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크랭크인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한 배우. 헝그리 정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당연히 들어봤죠. 예전 70년대에 운동을 했던 선배들에게서 유행했던 말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경기에 나섰다가 게임에 졌을 때는 어떻게 되겠나?”
“그거야......”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사람들은 게임에 나가서 진다는 것을 죽음처럼 여겼다네.”
“아, 예.”
김영웅 감독님께서 나를 부르는 호칭이 변했다.
‘야!’ 아니면 ‘한강수’ 또는 ‘인마!’라던 호칭이 한 배우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말투 또한 완전한 하대에서 ‘하게’로 바뀐 것을 보면, 김영웅 감독님이 이젠 나를 한 사람의 배우로 인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야. 자네야 액션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것에 큰 지장은 없겠지만 우리 애들은 액션이 밥줄이고, 또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니까. 그러니 액션이 바로 생존의 방법이고 목숨 줄인 거지.”
“그래서 가진 실력 이상을 발휘한다는 겁니까?”
“결국 그런 뜻이 되겠지. 자네가 생각할 때 이곳에서 받았던 훈련과, 자네가 다니던 도장에서의 훈련이 똑같다고 생각되던가?”
“그건 절대 아니죠.”
“어떤 차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본능에 충실했다고나 할까? 솔직히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 발악을 한 거죠.”
“그래. 그 말이 맞을 걸세. 인간이란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치에 달하면 생각지도 않은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법이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 애들이나 한 배우 자네나 마찬가지이고.”
이 양반이 나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인 것은 맞았다.
이곳에 도착했던 첫날부터 대뜸 산악구보부터 시켰었고, 맨몸으로 산악구보가 어느 정도 적응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모래주머니를 차게 했었다.
그리고 김영웅 감독 나름의 판단으로 내 체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된다는 판단이 서자 대뜸 대련부터 시켰고, 그 강도는 점차 올라가서 이곳 액션스쿨 ‘투(鬪)’의 실질적 2인자 격인 하수경 사범에게까지 순차적으로 나름 감당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순서를 밟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나는 번번이 좌절감을 맛봤고, 정말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 발악을 거듭했었다.
결국 그 하나하나의 순간이 내 속에 들어 있는 본능적인 감각을 끌어내는 방법이었고, 그 방법이라는 것이 지극히도 무식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불만이 많은 표정이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미리 설명이라도 해주셨더라면, 조금 더 충실하게 훈련을 받았을 텐데요.”
“아니, 그건 절대 아닐세.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전에 전개과정을 알게 되면, 절대 속에 든 그것이 튀어나오질 않아. 알게 모르게 어느 순간까지만 참으면 된다는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니까.”
뭐 한마디로 야성(野性)의 본능을 일깨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김영웅 감독님의 말처럼, 밤길을 가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맞지는 않을 것이니 그것으로 나름 만족할밖에.......
************
“괜히 뭐 한다고 돈을 쓰려고 해?”
“영화촬영이 시작되면 기사가 나올 거잖아. 그 전에 간단한 프로필이라도 올려 둬야지.”
“그래 봐야 조연이야. 누가 생짜 신인에 관해 관심이라도 가질 것 같아?”
“만사 불여튼튼에 유비무환이라 했다. 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일이 뭐가 있어.”
액션스쿨 수료 후, 파주를 왕복하는 일에는 여유가 있었다.
매일 아침에 파주 훈련장에 도착해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 정상까지 두 차례 왕복한 후에 하수경 사범과 몇 차례 대련을 하고, 또 이따금은 김영웅 감독님께 직접 지도대련을 받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하루가 다르게 내 실력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 나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이른바 무협소설에 나오는 내용처럼 김 감독님께서는 걸핏하면 ‘한 배우, 이제 하산해!’라고 하셨지만, 나는 서울 집에서 빈둥거리기보다는 이렇게 액션스쿨에 와서 훈련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고, 그동안 액션스쿨의 훈련생들과도 제법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수가 훈련장으로 가는 대신에, 한 스튜디오 앞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진수 고집을 이기지 못해 스튜디오로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제대로 된 첫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좋습니다. 거기서 살짝 인상을 찌푸려 보세요.”
“좋습니다! 오케이!”
“셔츠 단추를 풀어보실래요? 좋아요.”
끊임없이 셔터가 찰칵이는 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고, 나를 향한 조명의 열기로 스튜디오 내부뿐 아니라 내 몸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배우님, 상의를 완전히 벗어보시죠.”
“예?”
“아까 매니저분과 논의한 내용입니다. 상의를 완전히 벗으시고 자세를 잡아 보세요.”
속으로 ‘이런 미친놈’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무슨 에로영화에 출연할 것도 아닌데 웬 반신 누드 사진이란 말인가?
하지만 내가 욕을 하고 따져야 할 진수는 준비할 것이 있다고 외출했고, 결국 나는 거듭된 사진작가의 요구로 셔츠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와! 대단하십니다. 어떤 운동을 하셨어요?”
“그냥 이것저것 했습니다.”
“김 실장 스프레이 가지고 와서 물을 좀 뿌려.”
사진작가 말에 그동안 곁눈질로 내 몸을 힐끗거리던 김 실장이라는 아가씨가, 스프레이를 가지고 내게로 다가와서 내 상체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가슴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예?”
“가슴이 너무 우람하셔서......”
이 무슨 골 때리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대놓고 욕을 내뱉지는 못하는 상황이기에 나는 짐짓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본 작가님께서 김 실장이란 아가씨에게 빨리 물이나 뿌리고 빠지라 호통을 친다.
“이거 죄송합니다. 김 실장 쟤가 아직 철이 없어서......”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보니까 야성미가 철철 넘칩니다. 우리 배우님 프로필 사진이 나가면 오줌을 지릴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겠는 데요.”
“에이~ 작가님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몸짱이라고 하는 배우나 아이돌 가수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었던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배우님 같은 몸은 처음입니다.”
내가 돈을 내는 고객이어서인지, 작가님의 칭찬이 마치 아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작가님 입에서 나오는 그 아부성 발언이, 비록 빈말이라고 하더라도 내심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옷을 여러 차례 갈아입으면서 찍고 또 상의를 벗은 맨몸으로도 찍고 하면서, 세 시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다.
“배우님, 이리로 와 보세요.”
나는 김 실장이라는 아가씨가 건네주는 셔츠를 걸치고 작가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괜찮게 찍혔죠? 이건 보정조차 할 필요조차 없는 완벽함 그 자체네요.”
“와~ 정말 짱이다! 작가님, 이 사진 내 톡 프로필로 사용하면.......”
“인마!”
솔직히 내가 봐도 멋있었다.
몇 달 동안 고생하면서 받았던 훈련의 결과인지 내 몸은 어느새 균형이 제대로 잡힌 탄탄한 몸매를 하고 있었고, 이곳에 들어와서 받았던 메이크업 덕분인지 내 얼굴 또한, 이것이 정말 내 얼굴인가 할 정도로 예전의 내 얼굴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배우님, 어차피 프로필에 올려두면 다운을 받든지 캡처를 해서 쓰잖아요. 저 이 파일을 가지고 제 프로필로 사용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조금 전 작가님에게 혼을 나고도,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진수는 이 사진들을 포털사이트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김 실장이라는 이 아가씨 말처럼, 그 사진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내려 받아 보관하든지, 아니면 개인 SNS 계정 등에서 프로필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배우인 이상 꼭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도 할 수가 없기에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러자 김 실장이라는 이 아가씨는 마치 세상이라도 얻은 것과도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작가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뇨. 정말 오랜만이 마음에 꼭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파일은 며칠 내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스튜디오 촬영이 끝이 났다.
“고생했다.”
“그런데 너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상반신 누드 찍으라고 했다면서?”
“그건 당연한 것 아니야? 어차피 지금까지 몇 달 동안 운동을 죽어라고 했으니 근육이 탄탄할 거고, 근육질 사내에게 끌리는 것은 여성의 본능이니까. 쓸 수 있는 무기를 다 써도 뜨기 힘든 곳이 이 바닥인데 확실한 무기를 놔두고 뭐하려고 묵혀.”
“또 어딜 가는 거야?”
“옷 사러 가야지.”
“옷은 왜?”
“다음 주부터 촬영인데 그 옷을 입고 촬영장에 갈래?”
“다음 주부터 촬영이라고?”
“그래. 김영웅 감독님이 장 감독님에게 네 준비는 완벽하다고 전화를 주셨다고 하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랭크인 날짜가 잡혔던 모양이다.
하긴 나야 그동안 운동에 푹 빠져서 집에조차 가지 않고 아예 파주에서 먹고 자고 했었으니, 그동안 진수가 나를 대신해서 장한수 감독님 쪽과 연락을 했었나 보았다.
“그런데 옷하고 액세서리는 지난번에 모두 샀었잖아?”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장 감독님께서 지시하신 일이니까.”
“무슨 감독이 배우가 옷 입는 문제까지 간섭을 해.”
진수를 따라간 곳은, 이른바 밀리터리룩이라고 하는 군복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그곳에서 진수는 군복 몇 벌과 함께 그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샀고, 그곳을 나와서는 다시 중저가의 신사복을 파는 곳으로 가더니 양복을 몇 벌 샀다.
“뜬금없이 군복은 왜? 솔직히 아직까지 군복만 보면 이빨이 갈릴 지경인데.”
“누가 가라고 등이라도 떠밀었어? 네가 입대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않았더라면 가지 않아도 되었을 곳이잖아.”
“나는 가고 싶어서 갔겠어? 아무리 내 상황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인간 취급 받기 힘든 곳이 대한민국이잖아.”
“그렇다면 툴툴거리지는 말든지.”
“넌 땅개 출신이라서 잘 모르지? 해병대가 얼마나 빡세게 굴리는지?”
“그것도 네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난 분명히 너보고 꼭 군에 입대하려면 나하고 같이 육군에 입대하자고 했었다.”
“지랄! 그래도 명색이 사내라면 해병대지!”
“그래, 잘났다.”
사실 나는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고 여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이유로 군 면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걸리는 부분이 많다.
특히 나처럼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살려고 배우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내 개인적으로 어떤 사연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군 면제자라는 것은, 결코 대중들에게서 호감을 얻어내기 힘들다.
그랬기에 나는 당시 중학생이던 지수를, 진수에게 이따금 살펴봐 줄 것을 부탁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해서 군 복무를 무사히 마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