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액션스쿨 투(鬪)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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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격당한 것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매트 위로 나자빠졌고, 한동안 숨이 막혀 컥컥거리면서 창피한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요즘 사내애들은 왜 이렇게 약해빠졌냐?”
“.....”
“하긴 창수 너도 마찬가지긴 하지.”
“그래도 저는 요즘 제법 버티지 않습니까.”
“지랄한다. 그런데 넌 몇 단이라고 했냐?”
“공인 2단입니다.”
“그럼 당분간 네가 얘 좀 데리고 놀아.”
“정말 그렇게 해도 됩니까?”
“그럼 내가 하리? 너무 세게 가지고 놀지 말고 살살.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남은 숨이 막혀서 컥컥거리고 있는데 둘이 말하고 노는 것을 듣자니 가관이었다.
그리고 공인 4단인 나를, 공인 2단이라는 놈에게 교육을 시키라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은근히 열이 받았다.
“어이! 일어나.”
“예.”
“이 친구 완전히 기합이 빠졌네. 빨리 일어나지 못해!”
어떻게 이 동네는 하나같이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은 인간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겨우 검도 2단인 놈이 시건방지게 나를 교육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니,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전 생(生)에서의 액션 연기는 당시 내가 그나마 어느 정도 경력도 있었고 인기가 있었던 덕분이었든지, 지금처럼 기초부터 다지는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냥 간단히 설명을 듣고 합(合)을 맞춰보는 정도였고, 위험하다 싶은 장면은 거의 대부분 대역배우를 써서 해결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신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아예 사범이라는 인간들부터 나를 갈아 마시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온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검도 공인 4단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모욕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겨우 2단에 불과한 놈에게 나를 가르치라는 것도 아니고 살살 데리고 놀라고 한다.
“들어와.”
시간이 좀 흐르자 숨구멍이 트였고, 그러고 나니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마치 나를 도발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창수란 놈이 손을 까딱거리면서 내게 선공을 하라고 하고 있었다.
나는 목검 손잡이를 가볍게 쥐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정말 합법적으로 패주기 위하여, 목검을 바짝 위로 곧추세운 자세에서 창수란 놈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쿡!’
“으~윽!”
단 한 방이었다.
그리고 쪽팔리게도 쓰러져 넘어진 쪽은 창수란 놈이 아닌 나였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서 컥컥거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분명 내가 공격을 하던 순간엔 창수란 놈의 자세 곳곳에 빈틈이 보였었는데, 공격하던 내가 외려 창수란 놈에게 일격을 당해 뻗어버린 것이다.
“감독님. 액션을 하는데 굳이 이런 대련이 필요합니까?”
“그냥 폼만 잡으려고? 그렇다면 굳이 우리 액션스쿨에 찾아올 이유가 뭐가 있어. 그냥 광대들 노는 곳에 가서 기예나 배우지.”
“예?”
“액션에도 철학이라는 것이 담겨 있는 거야. 똑같은 자세라도 무도를 아는 사람과, 형만 취하는 놈에게서 풍기는 맛이 다른 법이지.”
몇 차례 수모에 가까울 정도로 깨지고 난 후에, 마침 체육관을 찾아오신 김영웅 감독님께 항의하듯 지금 하고 있는 훈련이 불합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뉘앙스로 질문했다.
하지만 감독님은 나를 한번 보시더니 같잖다는 표정으로 한번 피식 웃으시더니, 철학이 어쩌고 하면서 개떡 같은 소리를 한마디 남기고 휘적휘적 체육관을 벗어났다.
‘지랄! 배우가 화면에 멋있게 잡히면 그걸로 충분한 거지. 철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아 놔! 정말 뭐 이따위 액션스쿨이 다 있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첫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산 정상까지 달리기를 시킨 덕분에, 지금의 나는 웬만한 산악 마라톤 선수 이상으로 산길을 달리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난 후에는, 그래도 명색이 검도 공인 4단이라고 자부했던 내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질 정도로 겨우 2단인 놈에게 매일같이 얻어터지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창수라는 놈이 공인 2단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검도 공인 4단인 내가 대련에서 공인 2단의 몸에 목검조차 닿지 못한 채, 매일같이 나가떨어지는 그 이유가 도저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은근히 오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좀 어땠어?”
“어땠긴 뭘 어때.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네.”
“그 친구 정말 공인 2단이 맞기는 해?”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내가 보지도 못할 정도로 빨리, 목도가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아.”
눈에 보여야지 막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아무리 창수란 놈의 발 움직임을 살피고 눈을 봐도 도대체가 어디서 공격이 튀어나올지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그 덕분에 호구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 구석구석에는 멍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인간이 워낙 강하게 찌르고 두들겨 대는 통에 말이다.
“관장님을 한번 찾아가 보는 것은 어때?”
“찾아가서 어쩌라고? 나가서 겨우 2단에게 판판이 깨졌다고 하면, 어지간히도 좋은 소릴 듣겠다.”
솔직히 쪽팔려서라도 관장님을 찾아가는 것은 사양해야 할 일이다.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도장을 찾아가서 관장님께 상의해봐야, 내가 겨우 2단인 놈에게 얻어터졌다는 소문만 퍼질 것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죽도에 얻어맞는 일은 반복되었고, 날이 거듭될수록 오기는 더욱더 짙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어깨 쪽이 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나도 모르게 죽도를 어깨로 가져가면서, 창수란 놈의 죽도를 강하게 빗겨 쳤다.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창수란 놈의 입에서, 처음으로 ‘어!’하는 짧은소리가 흘러나왔다.
검사(劍士)가 칼을 놓친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 죽은 목숨인데, 전혀 예상치도 않은 상황에서 내가 반격을 한 덕분에 죽도를 놓쳐버린 것이다.
“잘~ 한다. 그러니 네가 재능이 없다는 거야.”
“......”
“이런 어수룩한 친구 하고의 대련에서, 칼을 놓치면 어쩌겠다는 거야?”
“죄송합니다.”
창수란 놈의 죽도가 매트에 떨어지는 소리가 체육관에 울렸고, 그걸 확인한 다른 사람들은 순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그것은 사범인 하수경 사범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이~ 신참.”
“......”
“신참 대답 안 해?”
“저 말입니까?”
“그럼 여기에 신참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전 신참이 아니라 한강수입니다. 그리고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말씀 좀 가려서 하시죠.”
“X까고 있네. 개떡 같은 소리는 씨불이지 말고, 조금 전에 그 감각을 기억해!”
진짜 입에 걸레를 문 것인지, 생긴 것과는 전혀 다르게 거친 쌍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에 열을 받기보다는 마지막에 던진 ‘그 감각’을 기억하라는 말이, 내 머릿속을 천둥처럼 울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깨 부근이 싸하다는 느낌, 아마 그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신참 너, 살기(殺氣)라는 말 들어본 적은 있어?”
“그거야 누구나 느끼는 것 아닙니까.”
“지랄하네. 너 지금 소설 쓰냐? 너 사람 죽여본 적은 있어?”
“사람을 누가 죽입니까.”
“그럼 누가 널 죽이려고 한 적은 있고?”
“없습니다.”
“아무튼 조금 전의 그 감각이 널 살려주는 날이 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 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
“어떻게 말입니까?”
“여기서 계속 얻어맞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
살기(殺氣)니 뭐니 헛소리를 하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단지 나는 지금까지 맞지 않기 위해서 발악했을 뿐이고, 또 그 가운데 순간적으로 싸하단 느낌에 죽도를 올려친 것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하수경 사범은 말을 끝내고 지금까지 대련을 빙자하여 나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창수란 친구 대신에, 성민이라는 친구에게 지금까지 창수란 친구가 했던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어때?”
“그놈 제법이더니만.”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벌써 기를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야. 창수 그놈의 도를 막아낸 모양이더군.”
“정말이야?”
“아마도 맞을걸. 그게 아니라면 도를 쳐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노릇일 테니.”
“기초가 탄탄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래도 그놈이 운동을 계속해서 검도뿐 아니라 다른 운동도 섭렵했다고 했잖아.”
“기를 느낀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지. 이젠 실전이 가능한 수준이란 이야기잖아.”
“그럼 예상보다 빨리 촬영에 들어갈 수도 있겠단 말이네?”
“아마도. 이삼일 후쯤이면 정말 기(氣)를 느낀 것인지, 단순히 반사 신경이 좋은 탓인지 그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성민이 걔는 고수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며칠만 지나면 확인이 가능하다고 했잖아. 만약 성민이 도까지 막아낼 수가 있다면, 실전에 투입해도 충분할 거야.”
새로 투입된 성민이라는 친구에게 고전하고 있는 도중에도, 장수한 감독과 김영웅 감독은 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화촬영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웅 감독의 이야기처럼, 성민이란 친구와 대련을 시작한 사흘째 되는 날에 성민이란 친구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고, 그 다음 날부터는 절반 정도의 공격은 막아낼 수가 있었다.
“고생했다.”
“.....”
“네가 배웠던 검도와는 다르지?”
“예.”
“액션을 하다가 보면 사전에 맞췄던 대로 상황이 흘러갈 수가 없어. 제대로 연습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 오버를 하는 사람이 꼭 한둘은 생기거든.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곤 하는 거지.”
“.....”
“네가 지금까지 배웠던 것은, 그런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널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거다. 촬영 중에 우리 같은 스턴트맨들이 다치게 되면 그것이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만, 너처럼 배우들은 그것이 불가능하고 자칫하면 영화를 다시 찍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네가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몰아붙였던 것이야.”
“그럼 이걸로 끝이 난 겁니까?”
“그건 아니지. 네가 하 사범의 칼을 90% 이상 막아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현장 투입이 가능한데, 겨우 성진이 칼조차 반밖에 막아내지 못하잖아.”
“하~아~”
솔직히 드디어 끝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직 내 앞에 놓인 시련은 끝이 나지 않은 모양이다.
‘제길! 사람을 격려하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기를 죽이려는 것인지 모르겠네.’
김영웅 감독과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에는 드디어 그 지옥과도 같은 대련이 끝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았고, 우선 성민이란 친구의 도(刀)를 완벽할 정도로 막아낸 후에, 사범인 하수경의 도(刀)를 90% 이상은 막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성민이란 친구의 도(刀)조차 뒷걸음치다가 쥐를 밟는 격으로 이따금씩만 막아낼 수 있는데, 도대체 저렇게 야리야리하게 생겼으면서도 칼질은 누구보다 매서운, 하수경 사범의 도는 어떨지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하지만 김영웅 감독이 이야기한 그 조건을 달성하기 이전에는, 내가 결코 장수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