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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35화 (35/69)
  • 강력한 한방(4)

    강력한 한방(4)

    “크르르······.”

    나는 상처 입은 다이어 울프와 대치했다.

    쇼크웨이브로 충격을 준 뒤, 마나 붐을 적중시켜 잘라낸 녀석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녀석은 포기하고 돌아갈 기색이 없었다.

    레드문의 영향으로 마수화가 된 놈들은 생존이라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광기에 빠진다지.

    그저 살육.

    그게 놈의 목표다.

    그런데 저렇게 경계하면은 마나 붐을 다시 맞추는 건 어렵겠는데······.

    그때.

    “컹!”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며, 내 목을 노리고 발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고통 때문인지 아까보다 녀석의 움직임이 더뎌졌다.

    좋아, 이거라면 피할 수 있다!

    나는 트레이닝 룸에서 목각인형과 싸울 때의 움직임을 상기하며, 효율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후우웅!

    머리 위로 스쳐 가는 발톱을 느끼며, 검을 휘둘러 녀석의 가슴팍을 벤다.

    서걱!

    “커헝!”

    마나가 거의 바닥나 오러도 씌우지 못한 공격.

    질긴 가죽 탓에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상관없다.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옆으로 굴렀고,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늑대 아가리가 날아들었다.

    콰직!

    바닥이 움푹 팼다.

    난 녀석의 허벅지를 노렸다.

    서걱!

    “아우우!”

    상처 입은 녀석이 잠시 휘청거리며 나를 털어내듯 발톱을 휘둘렀다.

    아직 빠른 속도지만, 충분히 피할만하다.

    제임스와 대련할 때와 비교하면 말이지!

    나는 머리를 팽팽 굴려, 모든 전투 기억을 꺼내어 다이어 울프의 공격을 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놈의 몸에 자잘하지만, 상처가 늘어간다.

    놈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흘러나온다.

    이대로 가면, 쓰러트릴 수 있다!

    “허억, 허억.”

    하지만, 나 역시도 지쳐가는 건 마찬가지.

    몸이 조금씩 무거워져 가는 게 느껴질 때쯤이었다.

    서걱!

    바닥을 구르던 내 어깨를, 놈의 발톱이 훑고 지나가고야 말았다.

    화끈한 감각과 함께 한순간 현기증이 올라왔다.

    “크악!”

    핏! 투두둑.

    핏줄기가 팔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스쳤을 뿐인데 피부가 낫으로 긁은 듯이 패였다. 팔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젠장, 이거 검을 휘두르기도 힘들겠는데······.

    “크르르······.”

    내 상태를 알았는지, 녀석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듯, 자세를 다잡고 발톱을 앞세웠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도 썬더볼트 한 번쯤 사용할 마나가 모였다.

    좋아, 한 번의 기회를 더 잡아보자.

    이번에는 더 강하게.

    모든 마나를 싹싹 끌어모아서.

    “컹!”

    녀석이 빠르게 바닥을 차고 쏘아진다.

    나는 녀석의 오른쪽으로 구르며, 녀석의 잘린 어깨를 잡아챘다.

    “썬더 볼트!”

    파지지직!

    발톱을 휘두르며 접근하던 놈은, 썬더 볼트에 휩싸였고 움직임이 확연하게 느려졌다.

    그 틈을 이용해서, 나는 검을 바로잡았다.

    어깨에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오지만 이를 악물고 놈의 모가지에 검을 찔러넣었다.

    질긴 가죽이 검을 밀어내는 반탄력이 느껴진다.

    "제임스식! 허접한 검술!"

    마지막 남은 마나를 쥐어짜, 검 끝에 얇게나마 오러를 덧씌운다.

    두꺼운 가죽이 마침내 뚫리고, 천천히 피륙을 가르는 느낌이 전해진다.

    하지만, 놈이 목을 관통하려는 검을 잡아채며 필사적으로 밀어내려 했다.

    놈도 사력을 다한 탓일까? 힘겨루기가 제법 힘들었다.

    “죽어!!”

    나는 분신을 소환하여 검에 무게를 싣게 했다.

    두 명분의 힘이, 검을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마침내, 검이 늑대의 목을 관통했다.

    푸욱!

    놈의 호박색 눈이 천천히 뒤집히고.

    끄르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내 검에 실리는 무게가 확연히 증가한다.

    기나긴 싸움이 끝났다.

    쿵!

    “허억, 허억.”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업적 획득 : 경이로운 사냥꾼】

    【당신은 20레벨 이상 차이 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스킬 ‘야수의 심장’을 획득합니다】

    【야수의 심장(패시브)】

    【자신보다 레벨이 한참 높은 상대를 상대할 시, 체력과 힘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길게 이어지는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겼, 다.”

    쿵!

    결국, 힘이 빠져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놈의 발톱에 베인 어깨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온몸의 모든 힘이 다 빠져버렸다.

    늑대 피와 내 피가 전신을 적셨다.

    그래도, 기분이 좋네.

    “나는······ 이제······ 래빗 슬레이어가 아니라고──! 나는 진짜배기 사냥꾼이다!”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고 있을 때였다.

    쿵, 쿵!

    자꾸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경비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슈퍼히어로 랜딩을 하네.

    하긴, 레벨이 백이 넘어가면 진짜 슈퍼히어로 수준이겠지.

    다들 완전무장한 채로 주변을 경계했다.

    평소에 한가하던 모습과 달리, 어딘가 살기가 느껴진다.

    “다들, 조금 늦었네요.”

    “정수······.”

    “네가, 네가 다이어 울프를 잡은 거야?”

    나는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네! 여러분 덕분에 제가 강해졌습니다.”

    나는 힘겹게 웃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경비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엔 장난도 잘 치던 사람들이 오늘따라 왜 이래?

    “다들 왜 그래요?”

    내가 묻자, 전투의 흔적을 살피던 경비대원들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정수, 네가 죽인 저 괴물은 그냥 야생 동물이 아니야. 레드문의 영향으로 마수가 된 괴물이지.”

    “웬만한 병사들도 쉽게 상대하기 힘든 존재야. 그런데 네가······ 우리가 아는 너라면······.“

    “솔직히 네 주검을 볼까 봐 걱정했거든. 그런데 반대라니, 안도 되는 한편 놀랍군.”

    아, 그래서 놀란 거야?

    사실 나도 안다.

    무려 63레벨인 놈을, 대여섯 명의 등탑자가 파티를 이뤄서 잡아야 하는 대상을 나 혼자 잡았다.

    “제가 누구 밑에서 배웠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사실······ 이번에는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좀만 더 빨리 오셨어야죠.”

    내가 아파 죽는 척을 하자, 그제야 경비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했다.

    클라크가 내 피부에 포션을 부어주었다.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며, 뜨끈한 느낌이 올라왔다.

    “크으. 좀처럼 적응이 안 되네요.”

    “조금만 참아. 정수, 너는 터프한 사나이잖아.”

    “그래 정수, 넌 이제 래빗 슬레이어가 아니다.”

    “아 들렸어요?”

    민망하네.

    그뿐만 아니라, 제임스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따져 들기 시작했다.

    “그것만 들린 줄 알아? 어째서 나한테 배운 검술이 제임스식 허접한 검술이야!”

    “아? 아하하······ 그건······.”

    아니, 상태 메시지가 그렇게 얘기해주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내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자, 경비대원들이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제임스의 검술이 제일 허접하긴 하지!”

    “그래도 그나마 정수, 네가 배울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어!”

    그리고,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쯤.

    클라크가 나에게 다가오며 살며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수. 정말 큰일을 해줬어. 요즘 정신이 없는 통에 하마터면 마을 사람들이 해를 입을 뻔했는데, 자네가 이들을 구한 거야.”

    “별말씀을······.”

    내가 멋쩍게 뒤통수를 긁자, 클라크가 인자한 얼굴로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히, 도망갈 수도 있었지. 하지만, 정수, 자네는 우리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았어.”

    “그거야 당연하죠. 제가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요.”

    클라크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 이제 미뤄왔던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클라크가 품에서 브로치를 하나 꺼내더니, 내 가슴팍에 달아주었다.

    “클라크, 이건 경비대원 브로치 아니에요?”

    “그래. 경비대원의 신분을 알리는 패다. 김정수. 자네는 외지인이나, 이 마을에 머물며 경비대원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주었다. 이에, 경비대원의 패를 수여하지.”

    클라크는 눈을 크게 뜬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

    “이제 자네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고, 우리는 자네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을 거다. 언제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는 값을 재지 않고 나설 것을 약속하지.”

    “네? 그게 무슨······.”

    “이제 자네는, 진짜 우리의 가족이란 말이야.”

    “클라크······.”

    나는 가슴에 있는 브로치와 클라크를 번갈아 보았다.

    가족이라······ 기분이 이상하다.

    이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더 일찍 줄까 고민했었는데, 우리도 절차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라고. 자네도 숲에 볼일이 끝났으면, 돌아가지.”

    “아, 네. 돌아가요.”

    나는 옷에 묻은 흙을 대충 털고는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사람들과 함께 섰다.

    “정수, 정말 고마워! 자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

    “처음에는 비실비실했는데, 이제 저 괴물을 사냥할 정도로 강해졌네. 정말 멋졌다고!”

    “경비대원들이 잘 가르쳐놨어. 앞으로 사과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마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고맙다며 등을 두드렸다.

    “뭘요.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잖아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사람들과 함께 마을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서,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업적 획득 : 명예 경비대원(98)층】

    【98층에 도달한 등탑자 중, 최초로 경비대원으로 인정받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경비대원의 기본 소양, 수색 및 정보수집에 대한 능력이 오릅니다】

    【스킬 ‘노련한 눈썰미’를 획득합니다】

    【노련한 눈썰미(패시브)】

    ─모든 흔적을 발견하고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등급에 제약 없이 아이템을 감정합니다.

    스킬을 또 얻었다!

    역시 시련 끝에 보상이 달콤한 법인가?

    노련한 눈썰미라······ 한마디로, 정보수집도 편해진 데다가 모든 아이템을 감정할 수 있다는 거네.

    무엇보다, 앞으로 감정 스크롤을 사용할 값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법석을 일일이 감정받으러 가는 것도 귀찮지만, 몇 번이나 스크롤을 사용하다 보니 지출도 거슬렸으니까.

    얼떨결에 마을 사람들을 구한 일로 이런 보상을 받게 될 줄이야.

    단순히 뿌듯함으로 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상이 주어지니 어색하긴 하지만······.

    “역시, 인생 착하게 살고 볼 일이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라이언 백작가의 차녀, 플로라.

    그녀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된 모습으로 기사단장을 찾았다.

    “다니엘? 다니엘 있나요?”

    휴식 중이던 다니엘은 화들짝 놀랐다.

    예전에도 갑자기 찾아온 플로라에게 커피를 들키는 사단이 있지 않았는가?

    지금이야 플로라와 함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지마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벌렁거렸다.

    “예,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다니엘? 당장 그 마을로 가야겠어요.”

    “그 마을이라면 어디를 이야기하시는지······.”

    다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플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지금 당장 정수를 봐야겠어요.”

    “아, 정수 말입니까? 무슨 일로 정수를 찾으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아뇨. 사안이 급하니, 내가 직접 가겠습니다.”

    “정수가 준 화장품을 바르고 피부가 너무 좋아졌어요! 트롤 지방을 발라도 나아지지 않아서 별 기대 안 했는데, 정수의 말이 진짜였어요!”

    착!

    플로라는 늘 가지고 다니던 쥘부채를 접고 얼굴을 보였다.

    “나도 이제 사교장을 나갈 수 있다고요!”

    플로라는 다니엘을 향해 왕 여드름이 자리했던 볼을 들이밀었다.

    놀랍게도, 그 큰 여드름은 상처 하나 없이 아물어있었다.

    “세상에, 그 어떤 약도 듣지 않던 것이······ 허, 역시 정수의 물건이 확실하긴 하군요.”

    “맞아요. 언제 다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 여분을 받아와야겠어요. 심지어, 성능이 더 좋은 걸 가져온다고 했었다구요!”

    그러고 보니 김정수가 더 좋은 화장품을 가져오겠다고 했었다.

    당시의 플로라는 시큰둥했는데, 지금은 아주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랬었죠. 저도 기억합니다.”

    “그럼, 오늘 출발하는 거로 알겠어요.”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가씨!”

    플로라는 다니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밖으로 나가며, 시녀들에게 소리쳤다.

    “내 방에 있는 상자 중에서 보석이 담긴 상자 좀 꺼내와. 이번에 정수가 가져올 물건들은 되게되게 비싼 것들일 테니까 두둑하게 챙겨가야겠어!”

    플로라의 명령을 들은 시녀들은, 혹시나 보석 상자가 떨어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레 옮기면서 속닥거렸다.

    “아가씨는 대체 뭘 사시려고 이렇게 보석을 많이 챙기시는 거야?”

    “글쎄? 화장품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도 안 되지! 이 보석들을 다 합치면, 작은 성도 하나 사겠다!”

    “그러게. 아아, 이 보석 중 하나만 내 거였으면 좋겠다. 그냥 보석도 아니고 전부 마법의 힘이 담겨 있다던데······.”

    “평생 모으면 하나나 살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돈방석에 앉겠네.”

    쿵!

    보석이 잔뜩 담긴 상자가,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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