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장수한 감독의 선물(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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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응, 서예나 선배가 저녁밥을 같이 먹자는데.”
“뭐? 그 사람이 왜?”
“아까 입안이 찢어진 것 때문에.”
“입안 찢어진 것하고 저녁밥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러게. 어떻게 하지?”
“부르는데 가지 않을 수도 없잖아. 가서 함부로 들이대고 그러지나 마.”
“지랄. 내가 무슨 껄떡쇠도 아닌데 들이대긴 뭘 들이대.”
무슨 생각으로 저녁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는 서둘러 옷부터 갈아입고 서예나 선배가 찍어준 주소인 청담동으로 향했다.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나?”
“그러게, 여긴 음식점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닌데......”
서예나 선배가 찍어준 주소는 상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렇게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 가다가 보니, 그곳은 식당이 아닌 제법 부티가 엿보이는 가정집이었다.
“선배님, 찍어주신 주소에 도착은 했는데 여기는 음식점이 아닌 것 같은데요.”
“벌써 도착했어요. 차고 문을 열어줄 테니까 차고로 들어 와요.”
전화가 끊기는 것과 동시에 차고의 셔터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진수는 차고 안으로 차를 집어넣었다.
“와! 정말 죽여준다.”
차고가 아닌 자동차 전시장이었다.
차고 안에는 소위 말하는 럭셔리 카가 몇 대나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고, 국산차인 우리 차는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강수 씨, 어서 와요. 매니저님도 안으로 들어오세요.”
주차장에서 안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고, 그곳에는 서예나 배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님, 이것.......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이런 건 뭐 하러 사와요. 그냥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한 건데.”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 백화점에 들러서 산, 한우세트와 꽃다발을 서예나 선배 앞으로 내밀었다.
“강수야. 빨리 와라.”
“어서 오세요. 한 배우.”
서예나 선배를 따라 들어가니, 정원에는 문지훈 배우를 비롯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인기가 있는 배우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고, 매니저들 또한 옆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수 씨.”
“예. 선배님.”
“혹시 우리 둘만 따로 밥을 먹는다는 엉큼한 생각은 하지 않았죠.”
“예?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뇨. 그냥 농담을 해봤어요. 빨리 가요. 사람들 기다리니까.”
그러더니 서예나 선배는 덥석 팔짱을 끼어 왔다.
순간 놀라서 나는 몸을 움츠렸지만, 그렇다고 팔을 뺄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내 코로 전해져왔고, 내 팔뚝에는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의 볼륨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에, 순간 나는 마치 허공을 걷는 듯 그런 기분이었다.
“여기 인사부터 해. 얼굴은 알지? 장서준 배우.”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신인배우 한강수라고 합니다. 선배님께서 출연하셨던 ‘작전세력’ 영화 감명 깊게 봤습니다.”
“그 영화를 봤어요? 그거 완전히 망한 영화였는데.”
“하지만 그 영화에서 선배님께서 주식시장 판도를 흔드는 작업을 지시할 때의 카리스마는, 제가 정말 감명 깊이 본 명장면이었습니다.”
“하긴 그 장면은 나 역시도 만족하던 장면이었는데, 아무튼 조연으로 들어왔던 걔가 마약 사건에 연루되는 통에 완전히 망한 영화가 되었었지. 그런데 한 액션 한다면서?”
“아닙니다. 지훈 선배님께서 절 잘 봐주신 때문에 괜히 하시는 말씀이지요.”
“아무튼 열심히 해봐. 오늘 지훈이 이야길 듣고, 여기 있는 모두가 새로운 스타의 출현을 잔뜩 기대하고 있으니까.”
지훈 형이 나에 대해서 제법 설레발을 친 모양인지, 장서준 배우의 말에 대부분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실 스타라고 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계하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날 것 같지만, 그건 일부에 국한되는 편견일 뿐이다.
어차피 특급배우들이 설 자리는 얼마든지 많고, 오히려 작품을 끝낸 배우들은 전작(前作)에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짧게는 1~2년 심하게는 몇 년씩이나 작품을 하려고 하지 않는 배우들이 많았기에 제작자들이나 작가들은 특급배우의 섭외에 난항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주목받는 새로운 신인이 유입되어야 판도 커지는 법이다.
항상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식으로 이름이 있는 배우들만으로 차려진 밥상에는 관객들 또한 식상함을 느끼게 되는 법이고, 그랬기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서 그 판의 물갈이를 시켜줘야만 기존의 스타급 배우들 역시 새로운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설 수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후배님.”
“예. 김수지 선배님.”
“어! 내 이름도 알아요?”
“당연하죠. 대한민국 사람이 김수지 선배님을 모르면 그 사람이 바로 간첩이잖습니까.”
“와~ 우리 후배님 사회생활 진짜 잘하겠다. 그런데 ‘하늘 기획’을 깠다면서? 왜 깠어요?”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깐 것이 아니라 아직 신인인데 ‘하늘 기획’ 같은 대형기획사에 소속되어 있게 되면 회사에 폐만 될 것 같아서요.”
“그럼 우리 회사는 어때요?”
“블루 엔터 말입니까?”
“우리 회사 이름도 알고 있네? 정말 이 후배님 뭐 하는 사람이야?”
전생의 기억이 남아 있는 나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배우들은 내 전생에서도, 하나같이 연예계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들이었고, 그리고 문지훈 배우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은 처음 데뷔했던 기획사와 끝까지 함께했었던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나이 차이가 좀 있긴 했지만, 전생에서 내 동료 배우이자 후배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곳에 모인 전생에서 선배나 동료 배우들이지만, 지금은 내 선배 배우가 된 이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매니저들이 모인 곳에서 웅성거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문지훈 배우의 매니저와 진수가, 동시에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허 참, 굳이 촬영장에 구경을 가지 않아도 되겠네.”
“내가 말을 했었잖아. 그런데 이 영감이 우리 강수를 제대로 찍긴 찍었나 보다.”
“그러게. 이 양반이 웬만해서는 이런 장난을 치지 않는데......”
문지훈 배우를 비롯한 선배 배우들이 매니저가 가지고 온 스마트폰을 앞에 두고 떠드는데,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는 멍하니 선배 배우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앞으로 진수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대한민국 영화계에 새로운 신성의 탄생(?)]
[문지훈 배우, 그 장면은 한강수 배우의 애드리브의 결과물]
[장수한 감독, 처음부터 한강수 배우의 가능성을 보고 캐스팅했던 것]
[서예나, 솔직히 그 순간이 매우 안타까웠어요.]
[불꽃 투혼 한강수, 액션스쿨에서도 주목했던 배우였다]
한강수라는 단어로 검색하자 정말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의 수많은 기사가 올라왔고, 그것을 검색하는 도중에도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헐! X튜브 조회숫자가 벌써 50만을 찍었다.”
“정말? 기사 터진 게 1시간도 되지 않았잖아?”
“그러게. 너희가 찍는 이번 영화 완전 대박 각이네. 지훈이하고 예나 너는 러닝개런티 계약이지?”
“응. 우리 강수 덕분에 이번에 목돈 좀 손에 쥐게 생겼네.”
솔직히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분명히 나중 영화가 영화관에 걸려 상영되게 되면, 오늘 찍었던 장면이 화제가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제작발표회 날까지 내가 이번 영화인 ‘네 안의 야수’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심지어 첫 신(scene)이었던 패싸움 장면까지 둘째 날로 변경해가면서까지 나란 존재를 숨기려고 했던 장수한 감독님이, 이렇게 나란 존재를 일찍 드러낸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심지어 원래 장면도 아닌 문지훈 배우와 대련을 빙자한 개싸움을 하는 장면의 영상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그것은 진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선배님, 저 영상은 유출되면 안 되는 영상이잖습니까?”
“내일쯤이면 삭제가 될 거야.”
“예?”
“장수한 감독님 스타일이 원래 이래. 싹수가 보이는 배우가 있으면 의도적으로 이렇게 노이즈마케팅을 시도하거든. 여기 봐봐. 화면이 좀 이상하지 않아?”
문지훈 배우의 말에 동영상 화면을 확인했지만, 내 눈에는 별 이상한 점이 보이질 않았다.
“이 영상의 원근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 이 친구들이 그걸 보고 장 감독님의 장난이라고 한 거야.”
그러고 보니 멀리서 줌을 당겨서 찍었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났다.
“메이킹 필름을 찍는 카메라로 찍은 장면을 가지고 장 감독님이 장난을 친 거지.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장 감독님 영화로 데뷔했던 친구들은, 장 감독이 이렇게 장난을 치는 스타일을 이미 알고 있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이 영상이 장수한 감독님 쪽에서 유출한 것이라면 말이 되는 일이다.
그때야 내가 촬영을 마치고 촬영장을 벗어날 때, 장수한 감독님이 나보고 오늘하고 내일은 아예 휴대전화를 꺼두라고 하셨던 그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와~ 우리 한강수 후배님 앞으로 탄탄대로가 펼쳐진 거네. 난 겨우 세 번째 영화에서 이렇게 장 감독님 선택을 받았었는데.”
잔뜩 부러움이 배인 음성으로 장서준 배우가 입을 열었고, 장서준 배우의 말이 끝나자 이곳저곳에 있던 선배 배우들이 내게 다가와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사실 내가 전생에서 장수한 감독과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장수한 감독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네 안의 야수’의 오디션을 본 이유는, 내 전생에서 강수 역을 맡았었던 그 친구가, 이번 영화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후 여러 구설에 오른 끝에 결국에는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가, 굵고 짧은 배우생활을 마감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 욕심도 채우면서 한 인간을 구제한다는 명분이었을 뿐이니 말이다.
“강수 씨, 축하해.”
“고맙습니다. 선배님.”
“그런데 언제까지 나보고는 계속 선배라고 할 거야. 지훈이 오빠보고는 형이라면서.”
“그게......”
“강수 씨, 나이가 몇이야?”
“스물다섯입니다.”
“엥? 그럼 우리 동갑이잖아. 나도 스물다섯인데.”
“아, 예.”
“나이도 같으니까 우리 친구 하자. 그래도 되지.”
“저야......”
“남자가 뭐 이래? 강수야. 지금부터 우리 친구다.”
“예.”
“친구한테 ‘예.’가 뭐야. ‘응’이지.”
얼결에 서예나 배우와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얼결에 주변 사람들이 친구가 된 기념으로, 러브 샷을 하라는 강요에 러브 샷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같이 밥이나 먹자고 시작된 자리는,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인 나와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의 Top 배우들이 화기애애하게 어울리는 술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선배님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인마, 내가 벌써 몇 번이나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다음에 만나 뵐 때는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선배 배우들을 한 사람씩 차에 태워 보내고, 주차장에는 이제 나와 서예나 배우만 남았다.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저녁밥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또! 우리 친구 하기로 했잖아. ‘예나야!’ 이렇게 불러 봐.”
“미안해. 버릇이 되어서.”
“한번 불러보라니까.”
“그래. 예나야, 밥 정말 맛있게 먹었어.”
“응, 이따금 내가 부르면 와줄 거지?”
“그래.”
“나중에 도착하면 연락해.”
그렇게 서예나 배우와도 작별하고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전생에서야 별 대수로울 것 없는 만남이었겠지만, 이번 생에서 오늘 같은 모임은 정말 신인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그런 엄청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