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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40화 (40/69)

더 큰 세계, 더 많은 꿀(1)

더 큰 세계, 더 많은 꿀(1)

새로 구매한 임야에 ‘만년설의 프로즌 사파이어’와 함께 약초를 심어 놓은 다음 날.

글자 그대로 온종일 약초를 심어야 했기에, 나는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단잠에 빠져 있었다.

딱, 아이들이 내 방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똑똑똑.

“어으. 들어오세요.”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초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 몇 명이었다.

아이들은 연신 팔을 비벼대며 콧물이 나는 듯 킁킁거렸다.

“크응! 형, 우리 너무 추워.”

“보일러 고장 났나 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은 늦여름인데 보일러를 왜 틀어?”

“진짜 추워.”

“알았어. 형이 확인해 볼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보일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세상이 하얀색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제 만년설의 프로즌 사파이어를 심어둔 뒷산에 새하얀 서리가 앉아있었다.

“형! 눈이 내려!”

“와! 눈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겨울이 왔나 봐!”

아이들이 신나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신났다.

“흐흐흐, 얘들아. 저건 눈이 아니라, 돈이 내리는 거야. 흐흐흐흐.”

나는 뒷산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눈의 원인은 다름 아닌 사파이어였다.

그래도, 저 정도로 넓은 범위를 덮는 서리는 불편하겠지.

조절해놓을 필요가 있겠네.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나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형이 해결할······ 갑자기 왜 뒷걸음질 쳐? 그렇게 추워?”

아이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왜 꼭······ 나를 피하는 것 같지?

“아니, 추워서가 아니라, 형 눈이 무서워서······ 막, 형이 보여준 금화처럼 반짝거려······.”

요즘 들어 자주 듣는 말 같은데······.

하지만, 이게 다 너희들 먹여 살리려고 그런 거다, 짜식들아.

나는 피식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하, 녀석들. 과장하기는. 보일러 틀어줄 테니까 빨리 들어가.”

아이들은 나를 경계하듯 흘겨보며 주춤주춤 방으로 되돌아갔다.

*

그날 오후, 나는 한수 형을 통해 정부 라인으로 약초 납품을 끝냈다.

그간 탑을 오고 가면서 고아원 창고에 쌓아놨던 약초가 이백여 뿌리.

더불어서 ‘차원의 틈’에 들어있던 약초 수십 킬로그램을 전부 털어내니, 한수 형 입이 떡 벌어지는 게 제법 웃겼다.

“대단한 녀석······ 하나하나가 최상품이네.”

“아직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양이죠. 무슨 시장 보따리상 수준인데요. 하지만 이건 샘플 정도고. 앞으로 더 많이 공급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한수형은 고개를 내저었다.

“정수야. 이것만 해도 엄청나다. 네가 공급해주는 약초, 100뿌리를 액상으로 가공한 뒤 희석하면은 시중의 해독제 250병까지도 나온다고 하더라.”

뭐야, 그 정도였어?

“저번에 책정한 한 뿌리당 가격, 더 쳐줘야 할 것 같더라고.”

“와······ 그래요?”

해독제 한 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급 해독초 10뿌리를 갈아 넣어야 한다.

탑에서 가져온 상급 해독초도 원래 한 뿌리에 한 병이라는 어마어마한 성능이었는데······ 블루문을 받은 약초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성능을 보였다.

단순 계산으로도, 보통 거래되는 해독초의 25배에 달할 정도.

새삼스레 98층의, 그것도 블루문의 영향을 받은 약초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체감이 되네.

“대금은 오늘 오후 중으로 입금 될 거야.”

한수형과 헤어진 뒤, 나는 마트에 들러 탑에 들고 들어갈 물건 탐색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뭘 들고 가지?

그러다 문득, 내 이목을 끄는 광고가 있었다.

─진짜 맥아로 만든 리얼 맥주! 독일 본토에서 날아온 현지의 맛을 느껴보세요!─

“이거다.”

저번에 보니, 경비대원들이 피로를 풀기 위해 맛없는 밀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큼하고 텁텁한데다가 탄산도 그리 많지 않고 미지근한 맥주 맛이란 정말······ 제임스의 음식만큼이나 끔찍했다.

여태까지 맥주는 무게가 무거워서 가지고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차원의 틈’도 있으니 괜찮겠지.

맥주를 가져간다면 아이스크림처럼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포장할 필요 없이, 아이스박스에 얼음 조금 넣는 정도면 될 거다.

나는 그것 외에도 본격적으로 라면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 봉지 라면 번들과 커피 등 필요한 것들을 한가득 구매했다.

그리고 98층으로 올라갔다.

“클라크! 제임스! 조지! 웬일로 경비대원들이 소초가 아니라 밖에 나와 계세요?”

나는 마을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경비대원들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경비대원들의 반응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다들 왜 이렇게 굳어 있어요? 퀭해 보이는데, 커피랑 초코바 좀 드실래요?”

“아니. 지금은 됐다. 나중에 먹지.”

경비대의 모든 이들이 같은 반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다들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을 입에도 안 대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내 의문은 경비대장 클라크를 만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아, 정수. 왔군.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아. 오늘은 중요한 손님이 오실 테니, 너도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중요한 손님?

나는 98층에서 중요한 손님이 온다고 할 때 마주쳤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백작가의 기사단장 다니엘과 공녀 플로라.

아하, 이제 알았다.

경비대원들이 또 장난을 치려고 이러는 거구나?

“혹시, 누가 또 냄새를 맡고 오는 건 아니죠?”

그러나, 클라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정수, 미안하지만 우리는 오늘 농담을 받아줄 상황이 아니야.”

아······ 이번엔 진짠가 보네.

대체 누가 오길래 경비대원들이 이렇게 굳어 있는 거지?

슬쩍 고개를 돌려 내 표정을 읽은 클라크가 하늘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난 레드문 때, 마을에서 난리가 났다는 건 설명했지?”

“아, 네. 그랬죠.”

갑자기 몇백 년 만에 블루문이 떠올랐고, 그 때문인지 소초 아래의 봉인된 유적에서 문제가 발생했었다.

웬 괴물이 있다고 했었는데······ 자세한 건 아직 나한테 말해줄 수 없다고 했지.

“그 일 때문에 점검을 올 거다. 수도에서 말이지.”

제국 수도에서 나오는 점검이라······.

이곳에 온 이후 본 높으신 분들이라고는 백작가 사람밖에 없어서 모르겠는데, 어떤 사람들일까?

괜히 내가 긴장되네.

“아, 그럼 저는 나중에 다시······.”

내가 눈치껏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클라크가 읊조렸다.

“늦었군. 온다. 정수, 대열을 맞추고 서 있어.”

클라크의 말대로, 저 먼 하늘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삐이익─!

온몸을 굳게 만드는 날카로운 포식자의 울음이 하늘을 울린다.

그리고, 하늘의 점처럼 보였던 것들이 순식간에 날아와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Lv.110 제국 비병대 그리핀】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몬스터 그리핀.

놈들이 편대비행을 하며 마을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뿌우우.

나팔 소리와 함께 그리핀 편대가 마을 근처의 공터를 향해 강하했고, 곧 큰 진동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쿠우웅!

나는 팔을 들어 모래바람을 막으며, 실눈으로 그리핀 편대가 착륙한 곳을 응시했다.

철걱, 철걱.

모래바람 사이로 점점 가까워지는 갑옷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클라크가 외쳤다.

“군단장님께, 경례!”

“충!!”

후우웅!

한순간 바람과 함께 먼지가 걷히며, 클라크보다 거대한 덩치에 포마드로 올린 머리, 날카로운 눈매에, 한쪽 눈에는 안대까지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Lv.160 제국 군단장 허크 맥켈란】

잠시 경비대원들을 훑어보던 허크가 입을 열었다.

“바로.”

군단장이 경례를 받아주자, 경비대원들이 군기 잡힌 모습으로 손을 내리며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나는 차렷 자세로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살폈다.

클라크를 처음 봤을 때는,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않았다.

그러나, 저 허크라는 남자에게서는 위험한 냄새가 난다.

여태까지 백작가의 귀하신 분들은 라면 같은 거로 회유할 수 있었지만, 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진하게 풍기는 죽음의 냄새.

오히려, 목이나 안 베이면 다행이겠는데?

허크는 생긴 것과 딱 맞는 저음으로 물었다.

“지하에 있는 놈은, 그 이후로 잠잠한가?”

“블루문 이후, 발작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습니다!”

역시 봉인된 지하 유적의 괴물 때문에 온 거구나.

그때 들었던 흉포한 짐승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무려 레벨 110의 몬스터, 그리핀의 소리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짙은 공포를 느꼈다.

그래, 마치······ 지금 허크를 보고 느끼는 공포처럼 말이다.

보고를 들은 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라. 상태를 보지.”

나는 얼떨결에 경비대원들의 끝에 서서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마을 중앙의 탑 아래에 서서 허크와 클라크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차마 묻지도 못한 채 한 10분이 지났을까?

쿵! 쿠르릉······ 쿵! 쿵!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굳은 표정으로 탑을 주시하는 제임스에게 조용히 물었다.

“제임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사실, 나도 말단이라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아마, 괴물과 싸우고 계실 거라는 것밖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는데, 블루문 이후로 예상 밖의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밖에는 아는 게 없군.”

꽤 강한 지진과 함께,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 쇠와 쇠가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가가각!

얼마간 울음과 쇠 긁히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고요가 찾아왔다.

그리고, 탑의 지하로 내려갔던 클라크가 달려 나오며 다급하게 외쳤다.

“포션! 포션을 가져와! 최상급으로!”

하지만, 클라크는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데······.

“호들갑 떨지 마라.”

지하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걱, 철걱.

이내 클라크와 함께 지하에 들어갔던 군단장 허크가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투둑, 툭.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번쩍번쩍 빛이 나던 전신 갑옷은 이곳저곳이 찢겨 졌고, 그 틈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단장과 함께 그리핀을 타고 왔던 기사들이 뛰어가 상처를 살폈다.

“군단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래. 오늘은 녀석이 조금 앙칼지더군.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습격할 줄이야. 그래도, 결계를 넘지 못하는 건 다행이군.”

레벨 160의 군단장의 갑옷을 찢고 상처를 입히는 괴물이라니, 대체 정체가 뭐지?

나는 그동안 내 발밑에 숨어 있던 죽음을 알아채지 못한 것에 얼어붙었다.

군단장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이며, 마을과 경비대원들을 훑어보았다.

“단순히 블루문 탓인지, 아니면 뭔가를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어도 이변이 생긴 건 분명해. 클라크.”

“예, 군단장님!”

“놈이 이렇게 신경이 곤두선 걸 보면, 단순히 블루문 때문이 아닌 것 같군.”

“그렇다면······.”

“혹시······.”

군단장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경비대원들을 훑었다.

대원들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최근에 수상한 자는 없었나?”

군단장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을 때, 나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크게 떨었다.

젠장, 정말 그 괴물이 블루문에 반응한 거라면, 나에게 책임이라도 묻는 건가?

“블루문 이외에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만, 확인하겠습니다.”

그때, 클라크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정수. 혹시, 요즘 수상한 사람 본 적 없나?”

이건, 확실하게 경비대원 신분을 입증해서 나를 구해주려는 건가?

진짜 고마워요, 클라크.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답했다.

“없습니다.”

클라크는 경비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순찰 중, 수상한 이를 본 적이 있나? 사소한 것도 좋다.”

그 말에 경비대원들이 고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대원 조지가 손을 들었다.

“그래, 조지. 누구지?”

조지는 머뭇거리면서 내 쪽을 바라보면서 속삭였다.

설마, 나를 넘기려고 하는 건가?

조지, 저 배신자!

하지만, 조지가 팔아넘긴 건 내가 아니었다.

“사실, 제임스가 조금 수상합니다. 얼마 전부터 빨래를 너무 잘하더군요. 얼룩도, 냄새도 싹 사라집니다. 사실, 검술을 쓰는 척 위장하고 잠입한 마법사가 아닐까요?”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있던 제임스를 본 거였어?

너무나도 진지하게 제임스를 팔아넘기는 조지의 모습에, 나는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준 빨랫비누 덕분인데······.

최근 마을에 온 수상한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봐도 나인데, 이 새끼들, 연기를 잘하는 거야,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거야?

제임스는 당황한 나머지 손사래를 치며 외쳤다.

“저는 진짜 아닙니다! 정말 마법이라고는 쓸 줄도 모른다고요! 마법을 쓸 줄 알면, 빨래할 때 굳이 냇가까지 가겠습니까? 요리할 때 굳이 모닥불을 피우겠냐고요! 제가 경비대에 얼마나 헌신했는데, 억울합니다!”

제임스가 필사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자, 허크는 짧게 혀를 찼다.

“쯧. 됐다. 경비를 계속하도록. 수상한 자가 보이면 즉시 보고해라.”

허크는 왔을 때와 같이, 그리핀을 타고는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군단장이 떠난 뒤, 나는 조지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조지. 제임스가 빨래를 잘하기 시작한 건, 내가 준 물건 덕이에요.”

“아, 뭐야. 그런 거였어? 진작 말을 하지.”

조지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런데 조지, 대체 뭐에요? 무슨 일인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저도 나름 명예 경비대원인데.”

그러자 조지는 큼, 하고 헛기침하더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 이건 비밀인데······ 마을 아래에는 괴물이 봉인되어 있다는 건 이미 들었겠지?”

“아, 네. 전에 대장님께 들었어요.”

“그래. 그 괴물 말이야, 사실 옛날엔 용사들과 함께 마왕과 싸웠던 영물이라더라고. 그런데 용사들이 사라진 이후로 통제 불능이 되었다더군.”

조지의 말에, 한순간 소름이 끼쳤다.

“통제 불능이요? 그럼······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고 그러는 거예요?”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선대, 그 선대의 선대, 그 선대 황제 폐하의 화를 불렀어.”

“대체 무슨 일이······.”

뭘 했기에 제국 황제의 분노를 산 걸까?

조지는 주위를 살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제국 수도의 종탑이란 종탑은 다 올라가서 앞발을 휘둘러 종을 떨어트리고 다녔다더군.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벌어지고 만 거야.”

“그 일이라면······.”

꿀꺽.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을 떠올리며, 손에 땀을 쥐었다.

“바로······ 황제 폐하의 동상을 밀어 부순 거지. 딱 목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게 너무 섬뜩했던 폐하의 분노로 벌을 받아 봉인되었어.”

그러니까, 영웅들과 함께 세상을 구한 괴물이 종탑을 부수고 황제 동상을 부수어서 봉인되었다는 거지?

잔뜩 긴장했던 나는 허무한 나머지 몸에 힘이 탁 풀려버렸다.

“뭐, 세계를 구한 괴물이니까, 봉인으로 끝난 거겠지. 사실, 죽일 방법도 없······.”

조지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조지의 말을 끊고 살기가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번에는 라면을 먹다가 기사단장님께 걸리고, 이번에는 기밀을 유출하다 나에게 걸려? 조지, 자네 정말 눈치가 조졌구만?”

조지는 딱딱하게 굳어, 마치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목을 돌렸다.

“대, 대장님?”

조지가 클라크의 얼굴을 확인하고 도주하려던 찰나.

벼락같이 움직인 클라크의 손이 조지의 귀를 잡아챘다.

“이 자식이, 진짜! 저번에 혼난 거로는 정신을 못 차렸구먼!”

“아아아! 대장님! 아악! 귀 떨어집니다, 진짜로! 아아!”

“오냐, 듣지 못하면 흘리고 다닐 정보도 없을 테니, 이 기회에 이 귀를 찢어주마!”

정말 뜯어버릴 기세로 한참이나 조지의 귀를 잡고 흔들어대던 클라크는 조지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정수.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거로 하지. 좋은 것 없는 이야기야.”

“하하······ 네.”

역시 조지는 폐급이었군.

가끔 눈치 없이 행동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벼운 놈일 줄이야.

어느 군대에나 이런 스타일이 있는 건가?

그래도 뭐, 사람은 좋으니까.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귀를 잡고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조지를 보다가 방긋 웃었다.

“물론이죠! 저는 눈치가 빠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하아, 오늘 진짜 별것도 안 했는데 진이 쭉 빠지네.”

하긴, 레벨 160짜리 괴물을 만났고, 지하에 있는 그보다 더한 괴물의 존재도 알게 됐다.

진이 빠질 만하지.

하지만, 그 덕에 느슨해진 등탑 생활에 긴장감이 올라오긴 했다.

여태껏 맹하고 순박하면서도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서 그렇지, 아까 그 냉철한 군단장 허크라던지, 지하의 괴물에게 공격받게 된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

잠시 잊었을 뿐, 98층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세상이니까.

“역시, 더 강해져야겠어.”

그래서, 나는 아카식 트레이닝 룸을 찾았다.

빠르게 강해지는 데에는 트레이닝 룸만한 게 없으니까.

그런데.

“어라?”

괴물의 난동 때 일어난 지진 때문일까?

트레이닝 룸의 안쪽 일부 벽이 무너져있었다.

“세상에, 대체 지진이 얼마나 셌으면 트레이닝룸까지 무너져? 그런데······ 저건 뭐지?”

트레이닝 룸의 끝 쪽에, 처음 보는 새로운 통로가 생겼다.

역시 자연적으로 생긴 통로 같지는 않은데······ 군단장 허크와 괴물이 싸운 여파가 여기까지 미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또 다른 복도로 이어졌다.

원래는 다른 문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공간 같은데······.

“이렇게 들어가도 되는 건가?”

하지만 이곳은 아카식 워리어를 키우기 위한 공간.

위험한 요소가 있다고 한들, 죽이려 들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통로에 끝에는 이 유적의 입구에 있던 석문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석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문에 손을 대었다.

【자격요건 확인 중······】

【‘아카식 아머리’의 소유를 확인했습니다】

【워프 게이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쿠구구······.

석문이 열리자, 작은 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워프 게이트라고?”

나는 천천히 방을 살폈다.

방 안에는 낡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을 뿐,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거라면, 벽면에 빼곡하게 박혀서 누를 수 있을 것처럼 생긴 돌과 그 옆에 그려져 있는 이상한 낙서들 정도?

나는 버튼과 낙서를 살폈다.

“보자······ 잠깐, 낙서가 아니라 언어인가? 워프 게이트 사용법······ 뭐야? 왜 이게 읽혀?”

분명히 한글은 아닌데, 저절로 읽힌다.

“설마······ 아카식 아머리 덕분에 읽히는 건가?”

내가 추론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뒤, 옆에 적힌 낙서······ 가 아니라, 고대어 같은 것을 읽어내렸다.

“1. 마나 스톤 삽입, 2. 버튼을 누르고, 3······.”

나는 빼곡하게 자리한 버튼을 바라보았다.

1부터 98까지 적혀 있는 버튼들.

“잠깐, 이거 설마······.”

분명히, 이 방의 정식 명칭은 워프 게이트라고 했지?

내가 있는 층이 98층이고, 제대로 된 탑은 1층부터니까······.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비유하자면, 이건······.

“뭐야. 나 지금, 엘리베이터 찾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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