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액션스쿨 투(鬪)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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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을 달려 파주의 액션스쿨인 ‘투’에 도착했다.
액션스쿨을 처음 마주한 순간,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이곳에서의 생활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와! 무식하게도 크네.’란 생각이 절로 드는, ‘투’가 아닌 ‘鬪’라 쓰인 거대한 간판이 먼저 나를 압도한 것이다.
“간판이 무식하게 크네.”
“무식하게 클 뿐만 아니라 단순하기도 하고만. 감독님 성격이 보통은 넘겠다.”
“그 양반이 빡세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었어.”
“버텨낼 수 있겠어?”
“버티지 않으면 어떻게 해. 죽었다 생각하고 버텨 내야지.”
“그래! 이래야 내 배우지. 우리 한 배우 파이팅!”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친 후 진수는 액션스쿨 입구를 떠났고, 나는 반쯤 열린 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당신 뭐야?”
“오늘부터 여기서 훈련을 받기로 한, 신인배우 한강수라고 합니다.”
“아! 장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예. 맞습니다. 김영웅 감독님이십니까?”
“감독님은 안에 계시지. 나는 앞으로 너를 담당할 김수한 사범이다.”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아서 잘 챙겨 입고 왔네. 따라와!”
“예? 아, 예.”
김영웅 감독님은 안에 계신다고 했으면서, 사범이란 양반은 나를 감독님께 인사를 시켜줄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문밖으로 불러낸다.
“몸 안 풀어?”
“예?”
“어리바리 타지 말고 빨리 몸이나 풀어.”
문밖으로 나를 불러낸 김수한 사범이란 양반은 내 앞에서 스트레칭을 시작했고, 그걸 내가 빤히 지켜보고 있자 나에게도 스트레칭을 시켰다.
얼결에 나도 김수한 사범이란 양반을 따라 스트레칭을 시작했고, 10여 분의 스트레칭이 끝나자 이 양반은 다짜고짜 산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사범님 잠시만 쉬었다가 가죠.”
“쉬든지 말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아무튼 나는 먼저 가 있을 테니 따라 올라와.”
1시간쯤을 달리자 내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다리 또한 뻐근해져 왔지만, 사범이라는 양반은 아예 뒤를 돌아볼 생각조차 않고 일정한 속도로 산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나는 잠시 쉬었다가 갈 것을 애원했지만 김수한 사범은 내 말은 아예 콧등으로조차 듣지 않고, 내가 따라가든 말든 일정한 속도로 산 정상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내 입에선 절로 ‘시파!’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욕을 내뱉을 수도 없었기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다시피 해서 김수한 사범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숨 고르기를 하면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그리고 몸이 다 풀렸다 싶으면 내려와!”
“예?”
무슨 저런 새X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 놈이 걸핏하면 반말에다가 내가 뭘 물어보려고 해도 대답조차 하지 않고, 아예 나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듯 다시 아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까 네놈이 하라는 대로 해준다!’
슬며시 오기가 생겼다.
솔직히 운동이라면 나도 남 못지않게 계속 해왔던 나였기에, 힘이 들긴 했지만 결코 이 정도를 소화해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부터 별다른 지시사항이 있기 전까지는,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씩 저 꼭대기까지 왕복한다.”
“예?”
“방금 말하지 않았나? 빨리 뛰어 올라가!”
한 마디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기껏 내려와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다짜고짜 다시 산을 뛰어 올라가라고 했다.
그것도 오전 오후에 걸쳐 하루 네 번씩이나 말이다.
“김수한 사범님. 하나만 물어봅시다.”
“질문은 네 번을 왕복한 후에 한다. 출발!”
정말 영화만 아니면 당장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이 액션스쿨 ‘투’의 김영웅 감독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사범이라는 이 자와 드잡이를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자네가 한강수인가?”
“예. 그렇습니다. 감독님.”
“오늘 고생했네. 할만은 한가?”
“할 수는 있겠지만 왜 온종일 산만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넨 액션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두 차례 산을 왕복하는 것을 끝내자 진수가 찾아왔고, 진수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후 두 차례 산을 왕복하는 것이 끝내고 나서야, 이곳 ‘투’ 액션스쿨의 책임자인 김영웅 감독님을 만나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액션 배우가 갖춰야 할 기본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일세. 그리고 액션을 찍으면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고.”
“......”
맞는 말이긴 했다.
액션 연기는 체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란 것은 굳이 이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리고 촬영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들 대부분 액션 장면에서 일어나는 것 또한 맞다.
그랬기에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는, 몸값이 비싼 배우를 대신해서 스턴트맨을 대역으로 쓰곤 하는 것이다.
“사고가 언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줄 아나?”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가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언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고 생각하나?”
“사람과 주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요. 원래부터 집중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주변이 약간만 소란스럽더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곤 하니까요.”
“그 말도 맞긴 하지만 촬영현장에서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른 때가 아니라 배우가 체력이 떨어진 순간일세. 체력이 떨어지면 당연하게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 양반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감이 잡히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산만 오르락내리락한다고, 체력이 길러진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몇 년을 계속해서 단련하는 것도 아닌, 길어봐야 겨우 몇 달인 데 말이다.
“그럼 본격적인 훈련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는 겁니까?”
“자네가 연기를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그리할 걸세.”
“......”
“아무튼 당분간은 김 사범이 시키는 대로 체력을 강화하는 것에 매진하게.”
그것으로 김영웅 감독과의 짧은 면담이 끝이 났다.
결국 이 양반의 말은 앞으로도 죽으라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라는 말이다.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렇다고 김영웅 감독에게 대놓고 반발할 수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김영웅 감독의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일찍 오도록 해.”
“사범님, 죄송하지만 올해 몇이나 되셨습니까?”
“그런 개인적인 질문은 받지 않는다.”
진짜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아무리 얼굴을 뜯어봐도 절대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지도 않은 놈이 계속 반말지거리를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다.
“한 배우 고생했어.”
“죽겠다.”
“저녁밥을 먹고 들어갈까?”
“아니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어.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
“그렇게 힘들었어?”
“아까 액션스쿨 뒤에 있는 산 봤지?”
“응.”
“그 산꼭대기까지 네 번을 왕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매일 거길 네 번씩 왕복해야 하고.”
“뭐? 액션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고?”
“위대하신 김영웅 감독님 말씀 왈, 액션 배우의 기본은 강인한 체력이란다.”
“완전히 X 됐네.”
“그러게. 도대체 감독이란 인간도 그렇지만 사범이라는 놈은, 나이도 나보다 훨씬 적을 것 같은 놈이 말끝마다 반말지거리니.”
조수석 의자를 아예 뒤로 완전히 젖혀버리고 누웠다.
진수야 밥을 먹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잠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몸을 눕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일어나.”
“으~음. 여긴 어디야?”
“사우나. 사우나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몸을 좀 풀고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정말 온종일 빡세게 구른 모양인지,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같이 목욕도 해보네.”
“그렇기는 하네. 고등학교 때 같이 목욕탕 와보고는 처음이지?”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가 같았으니 거의 매주 한 번은 같이 목욕탕을 찾았었다.
그러다가 목욕탕을 찾으신 어른들께 떠든다고 혼도 몇 차례 나기도 했지만, 그렇게 혼이 나면서도 뒤에서는 킥킥거리면서 재미를 느꼈던 것이다.
진수 말대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있으니, 잔뜩 뭉쳐있던 근육들이 서서히 풀어지는 느낌이었고 노곤하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 와. 많이 늦었네?”
“응, 강수하고 목욕탕 들렀다가 온다고. 지수 넌 저녁 먹었어?”
“시간이 몇 신데.”
집으로 돌아온 진수는 주방으로 가더니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고, 프라이팬에다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오빠, 그건 웬 고기야?”
“응, 강수가 오늘 훈련받느라 체력소모가 많았거든.”
“와~ 그렇다고 오빠가 직접 스테이크를 구워주기까지 해?”
“인마, 매니저가 자기 배우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
“나도 좀 줄 거지?”
저녁을 먹었다던 지수가, 고기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주방으로 내려왔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배우긴 뭘 배워. 자주 하다 보면 자연히 느는 거지.”
언제 준비한 것인지 몰라도 진수는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또 고기를 굽는 것 또한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진수의 지금 저 모습은, 어디 음식점의 쉐프라고 해도 속을 그런 모습이었다.
진수의 강권으로 고기를 썰어 입에 넣고 씹었더니, 정말 육즙이 살아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소한 육즙이 흘러나오면서 아예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빈속을 채우고 소화를 시킬 겸해서, 잠시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
“5분만 더 자고.”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오라고 했다면서.”
정말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진수는 나의 지금 이런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어나기를 재촉했고, 결국 나는 진수에게 떠밀려 욕실로 향했다.
“정말 죽겠다.”
“며칠만 고생하면 적응이 돼.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탓이니까.”
나도 그렇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회귀 전의 삶에서도 나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운동을 쉬지 않았었고, 회귀한 지금도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내가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몸을 가꾸기 위해 단 하루도 운동을 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을 해왔음에도 마치 산악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하루 종일 산길을 뛰어 올라갔다가 뛰어서 내려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끔찍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