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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가 정치도 잘한다-1화 (1/132)
  • 〈 1화 〉 Just a moment!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뭐야?”

    “비서실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VIP께서 이번엔......”

    “알았어. 나가 봐.”

    이미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던 결과였다.

    결국 문체부장관 자리는 김기석 그놈에게 돌아간 모양이다.

    얼굴을 맞부딪칠 때면, 나를 향해 항상 딴따라라고 비웃음이 가득 배인 눈으로 경멸하는 듯 표정을 짓던 그놈이 문체부장관 자리를 탐냈고, 결국 내가 앉기로 한 자리를 새치기한 것이다.

    “의원님, 그럼 오늘 만찬은 어떻게 할까요?”

    “그만 나가라니까!”

    내가 차기 정권에서라도 한 자리 차지하려면, 오늘 만찬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물론 오늘 만찬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론, 당의 원내대표가 정권 재창출을 다짐하는 취지에서 주최하는 만찬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 오늘 만찬의 목적이 문체부장관에 내정된 김기석 그놈을 축하하는 모임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자리를 빼앗긴 내가 그 만찬에 참석해서 웃음을 보인다는 것은 저간의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기에 딱 좋은 일이다.

    하지만 비밀리에 대통령까지 참석하기로 한 것인지, 청와대 비서실에서 참석독려까지 있었다.

    ‘개새끼!’

    김기석 그놈이 웃는 모습을 생각하니, 내 입에선 절로 욕이 흘러나온다.

    나란 존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딴따라다.

    20대 초반에 연예계에 데뷔해서 30년이란 시간을 배우로 살았고, 나이 쉰 줄에 접어든 이후에는 이른바 ‘국민배우’니 ‘명품배우’니 하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런데 22대 총선 직전에 불거진, 정권의 핵심인사 다수가 개입된 게이트로 인해 국정운영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곧 있을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기정사실화 되자, 집권당에서는 분위기 반전을 위한 목적으로 당시 국민배우로 추앙받던 나를 영입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당시 영입에 앞장섰던 놈이 바로 김기석 저놈이었다.

    물론 감언이설에 꼬드김을 당한 내가 어리석었다.

    김기석의 수차례에 걸친 설득에 결국 출마를 결심했지만, 내가 집권당의 후보로 출마한다는 기사가 나간 직후부터, 나란 존재는 그 기사를 위해 존재하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나를 영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갖은 감언이설과 더불어 감당하지도 못할 약속을 토해냈었지만, 내가 입당원서에 서명한 후에는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우로서 가졌던 좋은 이미지 덕분인지, 총선에서는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고, 내가 소속된 정당 역시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여 집권당으로서 체면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판이라는 곳이 비열한 인간이 출세하는 것인지, 총선에서 승리한 후에 김기석 그놈은 정무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하였고, 오늘은 결국 내가 내정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문체부장관에 지명된 것이다.

    물론 내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 당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는 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후, 초선의원으로서는 무거운 자리일 수도 있는 당 대변인에 발탁되어 활약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나를 배신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김기석과의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놈과의 그런 관계는 배지를 달고 3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어딜 가시려고요?”

    “양산에 다녀올 거야.”

    “그럼 청와대에는.......”

    “김 보좌관, 김 보좌관 생각에는 내가 오늘 거기 간다고 뭐 달라질 것이라도 있을 것 같아? 아니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

    “쪽팔리는 소리지만 난 완벽하게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거야. 이런 상황에서 내년 총선에서 내가 공천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

    김성수 보좌관에게 한 말은, 결코 속에 없는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경우는, 내가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그리고 정계에 입문해서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진 선배 배우들의 경우에서도, 수없이 목격했던 사실이기도 하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김기석 그놈이 갖은 감언이설로 나를 꼬드길 때도 완강히 그 제안을 거절했었다.

    결국 막판에 이 정권의 배후 실세란 자가 김기석 그놈과 함께 나를 찾아와, 각서까지 내미는 것을 보고 마지못해 출마를 결심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상황은 지금까지 내게 보여주었던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나를 이용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청와대 만찬에 참석할 이유는 없었다.

    만찬에 참석해서 썩은 미소를 보이는 대신에, 차라리 그 시간에 지역구에서 나를 위한 지지표를 한 표라도 더 확보하는 것이 옳았기에, 이렇게 지역구인 양산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강 비서 넌 그냥 여기 남아 있어.”

    “의원님, 양산까지 자그마치 4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립니다.”

    “그러니까 남아 있으라고. 굳이 두 사람이 고생할 이유가 뭐가 있어.”

    양산까지 운전을 하겠다는 강현수 비서에게 열쇠를 빼앗듯 건네받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경부에서 영동 그리고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이따금 휴게소에 차를 세워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뭉친 근육도 풀고, 커피와 함께 담배도 피워가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밤길을 달렸다.

    ‘지금쯤 김천은 지났을 겁니다. 아마 곧 선산휴게소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네요.’

    ‘선산휴게소 다음에는 보통 어느 휴게소에 들릅니까?’

    ‘운전하는 강 비서 말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선산휴게소에는 들른답니다. 그 양반 고향이 선산이잖습니까.’

    라디오를 켜두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CD플레이어를 작동시킨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도 차량 내부 스피커에서 김기석 그놈과 김성수 보좌관이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라서, 나는 급히 비상등을 켠 후에 차를 갓길에 주차했다.

    그리고 라디오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이곳이 전파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난청 지역인지 라디오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잡음만 들려오고 있었다.

    혹시 내가 많이 피곤해서 헛것을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손으로 마른세수한 후에, 아까 들렀던 휴게소에서 산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에이! 벌써 다 마신 거야?’

    어느새 커피 잔이 비어 있었다.

    운전하는 도중에 틈이 나면 홀짝거린 탓에, 앞에 들렀던 휴게소에서 산 커피를 어느새 다 마셔버렸던 모양이었다.

    일단 커피가 고픈 것부터 해결해야 했기에, 나는 다시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방향지시등을 켠 후에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변속기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뒤에서 환한 불빛이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장관님, 깔끔하게 처리가 되었답니다. 현장에 출동한 119구급대원 말로는 현장에서 즉사했답니다.’

    ‘그래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아무튼 장례준비에 만전을 기하시고, 정중하게 보내주세요.’

    어디선가 아까 갓길에 차를 세우기 전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김기석 그놈과 김성수 보좌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김성수 보좌관의 말 중에서 깔끔하게 처리가 되었다느니, 현장에서 즉사했다느니 하는 그 말이 전혀 남의 말 같지가 않았다.

    [복수를 원하느냐?]

    “예? 누구십니까?”

    [널 지키는 수호신이다. 그런데 내가 조금 늦었구나.]

    “수호신이라니요? 그리고 복수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저 아래를 보아라.]

    허공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얼결에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대답을 했다.

    그리고 수호신이라는 양반의 말처럼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니, 방금 내가 잠시 주차를 했던 갓길의 가드레일을 뚫고 나간 내 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진 내 차의 모습과 함께,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줄줄이 늘어선 119구급차량과 소방차, 그리고 경찰 순찰차들이 잔뜩 몰려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도대체 저게 무슨......”

    “저 세계에서의 네가 죽었다는 말이지. 조금 전 너를 노리고 뒤따르던 덤프트럭이 덮쳐서.”

    “덤프트럭이 왜요?”

    “네가 너무 잘나서다. 그러다가 보니 정적이 생긴 것이지.”

    “예? 제가 너무 잘 나서라니요? 제가 잘난 것이 뭐가 있다고요.”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아니 내 보좌관인 김성수와 김기석이 공모해서, 나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조차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잘나서라는 그 말 또한, 나로서는 정말 황당한 말일 수밖에 없었다.

    “너 지역구 가면 인기 많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배우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고, 제 지역구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하니까요.”

    “네 보좌관이 너하고 같은 고향인 것은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보좌관 그 친구가 공천을 받을 수가 없잖아. 사람을 쓰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살펴보고 써야 하는 법인데.”

    결국 내가 이렇게 죽게 된 이유가 김기석 저놈이 나와 문체부장관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또 김성수 보좌관은 내가 살아 있으면 자기가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그 이유 때문에, 두 놈이 서로 죽이 맞았던 덕분에 오늘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솔직히 화가 났다.

    하다못해 국가전복을 꾀하는 반역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국제 무기상 간의 암투에 희생되었다는 거창한 이유도 아니고, 겨우 문체부장관 자리와 국회의원 공천이라는 하잘것없는 이유로 내가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왜? 슬며시 열이 뻗쳐서,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니오. 쪽 팔려서요.”

    “뭐가?”

    “그래도 명색이 한때는 제가 대한민국의 국민배우니 명품배우니 하는 소리를 듣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깟 국회의원 배지나 장관자리 하나 때문에 죽다니요. 그러니 쪽팔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복수는 하지 않겠다고?”

    “복수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네요. 뭐 대단한 이유 때문인 줄 알았더니......”

    “그럼 그만 살고 다른 세상으로 갈 생각이야?”

    사실 삶에는 별 미련도 없었다.

    부모님도 돌아가신지 한참 되었고 마지막까지 남았던 누이까지 3년 전에 죽었으니, 내겐 피붙이라고는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결혼은 내가 어느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기 무서워서 아예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으니, 지금 당장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보거나 슬퍼할 사람조차 없는 것이다.

    탄탄대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순탄한 배우 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어볼 만큼 벌었고, 그 돈 덕분에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았으니 내가 세상에 미련을 가질 것이 없었다.

    “어쩔 수 없네. 너 때문에 내가 올라가면 경위서 쓰게 생겼다.”

    “왜 저 때문에요?”

    “원래 네가 죽으려면 앞으로 30년쯤은 더 남았는데, 내가 순간적으로 손을 쓰는 것이 늦어서 이렇게 되었으니, 당연히 경위서 감이지.”

    저승에도 경위서가 있는 모양이었다.

    죽임을 당한 당사자인 내가 나를 죽게 한 자들에게 복수할 마음도 없고 더는 세상에 미련도 없다고 하니, 나를 데리러 온 이 저승사자라는 양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하얗고 눈부신 빛의 기둥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까 마시지 못했던, 커피가 갑자기 고파지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Just a moment!”

    “갑자기 무슨 일이야?”

    “커피요! 커피를 마셔야 해요.”

    “뭐? 커피? 그럼 안 가겠다는 말이야?”

    “예. 나중에 갈게요.”

    그 말만 던지고 나는 후다닥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순간 내 몸은, 블랙홀이라고 생각되는 검고 깊은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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