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청(1) >
요청(1)
드래곤 마스크와 다리를 놔달라니······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볼을 긁으며 말했다.
“그······ 조금 당황스럽네요. 저한테 드래곤 마스크와 다리를 놓아달라니······.”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라. 영상에서 봤듯이, 두 명이 하나의 스킬처럼 공격을 잇기 위해선 꽤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한 걸 알고 있으니까.”
강무진은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마 ‘쉐도우 길드’의 일종이거나······ 너와 일종의 거래를 했겠지. 신분을 숨긴 채 98층의 물건을 유통하기 위해서.”
······이걸 어쩌냐?
추측은 합리적이지만, 전제가 완전히 틀렸네. 제대로 착각한 모양인데.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강무진이 정답을 맞혔다는 얼굴로 웃었다.
“우리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나? 우린 정부 기관이다.”
“하, 하하······ 역시 대단하시네요.”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 치고는 제대로 헛다리를 짚었지만, 여전히 난감한 상황인 건 틀림 없었다.
드래곤 마스크가 나라는 걸 알릴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둘러대야 하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충 둘러대는 수밖에.
“사실 저도 드래곤 마스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요. 어, 그, 저, 그러니까······ 아! 탑에서 큰 상처를 입고 나왔을 때 도움을 받은 뒤 제자처럼 지내는 거라서요,”
강무진은 거짓말인지 구별하려는 듯 잠시 내 눈을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네가 드래곤 마스크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니까 힘 좀 써보지? 그가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등탑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야?
대한민국이 등탑 선진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등탑을 할 경제적, 인적 자원이 부족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강무진이 장담하는 걸 보니, 보통 일은 아니라는 소리인데······.
일단 무슨 문제인지 들어보자.
“어떤 문제인데요?”
“너도 뉴스 봤겠지? 우리나라 등탑계에 대한 세계적인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균열을 해결한 뒤 한동안 98층의 라면 가게에 집중해서, 뉴스를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세계가 우리나라 등탑계를 압박하고 있다고?
“제가 한동안 TV를 못 봐서······ 무슨 이유죠?”
“생각해봐라. 드래곤 마스크의 존재는······ 쉽게 말하면 핵폭탄 같은 거다.”
“핵폭탄이요?”
“랭커급 등탑자는 강력한 병기다. 세계 랭킹 1위인 미국의 드웨인 스미스 단 한 명이 웬만한 중진국의 군대와 맞먹는 전력으로 평가받지.”
“그런데, 98층이라면······ 핵폭탄.”
“그래 핵폭탄은 비대칭 무기이자 최종 병기지. 마법과 오러 같은 스킬의 등장 이후, 아무리 재래식 장비가 약해졌다 하더라도, 핵이 있으면 건드리지 못해.”
“······.”
“세계는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이 그런 핵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세계 랭킹 1위. 그건 그런 존재야.”
“아······.”
설마,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강무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등탑자들이 정체불명의 랭킹 1위가 누군지 규명하라며 우리 정부를 질타하고 있는 거다. 세계적인 수준의 위협이 될 수 있으니, 그 정체라도 알아야 회유하든, 대응하든 할 테니까.”
그러면서, 강무진이 스마트폰을 내밀며 뉴스를 보여주었다.
드래곤 마스크에 대한 우려가 담긴 외신이었다.
─드래곤 마스크, 영웅인가, 혹은 세계를 멸망시킬 통제 불가능한 악마인가.
─정체를 숨긴 랭킹 1위. 그는 과연 인류의 편인가?
─당신의 옆집에 핵무기가 있다면?
대부분 드래곤 마스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외신들도 드래곤 마스크를 찬양할 땐 언제고, 고작 보름 만에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바뀌다니······.
그때, 강무진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놈들에게 중요한 건. 드래곤 마스크가 진짜 위험인물인가 아닌가가 아니야. 언론 뒤에 세계 단위 대형 길드가 있을 거다. 자기들 밥줄을 신경 쓰는 거지. 사실, 드래곤 마스크가 기폭이 되었을 뿐, 우리를 압박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요?”
“파죽지세로 성장한 박진혁뿐만 아니라 얼마 전 서리 길드가 50층을 돌파한 일과 데스 마우스가 최초로 도입된 일. 그리고, 98층의 랭킹 1위. 본인들에게 위협이 되니 견제하는 거야.”
“사다리 걷어차기?”
“그래.”
강무진은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치고는, 눈을 빛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랭킹 1위의 원조가 필요하다. 그놈의 정체가 뭔지는 우리도 모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억울하지 않게 진짜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
아니, 왜 이야기가 거기로 새는 거야?
목숨 걸고 균열을 막아놨더니 또 도우라고 하네?
하지만 여기서 반응하면, 내가 드래곤 마스크라는 티를 내는 꼴.
나는 최대한 억울함을 꾹 누르며 말했다.
“하하······ 말이나 한번 해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도와드려야 할까요? 아무래도 정체를 밝히는 건 싫어하는 것 같던데.”
“상대가 원하는 대로 진짜 정체를 밝히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지. 여태까지 정체를 감추고 활동한 그 음습한 놈이 정부 요구를 들어줄 턱도 없고.”
아니, 음습한 놈이라니?
나는 그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정체를 숨겼을 뿐인데 억울하다.
“하, 하하······ 제가 그분을 좀 알아서 그러는데, 분명 사정이 있어서 그러신 걸 거예요.”
발끈한 나머지 두둔해버렸네.
하지만, 강무진은 내가 드래곤 마스크라고 생각하지는 못한 듯 혀를 가볍게 차고 고개를 저었다.
“쯧. 드래곤 마스크가 어떤 성격인지는 관심 없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무래도 슬슬 본론인 듯했다.
“이게 뭔지 아나?”
“아, 네. 차원석 아니에요?”
강무진이 내민 사진은, ‘차원석’이라는 물건이었다.
“맞다. 세계적 압박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중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야. 최근에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국제 길드 ‘클라우드’에서 드래곤 마스크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으면 차원석을 공급 중단하겠다고 협박하더군.”
“아······ 차원석 공급이 끊기면. 확실히 등탑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그놈들 뒤에 있는 중국이 우리를 견제한다는 소리다.”
차원석은 32층에서 종종 등장하는 몬스터, ‘디멘션 몽키’를 사냥하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사실상 국제 길드 ‘클라우드’ 뒤에 있는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자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차원석이 왜 중요한가?
그건 바로, 탑의 무게 제한과 관련이 있다.
차원석은 평범한 주머니에 ‘일시적으로’ 등탑 가능한 무게를 부여할 수 있는 아이템.
즉 ‘일회용’ 아공간 주머니의 재료다.
참고로, 내가 가진 ‘차원의 틈’처럼 기능이 영구 지속되는 아공 주머니는 매우 귀하다.
아직 제작할 방법을 모르며 아주 드물게 탑에서의 보상으로 주어질 뿐이다.
그런고로 물량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나온 차선책이 이 차원석을 이용해서 ‘일회용 아공간 주머니’를 만드는 것이다.
한 번의 ‘워프’ 즉 ‘층 이동’ 거치면 기능을 상실하고 말지만, 그게 어딘가?
탑의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클리어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연히 체류 시간이 길어진다.
차원석으로 만든 일회용 주머니라도 없으면 상대적으로 탑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진다.
즉, 일회용 아공간 주머니는 현대전에서 원양 작전이 가능한 항공모함이나 공중급유기 정도의 전략 물자이다.
차원석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상대적으로 등탑산업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니, 밀리는 걸 넘어서 정말 한동안 등탑 자체가 멈출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그래서 드래곤 마스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가요?”
“그래. 그라면 혹시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 처음 보는 98층의 강력한 스킬과 아이템으로 무장한 그라면 말이야.”
그리고 강무진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기억이 있었다.
나는 강무진을 보며 웃었다.
“잠시만요. 차원석이라고 하셨죠? 그건······ 해결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나는 강무진에게 드래곤 마스크와 연락이 닿으면 말을 전하겠다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차원석이라······ 내가 직접 싸워야 하는 거라면 힘들어도, 아이템이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물론, 대책 없이 구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믿는 구석이 있었다.
강무진에게 차원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머릿속에 떠오른 누군가의 목소리.
그건, 라면을 먹고 컵라면을 사 가던 백작의 말이었다.
‘내일 디멘션 울프 토벌이 예정되어 있는데,’
분명히 백작이 ‘디멘션 울프’ 토벌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었지.
그때는 긴장해서 차원석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디멘션(dimension)’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몬스터는 대부분 차원석을 품고 있지.
현재 지구에 풀리는 차원석 대부분은 32층을 장악한 중국 길드가 사냥터 독점을 하고,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디멘션 몽키를 사냥해 캐는 물건.
나머지는 워낙 고정된 곳에서 등정하지 않아 공급이 불안정한 편이다.
하지만, 디멘션 울프에게서 차원석을 구할 수 있다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
그리고 디멘션 울프 사체를 구하는 건 생각보다 쉬울 거다.
저번에 백작이 찾아왔을 때, 고양이 루시와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고 나는 츄르와 캣닙을 줬었다.
“그게 효과가 있다면, 제대로 된 보상을 주겠다고 했지?”
그리고······.
“그게 안 먹힐 리가 없지.”
*
성에 돌아온 백작은 어느 때보다 두근거렸다.
아마,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나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만큼.
백작은 정수가 준 팁을 이용해, 고양이 루시의 꼬리를 살폈다.
심기가 불편하지 않은 때를 파악할 수 있도록.
그리고, 품에는 정수가 건네준 츄르와 캣닙이라는 물건을 헝겊에 넣고 막대에 묶어 낚싯대처럼 만든 장난감을 챙겼다.
라이언 백작은 멀리서 루시의 심기를 관찰하다가, 때가 왔음을 깨닫고는 몸을 낮추고 손을 내밀었다.
“이리 온.”
“야옹.”
루시가 천천히 다가오자, 백작은 두려움을 느꼈다.
사박, 사박.
그 작은 발이 움직일 때마다, 백작의 몸이 흠칫 떨렸다.
원래 이 정도 거리에 오면 호되게 냥냥펀치를 맞았으니까.
그러나 평소보다 가까운 거리에 다가왔음에도, 루시는 얌전했다.
“서, 설마······.”
백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품에서 츄르를 꺼냈다.
정수가 말해준 대로 입구를 작게 자른 뒤, 루시에게 천천히 짜준다.
그러자······.
“야옹.”
츄릅, 츄릅.
루시는 평소와 달리 얌전히 츄르를 먹기 시작했다.
백작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발톱으로 긁고 물어뜯기 바빴던 그 도도한 고양이가.
“하하, 하!”
츄르를 다 먹은 루시가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자신감이 붙은 백작은 기세를 몰아 품에서 캣닙을 넣은 낚싯대를 꺼냈다.
그러자, 루시의 눈이 커졌다.
백작은 자세를 바짝 낮춘 채, 대롱거리는 캣닙 주머니를 따라 움직이는 루시의 고개를 보며 웃었다.
이번에도, 정수가 알려준 자세.
사냥을 준비하는 자세였다.
“허허, 녀석. 이걸 잡고 싶으냐?”
“왜옹!”
“자, 그럼 한 번 잡아 보려무나!”
백작이 캣닙 주머니를 내려 흔들자, 루시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투다닥!
“와옹, 와아옹!”
“하하, 녀석. 그렇게 좋으냐?”
백작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캣닙 주머니를 흔들며 루시가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뒤의 복도를 지나던 다니엘이 그 모습을 보았다.
정확히는, 루시가 무언가 물어뜯고 있고, 백작이 쪼그려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았다.
다니엘은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백작님! 루시 이 녀석, 또 백작님을 물고 있는 것이냐! 이제 더는 용서할 수 없다!”
그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란 루시가 펄쩍 뛰더니,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서 하악질을 했다.
“하아악! 하악!”
“내 이 녀석을 당장!”
얼굴을 잔뜩 구긴 다니엘이 루시를 잡으러 가려던 차.
백작이 다니엘의 앞을 막았다.
“아닐세, 다니엘. 이제 루시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어. 잘 보게.”
백작이 천천히 루시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고, 하악질을 하던 루시는 다니엘과 백작을 번갈아 보았다.
“괜찮단다, 루시. 이리 온.”
백작이 손을 내밀자, 잠시 눈치를 보던 루시가 천천히 걸어 나와, 백작의 손등을 핥았다.
그 모습을 본 다니엘의 눈이 커졌다.
“배, 백작님!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 고맙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오는군.”
손등을 핥는 루시를 보며, 붉어진 백작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정수, 그는 천재야.”
다니엘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친구는 이상하게 신통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거, 참. 체통 없게 이런 모습을 보여 버렸군. 기사단장. 정수가 무엇을 좋아할 것 같나? 그가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얼마든 내어주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