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이거 내가 해볼까?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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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한 감독님의 [네 안의 야수]에 엑스트라로 지원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이전 생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했다가 장 감독님의 눈에 들어서 떴던 그 친구의 기회를 빼앗으려는 생각만은 아니었다.
그 친구가 [네 안의 야수]란 작품으로 뜨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주변 환경의 변화와 주변에서 잘한다고 떠받쳐준 덕분에 초심을 잃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불행한 종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내가 그 친구에게 갈 관심을 빼앗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그 친구의 불행을 막아주는 일이라는 생각 또한 작용했다.
물론 그 친구 또한 이번 엑스트라 모집에 응할 것이기에, 내가 그 친구 대신에 장수한 감독의 눈에 확실히 든다는 보장도 없다.
“어딜 가려고?”
“옷가게 가서 옷 좀 사야지. 액세서리도 몇 개 준비하고.”
“잠시만 기다려. 같이 가.”
“됐어. 혼자 가도 되니까 그냥 집에 있어.”
“원래 그런 일은 코디네이터가 해야 하는데 지금은 코디가 없으니 매니저인 내가 해야지.”
“코디가 없으니 배우인 내가 직접 해야지. 매니저가 아트를 알아?”
“야! 원래 매니저가 만능인 거야. 기다려!”
“괜히 주차할 곳도 없어서 빌빌거릴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있으라니까. 전철 타면 금방이니까.”
따라 나오려는 진수를 말리고, 간편하게 후드티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어머! 저 사람 연예인 아니야?”
“어디?”
“저기 후드티를 입은 남자. 가만히 있는데도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지 않아?”
“그러네. 완전 내 스타일이다.”
건너편 출입구 쪽에 서 있던 아가씨 둘이서 날 손짓해가면서 속삭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이렇게 바깥에 나서면 자주 듣던 소리였기에, 나는 고개를 숙여 웃음이 번지는 얼굴을 살짝 감췄다.
그러고 보니 내 부모님께서는 내게 먹고사는 데 필요한 금전적 재산과 집만 남겨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조차 힘이 드는 우월한 외모까지 남겨주셨다.
186cm의 남자로서는 적당한 키, 그리고 누가 봐도 잘생겼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훈훈한 얼굴 말이다.
사실 이런 외모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람들 눈에 뜨이게 하였었다.
부모님들과 외출이라도 나갈라치면 항상 여자들은, 나를 보면서 ‘와~ 귀엽다.’ ‘저놈 나중에 크면 여자들 많이 후리겠네.’라는 등의 말을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조금 적극적인 누나들은 부모님께 나를 한번 안아 봐도 되겠느냐고 부탁까지 하곤 했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고학년 누나들에게 심심찮게 요즘이라면 성추행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일인, 내게 다가와 안는 것은 물론 걸핏하면 내 볼에 뽀뽀까지 당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부터는 아예 그런 여자들의 반응에 면역되어서, 나는 최영 장군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가 아니라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남자친구들과 관계가 좋지는 않았다.
우리 반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뿐 아니라, 1학년뿐이 아닌 선배학년인 2, 3학년 누나들까지도 걸핏하면 우리 교실로 찾아와서 친한 척하는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뿐 아니라 선배 형들조차도 나를 경원시 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유일하게 나를 살갑게 대해준 놈이, 바로 2학년에 올라가 한 반이 된 진수였었다.
그 덕분에 2, 3학년 2년이란 기간 동안 진수와 나는, 마치 실과 바늘의 관계처럼 항상 붙어 다녔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면서 미용 고등학교를 가겠다던 진수는, 내가 인문계에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갑자기 진로를 변경해 인문계를 지원했고, 같은 학교로 배치되면서 진수와의 인연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반의 친구들의 강요 때문에 소개팅을 하기로 한 날, 내가 소개팅 장소로 출발하려다가 진수에게 멱살을 잡히면서 지금의 관계로 발전되었다.
“너 배우 하겠다면서?”
“응. 맞아.”
“배우 하겠다는 놈이 소개팅을 나간다고?”
“소개팅이 뭐가 어때서?”
“너를 데리고 가려는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몰라? 걔들 어울리는 애들 날라리들인 것 모르고 있어?”
“날라리라니?”
“오늘 네가 그 장소에 가면 너 오늘 밤에는 집에 못 들어가.”
“그게 무슨 소리야?”
“걔들하고 어울리는 계집애들도 하나같이 날라리야. 그런 애들이 너를 보고 가만히 있기나 할 것 같아?”
“가만히 있지 않다니? 도대체 그게 뭔 소리야?”
“네가 따먹힌다고.”
황당했다.
솔직히 나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날라리라고 불리는 애들 중에서는 여자와 사귀면서 육체적인 관계까지 하곤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아이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지, 여자가 먼저 남자를 유혹해서 관계를 할 것이라고는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튼 나는 진수의 말에 그날 소개팅 자리에 나가지 않았고, 그 일이 있었던 후에 나는 우리 학년에서 소위 논다는 애들에게 끌려가 이른바 다구리를 당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찾아온 진수도 제법 싸움을 하는 축이었지만, 반쯤 죽지 않을 정도로 몰매를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진수는 아예 내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쉬는 시간조차 우리 반까지 달려와 내 주변을 감시하고 내 주변에 노는 애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아무튼 여자들이 내 주변에 어슬렁거리면서 귀엣말을 속닥거리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다시피 했기에, 그다지 신경 쓰이는 일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나는 정말 편안한 기분으로 전철을 내려 시장으로 향했고, 배역에 어울릴만한 옷과 액세서리를 찾느라 시장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배우세요?”
“아직은 지망생인데요.”
“사진 몇 장만 찍어도 될까요?”
“나중에 저 데뷔하고 난 후에요.”
단순히 사진을 같이 찍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찍어 이곳 가게에 걸어두려는 것이었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이곳이 명품관도 아니고 흔하디흔한 시장바닥의 가게이니 내게 모델료를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곳에 내 사진을 걸어둔다고 하더라도 인기를 얻을 것도 아닌, 그냥 이 가게의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될 뿐인 일이니 괜히 얼굴 팔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몇 군데 가게를 돌면서, 예전 장수한 감독의 눈에 뜨여서 화려하게 비상했던 그 친구의 배역에 어울릴법한 옷과 액세서리들을 모두 챙길 수 있었다.
“엑스트라라면서? 그런데 뭐 이렇게 많이 사서 왔어?”
“엑스트라이긴 한데 내가 따로 노리는 배역이 하나 있어서.”
“엑스트라로 지원했는데 누가 배역을 줘?”
“들리는 말로는 장수한 감독님 성격이 좀 즉흥적인 모양이야. 그래서 영화를 찍다가도 배역을 빼거나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배역이 추가될 줄 알고?”
“확실한 것은 아닌데 시나리오를 자꾸 보다가 보니, 하나가 추가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서.”
내가 옷과 액세서리를 가방 한가득 사 와서, 거실 바닥에 쫙 펼치니 진수가 황당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대로 상황이 꼭 그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렇게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당시 장수한 감독이 선호했던 분위기를 내가 먼저 연출해서, 장수한 감독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도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장수한 감독 그가 한 선택의 대상은, 무조건 내가 되어야 하고 말이다.
“준비 다 됐어?”
“응. 그런데 나 혼자 가도 된다니까 그러네.”
“그걸 입고 전철을 타겠다고?”
“응. 뭐 어때서?”
“그거 입고 목소리만 높여봐라. 그럼 당장 누군가가 양아치가 난동을 피운다고 신고할 거다.”
진수 말대로 오늘 내가 입고 있는 의상은, 딱 양아치 그 수준이다.
거기에다 팔목에는 문신처럼 타투까지 그려 놓았으니,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누구라도 나의 지금 이 모습을 보게 되면 바로 나를 양아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나는 진수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내 안의 야수’ 오디션이 열리는 영화사까지 가기로 했다.
“105번부터 110번까지 들어오세요.”
“잘하고 와.”
정말 영화판에 사람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먹고살기 힘이 들어서 엑스트라라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더럽게도 사람이 많았다.
오디션이 시작이 오전 9시 30분이었지만 일찍 가자는 생각에 9시에 영화사에 도착했지만, 이미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먼저 도착해서 북적이고 있었다.
겨우 자리를 하나 차지해서 기다렸지만 대기번호가 106번이었다.
덕분에 오전 시간은 아예 멍하니 앉아서, 다른 지원자들의 표정이나 살피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와서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 번호가 호명되었다.
“106번 한강수라고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작해 봐요. 그런데 열심히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요.”
“예! 잘하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얼굴에는 귀찮다는 기색이 풀풀 풍기고 있었다.
하긴 오늘은 조연도 단역도 아닌 이례적으로 엑스트라에 대한 오디션을 보는 날이었기에, 심사위원들로서도 별 영양가 없는 일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얌마! 너 같은 놈이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너 같은 놈이 배를 곯아보기라도 했어?”
“어~ 어! 이봐요! 당신.......”
내가 심사위원석 중간에 앉은 사람의 멱살을 쥐고 일으키자, 양옆의 심사위원들이 기겁한다.
하지만 내게 멱살을 잡힌 사람은 오히려 그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손을 저었고,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계속 연기를 이어갔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래?”
“시팔 놈아! 정말 몰라서 그래? 내가 너 같은 놈이 먹을 것을 던져주면 그걸 덥석 집어물고 고맙다고 꼬리라도 살랑살랑 흔들어야 해?”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우리 엄마 병원비! 누가 너 보고 우리 엄마 병원비를 대신 내달랬어?”
“지랄한다. 야! 이 씹새야! 그럼 친구라고 하나 있는데, 그 친구 어머니가 돈이 없어 수술도 못 받으신다는 데 가만히 있어야 해?”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러다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시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네놈 자존심 때문에 어머니를 위험하게 만들래?”
내게 멱살을 잡힌 양반이 의외로 잘 받아치고 있었다.
덕분에 정말 나는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잔뜩 악에 받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려가면서 연기를 할 수가 있었다.
결국 연기는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우는 것으로 끝이 났다.
“여기까집니다. 그리고 갑자기 돌발행동을 한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거기! 잠깐만!”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겸한 사과를 하고 돌아서 나오려고 하자, 내 뒤에서 나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속사가 어디죠?”
“아직 소속사가 없습니다.”
“알았어요. 나중에 통보가 갈 겁니다. 그럼 지정한 날에 나오세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한다니까.”
“예!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속으로 ‘이젠 됐어!’란 소리를 외치면서 문을 열고 나섰다.
지정한 날에 나오라는 말은 합격이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합격했다는 뜻일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