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이거 내가 해볼까?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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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의 짐은 단출했다.
하긴 고시원이라는 곳이 자기 몸 하나 눕히기에도 빡빡한 곳이기도 하고,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자기 소유의 짐이 많을 이유도 없고, 그것은 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배우, 마트에 잠시 들렀다가 가도 되겠지.”
“마트엔 왜? 일단 짐을 내려놓고 다시 나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럼 그러든지.”
집에 도착해서 우선 내 방에 있던 책상을 1층으로 내리고,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모두 옷 방으로 옮겼다.
일단 오늘 밤은 2층 내 방에서 진수를 재우고, 내일 낮에 지수 방을 비워서 내가 쓸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은 비워둔 방을 도배한 후에, 그 방을 진수에게 쓰게 할 생각이다.
“이제 저녁 먹으러나 가자.”
“지수 학교 마칠 시간 되지 않았어?”
“야간 자율학습이 10시나 되어야 마치니 10시 반은 돼야지 돌아올 거야.”
“그럼 얼마 남지도 않았네. 마트에 가서 고기나 좀 사서, 지수가 오거든 같이 고기나 구워 먹는 건 어때?”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늘은 진수가 우리 집에서 처음 자게 된 날이기도 했고, 조금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처음 입주하게 된 날이니, 간단하게나마 오늘을 기념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것이다.
그리고 고기라면 아예 사족을 못 쓰는 지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집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고 정리하다가 보니, 시곗바늘이 어느새 9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냥 삼겹살이면 돼.”
“야, 그래도 오늘은 내가 신고식을 하는 날인데 적어도 소고기는 돼야지.”
“오늘 사는 것은 생활비로 사는 건데.”
“그건 아니지. 오늘은 내가 입주하는 신고식이니 내 카드로 해야지.”
“그건 월세 낼 때나 사용하시고. 아직 네 방이 없으니 오늘까지는 손님이야.”
진수가 소고기를 카트에 담는 것을 보고, 소고기를 다시 꺼내 진열대에 도로 얹었다.
그러고 보니 소고기 구경한 지도 제법 되긴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 역시도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유산을 까먹고 사는 신세였기에, 먹는 거로 그 돈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수가 계속 소고기를 사자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소고기와 삼겹살을 같이 사기로 했다.
그렇게 고기를 사고 고기를 싸서 먹을 상추와 양파를 비롯한 야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변하지 않는 간식거리인 라면까지 사고서야 우린 마트를 나섰다.
“오빠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또 둘이서 술 마셨어?”
“인마, 술 마시고 어떻게 운전을 해.”
“그렇긴 하네. 그런데 정말 오빠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학교 앞까지 찾아오고.”
“진수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살기로 했다.”
“정말이야? 진수 오빠도 같이 산다고?”
학교 앞에서 지수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오던 지수는, 뜬금없는 나와 진수 출현에 화들짝 놀란 표정이다.
아무튼 기대했던 것처럼 지수는 진수가 우리와 같이 살기로 했다는 말에, 호들갑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 오빠하고 나하고 방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2층을 쓰면 오빠가 옷 갈아입기도 편하잖아.”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2층에 있던 오빠 짐은 다 뺐으니 오늘부터 천천히 네 짐을 가지고 올라가.”
“아~싸!”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않아? 새벽 해뜨기 전에 눈을 떠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커피 향을 맡는 것도 운치가 있잖아. 물론 잠꾸러기인 오빠는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할 일은 절대 없겠지만.”
“까분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사서 온 야채를 씻고 불판과 고기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자~ 지수 먹어.”
“오빠들부터 먼저 먹어야지. 그런데 이렇게 평상에 둘러앉아서 삼겹살을 먹으니 정말 좋다.”
지글지글 끓는 불판에는 삼겹살이 노릇하니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수 말처럼 나 역시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특별히 외롭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고 살아왔는데, 막상 진수와 함께 살게 된 첫날 이렇게 셋이 불판 옆에 둘러앉아서 삼겹살을 나눠 먹고 있으니, 전생의 그 수많은 날이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너 2층에서 혼자 지내면 무섭지 않겠어?”
“무섭긴 뭐가 무서워. 좋기만 하고만.”
하긴 부모님께서 이 집을 지으실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가족의 안전이었고, 덕분에 보안 문제에 관해서는 여느 단독주택 이상이었다.
방범창은 물론이고 만약 방으로 누군가 침입하려 한다면, 방범창이 나 있는 쪽 외곽에 설치된 통유리를 깨야만 진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조차 부족해서 이렇게 평상이 놓은 곳으로 나오는 문 또한 이중 잠금장치였으니, 어쩌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2층을 지으시면서 염두에 두신 것은, 오늘처럼 지수가 2층에 지내려고 하는 것을 고려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 진수 오빠는 계속 오빠 매니저 일을 할 생각인 거야?”
“어.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강수에게 약속했었거든. 내가 강수 매니저를 할 것이라고.”
“언제까지?”
“그거야 당연히 강수가 배우 일을 그만둘 때까지 계속해야지.”
“그럼 오빠가 70이 되어서도 배우 일을 한다면 어쩔 건데?”
“그럼 당연히 나도 그때도 강수 매니저일 거야.”
진수 말처럼 전생에서도 진수는, 내가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끝까지 내 매니저 역할을 자처했었다.
그런데 지금 진수가 지수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전생에서도 진수는 내 매니저 노릇을 했던 그것이 고등학교 재학시절 나와 지나가는 말처럼 약속했던 그것 때문이었고, 또 그 약속을 평생 지켰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전생에서뿐 아니라 이번 생에서도, 참으로 대단한 친구이자 매니저를 두고 있는 인생이다.
“그냥 내일 천천히 하라니까.”
“싫어. 나중에 오빠 마음이 바뀌면 어쩌려고.”
한밤중에 집안에 난리법석이 났다.
진수의 입주를 축하하는 삼겹살 파티를 겸한 저녁을 먹고 나자, 지수는 1층에 있던 것들을 2층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의자를 들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침대는 내일 주문한 테니까 불편하더라도 며칠만 바닥에서 좀 자.”
“그런 것까지 네가 신경 쓸 일 없어. 침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수의 이삿짐을 모두 옮기자 이왕 일을 벌인 김에 진수가 쓸 방까지 한꺼번에 정리하기로 했고, 그 덕분에 집 정리를 마치고 나니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진수는 이 집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직 연락 온 것은 없지?”
“한 배우, 그 사람들 아직 출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을 시간이야. 아마 오늘 저녁이나 되어야 연락이 와도 올 테니까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
오늘도 진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지 집을 나섰고, 아르바이트 일거리조차 없었던 나는 집안에서 빈둥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혹시 괜찮은 작품이 있나 하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녀 봤지만 아직 마땅한 작품이 보이질 않았고, 그것은 내 전생의 기억에서도 마찬가지였었다.
‘어!’
순간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하는 탄사가 터져 나왔고, 나는 아예 모니터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모니터에 얼굴을 대다시피 해서 공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지를 읽으면서 ‘아직 이 작품이 나올 시기가 아닌데?’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네 안의 야수]라는 제목의, 영화 엑스트라 모집 공고가 올라온 것이다.
사실 이 [네 안의 야수]란 작품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이 작품이 대한민국 느와르 장르의 대표적인 감독인 장수한 감독의 작품이란 점도 연관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액션 배우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점이 훨씬 더 강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우는 당시 아르바이트 삼아서 엑스트라에 지원했다가 장수한 감독의 눈에 들어서, 엑스트라에서 일약 조연으로 일취월장한 정말 영화 한 편에서 바로 대박을 터트린 그런 친구였기도 했다.
나중에는 마약 스캔들에 휩싸여 그리 길지 않은 배우생활을 했지만, 그는 이후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가 연이어 대박을 친 덕분에 이른바 흥행보증수표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존재감을 뽐냈었다.
아마 그 친구가 마약까지 동원될 집단 난교파티에 연루되지만 않았더라면, 정말 시대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최고의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렸을 친구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 친구의 삶을 생각하니, 혹시 그 친구가 내 전생에서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더라면 말년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걸 내가 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액션에는 이전 생에서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생에서 어제 오디션을 봤던 영화에 지원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액션에 자신이 있었다는 그 부분이었다.
그리고 몸이 다시 젊어지고 전생에 출연했던 수많은 영화에서의 경험이 더해진 지금 상황에서, 이 영화에 엑스트라로 지원하면 분명 장수한 감독님의 눈에는 그 친구보다 내가 훨씬 더 돋보일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이번 생에서도 역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물론 나도 이번 생에서는 전생과 좀 많이 달라졌고 감독님 반응도 달랐기에,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덕분에 진수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전생을 그대로 기억하는 나는, 지금 상황에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참, 나 이 영화 엑스트라에 지원했어?”
“무슨 영화를 말하는 거야?”
“소식 듣지 못했어?”
“무슨?”
“장수한 감독님이 [네 안의 야수]란 작품 찍는다는 소식 말이야.”
“그거 제작비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던데. 스케일이 커서 덤벼드는 투자자들이 없다는 소식이야. 솔직히 요즘은 코미디물이 잘 팔리기도 하고.”
“그냥 아르바이트 삼아서 해볼 생각인데 넌 어때?”
“어차피 엑스트라면 크게 바쁘진 않을 테니까 알바 삼아서 해보든지.”
엑스트라라고 이야기하니, 진수는 별 대수로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어차피 방구석에서 뒹굴 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이렇게 아르바이트 삼아 엑스트라 역할이라도 받아서 영화 현장 분위기를 익히는 것 또한, 우리 같은 배우지망생들에겐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네 안의 야수] 영화에 엑스트라에 지원하기로 했다.
물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지만, 그렇다고 주연이나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를 선발하는데, 거기서 떨어지리라는 것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지만 오디션을 본 드라마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그러자 진수는 점점 초조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