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진실, 그리고 새로운 출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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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터 하나만 더 구할 수 없겠어?”
“많이 추워?”
“등 쪽이 시려서.”
“알았어. 우선 모포부터 한 장 더 갖다 줄게,”
촬영이 진행되던 순간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막상 모포를 뒤집어쓰고 히터 앞에 앉아 있으려니 등 쪽이 서늘해 왔다.
하긴 요즘 우리나라 날씨가 가을이 없이 바로 겨울로 직행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가을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초겨울이 훌쩍 다가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산속의 밤이란 것이 해가 떨어지면서 급격히 주변 기온이 떨어지는 법인데, 살수차 아래서 물을 맞고 흙 위에 몇 차례 뒹굴었기에 지금 내 상태가 비 맞은 생쥐 같았으니,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괜찮아?”
“응. 넌?”
“조금 춥긴 하네. 그래도 히터 앞에 있으니 앞쪽은 따스해.”
춥기는 매한가지였는지 예나의 매니저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히터를 가지고 내 곁으로 다가왔고, 잠시 후 스태프에게서 히터를 하나 더 얻어온 진수 덕분에 추위가 한결 가시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모습이었겠지만 예나를 감싸고 있는 모포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불빛에 비치고 있었다.
“넌 비 맞는 장면 촬영이 끝이 났으니 옷을 갈아입어도 되잖아?”
“비 맞는 장면이야 끝났지만 끌려가는 신(scene)이 한 컷 남았거든.
“그럼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빨리 그 컷부터 따자고 해. 그러다가 감기 걸린다.”
감독님이야 체력이 고갈되어서 실수가 생기고, 그 실수로 인해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까 봐 휴식을 지시한 것인지 몰라도, 솔직히 이번에는 끊지 않고 다음 신(scene)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좋았을 것 같았다.
대충 물기를 짜낸 후에 모포를 둘둘 감은 상태에서 불을 쬐고 진수가 내 온몸을 열심히 문질러 대고 있지만, 히터 앞을 벗어난 순간 또다시 추워서 몸이 굳어지게 될 것이니,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합(合)이 틀어져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 촬영에서 다음 신(scene)은 싸우는 장면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얼마나 남았어?”
“뭐가?”
“휴식시간?”
“30분 휴식이라고 하셨으니 이제 10분 남았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모포를 걸친 채,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점차 속도를 내가면서 몸을 예열시키기 시작했고, 몸이 어느 정도 데워진 후에는 모포를 벗었다.
이렇게 미리 몸을 풀어두어야 다음 신(scene)을 시작할 때 추위를 덜 느끼는 법이다.
“촬영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배우님들은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조감독의 목소리가 메가폰을 통해 울려 퍼지고, 나는 아까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던 장소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질펀하게 젖어 있는 흙탕물 위를 한 바퀴 굴렀다.
순간 오한이 들었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 조금은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추위를 떨쳐내는 동시에 옷을 흠뻑 적신 물기들을 털어냈다.
그리고 물기가 조금은 덜한 곳을 찾아, 마치 쓰러진 것처럼 엎드렸다.
한 손은 진구에게 칼을 맞은쪽을 감싸 안고, 다른 손은 마치 포복을 하듯 기는 자세로 감독님의 사인을 기다렸다.
“하~아~ 으~윽!”
카메라가 내 얼굴을 정면으로 잡았고 ‘액션!’ 사인이 떨어지자,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거친 숨과 함께 신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정말 처절할 정도로 살아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끝에 힘을 잔뜩 모으고 땅바닥을 할퀴듯 하면서 천천히 구덩이를 오르기 시작했고, 연신 밀려오는 고통에 내 얼굴은 마치 악귀처럼 변해 있었다.
“하~아~ 시팔! 더럽게 아프네.”
겨우 2m도 채 되지 않는 깊이의 구덩이를 기어 올라오는 그 시간이, 마치 억겁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그 구덩이를 다 올랐다는 것을 느끼자 갑자기 맥이 탁 풀어지는 느낌이었고, 나는 벌렁 뒤로 드러누워 윗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틱!’ ‘틱!’ ‘틱!’
“시팔! 돌겠네!”
정말 되는 것이 없는 날이다.
칼침을 맞고 겨우 살아났다고 안도하기도 전에, 그 기분을 만끽하려고 담배를 찾았지만 담배는 이미 푹 젖어 있었고, 빌어먹게도 라이터조차 불이 붙질 않았다.
“형님, 여깁니다.”
담배조차 불이 붙질 않자 나는 허탈한 기분에 눈을 감았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 이곳을 벗어날 방법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런 허허벌판에 누군가 찾아와서 우연히 나를 발견할 확률은 쥐 눈물만큼도 없으니, 이러나저러나 오늘 이곳에서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라는 생각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시팔! 그냥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죽을 텐데, 확인사살 하러왔냐?”
“강수 형님, 일어나시지요.”
“뭐?”
“빨리 병원부터 가셔야 합니다.”
“시팔! 무슨 헛소리야?”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조금 전까지 나를 죽이려던 상어파의 윤호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데 윤호는 나보고 병원을 가자면서, 동생들을 시켜서 나를 일으키려고 하고 있었다.
“진구가 형님을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칼침을 먹인 놈이 누군데?”
“그게......”
윤호의 말을 듣고 나니, 그때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었다.
우리 조직의 보스인 만구 형님 아니 만구 그 개새끼가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나를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상어파의 보스인 성수하고 거래했고, 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싶었을 때 진구 손으로 내 숨통을 끊어 놓으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구는 차마 나를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칼침을 놓은 후에 철수했고, 진구가 철수한 후에 윤호가 돌아와서 나를 병원으로 싣고 가서 살려놓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시팔 놈이. 그런 생각이었으면, 그냥 쑤시기만 하지 비틀긴 왜 비틀어?”
“그거야 습관적으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아~ 시팔! 돌겠네. 그런데 담배 있냐?”
“예? 담배 말입니까? 형님.”
“그래, 내 담배가 다 젖었다.”
“칼침을 맞고 담배 피우시면 죽습니다.”
“지랄하네. 내가 뒈질 것 같았으면 진작 뒈졌다.”
그러자 윤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담배를 꺼내, 내 입에 물렸고 불을 붙여주었다.
“아~ 시팔! 더럽게 아프네.”
지금까지 분명 고통은 있었지만 아프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살아났다고 생각하니,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칼침을 맞은 곳이 아파 왔다.
“후~우~ 니기미, 이렇게 칼침 맞고 누워 담배를 피우는 맛도 죽여주네.”
“빨리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형님!”
“그런데 성수는?”
“성수 형님은 은퇴시켰습니다.”
“뭐?”
“그래도 우리는 건달 아닙니까. 그런데 쪽팔리게 뒤에서 그런 식으로 사바사바 하는 놈을 어떻게 형님으로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상어파는 이제 윤호 네가 보스가?”
“상어파는 해체했습니다.”
“왜?”
주인공은 놔두고 엑스트라 두 놈이 짓까불고 있었다.
사실 현재 상어파가 차지한 구역이 돈이 되지 않는 구역이다.
그런 상황에서 거둬들일 돈도 없으니, 당연히 조직의 세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성수를 은퇴시키고 조직을 해체한 후에, 핵심인 동생들을 지방으로 데려가서 당분간 잠수를 타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방에서 세를 불린 후 다시 서울로 입성해서, 진구와 손을 잡고 만구 그놈을 주저앉히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 건데?”
“그건 형님께서 결정하셔야지요.”
“내가 왜?”
“형님이 보스를 하셔야지 누가 합니까?”
“진구 그 새끼도 동의한 내용이가?”
“진구가 제안한 내용입니다. 솔직히 지금 진구가 만구 형하고 붙어봐야 무조건 깨지니까, 형님이 애들을 모은 후에 서울로 입성하시면, 그때 만구 형을 완전히 은퇴시키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내가 서울에 있다가 만구 그 새끼 눈에 띄게 되면, 목숨을 부지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여긴 어떻게 아는 곳인데?”
“여기 의사 선생이 야매로 하는 의사 중에서는 최곱니다.”
“믿을 수 있는 놈이고?”
“당연히 믿으셔도 됩니다.”
“시파! 뭘 보고?”
“우리 은향이 누님 사촌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은향이? 은향이가 누군데?”
“지난번 형님하고 붙었던 여자 있지 않습니까?”
“목검?”
“예. 은향이 누님 하면, 또 검도의 달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그 여자 정체가 뭔데? 쪽팔리지만 그날 졸라 후달리긴 하더라.”
“은향이 누님은 객원 선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강진이 그 양반하고 피가 좀 섞이긴 했는데, 그다지 친하지는 않고....... 아무튼 골 때리는 관곕니다.”
어차피 칼침을 맞은 구멍으로 흙탕물까지 들어가서 이대로 놔두면 내장이 다 썩을 판이니, 병원은 가서 창자부터 씻어내고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꿰매긴 해야 했다.
그리고 조폭 주제에 일반 병원에 가면 은팔찌부터 채우려고 할 것이니, 이렇게 야매로 하는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매 쑤셨네.”
“예?”
“너 뒈질 뻔했다고. 여하튼 요즘 양아치 새끼들은 그냥 쑤시는 법이 없어. 이렇게 칼을 비틀어 쑤시면 창자가 너덜너덜해져서 얼마나 귀찮은데.”
“양아치 아니고, 건달입니다!”
“지랄하네. 양아치 아닌 놈이 좆 빤다고 칼침을 맞고 다녀.”
“와~아~ 이 양반 주디에 걸레를 물었나? 당신 의사 맞아?”
“야! 이 양아치 새끼야! 저기 의사 면허증도 안 보여? 눈깔을 확 파 삘라!”
의사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입에 걸레를 문 것처럼 욕이 자연스럽게 딸려 나왔다.
아무튼 내가 살려면 이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나는 성질을 꾹 누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면 정말 주먹질이라도 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으~윽!”
“양아치 새끼가 엄살은!”
“니미! 당신 생살 찢어진 곳에, 소독약 부어보소!”
말끝마다 양아치다.
그리고 약이라도 올리려는 것처럼, 소독약을 아예 들이붓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빨래라도 하는 것처럼 내 창자를 주물럭거리면서, 창자 주변에 붙어있는 오물들을 씻어낸 후에 칼침을 맞은 주변은 싹둑 잘라내고 깁기 시작했다.
“시팔! 마취제나 제대로 주고 지랄을 하든지 하지. 시팔 놈이 사람 죽일 일 있는 것도 아니고.”
“개지랄 떨지 말고! 내가 칼침 맞으라고 한 것도 아니니 내 앞에서 까불지 마! 메스 이거 한방이면 넌 바로 골로 가니까.”
“시파!”
도무지 말이 통할 인간이 아니었다.
아무리 먹고살기 위해서 야매로 범죄자들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윤호를 비롯한 열 가까운 덩치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겁을 집어먹을 만도 한데, 이 의사라는 인간 눈에는 저 애들이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한 마디로 골 때리는 인간, 그 자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 빌어먹을 의사란 놈은 연신 내지르는 내 비명에도 불구하고,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바느질에 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