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전(1)
데뷔전(1)
골목 근처의 폐건물.
나는 그곳에서도 아주 안쪽에 있는 방에 잡아 온 녀석을 거꾸로 매달아두었다.
“으으으······.”
녀석은 기절한 와중에 나쁜 꿈이라도 꾸는 건지, 계속 신음했다.
벌써 이러면 어쩌나.
진짜 악몽은 이제 시작될 텐데.
나는 녀석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야. 일어나.”
찰싹! 찰싹!
하지만 녀석은 이번에도 신음할 뿐,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일어나! 안 일어나?”
쫘악!
놈의 몸이 한순간 붕 뜨고, 볼이 퉁퉁 부을 정도로 강하게 뺨을 때렸으나,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안 일어난 거다. 썬더 볼트.”
파지직!
딱 죽이지 않을 정도로만 위력을 조절한 썬더 볼트가 녀석의 배를 지졌고, 곧 반응이 왔다.
“끄아아악!”
녀석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눈을 떴고,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댔다.
“허. 뺨을 그렇게 때려도 안 일어나더니, 너 뭐 테슬라야? 온오프 스위치가 달렸나 왜 전원을 공급해줘야 일어나?”
“젠장, 왜, 왜 천장에 붙어 있는 거냐! 정정당당하게 내려와서 말해!”
“정신을 덜 차렸나, 내가 아니라 네가 매달려 있는 거야, 이 자식아.”
“아?”
녀석은 배에 힘을 줘서 몸을 굽혀보더니,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가 없네. 헛소리는 그만하고,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죽여! 무슨 목적으로 잡았는지는 몰라도, 알려줄 건 없다!”
“깡이 대단한데, 얼마나 버틸까? 썬더 볼트.”
파지직!
“끄아아악! 말······ 못 해 이 새끼야!”
녀석은 이를 악물고 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거, 어지간하면 말하지 않겠는데?
유도신문을 해보는 수밖에.
“이임식에 세 발.”
흠칫!
녀석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크으······ 들었나?”
“그런 조용한 곳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통화를 하면 안 들리겠어? 그래서 뭘 던진다는 거야?”
“크흐흐. 내가 말할 것 같나? 어차피 말해도 녀석들에게 살해당해. 그러느니, 여기서 죽겠다.”
다시 침묵.
꽤 끈질긴 녀석이네.
하지만, 떠볼 방법이 있었다.
이 녀석이 혹시 디아블로 컴퍼니와 관련이 있는 거라면, 예상되는 게 있으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아마 마비 가스겠지.”
이 녀석들이 정말 연금술사 안도원을 납치하려던 ‘디아블로 컴퍼니’와 관련이 있는 거라면, 그때 썼던 마비 가스를 이용해 인명 피해를 유도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는지, 녀석은 잠시 몸을 떨다가 눈만 도르륵 굴렸다.
“대답 안 하고 눈알 굴리는 거 봐라. 썬더볼트.”
파지직!
다시 한번 썬더 볼트를 지지자, 녀석이 몸부림을 쳐댔다.
이제 까맣게 그을린 녀석의 복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끄아악! 지······ 독한 새끼! 차라리 죽여!”
“어. 괜찮아. 사람 쉽게 안 죽어. 나한테 그런 취미도 없고.”
나는 씩 웃으면서 품에서 포션 몇 병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알아?”
“그게 뭔데!”
“최하급 포션이야.”
최하급 포션이라는 말에, 녀석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서, 설마!”
“그래. 너도 알다시피, 최하급 포션도 상처를 붙게 하는 효과는 뛰어나지만, 부작용이 있지. 심지어 중국산이라고.”
뽕!
포션 병을 열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약초 내음이 밀려왔다.
나는 상처 입은 녀석의 복부에 포션 병 입구를 가져다 대고, 천천히 기울였다.
“그건 바로······.”
“아, 안돼!”
치이익!
최하급 포션이 녀석의 복부에 닿자, 녀석의 복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끄아악!”
녀석이 고통에 몸을 비틀었지만, 이내 부글부글 끓는 듯한 거품이 올라오고, 상처가 말끔히 아물었다.
“바로, 불타는 것 같은 통증이 올라온다는 거지.”
나도 돈이 너무 없을 때 써본 적 있는 물건인데, 통증이 너무 심한 나머지 기절할 뻔했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았다면, 그대로 고블린 소굴 한가운데에 쓰러져 저녁밥이 되었겠지.
“끄으으윽······.”
녀석은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결국 기절해버렸다.
“뭐야, 이걸로 기절하면 어떡해? 야! 일어나! 야!”
짝, 짜악!
녀석의 뺨을 몇 번 때렸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확실한 방법을 써야겠네. 썬더 볼트.”
파지직!
“끄아악!”
“자, 스위치 온. 이제 다시 질문을 시작해볼까?”
“주, 죽여 이 개새끼야!! 알려줄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나는 녀석을 지지고 치료하기를 반복했다.
독한 놈, 그렇게 맞고도 중간중간 대답하기를 거부해서 너무 오래 걸렸다.
대충 6시간 정도?
썬더 볼트를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마나 포션도 몇 개 마셔버린 결과, 정보를 꽤 얻을 수 있었다.
“정리해보자. 디아블로 컴퍼니라는 등탑 클랜은 탑 꼭대기의 강력한 보스 몬스터와 소통해서 균열을 마음대로 열 수 있다?”
“맞다······.”
녀석은 반쯤 영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도 꼭대기의 존재에게 어마어마한 경험치가 걸린 퀘스트를 받았지만, 넌 말단인데다 점조직이라서 우두머리는 누군지 모르고. 내일은 가스 캔 세 개만 던져놓고 튀는 게 전부라 이거지?”
“그래······.”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정리해보자면, 녀석들의 계획은 균열을 유도한 뒤, 거슬리는 등탑자들을 먼저 가스로 제압한 후 학살한다.
여기에 쓰이는 가스는 역시, 전에 연금술사 안도원과 만났을 때 쓰였던 마비 가스.
그리고, 최소 1만 이상의 인간을 죽여야 놈들의 퀘스트는 성공이다.
뭐 그딴 퀘스트가 다 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인 듯했다.
나는 녀석들이 마비 가스를 던질 위치를 파악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고맙다. 균열 끝나고 보자.”
“뭐? 씨발! 지금 나를 여기에 두고 가겠다는 거야?”
“걱정하지 마. 끝나고 경찰 불러줄게. 뭐, 나오자마자 깜빵으로 가겠지만.”
“잠, 잠깐! 잠깐! 으아아아아! 이 개새끼야!!”
쿵!
나는 녀석을 폐건물에 묶어둔 채 밖으로 나왔다.
문단속까지 잘 해놓고 말이지.
“디아블로 컴퍼니가 어떤 놈들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균열을 막는 데 핵심적인 정보를 얻었네.”
내일 치안 길드 이임식에서 독가스가 터진다. 목적은 각성자들의 무력화.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거다. 더군다나 지금 해독제는 품귀현상이라서 대응이 더욱 힘들겠지.
어쩌면 그걸 유도하기 위해서 녀석들이 자이언트 로커스트를 풀어놓은 걸지도 모르고.
“지금 제작해도 해독제는 늦을 거고······ 아!”
방법이 있다.
탑에서 가져온 훌륭한 성능의 해독제.
그걸 희석해서 한슬기 같은 주요 인물들에게 나누어 주고 해독시키면, 민간인들을 대피시킬 거다.
더불어, 혹시 새어나갈지 모르는 크레이지 호넷을 처리해줄 거고.
나는 곧바로 물약 보관용 특수용기를 구해 해독제를 희석해 나눠 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독에 당하면 안 되니까 차원의 틈의 버프 효과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물량은 제외하고.
한창 작업을 반복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강무진? 이 사람이 왜······.”
한창 바쁠 때 무슨 일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나다. 내일 얼굴 좀 보지.
“내일이요? 아······ 정말 죄송하지만, 내일은 일이 있어서요.”
─탑에 오르나?
“그건 아닌데 일이 있어서요.”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가지. 잠깐이면 끝날 거다.
아씨, 난감하네.
이 사람이 갑자기 얼굴을 볼 일이 있다는 것도 달갑지 않은데, 하필이면 균열을 막아야 해서 바쁜 날이다.
잠깐, 균열?
그럼 강무진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강무진은 균열감시대응청장이니까, 정부 대응이 빨라지겠지.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하면 나중에 이것저것 캐묻겠지만, 둘러대면 그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죠.”
─시간과 장소는 네가 정해라.
용건을 마친 강무진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참 칼 같은 사람이네.
“대응할 사람이 많을수록 좋겠지? 투견도 배치하는 게 좋겠어.”
어차피 본대는 내가 깡그리 모아 일격에 격퇴할 거다.
투견길드의 역할은 시 외곽에서 흩어지는 크레이지 호넷 몇 마리에게 대응하는 것.
균열 안쪽에는 서리 길드와 강무진이 이끄는 정부 요원들이, 바깥쪽에는 투견길드가 대응하며 완충작용을 하게 만든다.
꽤 괜찮은 시나리오네.
나는 곧바로 한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정수야. 무슨 일이야?
“네, 형. 이번에 사업 확장한 기념으로, 내일 투견길드 분들과 회식이나 한 번 할까 해서요.”
─오, 회식! 좋지. 고기 사 들고 갈까?
“에이. 어떻게 매번 야외에서 바비큐만 해요. 내일은 밖에서 먹죠. 한우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어요.”
─그래? 너무 부담되는 거 아니야? 우리 애들 밥 많이 먹는다?
“에이, 이제 다 한 식구인데 그게 아깝겠어요?”
마음이 좀 찔리긴 하지만, 일이 끝나면 진짜 소고기 한번 거하게 쏴야지. 한우로다가.
─크, 역시 사나이 김정수, 의리를 아는구나? 그래, 언제 어디서 볼까?
“문자로 찍어 드릴게요.”
나는 강무진과 한수 형에게 각각 장소와 시간을 찍어 보냈다.
강무진은 세 균열 외곽의 카페이고, 한수형은 그 옆의 정육식당.
물론, 시간은 균열이 발생하는 오후 2시로.
균열 내부, 외부 모두 대응할 사람을 배치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
다음날.
오후 2시가 가까운 시간.
길드원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던 투견길드의 마스터, 박한수는 김정수에게 문자를 받았다.
─형, 죄송해요. 저 조금 늦을 것 같아요.
문자를 받아 본 박한수가 피식 웃었다.
“녀석, 양반은 못 되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이거냐?”
“어떻게 할까요? 기다릴까요?”
“흠. 그 녀석 성격상 엄청 미안해할 것 같은데, 우리 먼저 먹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예. 세팅해 놓겠습니다.”
“자, 다들 허리띠 풀고 왔지? 먹어보자고!”
투견길드 사람들은 손을 높게 올리며, 한우를 외쳐대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드를 들고 올 김정수를 생각하며.
한편, 카페에서 김정수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던 강무진은 시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김정수와의 약속 시간이 지났다.
그것도 10분이나.
늦는다는 문자가 왔지만,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꽤 먼 곳까지 행차한 게 아니던가?
나름대로 싹수가 있는 놈으로 좋게 봤는데, 이런 곳에서 실망하게 할 줄이야.
그런데.
웅──
시계가 2시를 가리키는 순간.
“음?”
강무진은 묘한 이질감에 고개를 들었고, 몇 초 뒤 자신의 커피잔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우웅.
강대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꽤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인근이라는 이야기다.
아마, 이곳까지 피해가 올 터.
강무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김정수보다 더 짜증 나는 게 튀어나왔군. ······세 개인가? 최악의 상황이군.”
그는 직접 근처의 지부에 연락했다.
“나다. 균열 발생은 확인했겠지?”
─예, 청장님! 지금 청장님이 계신 근처인데······ 균열은 세 개로 파악됩니다.“
“그래. 균열 셋. 전례 없던 상황이다. 조속히 인력 파견 및 지역 길드 전부 소집 요청할 수 있도록.”
강무진은 외투를 도로 입으며 카페 밖으로 나왔다.
우우웅.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붉은 파동이 번져나갔다. 마치 지구의 하늘에 큰 상처가 난 것처럼.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무언가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점처럼 보이지마는, 공간감이 조금만 있다면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왜애애애애─
그건, 날개가 달린 몬스터 떼였다.
“······벌인가?”
그렇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벌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도시를 향해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저게 뭐야?”
“모, 몬스터다! 도망쳐!”
“꺄아악!”
아비규환이 시작되었다.
강무진은 허공에서 지팡이를 꺼내 짚으며 읊조렸다.
“현장은 내가 직접 지휘한다.”
─알겠습니다.
강무진은 마치 강습부대처럼 줄지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말벌 떼를 보며 중얼거렸다.
“전례 없던 균열 사태에, 알려진 것보다 레벨이 높은 크레이지 호넷. 하필이면 사람들이 모인 행사 장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대재앙이 될 것이다.
강무진은 짧게 혀를 차며, 빠른 대응을 위해 움직였다.
*
그 순간, 약속을 전부 노쇼한 김정수는 근린공원 근처, 도심에서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후우웅─
“후. 시작이다.”
그는 하늘에 열린 균열들을 올려다보며 숨을 준비한 모든 것들을 곱씹었다.
“······사나이 김정수의 지구 데뷔전이다.”
철걱, 철걱!
용머리 투구가 올라오며, 김정수의 전신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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