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액션스쿨 투(鬪)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액션스쿨 ‘투’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하루 네 차례 산 정상까지 왕복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김수한 사범은 내게 하루 50회의 팔굽혀펴기를 시켰고, 그와 동시에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워 산을 오르내리게 한 것이다.
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산길을 달리고 있을 때, 액션스쿨 사무실에서는 김영웅 감독과 김수한 사범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친구 어떤 것 같아?”
“생긴 것과 달리 독기가 제법 있던 걸요. 그런데 스턴트맨으로 키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빡세게 굴리고 그러십니까?”
“장수한 감독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거든.”
“장 감독님께서요?”
“응,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것은 저 친구 얼굴에서 발견했던 모양이야.”
“그러고 보니 저 친구가 지금까지 거쳐 간 다른 배우들과 차이점이 있긴 합니다.”
“뭐가?”
“보통 저 정도로 굴리면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든지, 아니면 적당히 요령을 피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 친구는 아직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네 차례씩 꼬박꼬박 정상까지 왕복했다고?”
“예. 우리가 카메라를 달아놓은 것도 모를 텐데, 개기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김수한 사범의 말에 김영웅 감독은 사뭇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저 친구 인성은 어떤 것 같아?”
“인성을 체크하고 말고 할 시간이라도 있었습니까. 첫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굴리기만 한 걸요.”
“체력적인 면은 괜찮은 편이고?”
“모래주머니를 두 개 차고도 왕복 주파 시간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럼 며칠만 더 지켜보다가 팔에도 채워봐.”
“예?”
“장 감독이 기대할 정도라면, 그 정도는 버텨내겠지.”
너무 훈련을 잘 받아도 문제인 모양이다.
나는 지금 이 정도만으로도 죽을 만큼 힘이 드는데, 자기들끼리는 내 훈련결과가 좋다고 여기서 훈련강도를 더 높이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체력단련만 시키다가, 합은 언제 맞춥니까?”
“김 사범도 알잖아. 체력만 제대로 뒷받침되면, 합 맞추는 일이야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
“하지만 몸치라면 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렇게 훈련을 소화해 내는 놈이, 몸치일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결국 지금보다 더 힘겨운 지옥훈련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나를 더욱더 죽이려고 작전을 짜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나는, 오늘 내게 할당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연신 숨을 헉헉거리며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이제 돌아가서 푹 쉬어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산 정상까지 네 차례 왕복을 하고 나니 해가 떨어졌고, 나는 뻐근한 육체를 진수가 운전하는 차에 눕혔다.
처음 진수가 힘들 것이란 생각에 가졌었던 부담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 상태였고, 오히려 만약 진수라도 없었다면 과연 내가 어떻게 집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끔찍할 정도였다.
“몸은 괜찮아?”
“이 짓도 계속하니 할만은 하네. 그런데 진짜 이렇게 한 달만 더하면 아예 내가 산악마라톤 선수로 나서도 되겠단 생각이다.”
“아무튼 피곤할 테니까 눈이나 좀 붙여. 사우나까지 가려면 1시간은 더 가야 하니까.”
그렇게 나는 진수 옆에서 의자를 완전히 뒤로 젖힌 채 잠에 빠져들었고, 서울에 도착해서 진수와 함께 사우나에서 뭉친 근육을 푼 후에 집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러갔다.
“한강수.”
“예.”
“오늘은 모래주머니를 모두 빼고 올라갔다가 온다!”
“예?”
“모래주머니 떼고 맨몸으로 올라가라고. 출발!”
웬일로 오늘은 모래주머니를 떼고 올라가라고 했기에, 나는 착용했던 모래주머니를 도구함에 넣은 후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래주머니를 떼고 달리니 이러다가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몸이 거뜬했고, 덕분에 정상에 도착한 나는 아예 쉬지도 않고 산길을 달려 내려와 액션스쿨 운동장에 도착했다.
“통과!”
“예?”
“한강수 네가 체력검증에 통과했다고. 그러니 앞으로는 매일 한 번씩만 정상까지 다녀온다. 알겠나?”
“예! 감사합니다.”
절대 감사해야 할 일도 아니었는데,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인사가 튀어나왔다.
“솔직히 우리 액션스쿨에서 활동하는 애들도, 정상까지 왕복을 1시간 이내에 끊는 애는 몇이 없다. 잘했다!”
김수한 사범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뿌듯함이 느껴졌다.
액션스쿨에서 스턴트맨이란 직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조차, 나만큼 빨리 산 정상까지 왕복하는 사람이 몇 없다는 말을 듣고 나니, 나 스스로가 대견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앞으로는 아침에 도착해서 산 정상까지 1회 왕복하면서 몸을 푼 후에 기초훈련을 받는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옥과도 같았던 1차 관문은 무사히 통과한 모양이었다.
앞으로 내 앞에 어떤 난관이 있게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악으로 깡으로만 버텨내야 했던 그것보다는 어렵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오늘부터 기초반에 합류해서 함께할 한강수다. 서로 잘 협조해서 지낼 수 있도록! 알았나?”
“안전!”
이곳 ‘투’ 액션스쿨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체육관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체육관에는 열댓 명의 남녀가 사범(?)의 시범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었고, 김수한 사범과 내가 들어가자 관원들 앞에서 관원들을 지도하던 사범이 나를 불러 세운 후 간단한 내 소개를 했다.
“강수 씨라고 했죠? 하필이면 왜 스턴트맨을 하려고 해요?”
“예?”
“하필이면 위험하고 힘든 스턴트맨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요. 나야 배우를 하려고 이러고 있지만.......”
이 양반도 배우지망생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도저히 배우를 할 것 같지 않은 인상이었다.
“그냥 뭐......”
“하긴 누구나 다 사연이 있겠지. 그런데 몇 살이나 됐어요?”
“스물다섯입니다.”
“생각보다는 나이가 많이 들었네. 내가 스물여섯이니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예?”
“여기선 원래 다 그렇게 해. 앞으로 형이라고 부르면 돼. 강식이 형, 이렇게.”
1시간쯤 연습을 한 후에 휴식시간이 되었고, 내 옆에서 훈련하던 사람 하나가 내가 쉬고 있는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혼자서 뭐라고 씨불이더니, 결론은 자길 보고 형이라고 부르라는 것이었다.
굳이 말을 섞을 가치도 느끼지 못했기에, 나는 피식 웃고서는 진수가 준비해준 생수를 목으로 넘겼다.
“휴식 끝! 집합!”
“안전!”
가만히 보니 모든 대답은 유격장에서 ‘악!’ 이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여기서는 ‘안전!’이었다.
“여기 유단자 손 들어 봐.”
여기저기서 손을 들기 시작했고, 나도 슬며시 손을 올렸다.
“거기 한강수. 무슨 운동 했어?”
“태권도, 합기도, 검도 각 4단입니다.”
“그래? 운동은 계속하고 있나?”
“예. 액션스쿨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매일 도장에 다녔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액션스쿨에 입소한 사람들 대부분 운동을 한 경력이 제법 되는 사람들이지만, 나처럼 다양하게 운동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또 세 가지 모두 공인 4단이라면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그것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걔는 좀 어때?”
“김 사범 말로는 제법이라던데.”
“그렇지. 기초체력은 어느 정도야?”
“그건 최상급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야. 모래주머니까지 차고 1시간에 주파를 했으니까.”
“정말이야?”
“응, 그래서 사흘 전부터 기초반에 넣었는데, 그것도 조만간 통과할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겨우 사흘이라면서?”
“그놈이 운동신경이 제법이야. 그리고 이미 유단자기도 하고.”
“거기 가기 전부터 운동을 했다고?”
“장 감독이 원하는 운동은 모두 했었더니만. 태권도 합기도 검도가 모두 4단이라더라.”
“검도라....... 혹시 목검을 줘 봤어?”
“아직 기초반이라니까. 기초반인데 무슨 목검을 줘.”
“그럼 빨리 위로 올려 봐. 그래서 목검을 쥐는 자세부터 확인해 봐.”
“갑자기 서두르긴 왜 서둘러.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면서?”
“검도 유단자라니까 그러지. 지금 걔가 맡을 역할이 경찰봉 같은 것을 들고 휘두르면서 싸우는 역할이잖아. 폼만 제대로 나온다면 그 부분부터 찍어야지.”
그렇게 장수한 감독님과 김영웅 감독님 사이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갑자기 나를 둘러싼 시간이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기초반에서는 파리 떼처럼 연일 귀찮게 달라붙는, 자칭 ‘강식이 형’이라는 놈을 제외하고는 편안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강수!”
“안전!”
“한강수는 내일부터 초급반으로 이동해서 훈련을 받는다. 알았나?”
“안전!”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렇게 나는 나보다 먼저 훈련을 받기 시작한 스턴트맨 지원자들보다 먼저 기초반을 벗어나, 스턴트맨의 입문단계라고 할 수 있는 초급반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사범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단원들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씁쓸함이 배어 있었고, 특히 나에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었던 강식이라는 놈의 얼굴 표정은 마치 똥을 씹은 그런 표정이었다.
“네가 한강수?”
“안전!”
“그리 딱딱하게 하지 않아도 돼. 난 기초반 사범을 맡고 있는 하수경 사범이야.”
“......”
“검도 유단자라고?”
“예! 공인 4단입니다.”
“그럼 가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와!”
“예? 제가 아직 따로 지시를 받은 것이 없어서, 보호 장구를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냥 저 안에 들어가서 대충 몸에 맞는 것 걸치고 나오면 돼.”
기초반 훈련을 마친 후 초급반의 사범이 부른다는 말에 초급반 체육관으로 갔더니, 늘씬하게 생긴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이곳 초급반의 사범이라고 했고, 이 양반은 다짜고짜 내가 검도 유단자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보호 장구 착용을 지시했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대련이나 한 판 하자. 괜찮지?”
사범이 대련하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이따위 액션스쿨이 있는지, 내가 만나는 놈마다 하나같이 반말지거리로 내 기분을 더럽게 하더니, 이젠 여자인 사범마저 대뜸 반말지거리다.
“창수야.”
“예. 사범님.”
“네가 심판을 봐라.”
창수라고 불리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에게 심판을 보게 하고, 수경 사범은 나와 마주 섰다.
그리고 심판인 창수란 친구의 구령에 따라 시합은 시작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이곳 액션스쿨에서 꾹 눌러 참고 있었던 분노를 한 번에 표출하기라도 할 것처럼, 상대인 하수경 사범을 향해 달려들었다.
“읔!”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제대로 칼질을 해보기도 전에, 나는 하수경 사범의 공격에 매트 위에 나자빠지고 말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