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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36화 (36/69)

귀찮은 일(1)

귀찮은 일(1)

플로라는 시녀들을 시켜서, 정수에게 지급할 대금들을 선별하여 마차에 실었다.

정수가 준 화장품 덕분에 피부가 확연하게 좋아졌다고 거듭 말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가씨도 참, 한 번 마음 먹으시면 이렇게 고집이 완고하시니······.”

하지만, 어찌 기사 된 자가 모시는 분의 자제가 험지에 간다는 것을 그냥 둘 수 있을까?

다니엘은 서둘러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반 정도 마쳤을 즈음, 이 가문의 주인이 그를 찾았다.

“다니엘, 있나?”

“예, 백작님.”

다니엘이 예를 취하려 하자, 백작은 손을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됐네. 딱딱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니. 요 며칠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잠시 걷다 보니, 근래 병사들 근무상태가 좋더군. 새벽에 조는 이를 한 명도 보지 못했어.”

백작이 흐뭇하게 웃자,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병사들을 생각해주시는 백작님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커피 덕분이었다.

“말이라도 기분은 좋군. 그런데, 내 딸아이는 요즘 어디를 그렇게 가는 건가?”

백작의 물음에, 다니엘은 잠시 난처한 기색을 표하다 입을 열었다.

“그게······ 톨른 마을에 갑니다.”

톨른이라는 말에, 백작의 표정이 굳었다.

“톨른이라고? 공녀가 그 위험하고 외진 곳에는 무슨 일로?”

톨른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곳이었으나, 몬스터가 등장하는 큰 숲과 접경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을의 지하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기도 했고.

“저, 그것이······.”

“바른대로 고하게. 내가 자네가 말을 돌리려는 걸 모를성싶은가?”

둘러대기는 글렀다는 걸 깨달은 다니엘은 헛기침하고 입을 열었다.

“최근 톨른에 외지인 하나가 왔는데, 신비한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 병사들이 야간 근무 태도가 좋은 것도 그 덕분이지요.”

“신비한 물건을 파는 외지인? 어디서 왔다고 하던가?”

“대륙 남부입니다.”

“남부라니! 남부 놈들을 어떻게 믿나! 감히 사특한 물건으로 우리 백작가의 병사들과 후계들을 현혹하려 들다니! 당장 잡아 오도록 하게!”

백작이 얼굴을 구긴 채 분개하자, 다니엘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백작님. 외람되오나······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직접 그를 겪어보았습니다.”

백작은 잠시 다니엘과 시선을 맞췄다.

다니엘의 눈에 담긴 신뢰와 확신.

그것을 본 백작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내 그 이방인은 모르지만, 자네를 모르는 건 아니지.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지만.”

백작은 목소리를 나지막이 깔고 말을 이어갔다.

“······내 영지 안에서 기이한 일을 일삼고 있는 자라면, 섣불리 넘길 수 없지. 내가 직접 지켜볼 것이니, 자네도 긴장을 풀지 말게.”

“알겠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처사였다. 백작에게는 영지를 수호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니엘은 괜스레 걱정이었다.

정수와 했던, 소문을 퍼트리지 말라는 약속도 있었거니와 백작이 보기보다 엄한 성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식사 전이라면, 식사나 같이 들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식당에 앉았을 때.

백작은 다시 한번 얼굴을 구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식사 상태가 왜 이러지?”

그의 말에, 식사 시중을 들던 사용인이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주방장이 급하게 고향에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허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게······ 셰프 슬레이어가 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부리나케 고향에 내려가는 바람에, 말릴 새도 없었습니다.”

“허, 셰프 슬레이어? 허허. 최근 악명 높다는 그 미식가 놈 말인가? 그런 헛소문을 믿고 도망가다니! 돌아오면 단단히 혼쭐을 내야겠군. 식사를 치우게. 도저히 입에 못 넣겠군.”

백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회색 털이 풍성한 고양이 한 마리가 도도한 걸음으로 천천히 식당에 들어섰다.

“냐아!”

고양이가 마치 제집인 것처럼 식당을 누벼도, 아무도 고양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방금까지 주방장을 혼쭐내겠다며 분통을 터트리던 백작마저 어느새 분노는 사르르 녹아 없어진 것처럼 웃으며 고양이를 반겼다.

“아유, 우리 루시 왔구나? 배가 고파서 온 거냐?”

고양이 루시는 잠시 멈춰 백작을 바라보다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곤 식탁 위로 올라갔다.

루시는 잠시 음식들을 돌아보다가, 접시를 테이블 밑으로 밀쳐버리곤 따뜻한 수프가 담겼던 자리에 몸을 말고 누워버렸다.

“허허, 녀석. 따뜻한 자리를 찾아온 거였군.”

백작은 조심스럽게 루시에게 다가가 목을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하아악!”

루시가 하악질을 하며 경고했고, 백작은 잠시 망설이다가 녀석의 뒤로 돌아가 등을 노렸다.

백작의 두 번째 시도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와옹!!”

촤악!

루시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휘둘렀고, 흰 식탁보에 핏방울이 튀었다.

얼굴을 긁힌 백작이 황급히 상처를 누르며 몇 발자국을 물렀다.

“크으!”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루시, 네 이놈! 어디 백작님께 함부로 발톱을 세운 것이냐! 아무리 너라도 용서할 수 없다! 당장 목덜미를 잡아 창밖으로 내던져야······.”

다니엘이 분노하며 루시를 향해 다가가자, 백작이 손사래를 쳤다.

“됐네! 괜찮네. 고양이가 뭘 알겠는가. 심기를 읽지 못한 내 잘못이지.”

“백작님, 아무리 그래도······.”

“괜찮대도. 허허, 녀석. 부인이 떠난 지도 이제 5년이 지났건만, 플로라 말고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구나.”

백작은 루시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시는 사별한 부인이 생전에 분신과도 다름 없게 여기던 녀석이었다.

“아마, 플로라가 부인을 빼닮아서 그런 거겠지. 플로라가 크는 걸 보고 있으면, 나조차도 그녀가 생각날 정도니까 말이야.”

백작의 눈망울이 서글서글했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면서 말을 삼켰다.

“부인의 빈 자리를 내가 대신하고 싶지만, 참 쉽지 않소, 부인. 고양이 한 마리와도 친해지지 못하니······ 어렵구나. 어려워.”

백작이 창밖의 먼 산을 응시했다.

한참이나 정적이 맴돌다가, 백작이 무겁게 입을 뗐다.

“수도의 동물 사육사에게 보낸 서신에 답은 왔는가?”

백작의 물음에 사용인이 고개를 숙였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허어. 이것 참······.”

“문제가 생겨서 그런 거겠지요. 다시 서신을 보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래. 부탁하지.”

백작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

귀환 스킬의 쿨타임이 하루 남은 시점.

백작가 영애 플로라가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얼굴을 가리던 큰 부채 없이 말이지.

역시, K-코스메틱 효과 한 번 확실하구만?

“저번에 약속했듯이, 확실한 효과를 봤으니 보답을 드려야겠죠? 뭘 줘야 할지 몰라서 몇 개 챙겨 봤는데,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요.”

“아, 네.”

플로라의 말에, 시종이 보석함을 하나 들고 왔다.

“여기에 든 보석을 전부 합치면 큰 대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죠.”

“헉.”

“전부 값진 거니, 뭘 골라도 값은 충분할 거예요.”

마침내 보석함이 열렸고, 수많은 보석 중에서 가장 빛나는 세 개의 보석이 눈에 들어왔다.

‘저 세 개가 진짜다.’

나는 눈을 빛냈다.

각각 붉은색, 하늘색, 노란색으로 빛나는 보석들.

그러고 보니, 명예 경비대원이 되면서 아이템을 감정할 수 있는 스킬을 얻었지?

나는 세 보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노련한 눈썰미로 아이템을 감정합니다】

그리고, 마법석의 가치를 알아본 나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고결한 플레임 루비(화염)】

【봉인된 프로즌 사파이어(빙결)】

【광포한 라이트닝 토파즈(전류)】

와······.

제임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에 처음 와서 라면을 팔 때 받았던 볼품없는 마법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진짜다.

애초에, 수식어부터 달라진 진짜 보석이니까.

하나하나가 아직 지구에는 등장도 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담고 있었다.

못해도······ 하나에 10억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희소성을 생각하면 그 이상도 받을 수 있다.

원체 귀해서 경매에 올리면, 대형 길드들이 웃돈을 주고라도 앞다투어 사가겠지.

경매에 불이 붙으면 수십억으로 뛸지도 모른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정말, 이런 걸 주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내 말에, 플로라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정수,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을 준 건지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백작가의 재력을 모르는 건가요? 나도 이제 사교계에 나갈 나이인데, 이 물건이 없었으면 못 갔을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이지 못했을 거고······.”

플로라는 사교계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사교 모임은 그저 친목 모임이 아니라, 가문의 비전을 증명하는 자리라고. 그곳에서 얕잡아 보이면은 가문의 이미지가 추락하는 것이라고.

심한 경우 귀족들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 곤란한 상황에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런 물건에 그 정도 보석을 내지 않으면, 제국 모두가 백작가를 손가락질할 거랍니다.”

“하, 하하. 그렇군요.”

꾸미는데 돈을 펑펑 써재끼는 금수저였구나?

하지만, 지금은 그게 내 고객이라는 게 중요하지.

나는 이 통 큰 고객님에게 감사하며, 천천히 마법석을 살폈다.

뭘 고를까?

내가 전류 마법을 쓰는 만큼 ‘광포한 라이트닝 토파즈’가 눈에 띄었지만······ 단연 내 이목을 잡아끄는 건 ‘봉인된 프로즌 사파이어’였다.

【봉인된 프로즌 사파이어(빙결)】

─아이템의 소켓을 ‘1칸’ 소모합니다.

─장착한 아이템에 마력을 300 부여합니다.

─소유 시, 설산의 축복이 적용됩니다.

─(봉인이 해제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아이템 소켓 1칸을 차지하면서도 마력을 300 올려주는 아이템.

동시에, 아이템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유만 해도 축복이 적용되는 마법석이다.

그중에서도 설산의 축복은, 빙결 마법에 대한 통제력을 올려준다.

‘눈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랭킹 36위, 장설아가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축복이지.

내가 홀린 듯 봉인된 프로즌 사파이어를 집어 들자, 플로라가 경고했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물건이에요. 강력한 마나를 담고 있어서 해방하게 되면 한기를 내뿜거든요.”

맛있지만 독이 있는 복어처럼 말이지.

잠재력 해방이 달린 아이템, 그것도 마법석은 아직 등장한 적조차 없다.

상상할 수 없는 가치라는 이야기.

내가 아까 예상했던 10억? 그건 내가 멋모르고 예상하는 거지, 감정을 받으면······ 몇 대는 놀고먹을 수 있는 가치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걸 고른 건 당장 팔기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지.

나는 플로라에게 웃으며 말했다.

“매력적인 것에는 독이 있기 마련이죠.”

그와 동시에, 나는 봉인된 프로즌 사파이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우우웅.

그것은 내 마나를 잡아먹듯 삼키며, 일대의 공기를 천천히 얼리기 시작했다.

쩌저적.

하늘색에 가까웠던 프로즌 사파이어가 점차 푸른빛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내 마나 하트가 거의 텅 비어갈 때쯤.

사아아─

약간의 한기가 흐르는 것과 동시에, 아이스 사파이어의 봉인이 해제되었다.

【만년설의 프로즌 사파이어 1단계(빙결)】

─아이템의 소켓을 ‘1칸’ 소모합니다.

─장착한 아이템에 마력을 300 부여합니다.

─소유 시, 설산의 축복이 적용됩니다.

─사용 시, 서리를 내뿜습니다.

─(봉인이 해제되지 않았습니다.)

마법을 발현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이 통제다.

아무리 강한 마법이라도 통제할 수 없다면, 그건 저주나 재앙과도 같은 것이니까.

하지만, 설산의 축복을 통해 통제력을 올릴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본인이 만들어낸 마법뿐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까지 일부 이용할 수 있게 해주니까.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수록 이런 마법석이 간절해진다.

“물론, 내가 이걸 사용할 수는 없지만······.”

내 근처에는 빙결 마법을 일부나마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지.

바로, 내 동생 해나.

이 마법석을 해나에게 주고, 약초밭을 관리하게 한다면?

윌리엄이 말하길, 해독초의 기원은 설산이라고 했다. 옮겨서 심은 뒤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했지.

만약 고아원 뒷동산을 설산으로 만들수만 있다면······.

큰 그림을 그리며, 나는 씩 웃었다.

“약초 공장 좀 돌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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