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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37화 (37/69)

귀찮은 일(2)

귀찮은 일(2)

플로라는 립스틱을 비롯해 몇 개의 스킨케어제품과 파운데이션, 클렌징폼을 구매했다.

그 대금으로 ‘광포한 라이트닝 토파즈’를 주고 갔으니, 절로 콧노래가 나오네.

“이 녀석을 팔까요~ 내가 쓸까요~”

광포한 라이트닝 토파즈는 프로즌 사파이어보단 못했지만, 이 역시 천둥의 축복을 담고 있었다.

내가 사용하면, 단순히 내 마나만 전격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진짜 벼락을 끌어올 수도 있다는 거지.

윌리엄이 보여준 강력한 전격 마법, ‘저지먼트 오브 썬더’.

이 마법석 하나로 그 수준에 이르길 바라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마법을 강화해주는 스킬인 ‘마나 파훼’와 함께 쓴다면, 마법으로도 꽤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검술에서는 마나 붐을 얻은 것처럼 말이지.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토파즈를 내가 사용하기로 했다.

이제는 약 한 달이 조금 넘게 남은 균열을 막아낼 때,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려면 패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렇게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약초를 뽑는 노동도 즐겁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약초를 뽑는 데에도 익숙해져서 한 손에 하나씩 잡고 뽑아도 한 번에 뽑을 수 있단 말씀!

물론, ‘아카식 아머리’의 새로운 아이템, ‘차원의 틈’을 가득 채우려면 이 속도로도 빠듯했다.

쏙, 쏙!

나는 양손으로 약초를 마구 뽑으면서 소리쳤다.

“220만 원! 440만 원!”

돈이 이렇게 즐겁게 벌리는데 고통스러울 리가 없지.

이게 노동의 참맛인가?

“와다다다!”

나는 약초를 뽑는 족족 ‘차원의 틈’에다가 넣었다.

이 작은 주머니에 무려 30kg가 들어간다니!

1~2kg짜리 아공간 주머니조차도 수 억대에 거래된다던데······ 그럼 이건 대체 얼마짜리라는 거지?

그렇게 신나게 약초를 캐다 보니 웬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의 틈의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내용물

1)푸른 달의 상급 해독초 4kg

적용 효과 : Lv.1 해독

“아 맞다, 그냥 아공간 주머니가 아니었지?”

그저 약초를 넣고 있는 것만으로 버프를 받다니······ 이거 약초 조합만 잘해서 넣어두면 꽤 사기적인 버프가 나오겠는걸?

“희귀한 약초들은 또 어떤 버프가 있을지 궁금하네.”

뭐, 그런 약초를 얻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신이 나서 약초를 뽑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정신없이 약초를 뽑다 보니, 또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업적 획득 : 심봤다!】

【당신은 광기와 집착이 어린 약초 뽑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스킬 ‘심마니’를 획득합니다】

【심마니(패시브)】

─특별한 약초를 발견할 가능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허? 심봤네.”

들은 적이 있다.

한 가지 일을 미친 듯이 반복하면 특별한 스킬이 생긴다고 하기도 했지.

설마, 그게 약초 캐기에도 적용될 줄이야.

“참, 나. 내가 약초를 뽑으면 얼마나 뽑았다고 이런 스킬을 주냐. 뭐······ 얼추 수백 뿌리를 뽑긴 했나······?”

이러다 약초밭 씨가 마르는 건 아니겠지?

뭐, 블루문 이후로 약초는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이, 그리고 빠르게 자라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보다 특별한 약초라니 어떤 걸 발견하게 될까?

“뭐, 설마 지금 당장 발견한다거나 그러지는 않겠······.”

피식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순간.

【‘심마니’의 ‘노련한 눈썰미’가 약초의 흔적을 추적합니다】

“뭐야, 이거. 심마니의 노련한 눈썰미? 노련한 눈썰미는······ 경비대원의 스킬인데?”

당황한 나머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내 발에서 시작되어, 숲으로 향하는 푸른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스킬 두 개가 시너지를 일으킨 거야?”

탑에서 스킬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가치가 높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치가 높은 이유는, 이런 식으로 스킬들이 상호작용을 하기에 예상치 못했던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데에 있었다.

나는 나에게 오라는 듯 표시된 푸른 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그렇게까지 유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두 스킬이 만나면서 생각보다 유용해 보이는 기능이 됐다.

물론,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야 정확한 가치를 판단할 수 있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숲을 헤치고 들어가길 10분여 즈음.

푸른 길의 끝에서, 나는 유독 붉은 약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간 소름이 끼쳐 올랐다.

“저건······ 윌리엄의 약초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윌리엄이 준 약초 책 중에서도 뒷부분, 귀하고 효과가 좋으며, 숲에 사는 사람도 평생 한 번 찾을까 말까 한 귀한 약초.

저 붉은 약초는 그 약초와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설마, 폭발 꼬리 초?”

위협을 받으면 폭발하는 꼬리를 잘라내고 도망치는 도마뱀의 꼬리를 닮은 데다, 화염 속성을 품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 성질을 띠다 보니, 빙결 마법에 당할 때 걸리는 동상이나 냉기 저주를 이겨내는데 최고라는 약초인데······.

저게 진짜 폭발 꼬리 초라면, 어쩌면, 해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약초를 자세히 살폈다.

【푸른 달의 폭발 꼬리 초】

【푸른 달빛을 받아 커진 폭발 꼬리 초. 폭발 꼬리 초보다 더 큰 화염/보온/냉기 저항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 봤다······ 심 봤다!!”

눈물이 찔끔 흘러, 볼을 타고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블루문의 영향으로 효과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마, 이 뿌리 하나로 해나의 저주를 풀기는 힘들 거다.

윌리엄이 준 책에서는 적어도 열 뿌리를 모아야 약 한 병을 만들 수 있다고 적혀있었으니까.

하지만, 블루문을 머금은 이 약초를 몇 개만 더 찾을 수만 있다면······.

“해나의 저주를 완벽하게 풀어주는 것도 꿈이 아니야.”

나는 옷 소매로 눈물을 쓱 닦은 뒤, 약초를 조심스럽게 차원의 틈에 넣었다.

“해나야, 조금만 더 기다려.”

꼭 낫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고 말 테니까.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살폈고, 이내 폭발 꼬리 초를 하나 더 찾을 수 있었다.

“폭발 꼬리 초가 이미 씨앗을 뿌린 게 틀림없어.”

이 약초들의 크기로 보아하니, 이미 씨앗을 뿌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근방에서 또 자라나겠지.

더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조급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납품을 약속한 나머지 약초를 채집한 뒤, 곧바로 귀환을 준비했다.

“약초가 있어도, 약을 만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곤란하지.”

내가 특별한 약초를 쉽게 얻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해주 물약을 만드는 데에는 몇 가지 재료와 함께 꽤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연금술사.

역시, 그 사람을 포섭하는 게 먼저겠어.

“식충식물에서 벌레 유인 요인을 추출해서 가공하는 것도 해봐야 하고.”

*

지구로 돌아온 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민희를 찾았다.

“어, 오빠!”

“민희야, 저번에 그 연금술사인가 하는 사람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고 했었지?”

“응. 오빠 말대로 더 연락 안 해줬으면 한다고 했는데, 끝끝내 번호 남길 테니 언제든 연락 달라고 하더라.”

“번호 적어뒀어?”

“어? 응. 연락해보려고?”

“응. 아무래도 얘기는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민희에게 연금술사의 번호를 받아 곧바로 메시지를 남겼다.

─번호 남겨주셔서 연락드립니다. 정 사례를 하고 싶으시다면, 얼굴을 보고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해주시면 맞추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왔다.

장소는 그쪽이 이동하겠다기에, 고아원에서 가까운 시내의 카페로 정해졌다.

이거, 바쁘다는 양반이 여기까지 올 생각하다니, 생각보다 거래가 편해질 것 같은데?

딸랑딸랑.

평일 오후.

주말만큼은 아니라도, 사람이 꽤 북적이는 카페.

나는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며 사람들을 살폈다.

주위에 사람이 앉지 않는 구석진 자리.

둥근 안경을 쓰고 빼빼 마른 체구에 하얀 가운을 두르고 있는 아저씨와 덩치가 큰 남자 둘.

하얀 가운을 입고 있겠다고 했으니, 저 마른 사람이 연금술사겠지.

내가 연금술사에게 다가가려 하자, 덩치 큰 남자 둘이 벌떡 일어나며 앞을 막았다.

“김정수 씨, 맞으십니까?”

“예, 맞습니다.”

덩치들은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도, 연금술사의 허락 후에야 길을 터주었다.

이것 참,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 높은 분이긴 한가 보다.

연금술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더니 눈이 커졌다.

“김······ 정수 씨 맞으십니까?”

“예. 제가 김정수입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설마 우리 딸아이를 구해주신 분이 이렇게 젊은 분이실 줄은 몰라서 잠시 놀랐을 뿐입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금술사는 허리까지 굽히며 인사를 해왔다.

40대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리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연금술사라고 하셨죠?”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안도원, 연금술사 조합의 서울 남부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나는 최대한 놀란 티를 내지 않고 명함을 받았다.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건 예상했지만, 설마 지부장이나 되는 사람일 줄이야.

“그럼 지부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자리에 앉자마자, 지부장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딸아이를 구해주신 보답을 하고 싶어서 나왔지만, 사실 시간이 그리 많진 않습니다. 제가 오래 나와 있으면 문제가 생겨서요. 원하시는 게 있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거래 얘기를 하려면 시간이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나?

“그럼 빠르게 본론만 하죠. 사실, 보상보다는 거래를······.”

내가 거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쨍그랑!

“꺄아악!”

“이, 이게 뭐야!”

가게 창문이 깨졌다.

웬 캔처럼 생긴 물건 때문이었다. 그것은 보라색 안개를 내뿜기 시작했다.

······연막탄?

“지부장님! 피하십시오!”

두 남자가 입과 코를 가리며 지부장을 챙겼고, 지부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챙겼다.

“큭, 녀석들이 벌써······ 아마 저 때문일 겁니다. 미안합니다. 빨리 자리를 피해야 해요.”

가스는 순식간에 카페 안을 채웠고, 짙은 보라색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그런데······.

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사람들의 윤곽이 보였다.

이거 ‘노련한 눈썰미’ 스킬의 효과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누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니, 상상 이상으로 좋은 스킬인데?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엮일 줄이야.

이번에도 흑마법사들인가?

이곳은 연금술사의 보디가드들에게 맡기고, 일단은 몸을 피해야겠다.

나도 입과 코를 가리고 연금술사를 따라 건물을 벗어나려고 했다.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제독 캔디를 2정 먹는다!”

보디가드들이 입에 무언가를 넣는 것과 동시에, 무기를 빼 들고 앞으로 나아가 싸우기 시작했다.

챙, 채쟁!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둘 다 강자인지, 다수를 상대로 꽤 잘 싸우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커헉!”

“제, 젠장! 독이!”

그러나, 보디가드들의 움직임은 금세 느려져 밀리기 시작했다.

“신경독인가······ 저 사탕으로는 안 되겠군. 이걸 입에 물고 계시면 좀 나을 겁니다.”

지부장이 입에 사탕 같은 것을 물며 나에게도 하나 건넸다.

이 짧은 시간에 반응을 보고 무슨 독인지 파악하는 실력, 역시 이런 골치 아픈 상황만 아니면 같이 일하고 싶은데 말이지.

코앞까지 보라색 연기가 밀려오기 시작했기에, 나는 받은 사탕을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Lv.3 제독 캔디를 섭취합니다】

【이미 더 높은 해독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응? 더 높은 효과?”

나는 해독을 할 수 있는 스킬이나 아이템이 없는데 이미 효과가 적용 중이라니, 무슨 일이지?

그 해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차원의 틈의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내용물

1)푸른 달의 상급 해독초 20kg

2)푸른 달의 상급 회복초 9kg

적용 효과 : Lv.5 해독, Lv.3 회복, Lv.2 체력증가

그러고 보니, 아직 해독초를 납품하지 않았지.

그 덕인지, ‘아카식 아머리’의 새로운 아이템, ‘차원의 틈’에 달린 버프 스킬이 적용되고 있었다.

설마, 이게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될 줄이야?

그러나 나와 달리, 지부장은 연신 기침하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으! 젠장, 4등급 신경독인가! 이런 독한 것까지 쓸 줄이야! 큭, 녀석들이 노리는 건 저일 겁니다. 멀리 떨어져서 숨어계시면, 무사할 수 있을, 겁니······.”

지부장은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챙겨온 건 3등급 해독제라 듣지 않는 건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할 수 없지.

이 사람이 없으면, 내 계획이 전부 망가지니까.

나는 눈을 끔뻑거리는 지부장이 다치지 않게 벽에 기대어주며 말했다.

“지부장님, 한 번 더 도와드릴 테니, 나중에 제 부탁, 꼭 들어주시는 겁니다.”

“대, 대체 어떻게 해독을······.”

지부장은 이제 혀가 마비되었는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뚜벅, 뚜벅.

어느덧 전투가 끝났는지, 싸우는 소리 대신,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발소리 몇 개가 들려왔다.

“전부 기절했다.”

“진입한다.”

한 다섯 명쯤 되는 건가?

이거, 난감한 상황이지만······.

다시 말하자면, 공짜로 물약 제조를 부탁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거지.

나는 짙은 보라색 독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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