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공개연애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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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어! 아니야. 요즘 학교생활은 재미있어?”
“재미는 무슨. 오빤 학교 다닐 때 재미가 있었어? 그런데 예나 언니하고 결혼할 거야?”
“그건 또 무슨 헛소리?”
“애들이 오빠하고 예나 언니하고 결혼하느냐고 궁금해 하거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해라.”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 앉아 있으면서도 고민이 계속되었고, 그게 표정에 드러난 것인지 지수가 한마디 했다.
그런데 내가 고민하고 있는 그것을, 지수는 혹시 예나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한창 호기심이 동할 나이기도 했고,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많은 나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은, 예나나 아니면 당장 내일 또 촬영에 들어갈 영화에 관한 것이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전생에서 나를 물 먹이고, 내 목숨까지 앗아갔던 인간들에 대한 복수란 감정은 없었다.
어차피 그건 내 전생의 기억일 뿐이고, 또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의 행위에 대한 분노도 그렇다고 아쉬움도 없었으니 말이다.
정말 마지막 그 순간에는 황당하게도 커피 생각이 났지만 휴게소에 진입하기 직전에 사고를 당했었기에,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는 그 아쉬움 말고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제 촬영장에서 양산이라는 지역 이름을 듣고, 정말 이번 생에서는 타인의 권유에 의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의지로 정치에 입문해서 정치를 제대로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 낮에는 집에서 쉴 거야?”
“응. 볼일 볼 일이 있으면 나갔다가 와.”
진수가 개인적인 볼일이 있는 것 같았기에, 나는 진수에게 나갔다가 오라고 하고 커피를 한잔 타서 2층 베란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베란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문득 성수 그놈은 뭘 하고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지금 이 시점이라면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대입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그놈이 졸업했다던 S 고등학교를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본인이 출마할 욕심에 걸림돌이라 생각되었던 나를 죽게 만드는데 일조하긴 했지만, 보좌관으로서의 능력은 제법 뛰어났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만약 내가 정치를 다시 하게 된다면 성수 그놈을 불러들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현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물론 전생에서처럼 내가 소위 이야기하는 국민배우로 등극한 이후에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면 모를 일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가능한 빨리 정계입문을 시도할 생각이니, 잔머리를 굴리는 일에 천부적 재질이 있는 성수 그놈이 필요하단 생각이었다.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전생의 기억들을 돌이켜보면서, 전생에서 내가 놓치고 지나쳤던 부분들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는 걸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요즘 우리 강수 연기에 물이 올랐는데.”
“에이~ 아직 멀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 다 찍고 난 후에 여행을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왜? 같이 갈래?”
“저야 아직 그럴 짬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분간은 제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봐야지요.”
“소문엔 예담기획과 계약했다는 이야기도 돌던데?”
“계약은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담에서 따로 푸시를 해주질 않아?”
“소속사에서 신경을 써줄 정도는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저도 딱히 도움을 받을 만한 것이 없었고요.”
“아무튼 촬영이 끝나면 찐하게 술이나 한잔 하자.”
서서히 촬영도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동안 문지훈 배우와의 관계도 처음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워졌고, 내 입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형이란 단어가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나는 다음 날에 촬영이 없는 날만 되면, 라면을 핑계로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서 저녁밥을 먹고 지수 방에서 자고 가는 것이 아예 일상이 되고 있었다.
“한 배우, 아무래도 기자회견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연예패치 기자에게 예나가 사진이 찍힌 모양일세. 어차피 열애설이 불거질 것이라면 차라리 먼저 공개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
“서예나 배우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입니다.”
“어차피 그 정도는 생각하고 일을 저지르는 애니 걱정할 일은 없네. 그리고 배우라고 연애를 하지 말란 법도 없는 세상이고.”
“아무튼 죄송합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나. 김 실장 이야길 들어보니 예나가 다짜고짜 집으로 쳐들어간다더니만. 아무튼 한 배우 자네가 앞으로도 예나를 지금처럼 편하게 대해주게. 그럴 수 있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닌데, 나도 선 대표가 예나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먼저 자신이 예나의 아버지임을 밝히지 않으니, 다른 말을 하기에도 어정쩡했다.
아무튼 소속사 대표이자 아버지인 선 대표가 교제를 허락했고, 또 공개적인 연애를 해나가길 원하고 계시니 내가 그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내일 오전 10시에 기자회견을 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둘이 서로 말을 맞출 일은 없겠나?”
“딱히 그런 것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게 된 상황에서 굳이 숨길 것도 없을 것이고요.”
그렇게 내일 오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예나와 내가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정말이야?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응.”
“그럼 이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겠다.”
“아이고, 언제는 눈치를 보기나 했어?”
“치! 내가 얼마나 조심했었는데. 혹시 기자들 눈에 뜨이기라도 할까봐 자기 집에 갈 때마다 모자도 쓰고 마스크도 하고 갔었잖아.”
“그냥 집으로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었어야지.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아냐. 자기 집에만 가면 얼마나 편한지 몰라. 나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자기 집이 부모님이 계시는 우리 집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지거든. 자기 집에만 가면 무엇보다 잠을 푹 잘 수가 있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월세를 내고 아예 이사를 오든지.”
“정말? 정말 그래도 돼.”
“아이고, 너 그러다가 정말 시집도 못 간다.”
기자회견을 열어 사귄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예나는 걱정은커녕 대놓고 기뻐했다.
나는 공개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밝힌다는 것에 별 감흥이 없었지만, 예나는 나와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한강수 배우님께 묻겠습니다. 연예신문 강수지 기잡니다. 두 분이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딱히 언제라고 규정짓기가 힘듭니다. 처음 얼굴을 보게 된 것은 ‘네 안의 야수’ 리딩을 하던 날이 처음이긴 하지만, 그날도 처음 본 사람이란 느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말씀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는 그런 뜻인가요?]
“그렇게 해석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냥 전생의 인연이 현생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말씀드린다면 지나칠까요?”
[그럼 누가 먼저 사귀자고 말씀하셨습니까?]
“제가 먼저였습니다.”
“아뇨. 제가 먼저 친구하자고 했어요.”
기자의 질문이 있자 나는 예나의 입장을 생각해서 내가 먼저 사귀자는 말을 먼저 했다고 했지만, 동시에 예나 또한 자기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고 하는 통에 기자들이 얼떨떨해 하기도 했다.
[연예패치 강훈 기잡니다. 조금 곤란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질문 드리겠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서예나 배우께서 한강수 배우 집에서 자고 나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소문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예나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그 안에 숨겨진 내용은 아예 들어볼 생각조차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소설을 쓸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말씀해주시죠. 사실입니까?]
“예. 사실이에요. 강 기자님, 예전에 제 사건을 취재했었지요?”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실이라고 인정을 한 후에 연이어 기자에 질문을 던졌다.
[예전 사건이라면 혹시 매니저와의 그 사건 말씀이신가요?]
“예. 맞아요. 그럼 제가 불면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죠?”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기자님께서 제 말을 얼마나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한테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제대로 잠을 편하게 자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병원진료를 받고 있고요.”
[그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서 배우님께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가시는 모습은 제 눈으로 확인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제가 신기하게도 강수 씨 집에 갔던 첫날, 강수 씨 동생 방에서 여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매니저 언니가 그걸 보고 강수 씨에게 하룻밤만 자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어요. 그게 강수 씨 집에서 잔 첫날입니다.”
[........]
“기자님들께서는 몸은 피곤한데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경험해보지 못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예전 그 일이 있은 후에 아직까지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강수 씨가 살고 있는 집에만 가면 그런 불안한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고 편하게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 몸 컨디션이 되면 강수 씨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쳐들어 간 거예요.”
[그럼 한강수 배우님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강수 씨야 제가 여배우이니 오히려 걱정이었죠. 그리고 솔직히 사랑하는 남녀가 기자님들께서 상상하는 그런 일을 벌이려면, 집보다는 훨씬 편한 곳이 많잖아요. 강수 씨와 강수 씨 여동생이 허락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의심이 드는 기자님이 계신다면 언제든지 불시에 쳐들어오셔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주신다면 저로서는 오히려 고맙겠습니다.”
[한강수 배우께서는 지금 서예나 배우님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예나로서는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구설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을 것이고 자존심 또한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밤중에 기자가 집으로 쳐들어온다는 그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야 배우라는 직업이니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지수의 사생활은 어쩌란 말인가?
[한강수 배우님, 동의하십니까?]
“예. 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야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여동생이 마음에 걸립니다. 일단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동생과 상의한 후에 방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나로서는 이렇게 한발 물러서는 것 이외에는,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만약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 기자들은 우리가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써 갈기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 한다면 정말 기자란 족속들은 돌아가면서 한밤중에 우리 집 대문을 넘게 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