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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39화 (39/69)
  • 귀찮은 일(4)

    귀찮은 일(4)

    다음 날.

    고아원을 찾은 아이들 사이에서 썩 반갑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김기태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저번에 마주치지 말자고 했는데, 설마 고아원까지 기어들어 올 줄이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거지 이거.

    나는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뭐, 후배가 여기서 연습한다길래. 우리, 옛날 일은 털고 등탑자끼리 열심히 후학 양성을 한번 해보자고. 이제 어른이잖아?”

    김기태가 손을 내밀며 씩 웃었다.

    그 웃음에 담긴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일 정도로, 환하게.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나를 괴롭히지 못할 때는 나 대신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까지 괴롭히던 놈이 쉽게 변할 리 없지.

    하지만, 상관없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 온 건진 모르겠지만, 이제 이런 놈에게 당할 내가 아니니까.

    “그래, 뭐. 옛날 일은 털고, 잘 지내보자.”

    녀석의 손을 마주 잡고 가볍게 흔든 뒤, 나는 몸을 풀었다.

    그 사이, 민희가 다가와 굳은 얼굴로 속삭였다.

    “오빠. 저 사람, 오빠 학교 다닐 때, 막. 그······ 짜증 나게 굴었던 그 양아치 아니야?”

    “맞아.”

    그래, 민희도 기억할 정도로, 나를 못살게 했던 놈이다.

    나도 성격상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저런 놈들이 으레 그렇듯이 패거리로 나쁜 짓을 해대서 골치 아팠었지.

    “그런데, 괜찮아? 오늘도 오빠 괴롭히러 온 거면 어떡해?”

    “이제 당할 일 없어. 걱정하지 마.”

    민희는 복잡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SNS를 보여주었다.

    “저 사람이 이 사람 맞지? 저 사람 3년 동안 벌써 15층 가까이 올라갔다나 봐. 러브콜도 엄청 받는 것 같은데······ 정말 괜찮아? 투견길드 아저씨들 부를까?”

    김기태의 SNS에는 각종 길드에서 온 제안에 관한 이야기와 몇 층을 클리어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자신에 관한 정보를 흘리는 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바보짓이지만, 많은 등탑자들이 허세를 포기하지 못하지.

    저 녀석도 그런 부류다.

    나는 걱정 가득한 민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맞는데, 걱정할 거 없어.”

    이제, 내가 더 강하니까.

    “자, 얘들아, 몸 대충 풀었으면, 이제 모여서 연습 한 번 해보자.”

    ““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이, 김기태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아이들에게 다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물었다.

    “정수야. 그래도 이 중에서는 우리가 탑을 오르는 선배들이잖아? 선배로서, 진짜 등탑자들의 실력을 조금 보여줄······ 아, 너는 아직 너무 낮은 층이라서 좀 어려우려나?”

    명백하게 시비조인 말투에 입에 걸린 조소.

    잡담하던 아이들이 한순간 입을 닫고 우리에게 집중했다.

    이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그리고, 평소라면 들릴 리 없는 거리.

    저 멀리서, 민희가 황인철에게 속삭이는 게 들려왔다.

    “야, 황인철! 네가 좀 말려봐! 네가 데려온 거잖아!”

    “아니, 내가 무슨 수로 말려? 둘 다 나보다 강한데? 그리고 내가 데려온 거 아니야!”

    감각이 조금 더 예민해진 건가?

    이런 곳에서 강해진 걸 느끼게 될 줄은 몰랐네.

    강해진 김에, 이 지긋지긋한 연도 깔끔한 끝을 맺는 게 좋겠지.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세상이 무섭다는 걸 좀 알려줘야겠어.

    “내가 몇 층 등탑자인 줄 알고?”

    “딱 보면 알지, 새끼야. 왜? 싫냐?”

    “뭐, 나도 좋지. 그 전에 몸 좀 풀까?”

    “뭐?”

    “테니스 어때? 너 운동은 다 잘했잖아. 내가 요즘 배드민턴이나 테니스에 관심이 좀 있거든. 마침 테니스 좀 치려고 했었는데 네가 왔기도 하고.”

    굳이 검을 들 필요도 없는 상대다.

    가벼운 테니스라고 하더라도, 이놈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다행히도, 멍청한 김기태는 내가 던진 떡밥을 제대로 물었다.

    “테니스? 갑자기? 허, 어이가 없네······.”

    나는 공을 튀기면서 김기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라켓을 내밀었다.

    “한 판만 치자.”

    “그런데 네 말대로 나, 운동은 다 잘하는데 너는 라켓 쥐는 법은 알긴 하냐?”

    역시, 마음을 바꿔 먹기는 무슨.

    이제는 시비 걸려는 의도를 숨기지도 않네.

    나는 조소하는 김기태를 보며 마주 웃어주었다.

    “그럼. 이제 나도 그런 거 배울 여유가 생겨서 말이야. 가볍게 랠리나 좀 하자. 한 수 가르쳐 줘.”

    *

    김기태는 테니스 라켓을 뒤지면서 얼굴을 구겼다.

    ‘저 새끼, 동생들 앞이라고 가오잡는 것 좀 봐라. 옛날 기억 좀 살려줘야겠는데? 철저하게 짓밟아서 교육하고 그다음에는 서리 길드에서······ 흐흐흐.’

    그런 생각으로, 김기태는 손에 맞는 라켓을 잡아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와, 다 새 걸로 사놨네? 정수, 이제 진짜 이런 취미 즐길 정도로 여유가 생겼구나?”

    “응. 요즘 배드민턴도 좀 배우고 있거든. 고수들한테.”

    “캬! 예전에는 교복도 기워입더니. 서브는 네가 해라.”

    김기태가 조소하며 테니스공을 던졌고, 그걸 받아 자세를 잡는 김정수의 얼굴이 굳었다.

    ‘새끼, 고작 이걸로 열 받았나 진지하게 하려나 본데? 자세를 보니 테니스도 좀 배웠나 보네. 오히려 좋아.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찍어 눌러주마.’

    김기태가 자세를 잡고 외쳤다.

    “드루와!”

    김정수가 공을 하늘로 공을 띄웠다.

    김기태는 곧장 반격할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쾅─! 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마치 소닉붐과 같은.

    .

    .

    .

    .

    김기태, 그는 탑을 오르고 있었다.

    “흐읍, 하앗!”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간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휘어잡는 것으로 남들의 머리 위에 당당히 설 싹을 보였다.

    바로, 우두머리! 지배자가 될 운명!

    그런 운명을 타고난 김기태였기에, 그 누구도 김기태보다 빨리 탑을 오를 수는 없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먼저!

    마침내, 그는 서리 길드의 마스터가 되었고, 길드 최고의 미녀이자 실력자인 한슬기 팀장을 애인으로 두었다.

    “기태 씨. 드디어, 내일이면 최상층의 문을 여는 거야.”

    “아아. 그렇지.”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강인한 모습이었던 한슬기의 얼굴에,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수심이 떠오른다.

    “기태 씨는 무섭지 않아?”

    “그런 건, 탑을 들어오기도 전에 버렸어. 걱정하지 마, 마이 슈가. 꼭 최종 보스를 사냥하고, 당신을 지켜 보일 테니까.”

    “어멋, 기태 씨······  너무 듬직해.”

    품 안으로 폭 안겨 오는 한슬기를 향해 씩 웃어 보이는 김기태의 송곳니가 빛났다.

    마침내, 탑 꼭대기를 공략하러 가는 길.

    “서리 길드 만세!”

    “인류의 희망, 김기태! 꼭 탑을 공략해주세요!”

    “킹갓제너럴챔피언 등탑자 김기태! 최고다!”

    탑 입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환호.

    그 열렬한 환영과 함께 걸어간 길의 끝에는, 꼭대기 층에 오를 때까지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이 있었다.

    “어이, 마스터. 나는 준비 됐다고.”

    “이 끝에 무엇이 있든, 당신과 함께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흥, 세상 저 혼자 사는 것처럼 잘난 놈. 마음에 들지 않지만, 클리어에는 문제가 없겠지.”

    김기태는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되었다.

    우정! 사랑! 그리고, 평화.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한 최종 결전이, 지금 시작된다!

    “자, 가자!”

    탑의 꼭대기로 넘어가는 포탈.

    그것을 넘은 김기태와 동료들은 파죽지세로 전진하며, 마왕의 탑에 도착했다.

    “이제 최종 보스야! 다들 긴장해!”

    꿀꺽.

    누군가가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끼이익.

    마왕성의 문이 천천히 열리는 것을 보며, 김기태와 동료들은 최종 결전을 준비했다.

    마침내, 마왕성의 문이 활짝 열리며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포의 대상, 만물의 적, 피에 굶주린 학살자.

    그 정체는······.

    【Lv.99999 최종 보스 테니스공】

    “어? 저게······ 마왕?”

    마왕의 정체를 확인한 김기태가 멍하니 서서 얼빠진 소리를 냈다.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김기태!”

    “젠장, 마스터가 현혹 마법에 걸렸다!”

    “마스터, 피해!”

    그러나, 김기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테니스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김기태는 생각했다.

    ‘아, 저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다.’

    쾅─!

    테니스공에 적중한 기태의 몸이 허공을 부유한다.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찰나의 순간, 김기태는 깨달았다.

    이곳이, 자신의 최후라는 것을.

    ‘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한 방울의 눈물이 눈을 타고 흐른다.

    반짝─

    하지만, 김기태의 의식은 끊기지 않았고, 이내 눈이 번쩍 뜨였다.

    어마어마한 통증과 함께, 주위에 보이는 것은 삭막한 풍경.

    이건, 옛날에 본 적 있는 풍경인데?

    “여긴······ 김정수네 고아원?”

    김기태는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으윽, 윽······ 회, 회귀인가?”

    그리고, 그의 앞으로 테니스공 하나가 굴러갔다.

    퉁! 텅텅텅······

    김기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으악! 마, 마왕! 회귀까지 쫓아오다니!”

    김기태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려다가 몇 번이나 넘어지며 뒤로, 더 뒤로 도망쳤다.

    그리고, 마침내 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어, 어어?”

    그가 고개를 돌리자, 황인철을 비롯한 아이들이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다리에 부딪힌 김기태를 내려다보며, 황인철이 당황한 투로 물었다.

    “기, 기태 선배?”

    “이, 인철아, 어떻게 된 거냐?”

    “그, 그게 말이죠······.”

    황인철이 답변을 망설이는 사이, 김정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괜찮냐?”

    “괜찮냐고?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악에 받친 김기태의 물음에, 김정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테니스 라켓을 내밀었다.

    “무슨 짓이라니? 서브한 건데?”

    “뭐? 서브?”

    잠시 김기태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자, 황인철이 다가와 속삭였다.

    “형, 공에 맞고 10분간 기절해계셨어요.”

    “헉, 서리 길드의 마스터인 내가 공에 맞고 기절했다고? 젠장, 역시 Lv.99999짜리 마왕인가?”

    “형,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황인철이 안쓰러운 얼굴로 김기태의 어깨를 흔들고 있을 때, 미소를 지은 김정수가 김기태를 향해 테니스공을 내밀며 물었다.

    “기태야. 서브도 놓치면 어떡하냐? 일어났으니까······ 다시 시작할까?”

    통, 통.

    김정수가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는 테니스공을 본 김기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 나, 나! 급한 약속이 생겨서 먼저 가본다!”

    김기태는 고아원의 내리막길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테니스 라켓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그 모습을 보던 김정수가 걱정스럽다는 듯 외쳤다.

    “먼 길 왔는데 그냥 가면 어떡해? 애들한테 한 수 가르쳐줘야지! 최고의 유망주 기태야! 나중에 또 와! 그때는 테니스 꼭 쳐보자!”

    물론, 입에는 진한 웃음이 걸린 채로.

    김정수의 옆에 선 황인철은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황망하게 쳐다보았다.

    “허······.”

    황인철의 어깨에 손을 올린 김정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에휴, 인철아. 이번에는 틀린 것 같다. 다음에는 누구 데리고 올 거야?”

    “제, 제가 데려온 거 아니에요! 진짜 오지 말라고 했는데, 오겠다고 악을 쓰는 바람에······ 그런데, 정수형.”

    “왜?”

    한순간, 억울함을 토로하던 황인철의 눈빛이 빛났다.

    “저도 테니스 가르쳐주시면 안 돼요? 그······ 서브부터······.”

    *

    김기태를 쫓아낸 후, 나는 드디어 평화롭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재수는 없지만, 확실히 기초가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황인철이 제일 빨리 알아듣고 열심히 하긴 했다.

    하지만 재능의 벽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

    나는 그걸, 민희를 보면서 느꼈다.

    “흡, 흐읍!”

    칵, 카각!

    민희의 몸이 빙글, 돌며 내가 휘두르는 검을 막았다.

    박자를 쪼개고 들어간 꽤 날카로운 공격이었는데, 유연하게 움직여 검을 틀다니, 역시 센스가 좋다.

    “그만. 여기까지.”

    “하아, 하아. 오빠 나랑 대련할 때만 너무 빡세게 굴리는 거 아니야?”

    “아니거든?”

    나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내가 빡세게 굴리는 게 아니라, 실력을 어느 정도 드러내지 않으면 막지 못하는 거다.

    내 동생이지만,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왔지?

    스킬이고 아이템이고 전부 봉인한 채로 대련하는 게 조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레벨 차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종종 날카롭게 파고들어 오는 민희의 검은 나조차 당황 시킬 때가 있단 말이지.

    황인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스킬과 아이템을 봉인한 채 순수한 신체 능력으로만 따지면, 민희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다.

    무기를 다루는 실력도 민희가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정말, 무서운 재능이 아닐 수 없네.

    민희를 보고 있으면, 제임스가 왜 처음에 나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이야기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렇게 스파링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있을 때, 투견길드 사람들이 찾아왔다.

    “뭐야, 다들 끝난 분위기네요?”

    “아, 네. 무슨 일 있으세요?”

    “별 건 아니고, 이번에 등탑자용 에너지 드링크가 나와서 사 왔는데, 맛 좀 보시라고 가져왔어요.”

    나는 투견길드원이 내민 캔을 받아들였다.

    마나 체력 더블 회복! 타워 익스프레스라······ 이름이 촌스러운 것만 빼면, 평범한 에너지 드링크 같은데?

    나는 캔을 따서 들이켰다.

    딸깍, 꿀꺽, 꿀꺽.

    【타워 익스프레스를 섭취합니다】

    ─2시간 동안 마나 회복속도가 10% 추가됩니다.

    ─2시간 동안 자연치유력이 5% 추가됩니다.

    ─2시간 동안 근력이 5% 추가됩니다.

    “크. 맛은 뭐, 먹을만한데, 성능이 괜찮네요.”

    “그치? 맛도 별로고 가격도 꽤 나가는데, 성능 때문에 찾아 먹더라고요.”

    “그래요? 이거 한 캔에 얼만데요?”

    꿀꺽, 꿀꺽.

    남은 캔을 털어먹던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한 캔에 5만 원. 그것도 심지어 행사 중이라서 20% 세일.”

    “푸후으읍! 콜록, 콜록! 세상에, 이게 그렇게 비싸다고요?”

    가격에 경악한 나는 사레가 들려 연신 기침을 뱉었다.

    성능이 괜찮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싼데?

    “예, 뭐. 경쟁사 자체가 거의 없으니 배짱장사 하는 거죠, 뭐. 거기다, 각성자가 아니라도 효과가 꽤 있나 봐요. 수험생들이 많이 찾더라고요. 너희도 마시려면 마셔.”

    “감사합니다!”

    가격을 들은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캔을 쥐었다.

    참, 나. 아주 그냥 비싸고 몸에 좋은 거라면.

    “너무 비싸서 부담이 아닌가 싶네요.”

    “에이, 김 사장님이랑 마스터랑 어떤 사이인 줄도 알고 저희 목숨도 구해주셨는데 이정도야. 이따 뵐게요.”

    “아, 네.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투견길드 사람들이 간 이후, 나는 슬쩍 캔 하나를 더 챙겼다.

    뭐, 내 돈 주고는 못 사 마셔도 남이 사주면 맛있게 먹어야지. 그게 예의니까.

    절대, 탐이 나서 그런 게 아니다.

    그렇게 피드백을 끝내고 아이들을 보낸 뒤, 나는 투견길드의 도움을 받아 뒷산의 임야를 구매했다.

    매매한 토지의 용도 변경이나 각종 법에 관련된 것들에 큰 도움을 받아서, 생각보다 편하게 새로운 약초밭을 만들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뭐, 이 땅을 사느라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털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 이상으로 벌면 그만이지!”

    적잖이 큰 땅이다.

    심지어 98층 경비대의 약초밭보다 더 크다.

    이 땅 전체가 약초로 뒤덮이면, 그건 여태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돈으로 돌아오겠지.

    98층에서 가져온 약초 씨앗이 가득 담긴 포대를 내려놓은 뒤, 삽을 들었을 때.

    삐리리─

    한수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정수야. 나다. 저번에 심은 식충식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하하. 당연히 그래야죠.”

    ─지금 실시간으로 테스트해본대. 비공개 라이브 중인데, 링크 줄 테니까 한 번 봐봐. 나도 지금 청장님이랑 같이 보고 있다.

    “아, 넵!”

    나는 한수 형이 보내준 링크를 통해, 비공개 라이브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과 투견길드의 몇 중책들이 먼저 들어와 있었고······ 영상은 드론으로 촬영하나 보네.

    나는 영상을 확인하며 진저리를 쳤다.

    “와, 근데 자이언트 로커스트가 벌써 이렇게 증식했어요?”

    ─그래. 이거, 가만히 놔두면 진짜 대재앙이다. 옛날에는 대형 길드 밥줄 갉아먹는 거 보면서 낄낄댔는데, 이제는 그럴 상황이 아니네.

    하늘이 새카맣게 보일 정도로 바글바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거대한 메뚜기 떼.

    놈들이 지나온 자리에는 날아다니는 새도, 숲을 뛰놀던 동물도, 심지어,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네.

    ─ 접촉 10초 전!

    그 검은 흐름의 경로에 식충식물 군락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렇게, 로커스트 무리가 식충식물 근처까지 도달했을 때.

    파드드득!

    자이언트 로커스트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입술처럼 생긴 식충식물의 붉은 꽃잎으로, 나방이 불꽃을 향해 제 몸을 던지듯이.

    그리고, 마침내······.

    콱!

    가까이 날아온 자이언트 로커스트를 향해, 꽃잎을 한껏 펼친 식충식물이 사냥을 시작한다.

    꽃잎 안에 돋은 송곳니 같은 돌기들이, 녀석들을 무참히 씹어 삼켰다.

    으적! 으적! 으적!

    입술에 씹힌 자이언트 로커스트들은 마비되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뒷다리만 파르르 떨다가 생을 마감했다.

    새까맣던 하늘에, 한순간 구멍이 뚫렸다.

    ─세상에······ 정수야.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한수 형은 한순간 말을 잃은 듯, 연신 감탄을 뱉어냈다.

    식충식물의 사냥, 아니 식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화면 밑에는, 녀석들이 삼킨 자이언트 로커스트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소요 시간 : 9분 38초

    ─총 327마리

    그걸 본 한수 형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정수야! 네 말대로 성공이다! 효과는 입증됐으니까, 이제 저걸 대량으로 심어서 벽을 치면 저 메뚜기 떼를 통제할 수 있을 거야.

    당연한 결과지만, 나는 씩 웃었다.

    진짜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그렇다면, 강무진 청장님께 말씀드려 주세요. 약속대로, 약초 공급 루트를 뚫어달라고,”

    ─당연하지, 임마! 그런데, 정수야. 기한도 빠듯한데, 너 정말 그 많은 약초를 공급할 수 있는 거냐?

    나는 새로 구매한 넓은 임야를 훑어보다가, 품에서 ‘만년설의 프로즌 사파이어’를 꺼내며 웃었다.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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