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네 안의 야수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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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나 배우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진수는 휴대전화 가게에 들러 새로운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그리고 그 번호를 장수한 감독님과 조감독, 그리고 문지훈 배우와 서예나 배우에게 알렸다.
결국 이 이야기의 결론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이 바닥에서의 내 인맥이, 아직은 겨우 저 넷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사의 파문은 정말 엄청났다.
처음 기사가 나간 이후에 이어지는 후속 기사들은 정말 나도 알지 못하는 제목으로 새로운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고, 심지어 동영상에서 서예나 배우가 내 얼굴에 얼음찜질을 하는 그 장면을 캡처해서 [서예나 배우와 한강수 배우 사이의 핑크빛 기류?]이라는 ‘어그로’ 성 제목까지 뽑아내고 있었다.
‘통화 가능해?’
“응,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황당한 기사제목을 보고 혹시 서예나 배우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서 배우에게 톡을 보내니 서 배우는 바로 새로 개통한 전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특별한 일은 아닌데, 올라온 기사 중에서 우려스러운 기사가 있어서.”
“뭐 핑크빛이 어쩌고 한 그 기사 말이야?”
“응, 소속사에 연락해서 대처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
“그런 소소한 것까지 신경을 쓸 이유가 뭐가 있어. 우리가 호텔 방에 들어갔다 나온 사진을 찍힌 것도 아닌데.”
“하지만 여배우에게는 자칫하면.......”
“야! 내가 한때는 포르노 주인공까지 되었던 몸이야. 뭐 그런 시답잖은 기사에까지 신경을 쓰고 그래.”
“뭐? 포르노?”
“응, 내가 일본에서 제법 잘 나가잖아. 그러다 보니 어떤 미친놈이 내 사진을 합성해서 포르노 배우로 취직을 시켰더라. 그런데 그 여자 몸매가 영 꽝이어서 탈이었지만.”
예나는 아예 내가 걱정하는 그 기사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눈치였고, 그것은 예나의 소속사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너야 그렇지만 소속사에서는 왜 대응을 하지 않아?”
“돈 들이지 않고 홍보를 하는데 그걸 굳이 막을 이유가 뭐가 있어. 어차피 조금만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내가 신인인 너하고 그런 식으로는 엮일 일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거잖아. 차라리 내가 호스트바에 갔다는 기사라도 나온다면 회사에서 난리가 났겠지만, 이번 기사로는 오히려 박수를 치고 있을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너 여자 친구는 있어?”
“아직 내 처지가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그렇구나. 난 네 얼굴을 보고 여자 경험이 많을 줄 알았는데......”
배우의 끼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털털해서인지 서예나 배우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연예계에서 생활하는 동안 풍파를 많이 겪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예나나 예나의 소속사에서 그 문제에 관련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니, 나로서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전생에서야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알아주는 스타였고 소위 말하는 국민배우란 소리까지 들었었던 나였지만, 이번 삶에서는 나는 아직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완벽한 신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 여배우라 불리는 서예나 배우와 엮여 염문설이 나도는 이런 식의 기사에서, 내 이름이 언급될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손해가 날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랬기에 속 편하게 서예나 배우의 이름에 업혀가기로 했다.
“오빠, 진짜 예나 언니랑 사귀는 거야?”
“네가 서예나 배우라면 나 같은 신인하고 사귈 생각이 들겠니?”
“하긴 그렇긴 하다. 그런데 사귀지도 않는다면서 예나 언니 집에는 왜 간 건데?”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어?”
“진수 오빠가 엄청 예쁜 집을 찍은 사진을 보고 있기에, 어딘지 물어보니 예나 언니 집이었다면서.”
“다른 배우들과 같이 저녁 먹자고 해서 따라간 것뿐이야.”
“정말?”
“그럼 정말이지. 내가 동생한테 거짓말을 할 사람으로 보여?”
하나 있는 동생이라는 것이 제 오빠가 맞아서 얼굴이 부은 것은 보이지도 않는지, ‘지라시’에 등장한 서예나 배우와의 염문설 아닌 염문설에 바짝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 엄청 실망하겠다.”
“왜?”
“지금 SNS가 난리이거든. 우리 친구들도 오빠랑 예나 언니가 사귀면 좋겠다고 난리고.”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연예기사만 보냐?”
“오빠잖아. 한지수의 오빠.”
“아무튼 전혀 아니니까 신경 꺼.”
내가 단호히 서예나 배우와의 관계를 부정하자, 지수는 ‘치!’라는 헛바람 새는 소리를 남기고 쌩하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도 한창 남녀 사이에 관해 관심이 많을 나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엮이는 염문설에 흥미가 생겼고 또 그 염문설이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는 무엇이길 기대했었던 모양이다.
지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 판을 조금 더 키워볼까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차피 내가 이 바닥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여성관객 그것도 한창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지수 또래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나가자고 하는 내 욕심이, 자칫하면 서예나 배우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애써 그 욕심을 눌렀다.
“좀 괜찮아?”
“응. 원래 그런 상처는 하룻밤 자고 나면 다 괜찮아져.”
“다행이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숍에 들렀다가 촬영장에 도착하니, 동이 트려는지 멀리서부터 밝아져 오는 느낌이다.
주먹질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서예나 배우가 먼저 다가와서 어제 맞았던 곳이 괜찮은지에 대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사실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입안의 상처가 아물기는 했지만,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턱 부근의 부기는 빠졌지만 멍은 어제보다 오히려 짙어져 있었다.
그래서 숍에서 멍이든 자국을 지우기 위해 화장품으로 떡칠하게 되었고, 덕분에 얼굴에서 느껴지는 찜찜한 느낌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정말 이러다가 열애설 터지는 것 아니야?”
“아! 선배님. 선배님까지 그러시면 어쩝니까.”
“또, 선배라니. 형으로 부르기로 했잖아.”
“아직 습관이 되질 않아서.......”
“예나야, 회사에선 암말도 하지 않지?”
“그 정도 헛소문에 신경 곤두세울 일도 없잖아요. 그런데 오빠가 벌써부터 웬일?”
“인마, 알고 보면 나도 성실한 배우다.”
“치~ 지난번 영화에서는 영 아니었잖아요.”
“그때는 꼴 보기 싫은 놈 때문에 그랬지. 가만히 있어도 눈앞에서 알짱거리고, 그렇다고 한 대 줘 패버릴 수도 없고. 그러니 내가 피해야지.”
“하긴 저도 속에서 올라오려고 해서 고생을 좀 했어요. 어떻게 그런 진상이 배우랍시고 꺼떡대는지.”
하긴 이 업계에 별의별 인간이 다 있긴 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놈이 양아치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의 진상도 한둘이 아니고, 또 감히 접근하기조차 어려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가 의외로 털털한 구석을 보이는 등,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판단하다가는 호되게 곤욕을 치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바닥이기도 했다.
“아이쿠, 우리 핵심멤버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계셨네요. 그런데 한 배우 괜찮아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뭐가요?”
“어제 제법 곤혹스러웠을 텐데.”
“아, 그거요. 감독님 말씀대로 아예 휴대전화를 꺼버렸습니다. 물론 나중에 기사가 나온 것을 보고 좀 많이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열심히 해줘요. 그래야 한 배우도 뜨고, 나도 살고 하지. 물론 두 분 배우님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장수한 감독님께서 너스레를 떨고 가셨다.
“오빠, 장 감독님 눈에 콩깍지가 씐 것 같지?”
“아마도......”
“갑자기 오빠하고 내가 찬밥 신세가 된 것 같은 느낌이네.”
“그러게. 강수 이놈에게 우리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면, 앞으로 우리가 좀 빡세게 해야겠다.”
“그런데 액션에서 되겠어? 나야 강수를 좀 홀리기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러게. 어제 보니 이놈 몸놀림이 예사롭지도 않고, 김영웅 감독님 말씀으로는 액션스쿨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버렸다고 하시던데.”
“정말?”
“응, 혹시 거기 하수경 사범 알아?”
“수경이 언니야 당연히 알지. 나도 예전에 수경이 언니한테 배웠던 적이 있는데.”
“하 사범이 얘한테 판판이 깨졌다더라.”
“설마 검도는 아닐 테고 격투기로?”
“아니, 그 설마인 검도로.”
“엥? 강수야, 오빠 말이 정말이야?”
도대체가 이 동네 소문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울 정도다.
아니 그 소문보다는 배우들이 한 번쯤은 경험하는 액션스쿨, 그리고 그 액션스쿨의 대표인 감독님도 아닌 사범에게까지 줄이 닿아 있는 인맥이 경악스러운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번 영화에 같이 출연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액션스쿨 쪽에 연락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확인까지 해보는 철저함이라니........
하긴 아쉬울 것도 없는 잘나가는 스타 배우인 문지훈 배우와 서예나 배우가, 이제 갓 이 바닥에 얼굴을 들이민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호감을 보이는 그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들 나름대로 나에 대한 조사를 끝내고, 나와 미리 친분을 맺어두는 것이 결코 그들에게 손해가 날 일이 아니란 판단 때문에서였을 것이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배우님들께서는 모여주세요.”
메가폰에서 조연출이 모이란 소리가 흘러나오자 이곳저곳에서 배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배우들을 케어하기 위해 따라온 매니저들은 목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첫 신(scene)은 만구 형과 예나가, 나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장면이었다.
“그건 오빠의 일방적인 오해야. 내가 강수를 좋아하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강수 저놈도 널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오빠, 우리 병원에 가보자.”
“뭐? 병원? 병원은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빠가 의처증이 있는 것 같아. 솔직히 오빠도 생각해 봐. 만약 지난번 상어파 애들이 습격했을 때, 강수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었겠어? 그걸 알면서도 강수한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아?”
순간 ‘짝!’하는 소리와 함께 예나의 목이 휙 돌아갔고, 만구 형은 입으로 ‘시파!’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문을 쾅 차고 나왔다.
“컷! 오케이!”
장수한 감독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러자 서예나 배우의 매니저가 서 배우를 향해 달려갔고, 밖으로 나왔던 지훈이 형도 예나 쪽으로 다가갔다.
“오빠, 손바닥에 제법 감정이 실렸다. 이제 연기가 물이 올랐는데.”
“까불지 말고. 얼굴은 괜찮아?”
“어차피 이렇게 한방에 끝을 내야지. 내가 때릴 때야 NG가 나면 이따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맞는 장면에선 한 방에 끝내는 게 최고잖아.”
뺨을 맞은 서예나 배우의 볼이 발갛게 변했지만, 서 배우의 표정은 밝았다.
물론 맞은 뺨은 아리지만 분명 이번 장면은 화면에 제대로 잡혀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임은, 서예나 배우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뺨을 맞고 난 직후 카메라가 서예나 배우의 얼굴을 단독 샷으로 잡고 있었으니, 그 순간 서예나 배우는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최고의 표정을 관객들에게 선물했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