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영입 제안을 거절하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그렇게 첫 신(scene)에 대한 촬영이 끝이 났다.
“자! 장소 정리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합시다.”
골목에서의 격투 신은 끝이 났으니, 이젠 사무실에서 다음 장면을 찍을 차례였다.
“그 새끼들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일단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우리가 저쪽까지 접수하는 것은 어떨까?”
“크게 실익이 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강진이처럼 욕심만 많은 놈보다는, 성수처럼 똥오줌 가릴 줄 아는 애가 관리하게 해두는 것이 우리에겐 훨씬 이익입니다.”
“성수가 네 친구여서가 아니고?”
“친구까진 아닙니다. 같은 업종에서 놀다가 보니 조금 가깝게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요.”
“차라리 아까 거기서 그냥 눌렀으면 간단했잖아?”
“그렇게 했으면 걔들이 순순히 물러났겠습니까? 조직의 일이인자가 작살이 났으니, 자기네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덤벼들었겠지요. 그렇게 되었으면 형님이나 저나 온전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만구 형이 엉뚱하게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물론 만구 형의 그 욕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만구 형 말대로 그 자리에서 성수의 아킬레스건을 날려버리고 상어파의 영역을 우리가 차지한다고 해봐야, 우리 조직에는 별 실익도 없었다.
물론 방심한 탓인지 내 발길질 한 방에 성수가 나가떨어지긴 했지만, 방심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지라도 성수와 1:1로 맞장을 뜬다고 해도 솔직히 성수에게 질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상어파의 보스였던 강진이 형 같은 경우에는, 한 마디로 ‘좃밥’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칼이 없이는 아무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이기도 했고.
그들 조직의 일이인자가 그 정도 실력이었으니, 당연하게도 그들이 차지해서 관리하는 지역 또한 먹을 것이 별 없는 곳이다.
그런 곳을 구태여 우리 조직이 접수해서 직접 관리를 해봐야 별 볼 일 없는 중소상인들에게 삥이나 뜯는 양아치 소릴 듣기에 딱 좋을 것이니, 차라리 성수에게 그걸 대신하게 하고 우리 쪽으로 넘어오려는 다른 조직들의 총알받이 역할을 맡기는 것이, 우리 조직에는 훨씬 이익이란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강수야.”
“예. 형님.”
“너 거기서 성수 그놈을 깨면 다구리 당할까 봐 쫄았었냐?”
“쫄다기 보다는 형님을 안전하게 모시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어파 지역은 뜯어먹을 것도 별로 없고요.”
“알았다. 나가 봐라.”
만구 형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만구 형의 표정이 어쩌면 비릿하다고 느낄 정도의 그런 느낌이었기에, 돌아서 나오는 내 표정 또한 깔끔할 수가 없었다.
“컷! 오케이! 두 분 표정 끝내줬습니다. 잠시 30분만 쉬었다가 갑니다.”
오늘 촬영에서 아직 NG가 나오지 않았던 덕분에, 촬영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나자마자 조금 전의 내 표정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미심쩍어서, 감독님 쪽으로 가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여기서 조금 더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벌써부터 그렇게 하면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겠어? 어차피 제대로 된 갈등구조는 예나가 나오는 부분부터이고, 예나가 두 사람 갈등의 촉매제가 되어야 하잖아.”
장수한 감독님의 말씀이 맞았다.
너무 내가 만구 형과의 갈등에 너무 무게중심을 둔 탓에, 자꾸 오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은 괜찮아.”
“응. 고마워.”
담배를 피우려고 잠시 밖으로 나오니, 진수가 다가와 물수건과 시원한 캔 커피를 건넨다.
“그런데 예전보다 몸놀림이 훨씬 좋아졌더라.”
“당연하지. 몇 달이나 파주에서 굴렀잖아. 그렇게 뺑뺑이를 돌았는데 변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아니, 파주에서 훈련할 때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기도 하고 실감 나게 느껴졌거든.”
“그래? 카메라가 있어서 더 집중했나?”
“아무튼 지겨운데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어디 PC방이라도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와. 어차피 오늘은 해질 때까지 찍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매니저란 직업은, 참 고달픈 직업이다.
전생의 삶에서도 내 매니저를 자청했던 진수는, 당시 내가 따로 챙겨줬기에 다른 매니저들 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상황이었지만, 회사에서 매니저에게 주는 월급은 정말 처참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매니저의 업무를 보면, 정말 살인적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매니저의 업무 시간을 놓고 시급을 따지자면, 업주인 연예기획사 대표들은 모두 검찰에 기소되어 최소한 벌금형은 받아야 정도로, 업무 강도는 높은 대신에 임금은 착취에 가까울 정도로 형편없다.
물론 촬영이 없을 때는 매니저들 또한 크게 바쁠 일 없이 빈둥거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웬만큼 지명도가 있는 배우를 케어 하는 매니저가 아닌 이상에는, 배우가 일하지 않는 기간에도 매니저란 직업은 결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랬기에 나는 가능한 한, 이번 생에서는 진수에게 조금은 더 편한 그런 생활을 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인마, 배우가 일을 하고 있는데 매니저인 내가 PC방에나 가서 탱자탱자 하면서 시간이나 때우라고? 나중에 다른 매니저가 널 담당하게 되면 절대 그런 소리는 입 밖에도 내지 마!”
“다른 매니저? 너 말을 좀 희한하게 한다. 지금 그 말은 언젠가 나를 혼자 남겨두고 다른 데로 갈 거라는 말이잖아?”
“지랄하네. 내가 언제까지 네 로드를 해야 해? 네가 빨리 스타가 되어서 나도 실장이 되고 팀장도 되어야지.”
역시 진수란 놈은, 이번 생에서도 내 곁을 떠날 생각이 아예 없었다.
그리고 아직 첫 작품을 찍기 시작한 신인임에도, 진수 머릿속에는 이미 로드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등과 함께하는 팀을 꾸려서 운영되는, 그런 시스템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강수 배우님.”
“아! 권 실장님.”
“배우님, 절 아세요?”
“당연하죠. 문지훈 선배님을 캐스팅하셔서 지금의 대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으신 분을, 제가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제가 문지훈 선배님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아주 많았거든요.”
“그러세요.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문 배우를 그렇게까지 좋아해주시니.......”
문지훈 배우의 매니저인 권혁수 실장이 찾아왔다.
그런 권 실장에게 진수는 캔 커피를 내밀었고, 권 실장은 캔 커피를 따서 한 모금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한 배우님께서는 지금 소속사가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럼 이 분은?”
“제 친구이자 제 평생을 함께할 매니저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우리 문 배우에게 듣기론 소속사가 없다고 들었는데, 매니저분이 계시기에 혹시 그사이에 소속사를 정했나 싶었거든요.”
“아, 예.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혹시 소속사를 찾으신다면 우리 ‘하늘 엔터’를 고려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해서요. 배우이시니 우리 ‘하늘 엔터’가 배우를 전문으로 케어하는 연예기획사인 것은 잘 아실 테고요.”
이른바 스카우트 제의였다.
그리고 이렇게 권혁수 실장이 직접나선 이유도 알만했다.
시사회 직전에 뿌려진 보도 자료에서 장수한 감독님이 주목하는 배우가 있다는 내용이 나갔고,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그 숨겨진 히든카드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대본 리딩 당시까지는 긴가민가하다가, 오늘 촬영현장에서 그 숨겨진 히든카드가 나였음을 확인하고 이렇게 달려온 것일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으로는 문지훈 배우님의 소속사인 ‘하늘 기획’이, 나와는 그리 궁합이 맞는 연예기획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 배우님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 문지훈 배우님 역시 계약 기간이 끝이 난 후에 독립해서, 권혁수 실장과 함께 일인 기획사를 차려서 활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나 역시도 당장 소속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소속사에서 뭔가 해준다고 해봐야, 기획사로 들어오는 작품을 건네주고 매니저를 붙여주는 등의 일이 거의 전부인데, 작품을 찾는 것이야 이번처럼 전생의 기억을 기초로 해서 오디션을 여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배역을 따내면 될 일이고, 매니저야 세상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니저인 진수가 있으니 말이다.
“실장님 말씀은 고맙지만 당분간은 혼자 버텨보겠습니다. 아직 특별히 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요.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소속사가 있는 것이 작품을 찾는 것에도 도움이 될 텐데요. 우리 회사에 작품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아직은 좀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어서요.”
권혁수 실장은 조금 미련이 남는 모양이지만, 나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 회사에 가서 마음고생을 할 일은 없었다.
“왜 거절을 했어?”
“내가 ‘하늘 기획’으로 가면 넌 어쩌고?”
“네가 거기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은 후에 나를 부르면 되잖아.”
“됐어. 어디 소속사에 들어가더라도 너하고 같이 들어가는 데가 아니면 갈 생각이 없어. 그리고 솔직히 꼭 소속사에 들어가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작품을 하기가 편하잖아.”
“대신에 내가 싫어하는 작품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경우도 생기잖아. 그걸 생각하면 별로 아쉬울 것도 없어.”
진수는 내가 배우들을 케어하는 기획사로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하늘 기획’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매니저가 저임금이고 하고자 하는 의욕만 있으면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이지만, 이제 갓 데뷔한 신인배우를 스카우트하면서, 그들로서는 군식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매니저 역할을 하는 진수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랬기에 꼭 소속사가 필요한 순간이 되더라도, 일단 내가 인기를 조금 더 얻은 후에 매니저 한 사람쯤은 데리고 들어가더라도 사측에서 불만이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나, 소속사 문제를 고민할 생각이다.
오후 촬영도 순조로웠다.
문지훈 배우님이나 서예나 배우님은 이미 연기력을 인증 받은 연기파 배우로 알려진 분들이고, 조 단역 배우들 역시 장수한 감독님의 연출지시에 잘 따라준 덕분인지, 예정했던 시간에 오늘 촬영할 분량을 모두 끝낼 수 있었기에 촬영장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훈훈했다.
“강수야.”
“예. 선배님.”
“형이라고 하라니까. 그렇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게 아니라 습관이 되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형님.”
“아무튼 그건 차차 고치기로 하고, 혁수 형 제안을 깠다면서?”
“제안을 깐 것이 아니라 아직은 제가 어디 소속되어서 활동할 깜냥이 되질 않는 것 같아서요.”
“그래, 아무래도 강수 너도 네 나름의 계획이 있겠지. 앞으로 생활하면서 혹시 형이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를 해.”
그러면서 내 휴대전화를 달라고 하셨고, 문지훈 배우님은 내 휴대전화에 자기 전화번호를 찍어서 발신을 눌렀다.
그리고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서 번호를 저장하고, 권혁수 실장이 기다리고 있는 밴으로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