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배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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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만구 형이 나를 보는 눈빛이 별로 좋지 않다는 느낌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예나가 나를 따로 만나자고 할 때마다 갖은 이유를 대면서 만나자는 부탁을 거절했었고, 가능한 한 예나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그냥 나만 중심을 잡고 있으면 언젠가는, 만구 형님도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직 내에서 가장 강한 나를 내치진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예나를 따라온 저들이 어떻게 이곳을 찾았는지 의심을 하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이 병신아! 아무리 주먹이 세면 뭐해. 눈치가 있어야지 버티지.”
“시팔 놈! 아까 한 말이 무슨 뜻이냐고?”
“말 해줘? 듣고 나면 오히려 억울해서 눈을 감기가 힘들 텐데?”
“개새끼 정말 너 죽여 버린다!”
“병신! 넌 버림받았어. 만구가 그러더라. 저년이 너하고 바람이 났으니, 너하고 저년을 죽여 인천 앞바다에 수장시켜 달라고. 그럼 나이트 있는 골목을 우리 조직에 떼 주겠다고.”
“시팔!”
“열 받지? 그러니 진작 너도 나처럼 강진일 깼어야지! 그런 새끼를 보스랍시고.......”
“성수! 사내답게 부탁 하나만 하자.”
“뭐? 어차피 죽을 놈이니까 일단 씨불여 봐.”
“여자는 보내줘.”
만구 형이 나를 배신한 것은 확실했다.
그것도 질투에 눈이 멀어, 멍청하게 내가 예나하고 바람을 피운다고 오해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예나는 살려야 했다.
“지랄! 저년을 살려두면 만구가 약속한 것을 줄 것 같아?”
“죽였다고 하면 되지.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어떻게?”
“개미굴에서 죽은 애 하나를 차에 태우고 빠트리면 되잖아. 어차피 거기 매일 한둘씩은 죽어서 나온다는 것이야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렇게 해주면 나한테 뭘 해줄 건데?”
“그냥 여자만 보내주면 내가 곱게 칼을 맞아줄게.”
“지랄! 이러나저러나 오늘은 네 제삿날이잖아. 그런 헛소릴 씨불일 거라면 그냥 조용히 가!”
어차피 이런 조건을 성수 저놈이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진구가 애들을 끌고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 헛소릴 한 것일 뿐이었다.
결국 내 잔머리는 성수를 꼬드기질 못했다.
“야! 쳐!”
성수의 지시에 상어파 애들은 나와 예나가 있는 차 쪽으로 다가왔고, 나는 차 앞을 가로막고서 나무 막대기를 높이 쳐들었다.
솔직히 애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뒤는 차가 막아주고 있었고, 내 손에는 목검과 비슷한 길이의 나무 막대기가 들려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고, 그걸 잘 아는 성수는 내 힘을 빼기 위해서 꼬맹이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채, 아주 느긋하게 내가 지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닥엔 상어파 애들이 신음을 내면서 뒹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도 완전히 생생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 칼침을 맞은 것인지는 몰라도 내 옆구리를 비롯한 몇 군데는 칼날이 스친 상처가 나 있었고, 야구방망이에 맞은 왼쪽 팔꿈치 아래 뼈가 부러져 팔 한쪽이 덜렁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새끼! 질기네.”
“꼬맹이들 뒤에 숨지 말고 나와! 조직의 보스란 놈이 쪽팔리지도 않냐?”
“지랄하네. 애들 놔두고 내 손에 왜 피를 묻혀.”
“시팔 놈! 보스란 놈이 겁만 많아서 쫄기는.”
저놈은 언제나 그랬다.
예전 강진이 형이 있었을 때는 강진이 형의 강요 때문에 앞으로 나와 싸우긴 했지만, 강진이 형이 없을 때는 항상 애들 뒤에 숨어서 목청만 높이던 놈이 바로 성수 저놈이었다.
서른쯤 되던 상어파 애들의 숫자는 이제 열 명쯤 남았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이다.
옆에 널브러진 애들은 그냥 숫자만 믿고 덤벼드는 꼬맹이들일 뿐이고, 진짜 제대로 싸움을 한다고 할 수 있는 놈들은 지금 성수 양옆에서 싸우는 나를 지켜보던 저놈들이다.
그렇게 성수란 놈을 노려보면서 기 싸움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부러진 각목을 부러진 팔 쪽의 소매 안으로 집어넣고, 싸우는 도중 힘이 빠져 각목을 놓칠까봐 손과 각목을 묶었던 끈을 풀어 소매 위로 친친 감았다.
“강수야, 이제 슬슬 끝내자. 너도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쉬면 좋잖아.”
“시팔 놈! 내가 저승길 동무로 널 찍으면 어쩔래? 같이 갈래?”
순간 성수 놈이 움찔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직은 내 허세가 통하는 것이다.
“시팔 놈! 내가 아까 부탁한 대로 여자만 보내줬으면 서로 피곤해질 일이 없었잖아. 그냥 너하고 나하고 깔끔하게 일대일로 붙자!”
“시팔 놈, 곧 죽어도 잘난 척이네.”
“그럼 나하고 같이 죽을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정도는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어차피 나로서는 이판사판인 상황이었다.
다리야 아직 멀쩡한 상태지만 왼팔은 아예 쓰지 못할 정도였기에, 오른팔 하나만으로는 저 열 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말로 겁을 주는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성수 저놈만 죽어라 따라붙어 같이 죽자고 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상어파 애가 들고 있었던 알루미늄 방망이를 발끝으로 툭 차올려, 각목을 버리고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오른손에 쥐었다.
아무래도 오른손 한 손으로 싸우기에는, 물이 먹은 각목보다는 훨씬 가볍고 손에 쥐기 편한 야구방망이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야구 방망이를 손에 쥐고 성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서자 성수란 놈은 슬슬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고, 성수 옆에 있던 놈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윤호야, 어떻게 할래? 성수 저놈은 귓구멍이 막혔으니 네가 결정해라. 그냥 여기서 돌아가겠다면 보내주겠지만 아니라면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 대갈통만 찍을 생각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내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성수뿐 아니라 상어파의 간부들인 애들 역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름 그동안 가깝게 지냈던 윤호에게 말을 붙였다.
윤호 얘도 내가 검도 유단자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한방에 상대를 골로 보낼 수 있는,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것처럼 머리를 직접 노리거나 최소한 경추를 찍어, 최소한 반병신을 만들 것이란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윤호가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좆 까!’란 소리와 함께 성수가 나를 향해 몸을 날렸고,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성수가 바닥에 나자빠졌다.
“이런 새끼가 보스랍시고 깝죽거리니....... 윤호야, 어떻게 할래?”
“...........”
윤호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었다.
물론 윤호 옆의 몇은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윤호를 재촉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윤호 역시도 함부로 도발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부터 다시 붙게 된다면 이젠 양쪽 중 어느 한쪽이 끝장이 나야 끝이 날 싸움이 될 것이고, 그 맨 끝에는 이곳에 있는 몇몇은 아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도로 저 멀리서 승합차 세 대가, 우리 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아까 예나의 연락을 받고 달려오는 진구일 것이다.
“윤호야, 빨리 결정해라. 진구가 도착하면 나도 여기서 그만두지 못한다.”
결국 윤호의 선택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승합차 세 대에 나눠 타고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진구를 비롯한 동생들이 도착하게 되면,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난 상어파 애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우리 애들에게 매타작이나 당하게 될 것을 윤호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들 챙겨서 태워!”
윤호의 지시에 상어파 조직원들은 일제히 타고 왔던 승합차에 올랐고, 윤호는 내 쪽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에 올라 출발을 지시했다.
그리고 상어파 애들이 탄 차량은, 마치 진구가 타고 달려오는 우리 조직원들을 피해 도망이라도 가는 것처럼 꽁지 빠지게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형님!”
“왔냐.”
“괜찮으십니까?”
“아직 내가 죽을 때가 아니거든.”
“팔은 왜?”
“뼈가 부러진 것 같다. 형수님이 많이 놀라셨을 테니까 경수보고 형수님 차를........”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내 입에서는 ‘윽!’하는 단말마적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진구 네가 왜.......”
“그냥 고이 가시지 왜 버티셨습니까. 그냥 상어파 애들에게 칼침을 맞고 고이 가셨으면, 이런 더러운 꼴은 보지 않으셨을 텐데.......”
진구를 보면서 이제 위기는 벗어났구나 하고 안심한 순간, 서늘한 느낌과 함께 진구가 내 복부를 찔러왔다.
그리고 완전히 끝장을 보려는 것인지, 칼날을 한 바퀴 돌리면서 천천히 내 배에 꽂아 넣었던 칼날을 뽑아내고 있었다.
“진구야! 인마! 네가 왜 이래?”
“큰형님이 이미 몇 차례나 경고를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거기서 그만두셨어야지요. 아무리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처지라고 하더라도, 큰형님의 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마, 내가 언제.......”
“형님이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하셔도, 큰형님 눈에는 그리 보이질 않으니 문제가 아닙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막고 있는 내 손바닥에는 창자가 쏟아져 나와 물컹거리고 있었고, 이젠 아프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오히려 조직 내에서 누구보다 믿고 있었던 진구가, 나에게 칼침을 먹였다는 그 사실에 허탈함이 밀려왔고 맥이 빠져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강수 형님이 상어파 애들에게 깨졌으니, 우린 이만 돌아간다.”
“형님, 강수 형님 시신이라도......”
“야! 이 시팔 놈아. 우리가 시신을 싣고 가면, 짭새들이 우릴 의심할 거란 거는 생각도 안 들지?”
그러더니 진구가 내 가슴을 차셔 구덩이로 밀어 넣었고,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널브러진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고, 카메라 감독님은 그런 내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컷! 오케이!”
그렇게 또 하나의 신(scene)이 끝이 났다.
“30분만 쉬었다가 갑니다.”
메가폰에서 잠시 휴식을 알리는 조감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나는 진수의 부축을 받고 구덩이에서 나왔다.
“한 배우, 고생했어.”
“그림은 잘 나왔습니까?”
“당연히! 그런데 마지막에 눈물은 어떻게 된 거야? 시나리오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순간적으로 사람이 그런 상황에 접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진짜 죽어가는 상황이라고 해도요.”
“애드리브였단 말이지?”
“그런 셈이죠.”
“아무튼 잘했어!”
그러면서 촬영감독님께서, 내 어깨를 펑펑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치셨다.
장수한 감독님 역시 마지막에 보여준 내 연기가 마음에 드셨던 것인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