우로서는 본받아야 할 자세였다.

아직은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 수많은 팬들이, 언젠가 다시 스크린에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선준호 대표의 생각이 아주 올곧게 느껴졌다.

그리고 선 대표님의 그런 생각은 배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내게도, 배우로서 지침을 삼을 만했다.

나도 전생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국민배우로 이름을 날렸었지만, 선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 대표와 내가 배우로서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뿐 아니라, 무언가 모를 결조차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 배우.”

“예. 대표님.”

“자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혹시 언제 기회가 된다면 내가 자네 집엘 한번 가볼 수는 없겠나?”

“대표님이시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당장 오늘 가셔도 됩니다.”

“오늘? 오늘이라면 자네 여동생에게는 폐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전혀 아닐 겁니다. 여동생이 대표님께서 출연하셨던 영화도 제법 열심히 보는 축에 속하거든요.”

“여동생이 내가 출연했던 영화를 본다고?”

“예. 그 나이 애들과는 조금은 다른 감성을 지닌 것 같긴 합니다.”

집안에 남들이 탐내는 보물이 숨겨진 것도 아니고 또 알려져선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선 대표를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선 대표님이 이렇게 우리 집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딸 가진 부모로서의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번 기회에 그 불안함의 일부나마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어! 어! 선준호!”

“인마, 어른께 그게 무슨 짓이야! 대표님, 죄송합니다.”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배우잖나.”

선 대표님을 모시고 현관에 들어서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던 지수가 선 대표님 얼굴을 발견하고 손가락질까지 해가면서 말을 더듬는다.

그런 지수의 상태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사자인 선 대표님 앞에서 그러는 지수를 보니 선 대표님께 민망한 마음에 사과를 드렸다.

그리고 지수 역시도 정신을 수습하고는, 허리를 숙여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정중히 용서를 구했다.

“자네 라면을 잘 끓인다면서?”

“그런 이야기까지도 합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다정한 부녀지간일세.”

결국 나는 선 대표님의 요구에 또다시 한밤중에 라면을 끓이는 요리사가 되었고, 분명 아까 회식자리에서 배를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뿐 아니라 선 대표님 역시 라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셨다.

그렇게 라면을 먹고 난 후에 선 대표님과 나는, 커피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나?”

“예.”

“부모님 유해는 어디에 모셨고?”

“고향인 양산에 있는 공원묘지에 모셨습니다.”

“그렇구먼. 아들이 이렇게 번듯하게 자란 모습을 보시고 돌아가셨으면 좋으셨을 텐데......”

“......”

“자네도 대충 알고 있겠지만 내게 가족이라고는 저놈 하나뿐일세. 그리고 어려서 엄마를 잃고 외롭게 자란 아이이기도 하고. 그러니 자네가 남자친구 노릇도 해주고 또 가족처럼 돌봐줄 수 있다면 고맙겠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된 걸세. 자넬 믿겠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지 신경 쓸 필요가 없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말만큼 무겁고도 무서운 말이 없다.

도대체 나를 본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믿는다고 하시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 대표님의 그 믿음을 배신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쓰지 말라는 그 말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예나가 정말 나와 결혼해서 내 여자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내 여자에게 흠이 되는 말들이 나온다면 어떻게 사내인 내가 무시하고 넘길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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