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심해야 할 때(2)
가장 조심해야 할 때(2)
나는 도시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빌딩 위에 앉아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며칠 뒤, 저들 머리 위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릴 거다.
학살극이 예견되었다.
“1개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텐데······ 3개면······.”
계획이 망가졌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후우웅.
자리에서 일어나자 도시가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내가 평생을 자라면서 도시가.
사실,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험한 꼴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정이나 인류애가 깊지는 않지만, 평생을 느껴온 이 정취가 사라지는 건 원치 않는다.
공원 근처에는 반갑진 않아도 학창 시절을 보낸 학교가 있고, 그 학교 뒤에는 자주 찾던 분식집이 있다.
만약, 지역 치안을 담당하게 될 태산 길드가 이걸 다 막아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지?
아니, 애초에 막는 건 둘째치고 사건이 터지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다.
내가 자란 도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던 마음이 흔들린다.
어떻게 하면 이걸 막을 수 있지?
방법은 준비됐지만······ 세 군데에서 균열이 동시에 발생한다면 혼자는 무리다.
내 몸이 하나일뿐더러, 식충 식물의 성분을 이용해 한곳으로 모은다고 한들, 그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는 무슨 수로 막지?
역시 균열이 일어날 거라고 알릴까?
“알린다고 믿어줄까?”
믿어준다고 한들, 균열을 예측했다는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지?
강무진 같은 당장은 내 아군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그 사람도 야망이 있으니까. 반드시 나를 쥐고 흔들려고 하겠지.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차라리······ 그냥 포기할까? 고아원만 지키는 건 문제가 없을 텐데······.”
내가 막지 않아도, 다른 균열들처럼 지역 치안 담당 길드가 출동해서 어떻게서든 균열을 처리할 것이다. 피해가 얼마가 됐든지 막긴 막아내겠지.
딱 눈감고 빠지는 거다.
균열을 독식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긴 하지만, 이건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나는 딱 내 능력껏 지켜내면 된다.
다행히, 고아원은 도심에서 꽤 멀리 떨어진 데다, 투견 길드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렇게 결심했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이나 도시를 내려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어, 민희야.”
─오빠 어디야? 밥 다 됐으니까 먹으러 와.
“어, 그래. 금방 갈게.”
어둑어둑 한 것 같더니, 벌써 그런 시간인가?
대체 몇 시간을 서 있었던 건지.
전화를 끊고 고아원으로 돌아가려는데, 민희가 물었다.
─오빠. 목소리가 안 좋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일은 무슨. 그런 거 없어.”
─목소리만 들어도 알거든? 옛날에 오빠 엄청 힘들어할 때 전화하면 항상 이 목소리였어.
내가 그랬었나?
“그럼 뭐, 요즘은 좀 달랐어?”
─응. 요즘은······ 든든한 느낌이지. 어릴 때 원장님께 느꼈던 그런 느낌이야. 가장 같달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무슨······ 금방 갈 테니까 애들 잘 씻겨놔. 요즘 훈련하고 더러운 손으로 밥 먹더라.”
─알았어.
전화를 끊고, 나는 도시를 더 자세히 살폈다.
한 손에는 부모의 손을,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쥔 채 뒤뚱뒤뚱 걷는 아이.
팔짱을 낀 채 귓속말하며 웃는 커플들.
교복을 입고 무리 지어 다니며, 빽빽거리는 아이들.
내 추억이 녹아있는 도시 곳곳에서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
균열이 일어나면,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원장님이라······.”
나는 옛날 일을 회상했다.
어릴 적, 가릴 것 없이 고아원에 거두었던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 뒤, 쓰러졌던 원장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시는 거냐고.
그때, 원장님이 하신 말씀이 내 가슴을 푹푹 찔렀다.
‘놔두면 죽을 목숨인데, 차마 못 본 척하고 살 수가 없더라. 정수야. 너에게 이렇게까지 살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나는 네가 사람들을 도왔으면 좋겠다.’
당신은 코피를 흘리시면서도 웃었다.
‘그래야지······ 또 다른 누군가가 사람들을 돕거든.’
꽈아악.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원장님 말씀대로, 놔두면 죽었을 내 목숨도 한 번 구원받았다.
내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는 균열을 모른척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죽는다.
“그리고, 언제 내가 욕심을 몸 사려가면서 부린 적이 있었나?”
처음 탑에 올랐을 때, 코피를 질질 흘리고 큰 상처를 입어도 고블린들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처음 98층에 떨어져 레벨 100이 넘는 몬스터들 사이에 표류했을 때, 나는 악착같이 살 방법을 찾았다.
그 몬스터들보다 강한 경비대원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걸 기회로 삼아 장사를 시작했다.
언제나, 내 인생에 위기는 곧 기회였다.
고작 균열이 하나에서 세 개가 된 거로 이미 다 끝난 일인 것처럼 구는 건, 나답지 않지.
그래. 천천히 준비하자.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잖아.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다.
“균열까지 앞으로 9일.”
한 번 탑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곧바로 균열에 대응해야 한다.
이번 등탑이 마지막으로 강해질 기회다.
방법을 찾아와야 한다.
만약 찾지 못하면, 그때 가서 이 사실을 강무진에게 알리든 해도 늦지 않으니까.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집으로 돌아가, 곧바로 등탑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탑에 올랐다.
“도착한 걸 알리고 사라지면, 다들 걱정하겠지.”
이번에는 어떤 수를 쓰던 3단계 트레이닝을 끝낼 생각이거든.
나는 98층에 도착하자마자 간편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트레이닝 룸으로 향했다.
며칠이 걸리던, 나는 강해진다.
지금보다 몇 배로.
*
“허억, 허억. 커헉! 쿨럭! 카악, 퉤! 시발······.”
기침할 때마다 검붉은 피가 올라온다.
트레이닝이 중단되면 곧바로 몸이 치유된다.
모든 상처가 치료되면, 또다시 두 기의 목각인형을 향해 달려나갔다.
빠악!
그렇게, 이빨이 300개쯤 빠졌을 때
【레벨이 올랐습니다】
뽀각!
팔이 120번쯤 부러졌을 때.
【레벨이 올랐습니다】
뿌드득!
발목이 230번쯤 돌아갔을 때.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는 조금씩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3단계 트레이닝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반쯤 감기는 눈으로 간편식을 죽처럼 떠먹으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했다.
제길, 사흘이 지났나? 아니면, 나흘이었나?
아무튼, 그 시간 동안 쪽잠을 자면서, 일어나면 싸우기를 반복했다.
언제는 집중이 흐려졌다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가, 피곤했다가, 이제는 생각을 비워도 기계처럼 검을 휘둘렀다.
마치, 오토 파일럿 시스템이라도 탑재된 것처럼 내 몸이 무아지경, 제멋대로 움직인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면, 나는 다시 검을 쥐고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것 같은 이 훈련에도 성과는 있었다.
쿵, 쿵!
방패를 꼬나쥔 두 기의 목각인형은, 땅에 발이 닿자마자 나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보인다.”
언제 저 녀석들의 연계가 끊기는지.
언제 저 녀석들이 인간이나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는지.
카아앙!
나는 한 놈이 후려치는 방패를 검으로 막고는, 내 옆구리를 노리는 녀석에게 쇼크웨이브를 사용했다.
우우웅, 콰앙!
강력한 파동과 함께 방패가 우그러지며 목각인형 한 기가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이걸로, 한 몸처럼 움직이던 녀석들의 자랑인 연계는 반쯤 힘을 잃었다.
쿵!
벽에 처박힌 녀석이 삐걱거리며 일어나는 사이, 나는 분신을 이용해서 나와 힘겨루기하는 목각인형의 등 뒤를, 정확히는 다리 관절을 노렸다.
카가각!
그림자 암수가 정확히 다리 관절에 박혔고, 그것을 비틀어 다리 하나를 작살낸다.
콰득!
다리 하나를 잃은 녀석이 휘청이는 사이, 벽에 처박혔던 놈이 나를 향해 방패를 던진다.
“벽!”
쿠르르!
분신이 재빨리 ‘강철 바위 방패’를 바닥에 찍어, 스킬 ‘바위 방벽’을 사용한다.
단단한 바위가 솟구치며 만들어진 벽에, 방패가 날아든다.
콰앙! 후두둑······.
벽 일부가 파손되긴 했지만, 날아오는 방패를 훌륭하게 막았다.
역시 드워프제 방패다.
분신은 순식간에 방패를 던진 놈에게 다가가, 썬더 볼트를 사용했다.
콰지지직! 치이이······
도서관에서 숙련도를 올린 이후 훨씬 강력해진 썬더 볼트가 목각인형을 지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끼기긱─
자신을 잊었냐는 듯이, 다리 한쪽이 파손된 놈이 허리 관절을 360도 돌리며, 그 반동으로 방패를 휘둘러온다.
나는 뒤로 훌쩍 뛰어 방패를 피하며, 분신에게 외쳤다.
“마나 붐!”
분신이 던진 그림자 암수에 푸른 오러가 맺혔다.
나는 그걸 자기력으로 끌어당기며─
콰아앙!
나를 공격했던 놈을 방패째 날려버렸다.
쿵!
그렇게 한 놈이 쓰러지자, 썬더 볼트에 맞고 멈춰 섰던 놈이 달려온다.
나는 분신을 다시 소환해, 방패로 녀석의 공격을 막게 했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분신이 쭈우욱 밀리지만, 상관없다.
나는 분신이 들고 있는 방패 옆으로 손만 내밀며 목각인형을 전기로 지졌다.
“썬더 볼트!”
콰지지직!
다시 한번 목각인형이 감전되어, 삐걱거리며 쓰러졌다.
쿵!
나는 바닥에 쓰러진 목각인형의 관절에, 복부에, 목에, 푸른 오러로 덮인 검을 휘둘렀다.
쾅, 쾅, 쾅! 쾅!!
수차례나 검에 가격당한 녀석의 몸이, 차츰 분해되기 시작했다.
뿌득, 빠드득!
그리고, 마침내.
콰아앙!
마치 폭발하듯이, 목각인형은 톱밥이 되어 터져나갔다.
【트레이닝이 완료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세 번째 보상이 주어집니다】
“허억, 허억.”
나는 방금까지만 해도 목각인형이 쓰러져 있던 곳에 양손 검을 지팡이 삼아 기대 있다가 외쳤다.
“으아아아아!!”
승리에 대한 원초적인 기쁨에, 짐승 같은 포효가 내질러졌다.
이걸로, 내 승리다.
그리고, 이제는 승리의 달콤함을 느낄 시간이다.
레벨 51이 된 내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카식 아머리’의 27등급 아이템 해방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침내 3번째 아카식 아머리 아이템.
그리고.
【업적 획득 : 광전사】
【인간의 한계를 넘어, 극한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적을 쓰러트리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스킬 ‘광전사’를 획득합니다】
【광전사(패시브)】
─전투가 길어질수록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전투 시, 1분당 근력 1% 상승
─ 전투 시, 1분당 체력 1% 상승
싸울 때마다 강해지는 스킬.
옵션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었다.
“진짜 광전사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스킬이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레이닝을 마칠 때마다 주어졌던 보상 상자가 내려온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보상은 확인해야지.
육체는 회복됐지만, 자꾸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나는 상자를 열었다.
달칵.
“이건······ 호리병?”
【신선놀음의 병(S)】
─마법석 소켓 없음.
─호리병이 비어있으면, 자동으로 물약이 차오릅니다.
─차오르는 물약은 랜덤입니다.
─현재 ‘피로회복의 비약’ 충전 중.
찰랑, 찰랑.
물약이 차오르는 아이템이라······.
“소켓도 없는데, 과연 좋은 물약이 나올까?”
여태 아카식 아머리와 관련된 아이템 중 나쁜 건 단 하나도 없었지만, 자세한 설명 없이 딸랑 물약 이름만 표기해주다니······.
얼마나 좋은 아이템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로회복이라면 기절할 것 같은 지금 마셔도 효과가 있을까?
나는 호리병에 입을 대고, 액체를 들이켰다.
꿀꺽, 꿀꺽.
음? 이거······
“푸하! 박카스잖아.”
그래도, 맛이 없진 않아서 다행이네.
라고 생각하던 찰나.
【모든 피로가 회복됩니다】
“엇, 어엇!”
감기던 눈이 번쩍 커졌다.
사, 나흘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싸우기만 했던 정신이, 마치 숙면하고 일어난 것처럼 또렷해진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나는 씩 미소를 지으면서 호리병을 살폈다.
찰랑, 찰랑.
빈 호리병에는 금세 다시 다른 물약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병아리 변신 비약’ 충전 중.
“어······ 차오르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네. 랜덤이라더니 이상한 것도 나오고 ······ 대체 병아리로 변신하는 물약을 어디에 쓰라고?”
하지만, 적절한 상황에 적정한 물약이 나와주기만 한다면, S급, 아니, 그 이상의 등급도 줄 수 있는 아이템이다.
미리 물약을 준비해두면 긴급 상황에 요긴하게 쓸 수도 있겠네.
“자, 피로도 싹 풀렸겠다. 그래서, 아카식 아머리의 27번째 아이템은 뭔지 한 번 볼까? 어디 보자, 이건······.”
나는 아카식 아머리를 열어서, 3번째 무기의 정보를 확인했다.
“······갑옷?”
그리고,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검은색 갑옷의 이름을 확인한 나는 숨을 들이켰다.
“헉, 드, 헉! 딸꾹!”
【드래곤 아머(S++)】
그건, 아직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 없던 환상의 생물.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갑옷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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