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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48화 (48/69)
  • 가장 조심해야 할 때(3)

    가장 조심해야 할 때(3)

    “드래곤······ 드래곤이라니.”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한다.

    드래곤이란 무엇인가?

    흔히 판타지에서는 최고의 생명체로 등장한다. 그리고 탑에서도 드래곤에 관한 이야기들이 떠돌지만······ 아직까지 드래곤이 등장한 적은 없다.

    “심지어 여기 98층에서도 최강의 생명체라고 했었지?”

    그런데, 드래곤 아머라는 건 그런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의 부산물로 만든 갑옷이라는 걸까?

    나는 갑옷을 눌러 소환했다.

    우우웅.

    어마어마한 마나의 소용돌이가 일며, 이내 검은 갑옷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갑옷은 내 몸에 맞게 조절되며, 자동으로 각 파츠가 단단하게 연결되었다.

    아카식 건틀렛도 마치 드래곤 아머의 한 부위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만듦새도 어마어마하게 좋아서, 갑옷의 약점이 될만한 연결 부위도 노출되는 게 거의 없었다.

    “자동으로 입혀주는 게 참 편하네.”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방어구, 드래곤 아머.

    나는 손거울을 꺼내서 내 몸 곳곳을 비춰보았다.

    무광 흑색의 단단한 재질이 내 온몸을 촘촘하게 덮은 게······ 솔직히 꽤 멋있는데?

    철컥!

    그리고 투구 부위는 on, off가 가능하면서도, 턱과 머리를 따로 분리해서 탈착하는 게 가능한 구조였다.

    철컥, 철컥!

    마나를 불어넣자, 등 쪽에 있던 부분과 턱에서 올라오는 부분이 딱 들어맞으며 용머리같이 생긴 뿔 달린 투구가 올라왔다.

    “와······ 진짜 드래곤을 상상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네.”

    그리고, 이름대로 드래곤의 부산물로 만든 것인지, 갑옷 전체가 거대하고 단단한 물고기 비늘과 뼈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진짜······ 드래곤의 비늘인가?”

    그렇다면, 대체 어떤 성능을 가지고 있을까?

    꿀꺽.

    나는 긴장하며 드래곤 아머의 성능을 확인했다.

    【드래곤 아머(S++)】

    ─ 마법석 소켓 ‘0/5’

    ─ 스킬

    1) 경화 : 갑옷을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이 부여되어, 마나를 불어넣을수록 단단해집니다.

    2) 자동 수복 : 갑옷이 파손되었을 때, 마나를 흡수하여 자동으로 수복합니다. 마나 스톤을 사용할 시 더 빠른 속도로 수복할 수 있습니다.

    3) 불꽃의 저주 : 피격 시, 적의 몸을 불태우는 불꽃을 뿜어냅니다.

    나는 말을 잃었다.

    마나를 불어넣으면 넣을수록 단단해지고, 자동으로 수복되는 데다, 맞는 것만으로도 적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

    즉, 마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체력이 늘어나는 셈이잖아······.

    “S++등급이라니······.”

    이거,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이템 아닌가?

    철그럭, 철그럭.

    전신이 떨리는 것에 맞춰, 드래곤의 비늘이 춤을 춘다.

    그 덕에, 내 움직임은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기 아이템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이걸로도 부족해.”

    수백 마리의 크레이지 호넷을 한 번에 쓸어버릴 방법이 아직 없다.

    레벨도 순식간에 많이 올랐고, 아이템도 많이 얻었지만, 핵심적인 건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귀환의 쿨타임이 끝나기까지 이제 사흘.

    앞으로 사흘 안에 다음 트레이닝을 끝낼 수 있을까?

    솔직히 포기하지 않고 시도할 자신은 있지만, 시간을 맞출 자신은 없다.

    “하아······.”

    역시 투견 길드나 강무진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대비하는 수밖에는 없나?

    그렇게 나를 희생하더라도······ 그 방법이 옳은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바닥에 털썩 누워 눈을 가린 채 생각에 잠겼다.

    잠시 호흡을 다듬으며 방법을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근데, 잠깐.”

    내가 왜 그 방법을 혼자 고민하고 있었지?

    지구의 사람들에게는 균열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이미 균열에 대해 털어놓은 사람이 있었지.

    그것도 강력한 마법사인 내 스승님, 윌리엄 말이다.

    윌리엄이라면, 이번 균열을 해결할 강력한 마법을 가르쳐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서둘러 트레이닝 룸을 빠져나와, 윌리엄의 오두막으로 갔다.

    똑똑.

    “윌리엄, 계세요?”

    끼이익.

    “아, 정수. 돌아왔군! 잘 왔네. 좋은 소식이 있어. 토니가 새로 열 가게의 청소를 끝내고,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 곧 오픈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토니 쪽은 별문제 없이 진행되어서 다행이네.

    토니는 이미 장사 경험이 있는 만큼 알아서 해주겠지.

    그쪽보다는 균열을 대비하는 쪽이 급하다.

    “잘됐네요. 그런데, 윌리엄, 특훈을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문제가 조금 생겨서요.”

    “흠. 문제라니,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 침울해 보이는구먼.”

    “저번에 말씀드렸던 고향의 균열, 그게 더 심각해진 것 같아요.”

    나는 윌리엄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저번에 말했던 포탈이 세 개로 늘어났고, 나로서는 그걸 다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도움을 청하기도 마땅치 않다는 것.

    그래서, 부탁했다.

    “그걸 막아내기 위해선, 강력한 마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제 수준에서 배울 수 있는 광범위 공격 마법이 있을까요?”

    마법의 꽃 중 하나는 다수를 쓸어버리는 ‘광역 마법’이다.

    남은 사흘 사이, 썬더 볼트의 숙련도를 100%로 채우면, 더 배울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잠시 수염을 쓸어내리던 윌리엄이 말했다.

    “광역 마법을 아직 배우긴 일러. 자네가 사용할 수는 있으나, 그걸 전부 통제할 수가 없겠지. 특히 내가 자네에게 알려준 전류 계열 마법은 통제에 실패할 경우, 피해가 크네. 내가 저번에 자네에게 실수한 것처럼······ 크흠! 아무튼,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야.”

    아, 타인이 감전될 수도 있겠구나.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경우, 민간인이 다치게 될 수도 있었다.

    윌리엄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내 어깨를 잡고 읊조렸다.

    “정수. 고향에 다녀온 이후로 훌쩍 강해진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네.”

    “역시······ 그런가요?”

    복잡한 심경을 애써 삼키려던 순간.

    윌리엄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닐세. 정수. 정 상황이 좋지 않다면······ 혹시, 내 마법을 빌려 가겠나?”

    “네? 마법을 빌려요?”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았지만, 마법을 빌린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당황한 내 모습을 본 윌리엄이 곧 의문을 풀어주었다.

    “마법 스크롤 말일세.”

    “아, 마법 스크롤······ 아니, 네? 마법 스크롤이요?”

    나는 잠깐 실망했다.

    마법사마다 다르지만, 마법 스크롤은 제작에 이틀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집중해야 하며,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도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그뿐인가? 효율도 좋지 않아서 위력은 어마어마하게 약해진다.

    물을 터트리는 충격으로 마치 수류탄 같은 피해를 주는 마법인 ‘워터 밤’을 스크롤로 만들어봐야, 고작 수통을 채울 양 정도밖에 구현이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이미 만들어놓은 스크롤을 버리기는 아까워 전투용보다는 탑에 들어올 때, 수통에 넣을 물 무게마저도 아까울 때 쓰고.

    한마디로, 노력 대비 효율은 떨어지고 고가인 잡기술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98층은 굴러다니는 돌멩이조차도 값나가는 마법석일 때가 있다.

    그러니, 98층의 스크롤은 다르지 않을까?

    그것도 레벨 130의 마법사, 윌리엄이 만드는 스크롤이니까 말이지.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윌리엄, 스크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자네도 기본적인 개념은 알겠지?”

    “네, 마법 스크롤에 마법 회로를 새겨서, 마나를 불어 넣으면 시동할 수 있는 거죠? 마법에 조예가 없는 사람도요.”

    “그래. 하지만 자네가 필요한 강력한 마법을 넣으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지. 하나를 만들 때 20시간 이상 집중해야 하고, 작업이 끝나면 녹초가 되니 마법사들은 꺼리지만······.”

    윌리엄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자네가 내 조카에게 활로를 열어주었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다른 마법사들은 이틀이나 걸리는 작업을 20시간 안에 끝내는 실력.

    그렇다면, 그 위력은 어떨까?

    “그러니까, 저지먼트 오브 썬더 같은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는 거죠?”

    나는 빚쟁이들이 토니를 찾아왔을 때, 윌리엄이 사용하던 마법을 상기했다.

    위협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위력을 줄였음에도 땅이 녹아 들어갈 정도로 강력하고, 적을 섬멸할 때까지 쉴 새 없이 내리치던 번개.

    그 어마어마한 위력은, 아직도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만약 그것들을, 균열이 열리는 순간에 불러낼 수 있다면······ 단숨에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태워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보다 강력한 것도 가능하지.”

    윌리엄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허허 웃었다.

    나는 윌리엄의 손을 와락 붙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윌리엄! 초콜릿 한 트럭은 가져다드릴게요!”

    “트럭? 그게 뭔가?”

    아, 여기 사람들은 트럭이 뭔지 모르지.

    “한 마차요!”

    “허허, 말이라도 고맙군. 자네가 급해 보이니, 오늘이라도 작업을 시작하지.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이 들어서 말이야.”

    “부탁드릴게요!”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웃었다.

    만약 윌리엄의 마법을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크레이지 호넷이 몇 마리가 나오던, 일격에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세 개의 균열,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아니, 해답을 주워버렸다.

    *

    그날부로 윌리엄은 마법 스크롤 제작을 위해서 오두막을 걸어 잠그고 작업에 들어갔다.

    꼬박 하루를 잠도 자지 못하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기에 윌리엄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하네.

    윌리엄도 나이가 있는데······ 이번 일로 괜히 건강이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하긴, 내가 누굴 걱정하냐.”

    윌리엄은 레벨 130의 고수인데.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몸에 좋다는 것 좀 선물로 챙겨줘야겠다.

    윌리엄이 오두막에서 마법 스크롤을 제작하는 사이, 나는 다시 ‘윈터우드’로 향하기 위해 양봉업자 잭을 찾았다.

    혹시라도 마법을 피한 크레이지 호넷들을 상대하려면, 더 단단히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균열의 수가 늘어나면서 늘어났을 여왕벌들에게 대비하기 위해 로열젤리와 꿀을 추가 구매할 목적도 있었다.

    “허허.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말벌집이 세 개나 있어서 포션 같은 걸 사려고 도시로 나간다 이거지?”

    “네. 그래서 조금 더 대비하려고요.”

    “그렇다면······ 잠깐만!!”

    잭은 여전히 펄쩍 뛰어나가더니, 꿀벌들을 노리는 말벌을 잡아채서 파운딩을 갈겼다.

    아무리 크다고는 해도 나에게는 나무 사이에 숨어서 날아오는 저 말벌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잭은 어떻게 알아챈 건지······.

    전에는 이 광경, 정신 없고 요란한 잭의 말벌 쫓기를 황당하게 바라보았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잭의 모든 움직임을 관찰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말벌을 처리하고 온 잭의 손에는 회색의 무언가가 잡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걸 가져가라고.”

    “이게 뭔데요?”

    “내가 쓰는 회색곰 털가죽 망토야. 말벌 놈들이 잘 보지 못하는 색인데다, 말벌 침도 어느 정도는 막아주고, 뚫린다고 해도 독을 좀 중화해주지.”

    “엇, 감사해요! 조심해서 쓰고 돌려드릴게요!”

    “그런 건 몇 벌이나 있으니까, 다 찢어져도 말벌은 확실하게 조져놓으라고! 머리와 배의 연결부가 녀석들의 약점이야! 칼을 이렇게 꽂아 넣고 비틀면······.”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잭의 말벌 사냥 강의는 계속되었다.

    정말, 말벌을 때려잡는 데에는 누구보다 진심인 아저씨라니까.

    도착한 뒤에는 가장 먼저 드워프 장인 ‘다르곤’이 운영하는 ‘동트는 새벽’에서 재블린을 몇 개 구매했다.

    보스 몬스터처럼 거대하고 단단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투척용 창인 ‘재블린’ 같은 게 유용하게 쓰이니까.

    이번에도 맥주를 제공한 대가로, B++등급 재블린 다섯 자루를 천 골드라는 할인된 가격에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포션.”

    병당 10만 원씩 하는 최하급 포션 말고, 사지가 절단되어도 붙여줄 수 있는 상급 포션.

    그것도, 98층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물건들로 오천 골드라는 금액을 썼다.

    마시기도 할 거지만, 다른 노림수가 있으니까.

    【차원의 틈의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내용물

    1)상급 마나 포션 20kg

    2)상급 회복 포션 10kg

    3)상급 해독 물약 10kg

    적용 효과 : Lv.7 회복, Lv.6 마나 재생, Lv.5 해독

    “예상대로야.”

    바로 이거다.

    해독초와 회복초를 넣었을 때 그에 해당하는 버프를 얻었으니, 포션을 넣어도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

    드래곤 아머는 마나를 소모하며 강력한방어력을 유지한다.

    다만, 잡아먹는 마나 양이 상당해서 아직 감당하기가 어렵다.

    흡사 작은 연료통을 단 슈퍼카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실전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건 높아진 재생력과 포션을 마시며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실험해보니, 갑옷에 마나를 무식하게 밀어 넣어도, 마나가 회복되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이거, 전투 상황에 스킬을 엄청나게 사용해도 포션을 소비하는 속도 조절만 잘하면 무한 실드도 가능하겠는데?

    이걸로, 독침을 막을 방어력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해독 효과는 대비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

    톨른 마을로 돌아온 나는 핼쑥해진 윌리엄에게 스크롤 두 장을 건네받았다.

    【썬더 스톰 마법 스크롤】

    【Lv.80 수준의 ‘썬더 스톰’이 각인 되어있는 마법 스크롤입니다. 마나를 불어넣고 스크롤을 찢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썬더 스톰!

    확실히 윌리엄의 수준에 비하면 훨씬 낮은 레벨로 측정되었지만, 레벨 80수준이라면 탑 밖에서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아마, 이런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두 스크롤에 같은 마법이 각인되어 있네. 자네가 보았던 저지먼트 오브 썬더보다 강력한 광범위 마법이니, 조심해서 다루게.”

    “정말 고마워요, 윌리엄. 이거라도 한 잔 드세요.”

    “오, 꿀물이군. 마침 단 게 먹고 싶던 참이었는데, 고맙구먼. 이걸 마시고, 한숨 푹 자야겠어.”

    윌리엄은 꿀물을 마시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오두막의 문을 열고 나오며, 스크롤을 챙겨 넣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어.”

    탑을 내려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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