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은 일(3)
귀찮은 일(3)
“보디가드 진압 완료. 코브라 팀, 진입한다.”
방독면을 쓴 다섯 명의 각성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전에 딸이 납치될 뻔했으면서 이런 곳에 호위도 제대로 붙이지 않고 오다니, 멍청하긴.”
“멍청한 선택이긴 해도 실력은 확실해. ‘디아블로 컴퍼니’에서 연금술사를 원하신다. 그것도, 실력이 확실한 놈으로.”
“알아. 시작해보자고.”
짙은 독무 속으로 진입하는 코브라팀.
이들은 흑마법사들의 지령을 받아, 직접 연금술사 조합의 지부장을 납치를 시도했다.
몇 달 전부터 적당한 타이밍을 노렸지만, 좀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아 시도한 것이 가족의 납치.
그러나 그것이 실패해버렸고, 경호는 더욱 삼엄해졌다.
그러던 찰나, 지부장이 이런 외지고 노출된 곳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들에게는 행운인 셈.
뚜벅, 뚜벅.
“빨리 찾아. 곧 경찰이고 지역 길드고 들이닥칠 테니까.”
“알았다고. 근데, 디아블로 컴퍼니? 그게 뭐였지?”
누군가 물었다.
“어떤 얼빠진 녀석이야! 디아블로 컴퍼니를 통해서, 탑 꼭대기의 보스 몬스터와 소통하고 있는 거잖아! 디아블로 컴퍼니와 손잡으면, 균열을 우리 손으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는 거 잊었어?”
“아하, 그런 거였지? 균열을 통해서 사람들도 협박하고, 공포의 대상이 되어 호의호식하고?”
“그렇지! 바로 그거······ 그런데, 넌 누구냐?”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녀석들이 한순간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오른팔에서 서로를 식별하기 위한 초록빛이 흘러나왔다.
“아차차, 신호가 있었구나. 이건 생각 못 했네.”
김정수가 이마를 탁, 치는 것과 동시에, 공격 신호가 떨어졌다.
“젠장, 죽여!”
붕, 부웅!
한순간, 김정수가 있던 자리로 무기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김정수는 ‘그림자 암수’의 스킬을 이용해 녀석들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며, 공격을 피했다.
‘그림자 속은 생각보다 멀미가 심하단 말이지.’
김정수는 놈들의 틈에서 빠르게 빠져나와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겼다.
“젠장, 설마 이 마비독을 맨몸으로 견디는 게 가능한 거였나?”
“그래도 한 놈뿐이었어! 죽여!”
그 말을 들은 김정수는 씩 웃었다.
‘누가 혼자래?’
김정수는 분신을 만들어 자신의 반대편으로 보냈다.
놈들의 양쪽에서 공격하기 위해서.
처음엔, 분신의 차례였다.
파지직!
썬더 볼트가 놈들 사이, 가장 외곽에 있던 한 놈에게 적중했다.
“끄아악!”
매캐한 탄 냄새와 함께, 한 놈이 주저앉았다.
털썩.
“씨발! 저쪽이야!”
그렇게 한 곳으로 시야가 몰린 사이.
우우웅─ 콰앙!
놈들 뒤쪽에서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쐐애액! 퍼억!
그리고, 그 정체 모를 무언가에 맞은 한 명이 안개 속,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점점 작아지는 비명과 함께.
“끄아아악······!”
순식간에 두 명이 다운되자, 남은 세 명은 패닉에 빠졌다.
“씨발! 한 놈이 아닌가?”
“분명히 멀쩡한 건 한 놈뿐이었는데?”
“어디야! 나와, 이 쥐새끼들아!”
공포에 빠진 코브라 팀은 허공을 향해 마구잡이로 공격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후웅! 쾅!
쾅쾅!
건물 이곳저곳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젠장, 멍청한 새끼들아! 이러다 목표가 잔해에 깔려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모여서 방어막을 전개한 뒤, 상황을 살핀다!”
우두머리의 신호로, 코브라 팀이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 모였나?”
“예!”
“방어막을 전개한다!”
그렇게 코브라 팀이 방어막을 전개하기 위해 아이템을 사용하려던 때.
“그렇게 모여 있으면, 위험할 텐데?”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우우웅.
“쇼크웨이브.”
한순간 공기가 진동한다.
공간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의 강력한 공격.
저것에 당하면 끝인 걸 알지만, 피할 시간은 없다.
“젠ㅈ······!”
콰아앙─!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코브라 팀의 세 명이 허공에 떠올라 벽에 부딪혔다.
쿵!
세 명이 바닥에 떨어질 때는 이미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상태였다.
“끝났네. 시야가 가려진 게 오히려 편했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짙은 독무였으나, 김정수는 ‘경비대원의 노련한 눈썰미’ 스킬 덕분에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김정수는 손을 탁탁 털고는 가게 문을 열어 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연금술사를 찾았다.
그 사이, 밖에서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왜앵, 왜앵!
“세상에, 대낮에 저게 대체 뭐야?”
“누구 죽은 거 아니야? 아까는 사람이 날아와서 벽에 처박히더니······.”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독이에요! 저기요, 찍지 마시라고요!”
어느새 도착한 경찰들이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가게에 진입하지 못하고 지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길드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곧 도착한답니다!”
그때.
“어? 누군가 나온다!”
“테러리스트일 수 있다! 엄폐 후 대기!”
뚜벅, 뚜벅.
울리는 발소리.
경찰들이 긴장하며, 테이저건을 든 채 카페 입구를 겨누었다.
마침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보라색 연기를 뚫고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옆구리에는 가운을 입은 사람을 짐처럼 낀 채로.
청년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볼을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 쏘지 마세요. 납치법들은 저기 벽에 처박힌 놈 하나랑 안에 기절한 넷이 끝입니다. 아! 이분이 납치당할 뻔한 분이세요.”
청년은 다급하게 옆구리에 끼고 있던 중년 사내를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본 경찰들은 잠시 시선을 교환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김정수에게 다가갔다.
물론, 테이저건은 그대로 겨눈 채.
“기절한 남자분은 내려두고, 그대로 천천히 걸어 나오세요!”
“습, 납치범은 내가 아니라니까······.”
김정수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경찰의 인도에 따라 머리에 손을 올린 채 벽을 보고 섰다.
한 경찰이 다급하게 뛰어가, 연금술사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십니까?”
“으으······ 여긴······.”
안도원이 정신을 차렸다.
“테러 현장 밖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단순한 마비 독이었으니까요. 그보다,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분이라면······.”
“그 사람! 저 안에, 테러에 휘말린 청년이 있을 겁니다! 젠장, 찾으러 들어가야!”
“진정하세요! 혹시, 저 사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경찰이 가리킨 곳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김정수가 있습니다.
“어······ 맞습니다. 그런데 저분이 왜 잡혀 있는 겁니까?”
“아, 이 독무 속에서 혼자 멀쩡하게 선생님을 들고나와서, 납치범으로 오인했습니다. 어이! 풀어드려!”
그제야 풀려난 김정수가 안도원에게 다가왔다.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아, 예. 쓰러질 때도 부축해주신 덕분에 다친 데는 없습니다. 그런데 대체······.”
안도원은 대체 어떻게 멀쩡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김정수가 말을 끊었다.
“다행이네요. 아, 맞다. 보디가드 분들도 꺼내올게요. 건물이 조금 부수어진 것 같은데, 다치시진 않았을까 모르겠네요.”
사실 납치범들의 눈먼 공격은, 김정수가 전부 흡수하여 ‘쇼크웨이브’의 동력으로 변환했기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김정수가 독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한 경찰이 그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등탑자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아, 그럼 길드에서 증원이 오기 전에 도움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생존자 수색을 좀······ 그런데, 어떻게 저 독무 속에서 멀쩡하실 수 있는 겁니까? 경찰 소속 각성자들도 픽픽 쓰러지는 저 맹독 속에서······.”
김정수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안도원을 가리켰다.
“저분이 연금술사 조합 서울 남부 지부장이십니다. 저한테 주셨던 해독제가 유효했죠.”
안도원은 잠시 놀란 눈으로 김정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혹시 몰라서 강력한 해독제를 하나 준비해두긴 했었죠. 제가 멀쩡한 것보단, 테러범들을 제압할 사람이 마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드렸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남은 게 있다면 구매할 수 있을까요?”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시제품이라 딱 하나만 있던 거라서······.”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환기가 끝날 때까지 민간인 구출 협조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죠, 뭐.”
김정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보디가드들을 비롯해 민간인들을 카페 밖으로 옮겼다.
환기가 끝나자 경찰들이 집입했다.
그 혼란 속에서, 김정수는 안도원의 차에 탔다.
안도원이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 더 있으면 귀찮은 일에 엮이시겠죠. 나머진 제가 처리할 테니까, 우선 집까지 모셔 드리겠습니다.”
“그럼 감사하죠.”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독하신 겁니까? 분명 제 해독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따로 해독제를 드신 것 같진 않던데요? 혹시, 장비 아이템입니까?”
안도원의 물음에, 김정수는 그저 씩 웃어 보였다.
“네, 아시다시피, 탑에는 신비한 물건이 많으니까요.”
“하긴. 탑은 아직 미지로 가득한 공간이죠. 마치 인간이 아직 탐사를 마치지 못한 심해나 우주와도 같은 그런 공간.”
“음······ 그렇, 죠?”
김정수는 98층을 떠올렸다.
탑의 가장 깊은 곳이나 다름없는 그곳은 심해와 우주는커녕, 그냥 사람 사는 동네에 불과했다.
“그래서, 부탁하실 게 뭡니까? 마지막 기억으로는, 거래 얘기를 하셨었죠. 보상이 아니라 거래를 바라신다고요.”
안도원의 말에 김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수 없도록, 이번에는 좀 강하게 나가야겠어. 연금술사가 꼭 필요하니까.’
동시에, 김정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맞습니다. 저는 오늘, 지부장님과 사업 얘기를 하려고 왔습니다. 그 전에, 제가 두 번이나 지부장님을 도왔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 예······ 아, 알겠습니다. 제 능력 안에서라면, 원하시는 바를 최대한 진행해보겠습니다.”
안도원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김정수를 보며 당황했다.
처음에는 보상을 거절하는 순박한 청년 같았다가, 싸우러 갈 때는 귀찮음에 잡아먹힌 사람 같았다가, 이번에는 목숨을 구해준 값을 따지는 노련한 상인 같기도 했다.
지부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데 익숙한 그지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청년, 대체 정체가 뭐야?’
안도원이 긴장하며 침을 삼킬 때, 김정수가 말을 이었다.
“제가 꼭 만들어야 할 물약이 생겼는데, 제가 아는 연금술사도 없어서요. 그런데 마침 지부장님과 인연이 닿은 거죠.”
그 후로, 김정수는 자신이 구상 중인 물약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했다.
식충식물의 특정 성분 추출하여 벌레 유인책을 만들어보겠다는 것.
안도원은 설명을 다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충식물이라······ 그런 게 있었군요. 저는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확실히 말씀드리긴 어렵네요.”
“곧 샘플을 보내드리죠.”
“그렇다면 샘플을 확인하고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본 다음, 나중에 비서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하아. 무거운 분위기 잡는 건 역시 나랑 안 어울려.”
지부장의 차에서 내린 뒤, 고아원까지 언덕을 올라가면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이 맞지 않는 냉혈한 행세를 하려니까 힘이 드네.
그래도, 대화가 긍정적으로 끝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렇게 언덕을 반쯤 올랐을까?
삐리리─
“음? 한수 형?”
한수 형에게 전화가 왔다.
“예, 형.”
─어, 그래. 나다. 다른 건 아니고, 저번에 납품한 식충식물 있잖아? 그거 내일 테스트 들어간다. 인제에서 춘천 넘어가는 길목에 심을 예정이라고 하더라고.
“그쪽이면······ 로커스트 무리가 이동 중인 곳 아니에요?”
─그래. 마나를 때려 부어서 빠르게 발화시킨 뒤에, 무리 일부를 유인해서 성능 테스트해볼 거라고 하더라. 한 마리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아.
역시, 강무진.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는 건가.
하긴, 그러니 초반 납품 물량을 적게 받은 거겠지.
태수 형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효과가 별로면 약초 납품 계약까지 전부 파기한다는데, 괜찮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효과는 확실할 테니까.”
자이언트 로커스트보다 몇 배는 거대한 곤충도 한입에 삼키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걱정할 건 없다.
변수는, 마나 농도가 낮은 지구의 땅에서 식충식물이 제대로 발화할 수 있겠냐는 것.
하지만, 이미 윌리엄을 통해 배운 성장 팁은 다 알려줬으니, 여기에 더 깊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사업이라는 게 파트너를 믿고 하는 거니까.
내가 주제넘게 나선다고 강무진이라는 사람이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나는 태수 형과 약초 납품 날짜와 간단한 근황을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탑에서 내려와도 쉴 틈이 없네.
그렇게 고아원에 돌아왔는데······.
“이게 뭐야?”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흐압, 합!”
“조금 더 팔을 뻗어서, 힘차게!”
“후읍!”
“호흡이 흐트러지면 오래 못 움직여! 자, 하나!”
아이들이 투견 길드 사람들에게 가볍게는 체력단련부터 검술과 궁술, 격투 같은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투견 길드의 등탑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어! 김 사장님 오셨구만! 아이들이 하도 졸라대는 통에, 가볍게만 가르치고 있어. 그보다, 여긴 뭐 이렇게 애들이 다 재능이 좋아? 애들이 마음만 있으면, 키워서 길드에 데려가고 싶을 정도야.”
“하하, 뭐······.”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각성자.
그건, 마나를 다루는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들이다.
지금 와서 가장 강력한 설은, 유전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
한 마디로, 탑에서 죽어버린 부모 탓에 이곳에 온 아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탑을 오를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설령 각성하더라도, 탑에 오르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투견 길드 사람들에게 보일 재능이라면, 누구든 탐낼 재능이라는 거겠지.
물론, 지금의 나는 저 녀석들을 지킬 힘과 인맥이 있고, 옆에서 조언해줄 수도 있다.
예전에는 빚 때문에 끌려가듯이 아무것도 모른 채 탑에 내던져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꽤 많이 변했다.
쐐액, 탕!
“나이스! 주광진 허접아, 봤냐?”
“아, 씨. 이걸 김민수한테 지네. 한 판 더 해!”
활쏘기 내기를 하는 두 녀석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상황이 꽤 많이 변했지.
고아원에 이렇게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 적이 있었나?
어쩌면, 녀석들이 정말로 등탑을 원하고, 내가 키워줄 수 있다면······.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조금 더, 두고 봐도 되겠지.
그때, 저 멀리서 땀을 닦던 민희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아, 오빠!”
“어. 열심히 하고 있네.”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애들 내일 오는 거 알고 있지?”
민희의 친구들, 그중에서도 황인철이라는 자존심 높은 아이와 그 패거리는 나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 주기적으로 고아원을 찾았다.
뭐, 열정적으로 배우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가르칠 맛이 나기도 하고, 민희도 거기에 자극받나 보다.
“그게 벌써 내일이었나?”
“응.”
“알았어. 맛있는 거라도 사다 둬야겠네.”
이제 녀석들이 처음처럼 난동을 피우지는 않으니까, 평화로운 하루가 될 것 같다.
*
황인철은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말만 들어도 배가 부른 공짜 밥이지만, 문제는 소화가 안 되는 밥이라는 점이었다.
황인철의 길드 선배가 그들에게 공짜 밥과 함께 눈칫밥을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길드 선배는 인상을 찡그린 채, 황인철과 아이들을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 요즘 길드 훈련장에도 안 나오고,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다들 눈을 피했고, 잠시 선배의 눈치를 보던 황인철이 마지못해 운을 뗐다.
“그게······ 저번에 기태 선배 고등학교 동창분이 있는 고아원에 가봤다고 했잖아요? 요즘 거기서 연습하고 있어요.”
“고아원? 아아, 정수 그 허접한 새끼? 그런 새끼 있는 곳에 왜 가는 거야?”
김기태는 인상을 팍 쓰면서 물었다.
황인철은 목뒤를 긁으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냥 넓기도 하고······ 생각보다 강해서, 배울 점도 꽤 있더라고요.”
“강하다고? 김정수 그 자식이? 푸하하! 네가 좆밥인 건 아니고?”
김기태는 한참이나 폭소하다가, 황인철이 굳은 얼굴로 숟가락을 쥔 걸 보고는 차츰 웃음을 멈췄다.
“뭐야, 거기 가서 뭔 짓이라도 당하고 온 거야? 안 되겠다. 내가 가서 기강 한 번 잡아줄게. 정수 이 새끼, 많이 컸네? 언제 가는데?”
“네? 내일 가기로 하긴 했는데······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진짜로 뭔 짓 당한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 새끼, 요즘 좀 나대는 것 같아서 기강을 좀 잡을 필요가 있어.”
순간, 김기태의 눈빛이 변했다.
‘한슬기. 그 한슬기가 김정수를 두둔할 줄이야.’
얼마 전, 탑 공략을 나선 날.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김정수를 마주쳤다.
고아원에서 자란 별 볼 일 없던 녀석.
늘 전투 태세인 양 악착같이 살려는 게 너무 느껴져서 오히려 꼴 보기 싫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그래서 그날도 김정수에게 주제 파악 좀 시켜주려고 했던 김기태였다.
그러나 그것을 막아서고 김정수를 두둔한 사람이 있었으니.
무려 서리 길드의 한슬기 팀장.
그녀는 김정수의 수준을 일러주려고 했던 김기태에게 오히려 모욕을 줬었다.
‘하! 내가 그놈의 재능을 못 알아본다고? 주제 넘는다고? 누가 잘못 본 건지 알려주지.’
빠득.
김기태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이내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지 못한 채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그놈만 박살 내놓으면, 서리 길드에서 이적 제안이 올 수더 있고······ 내 재능을 알아본 한슬기가······ 흐흐, 흐흐흐······.”
“서, 선배?”
당혹스러운 황인철의 부름을 듣지도 못한 채, 김기태는 생각했다.
‘아아, 기태 씨, 내가 잘 못 봤네요! 너무 멋져요! ······ 캬!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좋겠어. 아이 이름은 뭐로 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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