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크랭크인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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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한 감독, ‘네 안의 야수’의 주연에 문지훈, 서예나 낙점]
[장수한 감독, 네 안의 야수’에 주목할 만한 신인이 있어.]
[장 감독, 이번 영화로 대한민국 액션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
[장수한 감독이 이야기한 주목할 만한 신인은 누구?]
‘네 안의 야수’ 제작발표회가 잡히자, 제작사인 대한영화사 홍보팀은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보도 자료를 뿌리기 시작했고, 보도 자료를 받은 각 언론사에서는 보도 자료를 기초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연인 문지훈 배우와 서예나 배우에 관련한 기사뿐 아니라, 아직 나라는 사실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나에 관련된 기사도 한둘씩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기사의 제목처럼 주목할 만한 신인 배우가 나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액션스쿨 ‘투(鬪)’ 김영웅 감독님과의 이야기에서 장수한 감독님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지금 장 감독님께서 주목하는 신인배우가 나라는 것은 크게 틀리지 않는 추측일 것이다.
“준비 많이 했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옷 한번 벗어 봐.”
제작 발표회가 있기 전날, 장수한 감독님의 호출을 받아 대한영화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 감독님은 영화 촬영이 끝이 날 때까지 내 존재에 관해서는 보안을 유지하기로 했으니, 언행에 특히 주의할 것을 당부하셨다.
“김 감독 말처럼 제법 빡세게 굴린 모양이네.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그 몸매를 유지해야 하니까 운동 빼먹지 말고.”
“예. 감독님.”
“한 배우 자넬 히든카드로 쓸 생각이니, 시사회 전까지는 절대 외부에 자네가 이번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네.”
장수한 감독님의 이 말로, 장 감독님께서 언급하신 주목하는 신인배우가 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내일 고사를 지내는 곳에는 나오지 말게. 괜히 나와서 얼쩡거리다가는 기자들 눈에 띌 수도 있으니.”
결국 나는 내가 출연하는 첫 영화에 비중이 있는 조연 배우로 출연하게 되었음에도, 고사에 참석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잘 됐잖아. 어차피 고사에 참석해봐야 돈이나 내야 하는데.”
“그래도 나 혼자만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그렇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오히려 나는 고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보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네 프로필을 올리는 것조차 할 수 없다니 그게 답답한데.”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은 내가 봐도 괜찮게 나왔다.
사진만 보면 정말 내가 배우가 된 듯 그런 느낌이 들었고, 심지어 여동생인 지수조차도 평소의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라는 것을 인정했을 정도니 말이다.
“콜 시간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우리 콜 시간이야 9시지만, 촬영은 6시부터 시작한다잖아. 그러니 빨리 일어나.”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을 설친 것인지, 진수가 깨우는데도 꼼짝하기가 싫었다.
나 같은 신인의 경우 누구보다 일찍 촬영현장에 도착해서,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뿐 아니라 주연배우를 비롯한 선배 배우들에게 인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진수가 이불을 걷어붙일 때까지 뭉그적거리며 버텼지만, 이불을 걷어붙이는 통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아~ 드디어 내 인생의 지옥이 시작됐구먼.”
“뭐래? 배우인생 첫날에.”
“넌 뭐하려고 벌써 일어났어?”
“오늘 우리 사랑하는 오라버니께서 처음으로 배우활동을 시작하는 날인데, 오빠를 사랑하는 동생으로서 당연히 격려를 해줘야지.”
간단히 샤워하고 식탁에 앉으니, 지수가 밥과 국을 내온다.
“이렇게 일찍 깨서 나중에 우리 가고 난 뒤에 다시 자리에 눕지 마. 그러다가 학교 지각한다.”
“오빤 이 동생을 어떻게 보고. 나 그렇게 지각이나 하는 아이 아니거든.”
“알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런데 공부는 잘되고 있어?”
“응. 그런데 이번 영화 주인공으로 지훈 오빠 나오지? 지훈 오빠 사인 하나만 받아주면 안 돼?”
“오빠가 신인인데 그게 가능하겠어? 나중에 부탁은 해볼게.”
지수가 원하는 것이 바로 문지훈 배우의 사인을 받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나의 위치로서는 우러러볼 수조차 없는, 까마득한 선배인 문지훈 배우에게 사인을 부탁할 기회가 있을지 또 부탁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선선히 사인해줄 것인지 몰라도 일단 약속은 했다.
숍에 들르니 시계바늘이 벌써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간단히 머리를 매만지고 간단한 메이크업을 받은 후, 촬영장인 남양주를 향해 달렸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어, 왔어. 그런데 뭐 한다고 이렇게 일찍 도착했어?”
“선배님들께서 도착하시면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제 고사도 참석하지 못했으니까요.”
우선 장수한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고, 장 감독님 옆에서 지시를 받던 조감독 그리고 촬영 감독님과 오디오 감독님 등을 차례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감독님들께 인사를 마치고 나서는 장비를 세팅하고 있는 스태프들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했다.
“저기 문지훈 배우님 밴이 들어온다. 빨리 가자.”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자 문지훈 배우의 밴이 들어왔고, 나는 진수의 손에 끌려 주차장 쪽으로 달려가 선배 배우들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처음 도착하는 밴이 이번 영화의 주연인 문지훈 배우의 밴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밴 쪽으로 걸어갔다.
“신인배우 한강수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오랜만이네. 지난번 리딩 때보고 처음이네. 앞으로 잘해보자.”
“예.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 문지훈 배우는 기분이 꽤 좋은 모양이었고, 다행히 지난번 리딩 때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이 들어가자.”
“아닙니다. 선배님. 다른 선배님들 오시면 인사를 좀 드리고 가겠습니다.”
“됐어. 어차피 예나는 콜 타임 딱 맞춰서 도착할 거야. 걔가 촬영시간에 늦지는 않지만 싸가지가 없어서 일찍 와서 인사를 하는 법은 없거든. 그게 제 자존심을 지키는 법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다른 선배님들도 오시지 않겠습니까?”
“강수라고 했지? 한강수? 나이도 내가 좀 많으니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예. 그렇습니다. 선배님.”
“우리 영화에 네가 선배라고 부를 만한 배우는 없어. 무슨 말인가 하니 주연을 제외한 조연은 강수 네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모두 단역들뿐이라는 말이야.”
“예. 선배님. 하지만......”
“강수 네가 예의를 보이는 것도 좋지만, 너무 저자세를 보이게 되면 언젠가는 오히려 걔들이 널 잡아먹으려 할 거야. 그러니 조연이면 조연답게 무게를 보이는 것도 필요해.”
문지훈 배우가 하는 말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주연이나 조연 배우들과 단역 배우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주연을 하던 사람은 별 이변이 없는 한 계속 주연을 하게 되고, 조연은 언제든 주연으로 발탁되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노심초사하지만, 단역 배우들이 그렇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 말은 주·조연 배우와 단역 배우들은 아예 갈 길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생의 기억에서 지금 내가 맡은 강수라는 배역을 차지했던 그 친구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일 뿐이었던 것이고.
“나중에 공민수 선배가 오시면 그때는 먼저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
“강수야.”
“예. 선배님.”
“너하고 나는 앞으로 몇 달간을 함께 생활해야 해. 그러니 선배니 뭐니 그렇게 딱딱하게 부르지 말고 그냥 형이라고 해.”
“예?”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왜? 내가 형이라고 부를만한 깜냥이 되지 못하는 거야?”
그러면서 문지훈 배우는 덥석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선배님 팬입니다.”
“인마, 선배가 아니라 형이라니까. 너 내 동생 하기 싫어?”
“아닙니다. 형님. 정말 좋습니다.”
“형님이 아니라 형!”
전생에 이 양반과는 별 특별한 접점이 없었다.
그리고 전생에 이 양반과 함께 합을 맞추면서 화려하게 비상한 그 친구 역시, 문지훈 배우와 따로 특별하게 가깝게 지냈다는 그런 소식은 들었던 바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문지훈이라는 양반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든지 간에 나이와 걸맞지 않을 정도로 무게감을 발휘해서, 그 영화나 드라마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는 양반이었다.
그런 양반이 나한테 친밀감을 표시하면서 형 동생으로 지내자고 하는데, 내가 그것을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잘 돼가?”
“응, 왔니. 그런데 너 강수하고 잘 알아?”
“응, 이제부터 형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어.”
“그래? 특이한 일이네.”
“특이하긴 뭐가 특이해. 그런데 어제 찍은 것은 어땠어?”
“어제 찍은 거라고 해봐야 너하고 예나가 찍은 것인데, 두 사람 연기로 그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감독 노릇을 그만둬야지.”
지난번 리딩 때도 어렴풋이 느낀 일이지만, 문지훈 배우와 장수한 감독님은 아주 가까운 사이 같았다.
내가 회귀함으로써 전생의 기억과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두 분 사이가 가깝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한 것인지 몰라도, 지금 내 눈앞의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은 마치 형제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어! 고마워요. 그런데 누구?”
“신인배우 한강수 배우 매니저입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렇게 셋이 앉아 있는데, 진수가 커피를 가지고 와서 문지훈 배우와 감독님께 건넸다.
“어느 회사에 들어갔어?”
“아직 소속사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매니저라는 저 친구는?”
“제 친굽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제 매니저를 하겠다고 설치더니 지금까지......”
“그랬구나. 참 좋은 친구를 뒀네. 앞으로 뜨더라도 저 친구에게 잘해. 이 바닥에 믿을 사람이 없다. 그런데 저런 친구만 하나 있으면 또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 이 바닥이야.”
“형님 매니저를 하고 계시는, 권혁수 실장님처럼요?”
“혁수 형을 알아?”
“이 바닥에서 형님과 권 실장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물론 나는 아직 아니지만, 연예계에서 문지훈 배우와 권혁수 실장과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문지훈 배우를 처음 캐스팅한 매니저가 권혁수 실장이었고, 그렇게 인연을 맺은 후에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 사람은 마치 실과 바늘 같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아무튼 소속사를 정할 때는 많이 고민하고 살펴봐야 해.”
“아직 관심을 가지는 곳도 없는 걸요.”
“내가 보기에는 이번 영화가 개봉만 되면 넌 분명히 뜨게 되어 있어. 그리고 그거야 감독님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위기이고.”
“......”
“강수 너, 혹시 내가 데뷔 초기에 고생한 이야기는 알아?”
“예. 전 소속사와 분쟁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것은, 기사를 봐서 알고 있습니다.”
“기획사에서 아무리 좋은 조건을 들이밀더라도, 네게 확신이 서기 전에는 당분간 저 친구와 따로 행동해도 괜찮아. 어차피 배우는 연기력만 검증받게 되면, 굳이 소속사가 없어도 알아서 연락이 가니까.”
문지훈 배우는 본인의 기억처럼, 초기에 소속사와 분쟁으로 구설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분쟁 때문에, 2년 가까이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아예 활동을 중지하기도 했었다.
지금 문지훈 배우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 혹시 내가 자신과 같은 전철(前轍)을 밟게 될까 봐 그것을 걱정하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