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래 온 손님(3) >
몰래 온 손님(3)
퍽, 퍼벅!
“조금 더 빠르게!”
“흐읍!”
팍!
제임스가 아이들의 검술을 지도해주기로 한 후.
아이들은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 제임스와 대련을 하는 민희만 해도, 고작 며칠 만에 나에게 배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실력이 늘어난 게 보일 정도니까.
하지만, 제임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퍼억!
제임스와 검을 부딪친 민희가 붕, 뜨며 뒤로 날아가 몇 바퀴를 구르곤, 바닥에 대자로 뻗어 머리를 흔들었다.
“크으······.”
“좋아, 민희. 어제보다 훨씬 예리해졌어. 이대로만 성장하면, 금세 마나도 다룰 수 있을 거야.”
역시, 민희의 재능이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경비대원들이 봐도 심상치 않은 재능이긴 했구나.
그보다, 민희는 팔목이 단 한 번도 안 돌아가는 걸 보니까······ 일부러 힘 조절 안 했다는 게 진짜구나?
제임스 저 새끼······ 역시 쪼다였어! 나 때문에 음식 못 한다고 구박받은 걸 화풀이한 게 맞았구나!
두고 보자. 언젠가 그때의 치욕을 갚아주고 말 테다.
민희는 호흡을 몇 번 고르다가 자리에 앉아 제임스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제임스. 그런데······ 꼭 그 옷을 입고해야 해요?”
“이렇게 편하고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있는데, 왜?”
“아뇨, 그······ 좀 깬다고 해야 하나? 가르쳐주실 때 집중이 좀······.”
민희가 제임스의 시선을 피하며 볼을 긁었다.
확실히, 제임스의 교육은 완벽하기 그지없었지만, 의상이 좀 에러였다.
원장님이 밭을 매실 때 입던 후줄근한 흰색 티셔츠와 장화.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근처에 살던 할머니가 이사 가기 전에 짬처리하고 간 꽃무늬 몸빼바지를 올려, 티셔츠를 넣어 입었다.
한마디로 누가 봐도 밭을 매러 가는 패션이라는 거지.
“그럴 리가! 귀족 나리들이나 입을 고급스러운 옷인데,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제임스는 투덜거리면서도 옷이 마음에 드는지, 입은 옷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제임스가 말하길, 98층에서 이런 화려한 옷은 귀족들의 전유물이라나 뭐라나.
저런 패션만 고집하기에 제임스의 옷은 다 저런 옷으로 준비해주긴 했는데······ 뭐, 본인이 좋아하면 된 거겠지?
제임스는 민희를 일으켜주며 웃었다.
“정수. 너보다 민희가 훨씬 낫다. 너보다 검술 재능이 훨씬 좋은데? 이 정도라면 얼마 안 가서 따라잡히겠어.”
그 말에, 민희의 눈이 빛났다.
“진짜요? 제가 오빠를요?”
“그래. 내가 장담하지.”
“아싸! 그럼 얼마 뒤에 있을 라이센스 시험도 합격할 수 있겠죠?”
라이센스라······.
각성자라고 해서 아무나 등탑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탑에 입장 조건이 각성이지만, 각 정부에서 탑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탑을 권한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등탑에 관한 기본 교육을 이수한 후, 격투, 검술, 위기 대처, 구급법 등 몇 종류의 시험을 통과하여 라이센스를 발급받아야 한다.
물론, 나도 가지고 있는 거고.
탑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나갔기에, 이런 조치를 한 거라고 한다.
물론, 이런 조치를 해도 아직도 탑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시체도 찾지 못해 행방불명으로 처리되곤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만 18세부터 라이센스 획득이 가능했지?
아무래도 민희는 이번 분기 라이센스 시험을 치를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검을 배운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괜찮으려나?
물론 나도 민희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걸 알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등탑 초창기에 겪었던 고생과 비참함이 여전히 생생하거든.
하지만 나의 걱정과 달리, 제임스는 민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시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재능을 떨어트린다면 보는 눈이 없는 거겠지. 적어도, 몸을 쓰는 거라면 실패할 일은 없을 거야.”
“다행이다! 고마워요, 제임스!”
민희가 웃으면서 뒤로 빠지자, 그 자리로 민수와 광진이가 들어왔다.
“제임스! 우리도 좀 봐주세요!”
“우리도 내년에는 라이센스 시험을 볼 거거든요!”
“물론이지. 둘은 한 번에 와.”
제임스가 여유로운 자세로 검을 들었고, 민수와 광진이는 둘이 덤벼들었음에도 민희보다 빠르게 나가떨어졌다.
퍼억!
바닥을 구른 아이들이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허억, 허억. 제임스, 괴물이에요?”
“허억. 제임스는 한 손으로 하는데, 허억. 왜 잡지를 못하겠지? 우리 너무 약한 것 같은데? 민희 누나 반도 못 따라가잖아.”
제임스는 피식 웃으면서 아이들을 일으켰다.
“내가 좀 강하긴 하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 이 중에서는 정수가 제일 재능이 없거든. 첫 대련 때 손목이 돌아가서 질질 짜기나 하고 말이야.”
나는 순간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니, 제임스! 그렇게 말하면······.”
“왜, 정수. 내 말이 틀렸나?”
내 말을 끊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제임스.
아니! 사실이긴 하지만, 당신이 심통 나서 일부러 손목을 돌려버렸다고는 말 안 했잖아!
교묘하게 자기가 한 잘못은 쏙 빼놓고 결과만 말할 줄이야!
억울하고 분한 나머지, 나는 결국 비장의 수를 꺼냈다.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제임스.”
“왜 그러나, 위대한 울보 정수?”
“앞으로 치킨은 없어요.”
“······뭐?”
“이 집안 치킨 주문 권한은 나한테 있거든요. 내가 이 집안 부대장이라서요.”
정말 치사하고 쪼잔해 보이는 게 제임스 같아서 이렇게는 안 하려고 했는데, 하는 수 없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 이거야!
잠시 눈을 깜빡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던 제임스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오열했다.
“안돼!! 아냐! 사실, 정수가 날 두들겨 팼어! 아주 처음부터 재능이 철철 넘쳐흘렀지! 정수는 검신의 축복을 받은 게 틀림없다고! 그럼!”
제임스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안쓰러운 표정을 한 채, 나에게 눈빛을 보내며 필사적으로 어필했다.
제발, 치킨만은 끊지 말아 달라고.
그 대단한 제임스도, 치킨 앞에서는 자존심까지 버리는구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검을 쥐었다.
“제임스. 나도 옛날의 정수가 아니라고요. 이제 나도 제법 강해졌으니, 그렇게 쉽게 지진 않을걸요?”
3단계 트레이닝을 마친 뒤, 세 개의 균열을 막아내며 내 레벨은 56이 되었다.
거기다가, 제임스는 지금 마나를 마음껏 쓸 수 없는 상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그러자, 제임스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오랜만에 대련이나 한 번 해볼까?
“좋아요!”
나와 제임스는 대련용 검을 쥐었다.
민희가 심판으로 나섰고, 신호를 내렸다.
“준비하시고!”
나는 제임스의 검술을 토대로, 머릿속으로 몇 개의 상황을 떠올렸다.
지구에 떨어지자마자 제임스가 싸우는 걸 보아하니,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30초 정도.
지구의 마나 농도가 낮아서 그런지, 그때 사용한 마나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임스가 땅을 가르던 모습은 압도적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시간만 버티면 이길 수 있다.
아니 이기진 못해도, 유효타 몇 방은 먹여 주마!
나는 이를 갈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시작!”
신호와 동시에, 나는 공격보단 방어를 택했다.
“호오. 시간을 끌겠다?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고 싸우려는 방식은 현명해. 하지만, 정수······.”
콰아앙─
“그것도 실력의 격차가 크지 않을 때나 취하는 전략이지.”
순식간에 뛰어나온 제임스가 검을 휘두르고, 나는 방어에 급급했다.
퍽, 퍼버벅!
“크윽!”
젠장, 마나 없이도 이렇게 강하고 날카로운 검이라니!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맹수라는 건가?
하지만 나도 예전과 다르다!
나는 그림자 분신으로 제임스의 다리를 묶었다.
예전에도 썼다가 안 먹혔던 전술이지만, 나는 예전과 다르다. 그간 숱한 훈련과 실전으로 이제는 전투의 흐름을 볼 줄 안다!
무엇보다도 제임스도 약해진 상태고.
아니나 다를까, 난생처음으로 제임스의 움직임에서 빈틈이 보였다!
빡!
제임스의 어깨에 내 목검이 부딪쳤다.
“먹였다!”
제임스도 놀란 눈치였다.
제임스의 목검이 내 머리에 닿기 직전이었지만, 내 공격이 먼저 들어간바, 제임스의 검이 공중에서 멈췄다.
“좋아, 1대 0이다.”
“내가 드디어 제임스를······.”
심지어.
“정수, 명예 경비대원 칭호를 괜히 얻은 게 아니군.”
“드디어 인정해주는 거예요?”
“그래. 이제 나에게 유효타를 먹일 정도로 강해졌어. 이제, 너를 어엿한 한 명의 검사로 인정해도 되겠군.”
단순히 칭찬이 아닌, 인정.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말단 경비원 제임스의 허술한 검법’의 창시자에게 인정받았습니다】
【검술의 숙련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현재 숙련도 100%】
【숙련도 100% 달성으로 새로운 스킬을 익힐 수 있습니다】
【스킬 ‘제임스식 일도양단’을 익힐 수 있습니다】
내 눈앞에 줄줄이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
제임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새로운 스킬까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일도양단이라면, 들어본 적 있다.
제임스가 지구에 떨어진 뒤, 땅을 가르고 돌진하는 마수들과 함께 흑마법사들을 일격에 베어버린, 그 어마무시한 스킬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상태지만, 123짜리 제임스의 몸에 검을 댈 수 있다는 건 실로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비록 나를 인정해주긴 했지만, 제임스도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었는지, 진지하게 임했고─
“으갹!”
몇 번의 공세를 나눈 후, 결국 나는 하늘을 날고, 또 날고, 또 날았다.
퍼억, 쿵!
“윽, 4대 1인가······.”
바닥에 떨어진 내가 엉덩이를 문지르자, 제임스가 씩 웃었다.
“거봐, 정수, 아직까진 내가 이기지? 어······ 아!!”
그런데, 의기양양하던 제임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갑자기 제자리에 드러누웠다.
“으으윽! 심장이! 역시 정수! 너무 강하다! 내가 네 재능을 몰라봤군! 벌써 이렇게 성장했을 줄이야!”
저 새끼 치킨 먹으려고 연기하네.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제임스······ 치킨 시켜줄 테니까 발연기 그만두고 일어나요.”
“하하. 티가 많이 났나?”
그렇게 제임스를 일으키려는데······.
왜애애앵─!
저 멀리서 웬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어? 이게 무슨 소리지?”
“균열 대피 경보인 것 같은데?”
나는 얼굴을 굳히며, 아이들을 데리고 고아원 안으로 대피시켰다.
요즘 균열 빈도가 높아진 만큼, 주의, 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 균열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거든.
“얘들아. 일단 애들 챙겨서 대피하고, 상황 파악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나오지 마.”
“응. 알았어.”
고아원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당부를 마친 뒤, 나는 TV를 켰다.
지역 방송에서는 난장판이 된 광주 시내를 보여주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오후 2시 10분, 경기도 광주 시내에 균열이 발생하며, 대피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얼마 전, 동시에 세 개의 균열이 발생한 전례 없던 위기 상황에 이어서, 이번에는 고레벨의 거대 몬스터의 출몰로 인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거대 몬스터라고?
곧이어, TV에는 10층짜리 건물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거대한 몬스터를 조명했다.
그리고 몬스터에 관한 정보가, 자막으로 떠올랐다.
- 거대 괴수는 Lv.110 스톤 드레이크로 추정.
무려 110레벨짜리 괴물이, 우리 동네에 출몰했다.
< 몰래 온 손님(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