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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57화 (5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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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무진과의 대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뒷산에 올라 고아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생을 살아온, 내 집.”

    되짚어 보면, 내 첫 기억은 고아원이고, 아직도 고아원에 살고 있다.

    내 인생 전부가, 이 고아원에 있다.

    사실,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다.

    어렸을 때 이 고아원은 나를 가둔 감옥과 같았고, 근처의 밭과 산은 탈옥 따윈 상상도 하지 말라는 듯 엄포를 놓는 것 같아 답답했다.

    “저긴 김씨 할아버지네 밭이라서 공이 넘어가기라도 하면 꿀밤을 얻어맞기 일쑤였고, 저긴 최씨 할머니네 별장이라 넘어가면 회초리를 맞았고······.”

    이 근처 대부분은 우리 땅이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남의 밭에 들어가거나 하면 욕을 들어먹기 일쑤였다.

    그나마 꿀밤이나 회초리로 끝나면 다행이었지.

    우리는 잠시 따끔하고 마는 그 회초리보다, 그들이 하는 모진 말들이 가슴 속 깊이 박혀 셀 수 없이 많은 나날을 앓았다.

    “저기가 김씨 할아버지댁 밭이었던 자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쓰지 않아 황무지가 된 땅에 옛날 모습이 겹친다.

    나와 아이들이 뛰어다니다가 넘어져 밭을 구르자, 김씨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 뛰어와 이곳저곳을 때렸었지.

    씨앗도 심지 않았던 땅을 굴렀는데, 식물이 자라지 않으면 책임지겠냐면서 유독 모질게 굴었던 기억이 난다.

    “최씨 할머니댁 별장은 어떻고.”

    회초리를 맞다 못해 피멍이 들어, 원장님이 밤새 연고를 발라주셨지.

    우리는 고기를 훔쳐먹으러 들어간 게 아니라, 그쪽으로 굴러떨어진 공을 찾으러 간 거였는데 말이야.

    이곳은 나를, 우리를 구박하고 핍박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싹 다 내 땅이지.”

    얼마 전, 적지 않는 돈을 들여서 고아원 근처의 땅을 사들였다.

    그걸 시작으로, 나는 추가 정산이 끝날 때마다 계속해서 땅을 늘렸다.

    ─균열 처리 2차 정산금이 수령되었습니다.

    ─‘오우거 송곳니 단검’이 판매되었습니다.

    I-브릿지를 통해 균열 처리 정산금과 오우거 송곳니 단검을 판매한 대금이 들어왔다.

    2차 정산금이 17억, 송곳니 판매 대금이 약 6억. 합이 23억.

    ─투견길드 당월 약초 대금

    ─데스 마우스 대금

    투견 길드에 판매한 약초 대금과 데스 마우스 판매 대금까지.

    내 통장에는 약 30억에 달하는 돈이 한 번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땅 주인들을 찾아 매입 요청을 하는 중이었다.

    탑의 등장과 균열의 출몰로 인해 수도권 중에서도 아주 외곽에 있는 이런 땅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밭 주인들은 도시의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고, 가끔 주말농장으로 콩이나 기르던 자투리땅을 산다고 하니 좋아할 수밖에.

    그들은 그렇게도 지키려던 땅을 순식간에 팔아치웠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사유지가 늘어날수록, 계획을 진행하기 편해질 테니까.”

    땅을 사는 데 사용한 금액은 총 10억.

    나머지 20억은 약초 사업에 쓰일 추가 부지 구매와 창고 건설 비용으로 한솔이에게 넘겼다.

    돈이 들어와도 금방금방 통장이 비어버리니 허전한 감도 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땅값이 더 떨어졌으리라는 확신도 있지만, 후회는 없다.

    계획을 진행하려면 지금 사야 했다.

    “지금 매입한 땅은 트레이닝 룸 겸 벙커를 지어야겠어.”

    점점 균열이 늘어나는 추세다.

    거기다, 이번에 세 개의 균열을 막아내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특히, 최근에는 흑마법사라는 놈들이 일부러 거대한 균열을 유도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구상 어디든 균열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그러니 이 고아원을 안전한 벙커처럼 만들 생각이다.

    “일종의 요새로 만드는 거지.”

    벙커를 다 짓고 나면, 아이들에게 몬스터가 올 때 대피하는 훈련도 시키고, 백작에게 받은 아이템, ‘백작가의 수호 기둥’을 이용해 안전을 확보한다.

    괜찮은 계획이다.

    “적어도 내 가족은 내가 지켜야지.”

    물론 더 많은 사람을 지켜낼 생각이다.

    아직 나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강의 영웅 드래곤 마스크가 아니지만, 절대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

    나는 다시 탑에 올랐다.

    벙커를 겸할 건물을 지어 올리고, 지하로도 공간을 만들려면 땅도 더 사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다.

    돈이 물처럼 흘러 나갈 테니, 벌 수 있을 때 왕창 벌어야지.

    “장사가 잘되니까, 대용량으로 사 왔지.”

    이번에 탑에 들고 온 건, 면과 스프를 따로 판매하는 제품으로 포장을 줄여 효율을 극대화했다.

    장사가 워낙 잘 되니까, 이제 이렇게 팔아도 금방 소비할 수 있겠지.

    딸랑, 딸랑.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가게로 들어왔다.

    “토니, 나 왔어요!”

    그 소리를 들은 토니가 울상을 하고는 다급히 뛰어나왔다.

    “정수 씨! 왜 이제야 온 거예요?”

    “네? 왜요?”

    토니의 표정을 보니, 꽤 심각한 일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왜 손님이 없는 거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예요? 제가 없는 사이에 그 빚쟁이들이 다시 오기라도 했다거나······.”

    혹시 그런 거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녀석들이 장사를 훼방 놓는다면, 자리를 잡고 손님을 끌어모아야 하는 이때,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토니는 고개를 힘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벌써 물건이 다 떨어져서 이틀이나 장사를 못 했어요. 그사이에 돌아간 손님만 해도 수백 명이에요.”

    분명히 재고를 계산해서 여유롭게 내려갔다 온 데다, 지구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벌써 이틀이나 장사를 하지 못했다니, 그 사이에 손님이 더 늘었나 보다.

    이거, 재고 계산을 다시 해야겠는데?

    “아······ 미안해요. 고향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 보니 조금 늦었네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물건을 대량으로 들여왔으니까요.”

    “다행이네요. 아, 그래도 정수가 없던 사이에 꽤 많이 팔았어요. 장사를 못 한 이틀을 제외하면, 대략 만 골드쯤?”

    역시, 입소문을 타서 그런지, 매출이 점점 오르고 있다.

    “나 없는 사이에 정말 고생했어요, 토니.”

    “임시 종업원을 두 명이나 뒀는데도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오니 할 맛이 나네요.”

    토니는 싱글벙글 웃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아, 참! 정수! 그 사이에 ‘라면의 정수’를 다른 도시에 창업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몇 왔다 갔었어요.”

    “다른 도시에 분점을 내고 싶다고요?”

    “네! 북부의 날씨가 추워서인지, 확실히 따뜻한 수프를 떠먹을 수 있는 라면이 큰 무기가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하긴. 추운 곳에서 먹는 라면 맛은 비할 게 없지.

    그나저나, 분점이라······.

    아직 탑에 들고 올 수 있는 무게 제한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아서 분점을 하기는 힘들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는 있겠지.

    “아직 분점은 힘들겠지만, 나중에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죠. 그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사업 파트너를 가려주세요.”

    “알겠어요.”

    좋아. 프랜차이즈 제안까지 올 정도라면, 사업은 생각 이상으로 잘 굴러가고 있다.

    나날이 불어나는 수익을 계산해보니, 개업하고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라면 장사로 번 수익이 대략 4만 골드.

    또, 단순히 4만 골드가 4천만 원이 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드워프 장인 다르곤이 있으니까.

    다르곤이 귀찮으니 만 골드만 두고 가져가라고 하는 무기들을 탑 아래에서 팔면, 수억 원이 되어 돌아온다.

    라면 하나로 대체 몇억을 버는 거야?

    그 생각을 하니, 다시 광대가 올라갔다.

    “자! 아무튼, 제가 돌아왔으니까 다시 일합시다, 일!”

    “예! 오늘도 한 번 힘내봅시다!”

    “아자아자!”

    식당 오픈을 준비하며, 다들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들 바삐 움직이면서 틈틈이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인가 했는데, 색이 좀 달랐다.

    “다들 뭘 마시고 있는 거예요?”

    “아, 정수가 없는 동안 다들 너무 바쁘고 힘들어하니까, 잭이 꿀을 좀 가져다줘서 꿀물을 타 마시고 있어요.”

    양봉업자 잭도 참 마음씨 좋은 사람이다.

    균열을 막는 데에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는데, 작은 인연도 잊지 않고 챙겨준다.

    “정수도 한 잔 드실래요?”

    “좋죠. 일단 문부터 열고요.”

    내가 문을 열자마자, 근처를 지나던 상인들이 눈을 빛냈다.

    “저기 봐! 라면의 정수가 문을 연 것 같은데?”

    “뭐라고? 그럼 가야지! 뭐해! 짐은 나중에 옮기고, 일단 밥부터 먹자고!”

    “아이고, 이틀 동안 라면을 못 먹었더니 아주 관절이 다 얼어붙은 것 같았다니까! 얼른 가자고!”

    “지금 영업하는 거 맞습니까?”

    나는 씩 웃으면서 손님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예! 우리 가게 정상영업 합니다! 들어오세요! 아이고, 이틀 동안 사정이 있어서 못 열게 되었네요. 이제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이틀간 입에 뭘 넣는 게 고역이었지 뭡니까! 내일 윈터우드를 떠나는데, 가기 전에 라면 한 그릇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한 번 문을 열고 손님이 들어오자, 그 뒤로는 손님이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안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그 며칠 쉬었다고, 손님 받는 게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뛰어다니며 서빙하다 보니 목이 너무 탔다.

    “아이고, 진짜 죽겠다.”

    “자, 정수. 아까 타둔 꿀물이에요. 한 잔 들이켜세요.”

    “아, 토니. 고마워요.”

    나는 라면을 계속 휘저으면서 꿀물을 내미는 토니에게 인사하며 컵을 받아 들고, 한 번에 들이켰다.

    【맛있는 꿀물을 섭취합니다】

    ─4시간 동안 마나 회복 속도가 40%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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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시간 동안 근력이 20% 추가됩니다.

    “옷, 오옷!”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는다.

    그 모습을 본 토니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꿀물 덕분에, 힘이 솟아서 더 많은 라면을 팔 수 있었어요.”

    어쩐지, 손님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가 한정되어 있을 텐데, 어떻게 버틴 건가 했네.

    확실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피곤했던 몸에 활력이 돋는다.

    “좋네요! 다시 서빙 갑니다!”

    그렇게 네 시간이 흘렀다.

    꿀물의 효과가 끝나고 내 서빙 속도가 느려질 때쯤.

    “정수.”

    “허억, 허억. 네, 토니. 아직 안 나간 음식 있어요?”

    토니가 다시 타 놓은 꿀물을 건네주었다.

    초점이 없는 눈으로 웃으면서.

    “마셔요.”

    “하, 하하······ 네, 고마워요. 아, 손님들이 부르시니까 조금 이따가······.”

    “마셔요.”

    주방을 떠나려는 내 손목을 콱 잡고, 꿀물을 들이미는 토니.

    토니의 얼굴에 은은히 보이는 광기에, 나는 황급히 꿀물을 받았다.

    “아, 알겠어요!”

    꿀꺽, 꿀꺽.

    토니는 내가 잔을 비우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손목을 놓아주었다.

    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토니가 이렇게 된 거지?

    그래도 꿀물을 들이켜자 다시 힘이 샘솟았고, 나는 다시 서빙을 시작했다.

    “우아아아! 음식 나갑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미친 듯이 서빙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그에 맞춰 꿀물도 지속시간이 끝났고, 나는 테이블에 엎어져 숨을 가다듬었다.

    “하아. 오늘도 어떻게 장사를 성공적으로 끝냈네요.”

    “그러게요. 오늘도 많이 팔았어요!”

    토니의 얼굴에 섬뜩하기까지 했던 아까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처음 보았을 때의 순박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토니에게 보이지 않게 고개를 작게 젓다가 마감을 준비했다.

    “그래도 확실히, 꿀물을 마시고 나니까 평소보다 덜 피로한 것 같아요.”

    “그렇죠? 꿀물 효과가 상상 이상이에요. 이렇게 일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를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요! 분점도 많이 내고요!”

    그렇게 말하는 토니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토니는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그렇게 할 수 있게, 저는 내일 장사를 준비하고 퇴근할게요!”

    “네. 부탁할게요.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요.”

    “물론이죠!”

    주방으로 돌아간 토니는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중간 꿀물을 마셔가면서.

    파바바박!

    대단한 속도네······.

    생각해보니, 매일 일이 끝나면 초점 잃은 눈으로 죽어가던 토니도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지긴커녕 어마어마한 속도로 내일 장사까지 준비하고 있지.

    꿀물의 효과가 대단하긴 하네.

    “등탑자 용 에너지 드링크 등탑 익스프레스가 한 캔에 5만 원이었던가?”

    마나, 체력, 스테미나 회복 효과에 5%에서 10%의 효과가 있던 그 물건이 5만 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무려······.

    나는 컵에 남은 꿀물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캬!”

    【맛있는 꿀물을 섭취합니다】

    ─4시간 동안 마나 회복 속도가 40% 추가됩니다.

    ─4시간 동안 자연치유력이 20% 추가됩니다.

    ─4시간 동안 근력이 20% 추가됩니다.

    활력이 샘솟는다!

    “역시, 이걸 가지고 가서 팔면 큰돈이 되겠어.”

    확신이 섰다.

    새로운 사업들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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