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60화 (60/69)

< 흔적(2) >

흔적(2)

“정수! 말 해보게! 대체 어떻게 이 유적지의 문을 연 건가!”

윌리엄은 굉장히 드물게도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내 양팔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그······ 그러게요? 그냥 마나를 불어넣으니까 됐어요! 윌리엄, 그만! 그만! 저 토할 것 같아요! 우욱!”

“아,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그만.”

윌리엄은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뒤,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흠······ 마나를 불어넣으니 됐다라······ 단순히 마나를 불어넣어서 그런 건 아닐 걸세. 그렇게 단순한 조건이라면, 진작 누군가가 열어도 열었을 테니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윌리엄의 눈이 빛났고, 내놓은 답은 심플했다.

“정수, 자네. 어쩌면······.”

“네?”

“······고대 제국과 관련된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만.”

“고대, 제국이요?”

“그래 저번에 그 이상한 단검을 소환한 것도 그렇고, 마법과는 약간 궤가 다른, 고대기술의 일종 같기도 했네.”

고대 제국과 관련이 있다니······ 여기서는 아카식 아머리에 관련된 자료들이 고대 문헌 취급을 받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나도 아직 정확하게 다 모르는 걸 윌리엄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 나는 지구 사람인데 98층의 고대 제국과 관련이 있다니?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저는 이방인일 뿐인걸요. 제가 그런 곳과 연관 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고요.”

정확히는,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거지만.

하지만 나를 고아원에 두고 간 부모란 사람들은 웬 목걸이를 제외하고 그 어떤 정보나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니, 관련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일단 안을 둘러보고 싶은데, 윌리엄도 같이 가주시겠어요? 저 혼자서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오! 그러겠나? 크흠! 그렇지. 이런 고대 유적에는 어떤 함정이나 가디언이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니, 확실히 내가 같이 가는 게 좋겠어. 어서 가세나!”

방금까지 진지하게 나와 고대 제국의 연관성을 고민하던 윌리엄은 잔뜩 부푼 얼굴로 유적을 향해 내 등을 떠밀었다.

유적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 좋을까?

일평생 신비를 탐구하는 마법사답다.

잠깐, 그런데 이 자세로 계속 밀리면 내가 방패가 되는 꼴이잖아!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다급하게 윌리엄을 말렸다.

“윌리엄, 윌리엄! 설레는 거 알겠어요! 알았으니까 천천히요!”

“크흠, 컴! 내가 설레는 게 아니라······ 크흠! 알겠네. 천천히 가지.”

멋쩍은 헛기침을 하던 윌리엄은 지팡이를 높게 든 후, 지팡이 끝부분에 작은 불빛을 만들어 횃불처럼 사용했다.

“라이트. 정수, 내 뒤에 바짝 따라붙게.”

“네.”

저벅, 저벅.

빛이 다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천장.

폭포가 흐르는 절벽 안쪽이 전부 이 시설일 정도로 높다.

대체 절벽을 무너트리지 않고 어떻게 이런 큰 공간을 만든 거지?

내가 건축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암석 무게는 물론이거니와 엄청난 양의 물의 무게도 감당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인고의 시간 동안.

새삼스럽게 고대 제국의 기술력에 놀라게 되네.

물론, 그런 큰 공동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공원처럼 조성되었을 것 같은 넓은 공간을 지나자, 벽처럼 보였던 곳들 사이사이에 뚫린 통로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통로들을 따라 수많은 문이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곳의 형태가 익숙하다.

마치, 복도형 아파트라고 부르는 곳이랑 너무 흡사한 구조니까.

“윌리엄, 아무래도 여기······.”

“그래, 정수.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아무래도 여긴, 일종의 공동 주거 구역이었던 것 같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을 본 적이 있거든요.”

본 것뿐만 아니라, 아직도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남아 있는 형태지.

“일단 안을 더 둘러보지. 고대의 주거 구역이라니······ 이렇게 많은 방이 있다면, 그중에 정말 귀한 자료가 보관된 곳이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윌리엄과 함께 가장 가까운 방부터 차례대로 들어가며 이곳저곳을 뒤졌다.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곳에서 꽤 많은 물건이 발견되었다.

문제는······.

【아카식 칫솔】

─이빨이 잘 닦일 것 같지만, 너무 낡았습니다.

이런 아이템이나.

【아카식 펜슬】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칼로 끝을 다듬으면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잡동사니에 가까운 아이템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아카식 펜슬을 챙겨 넣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뭔 죄다 아카식이래?

“아카식 워리어 이 자식들, 98층의 애플 아니야? 안 건드리는 산업이 없네. 작명에 회사 이름 붙이는 것도 그렇고.”

그래도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아카식, 이라는 건 단순히 무기와 관련된 창고 스킬이나 전사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알수록, 아카식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가는데, 윌리엄은 신이 나는지 유적 이곳저곳을 살피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 정수! 여긴 정말 천국 같구만! 이곳에 있는 물건 중 하나만 학회에 발표해도 큰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겠어!”

“윌리엄이 좋아하니 다행이네요. 저는 조금 더 둘러봐야 할 것 같······ 응?”

그렇게 말하며 발을 옮겼는데······ 이상하게도 발을 받쳐주는 게 없다.

한순간, 몸이 땅으로 꺼지듯이 시야가 낮아진다.

그리고 윌리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수!! 위험하네!!”

하지만, 윌리엄의 경고는 한발 늦었다.

“억!”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구덩이.

발을 헛디디며, 그곳으로 내 몸이 기울어졌고······ 안 돼!

자유 낙하가 시작됐다.

후우웅!

젠장!

나는 계속해서 땅으로 처박히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들어 올려, 흐릿한 빛이 보이는 곳을 보며 외쳤다.

“텔레포트!!”

우우웅!

차원의 틈이 2단계로 업그레이드되며 추가된 스킬, 텔레포트.

그 스킬이 발동되며, 내 몸에 느껴지던 압력이 사라지고, 물속에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턱!

“허억, 허억. 죽는 줄 알았네.”

내가 떨어진 절벽.

그곳으로 텔레포트 한 나는, 저 깊은 어둠을 내려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 윌리엄의 빛은 저 멀리, 구덩이 너머에서 보였다.

아무래도 당황한 통에 건너편으로 텔레포트 한 것 같네.

“정수!! 정수, 괜찮은가?”

“아, 네! 괜찮아요! 다행히 반대편에 도착했어요!”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다리가 끊겨서 당장 그쪽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보게! 내가 대책을 강구 해볼 테니까!”

이 정도 거리면 텔레포트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윌리엄! 조금만 기다리면, 저한테 그쪽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어요!”

그렇게 외치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도 안쪽에 무슨 공간이 있는 것 같은데?

처음 공동 주거 구역을 보았을 때보다 더 거대한 건축물.

그 건축물 안쪽에는 아카식 트레이닝 룸으로 향하던 길에 박힌 것과 같은 야명주가 박혀 있는지, 미세하기 빛이 흘러나왔다.

“안쪽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잠시 탐사해볼게요! 10분이면 될 거예요!”

“정수, 혼자는 위험하네! 뭐가 있을지 몰라!”

“괜찮아요! 저 혼자 다녀올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이 아카식 아머리와 관련된 공간이라는 걸 안 이상, 위험은 없다.

아카식 아머리와 관련된 것들은 전부 내가 아카식 아머리를 소유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공격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천천히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우웅.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한순간 강렬하게 뿜어지는 빛에 자연스럽게 눈이 감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우와······ 여긴 귀족이 살던 곳이라도 되나?”

은은하게 빛나는 야명주가 군데군데 박혀 있고,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찬 공간.

나는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이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마치 작은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것 같은 그런 소리가.

위이이잉!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빠르게 검을 뽑으며 썬더볼트를 준비했다.

그런데, 대체 이 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아카식 워리어를 인식했습니다. 환영합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은, 느닷없이 내 머리 위에서 훅 내려와 시야를 가렸다.

“아, 씨. 깜짝이야!”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베어버릴 뻔했네.

나에게 말을 건 건,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구체에 다양한 문양이 음각된 형태에, 위에는 작은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는 공 모양의 작은 기계였다.

─정말, 지적 생명체를 보는 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요! 날짜 인지 시스템이 70년 전쯤에 고장 나서 말입니다. 새로운 마스터를 인식합니다!

그리고, 나는 곧 이 녀석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너······ 말할 수 있어?”

─물론이죠! 저는 에고 형성 시스템과 음성 전달 시스템이 탑재된 모델로, 음성을 이용한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이 음성에는, 인간을 포함하여 217가지 생명체에 대한 의사소통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17가지 생명체?

뭐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분명 말은 하고 있는데 쉽게 알아먹지는 못하겠네.

그래도 확실한 건 대화가 가능하다는 소리겠지?

아카식과 관련된 물건 중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존재.

당연하게 호기심이 동했다.

“넌 뭐야?”

─저는 아카식 센티넬 3형, 시설물 관리와 유지 보수에 특화된 모델 중에서도 99번째로 생산되었습니다.

그럼, 이 시설물을 관리하는 존재인가?

어쩌면 이 녀석에게 꽤 많은 걸 캐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몇 가지 물어볼게. 어······ 아카식 워리어라는 건 대체 뭐냐?”

─아카식 워리어란 마왕에게 대적하기 위해 마도 제국에서 인재를 모아 창설한 특수 조직입니다.

역시, 아카식 워리어란 마왕에게 대적하기 위해 훈련된 조직이 맞았다.

그런데, 마도 제국이 만든 조직이라는 건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단순히 자경단 같은 게 아니라, 고대 제국이 운영하는 특수부대였구나.

“그럼 혹시, 나 말고 다른 아카식 워리어가 있어?”

─······최종결전 이후 모든 센티넬의 연결이 끊겨 탐색이 불가합니다.

실망했다.

나 말고 다른 아카식 워리어를 찾을 수 있다면,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럼, 그걸 알 방법은 없고?”

─현재로서는 더 높은 등급의 시스템에 접속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카식 비공정 같은 전투용 마법 공학 병기에 접속하거나 아카식 시스템을 복구한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카식 비공정?

내가 아는 정보다. 그걸 찾으라는 퀘스트를 받았지.

역시 더 강해져서 퀘스트를 진행해보는 수밖에 없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려 했다.

내가 누구이고, 왜 아카식 아머리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지.

하지만, 센티넬이 먼저 내 주위를 돌다가, 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문장을 보니 ‘포르타 가문’ 출신이신가 보군요. 귀한 분을 뵙습니다.

뭐? 이거?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이 남겨준 유일한 유산인 이 목걸이?

나는 다급하게 내 목걸이를 잡아 내밀며 물었다.

“자, 잠시만! 너, 이 목걸이에 대해 알아? 포르타 가문? 그게 뭔데? 뭘 하는 가문이었는데?”

녀석은 잠시 말없이 규칙적인 기계음을 반복했다.

위잉, 위이잉.

이 목걸이는 내 부모가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물건.

어쩌면, 내 뿌리에 대해 알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왜 98층의 가문을 상징하는 목걸이가 왜 나한테 있었던 걸까?

그런 복잡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폭발하기 직전, 센티넬이 입을 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