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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26화 (26/69)

수면 밑에서(4)

수면 밑에서(4)

나는 즉시 납치범을 추적했다.

녀석은 지하를 나왔는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이 속도면 자동차로 움직이고 있는 거겠지.

나에게 마땅한 이동 스킬이 없는 지금, 거리가 벌어지면 추격이 힘드니 무조건 여기서 잡아야 한다.

다행이라면, 난 이 동네 토박이라 지름길에 훤하다는 거지.

나는 자동차가 움직이는 경로를 예상해, 건물 사이의 담장을 타고 달렸다.

타다닥, 탓!

나는 지름길을 이용해, 자동차보다 먼저 골목 끝자락에 도착했다.

최대한 우연을 가장해서 자연스럽게 접근한 뒤, 납치된 아이를 구출해야겠지.

녀석들이 몇 명인지도,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니 나도 위험할뿐더러, 두 번째 기회는 없을 테니까.

부우웅.

점점 차가 가까워지고, 나는 요정의 팔찌를 매만졌다.

부웅!

자동차 배기음이 가까워진 순간.

나는 팔찌의 보호막을 발동하며 몸을 내던졌다.

콰아앙!

좁은 골목을 내달리던 자동차가 보호막에 부딪히며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솔직히, 목각인형의 발차기에 깨져나간 전적이 있기에 반쯤 의심하며 몸을 뺄 준비까지 했었는데 보호막은 멀쩡했다.

생각보다 보호막 성능이 좋네.

푸쉬이······.

보호막을 거두자, 연기를 뿜어내는 자동차에서 덩치가 거대한 남자가 목뒤를 잡고 내렸다.

문제는, 내가 골목에서 마주했던 남자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

여자아이에게 붙여놓은 분신은 차 안에 있으니 아이는 여기에 있는 게 맞는데······.

처음에 보았던 남자는 납치까지만 담당하고 중간에 사람이 바뀌었다.

이러니 추격이 힘들만 하지.

영악한 새끼들.

남자는 목이 뻐근한지 우드득 소리가 들리게 몇 번 돌리고는 고함을 질렀다.

“어떤 개새끼야!”

“사람이 차에 치였으면, 걱정 먼저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뭐? 이 새끼가······ 각성자인 것 같은데, 뭐 하자고 차에 뛰어든 거야?”

나를 천천히 훑어본 납치범은 단박에 내 수준을 파악했다.

나보다 강한 건 물론이고 골드 몽키의 길드마스터 최진웅과 비슷한 수준이려나?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제, 최진웅도 내 수를 전부 읽지 못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 모든 걸 쏟으면, 나는 내 생각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고.

98층에서는 늘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지만 여기서 나는······ 누군가를 지킬 힘이 있다고.

“세상에 차에 뛰어드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이런 좁은 곳에서 과속하니까 사고가 나는 거지. 놀라서 손이 먼저 나가버렸네.”

그러나 남자는 한쪽만 낀 이어폰에 손을 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 나 따라온 거지?”

“아닌데요?”

하지만 납치범은 나에게 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지, 대답도 듣기 전에 주먹을 내질러왔다.

후웅!

상상 이상의 속도.

검게 물든 주먹.

저건 맞아서 견딜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나는 보호막을 발동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납치범은 피할 것조차 예상했는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러왔다.

팡, 파앙!

납치범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폭음이 들렸다.

이 자식, 내가 여태껏 싸워왔던 적 중 가장 강적이었던 파이트 래빗은 물론이거니와, 목각인형보다도 강하고 빠르다.

긴장해야겠어.

탓!

나는 뒤로 크게 뛰어 거리를 벌린 뒤, 등에 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흥. 검을 들면 달라질 것 같냐?”

녀석은 몸을 풀더니 땅바닥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쿵! 쿠르르르!

주먹에서 빠져나간 검은 기운은 땅속을 헤집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바닥을 박차고 뒤로 크게 뛰어 검은 기운을 피했다.

쾅, 쾅, 쾅!

검은 기운이 내가 밟았던 바닥을 뚫고 올라와 흘렀다.

치이익······.

저건······ 독인가?

나는 입과 코를 가린 채 독을 피하며, 반격의 기회를 살폈다.

혹시 중독되더라도 해독초가 있고, 녀석은 지금 혼자인 것 같으니 지금 인질은 구출해야만 한다.

“쥐새끼 같은 놈!”

쾅, 쾅!

녀석이 나를 추격하며 주먹을 휘둘러댔고, 바닥을 타고 들어간 독이 계속해서 나를 추격했다.

확실히, 놈은 나보다 빠르고 강하다.

하지만, 힘겨울지라도 공격을 피하다 보니 점점 속도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빨라도, 목각인형보단 움직임이 단순했으니까.

녀석이 주먹을 뻗어 들어오는 타이밍.

나는 바닥에 쓰러지듯 자세를 낮추며, 그 반동으로 녀석의 턱주가리에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마치, 목각인형이 나를 두들겨 팼을 때처럼 말이지.

빠악!

녀석은 충격이 컸는지, 잠시 휘청거리다가 고개를 털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 새끼······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야?”

녀석이 으르렁거렸고, 나는 그저 씩 웃어 보였다.

몸을 움직여보니, 훈련장에서 두들겨 맞으면서 반격을 시작했던 반사신경과 상황대처 등 전체적으로 전투 센스가 좋아진 게 체감됐다.

미친 목각인형과 싸운 보람이 있는데?

나는 녀석이 잠시 나와 대치하는 사이 분신을 회수해 녀석의 그림자에 숨겼다.

녀석의 발을 조금만 묶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 될 테니까.

내가 웃는 걸 본 납치범이 얼굴을 구기더니 다시 달려들었다.

쾅, 쾅쾅!

아스팔트와 담벼락이 무너지고 녹아내리는 무시무시한 일격이지만, 분신이 녀석의 발목을 잡은 덕에 피하기가 수월했다.

“젠장, 몸이 무거워. 이 새끼! 무슨 짓을 했구나!”

무식하게 생겨서 생각보다 감이 좋은 놈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

내 분신은 무려 레벨 123의 괴물, 허접한 검술의 대가 제임스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던 스킬이란 말이다.

나는 본격적으로 반격을 준비했다.

녀석이 독을 이용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면, 이쪽도 원거리 공격하면 그만.

나는 놈이 달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썬더볼트를 사용했다.

새파란 전격이 섬광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나아가, 녀석에게 적중했다.

파지직!

“끄아악!”

감전된 납치법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강력한 전격.

이게 숙련도 50%에 가까운 썬더볼트의 위력이다.

하지만,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던 놈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침을 뱉었다.

“퉤! 평범한 놈은 아니군.”

“······꽤 단단한데. 윌리엄한테 더 배워야겠어.”

“뭐라는 거냐!”

설마 그 강한 전격을 맞고 이렇게 금방 정신을 차릴 줄이야.

대체 저런 강자가 왜 갱단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긴장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녀석은 아까와는 다르게 진중한 태도로 자세를 잡더니, 단 한 번의 발돋움으로 나를 향해 미사일처럼 쏘아져 나왔다.

저렇게 움직이면 그림자가 못 따라간다.

뭔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눈치채긴 했다는 건데. 전투 센스 하나는 끝내주는군.

오래 끌수록 나에게 불리한 싸움이다.

그렇다면, 모든 걸 쏟아내는 수밖에.

캉, 카강!

놈의 주먹과 검이 연달아 부딪친다.

검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그러다, 놈이 내 검을 움켜쥐더니 앞으로 잡아당기며, 무릎으로 내 복부를 가격했다.

한순간 가해진 충격에 검을 놓친 채, 나는 벽에 처박혔다.

쿵! 쿠르르······.

“커헉!”

독에 중독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복부에 강한 충격이 느껴져 숨쉬기가 힘들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이나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나자, 녀석이 씩 웃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어린놈이 제법이지만, 이런 일에는 엮이지 않는 게 현명한 거다. 뭐, 알려줘도 이제 쓸모없겠지만 말이지!”

납치범이 달려들었고, 나는 허리춤에 걸린 그림자 암수를 던졌다.

놈은 고개만 까닥이며 단검을 피하고는, 주먹을 내질렀다.

“마지막 발악이냐? 끝이다!”

놈은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전부 내 예상대로다.

나는 방어막을 사용했다.

우우웅, 콰앙!

“시발, 뭐 이렇게 단단해?”

방어막이 녀석의 주먹을 막는 사이, 나는 씩 웃으며 아카식 건틀렛을 앞으로 쭉 뻗었다.

“걸렸다.”

우우웅!

자기력을 최대로 사용한다.

날아갔던 단검, 그림자 암수가 빠른 속도로 되돌아왔고, 녀석의 허벅지에 틀어박혔다.

푸우욱!

“끄악!”

한순간 허벅지를 찔린 녀석이 주저앉았고, 나는 그 틈을 노려 녀석의 턱을 차올렸다.

빠악!

“이, 이 새끼가!”

납치범은 충격을 받았음에도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고, 나는 놈의 머리를 잡은 채 턱에 니킥을 몇 번이나 갈겼다.

퍽, 퍽, 퍽!

“이, 이 새······. 끄르륵.”

그렇게 몇 번이나 턱에 니킥을 꽂자, 녀석의 눈이 뒤집히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털썩.

“더럽게 튼튼하네. 몇 대를 맞고 쓰러지는 거야?”

나는 담벼락에 처박히면서 몸에 잔뜩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112에 신고했다.

“아, 네. 사고가 나서 시비가 붙었는데, 확인해보니까 납치 사건 같더라고요. 여기 위치가······.”

나는 신고를 마치고 차를 확인했다.

차가 부딪치며 다치지는 않을까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기절한 아이가 다치지 않게 담요로 둘둘 말아서 잘 고정해 놨네.

그래도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하려는데, 옆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이봐 고릴라, 무슨 일이지? 방금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 있나?─

오래된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나는 무전기를 들어서 살폈다.

무전기 앞면에는 염소의 뿔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고, 뒤에는 불길한 검은색으로 그려진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타겟 확보에 실패했나? 어이, 고릴라. 대답해라. 앞으로 10초 안에 대답이 없으면 계획을 수정하고 관련 정보를 파기, 재진행하겠다.─

증거물이 사라지면 곤란하지 않을까?

나는 잠시 저쪽에서 쓰러져 있는 고릴라라는 놈을 흉내 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괜히 답변했다가 큰일에 엮일지도 모르지.

나는 무전기를 멀리 던져놓았다.

상대의 참을성은 그리 길지 않았고, 정확히 10초가 지나자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화르륵!

무전기가 불타는 사이, 나는 생각에 잠겼다.

윌리엄에게 검은색 마법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흑마법이라······.”

생명체의 피와 살, 비명이나 고통을 매개로 하는 저주받은 마법.

흑마법을 사용하는 흑마법사들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고 기피의 대상이 된다.

아니, 기피의 대상은 물론이거니와 척살대상이 되지.

거기다가, 타겟을 지정하지 않는 납치범들과는 달리, 무전에서는 정확히 이 아이를 노리고 있었고, 다시 노린다는 얘기까지 했다.

단순한 인신매매가 아니라 계획범죄라는 거겠지.

98층에서도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는 흑마법사들이 엮여있으니, 단순한 갱단이라기엔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나는데.”

나는 고개를 돌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민희와 해나가 생각나 얼떨결에 구출한 아이.

대체, 이 아이가 누구길래 그런 위험한 놈들이 납치하려고 했을까?

*

112가 도착해 아이를 보호했다.

잠시 경찰 조사를 받은 나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사고가 났고, 그 탓에 시비가 붙어 납치범임을 알았다고 했다.

경찰들은 의심스러워하면서도 근처의 CCTV의 영상을 확인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보내주었다.

“연금술사 조합의 요인이라······ 어쩐지.”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연금술사 조합에서도 꽤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쩐지 계획범죄 같더라니, 있는 집 따님이구만.

해외 출장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와 오빠라는 사람이 와서 보상을 주겠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이런 일에 은인으로 엮이면 골치 아플 일이 많으니까.

깊게 엮여서 좋을 게 없지.

그렇게 미련 없이 돌아서서 택시를 잡았다.

“장 보러 왔다가 이게 무슨 일이야.”

택시에 타서, 장바구니를 뒤적여 보니까 양파가 짓눌려 있었고 과자도 한, 두 봉지 터진 것 같은데.

“으······ 뻐근해.”

목각인형한테 죽도록 맞고, 최진웅과 싸우고, 납치범과 싸우고······ 요 며칠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가? 몸이 욱신거리고 나른하다.

98층에서는 회복력이 좋았는데 지구에서는 영 아니다. 아마도 마나 농도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때······.

“음?”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마나의 움직임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 어딘가 익숙한 그 느낌에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살폈다.

“어?”

허공을 부유하는 붉은 불빛.

내 시선을 느꼈는지, 불빛은 점점 허공으로 솟구쳤고, 이내 검붉은색의 불길하고 거대한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을이랑은 전혀 다른 느낌인데, 저게 대체 뭐지?

창밖을 보며 인상을 구기자, 택시기사가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화장실이라도 급하신가?”

“아, 아뇨. 기사님, 혹시 하늘에 붉은 소용돌이 안 보이세요?”

“붉은 소용돌이?”

택시기사는 창밖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젊은 친구, 아까부터 끙끙거리더니만, 요즘 너무 무리해서 헛것이라도 본 거 아니야? 건강 잘 챙기셔.”

“아, 예······.”

헛것이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이는 소용돌이.

혹시 각성자에게만 보이는 걸까?

나는 확인을 위해 한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솔아. 지금 시내 하늘 봐봐. 공원 근처에.”

─어, 보고 있어.

“혹시, 붉은 소용돌이 안 보여?”

─난 그런 거 안 보이는데? 왜, 무슨 일 있냐?

“아, 아니야. 다시 연락할게.”

각성자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기운.

어쩐지, 이런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균열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는 민희랑 장을 보러 갔다가 오크를 만나지 않나, 강원도에는 황충 떼가 약초를 갉아 먹었고, 오늘은 장을 보러 나왔다가 흑마법사와 연루된 납치범까지 잡았다.

위험한 일이 일어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네.

정말 말세다 말세.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멀어져가는 붉은 소용돌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혹시 윌리엄이라면 저게 뭔지 알까?

탑에 도착하면 물어봐야겠다.

*

나는 곧바로 짐을 챙겨 탑에 올랐다.

“어? 윌리엄!”

“오, 정수! 돌아왔나보군.”

여관을 나오자, 마침 마을에 볼일이 있었는지 윌리엄이 보였다.

나는 반갑게 인사하며 윌리엄에게 다가갔다.

“네. 윌리엄, 여쭐 게 있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그럼. 대체 무슨 일인가?”

“고향에 갔다가, 이상한 걸 봤어요.”

나는 택시에서 봤던 붉은 소용돌이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쉽게 떠올리기 힘들고,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그 소용돌이를.

“흠······ 검붉은 소용돌이라······ 혹시,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빛무리가 빨려 들어가는 형태이지 않았나?”

“어! 맞아요!”

윌리엄은 내가 설명한 소용돌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 특징까지 정확하게 잡아냈다.

이번에도 윌리엄이 찾아보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답을 알 수 있겠네.

윌리엄은 턱수염을 쓸며 말했다.

“그건 포탈일세.”

“포탈이요?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마법을 말하는 것 맞죠?”

“그래. 크기는 대략 클라크를 열 명은 세워놓은 정도라고 했나? 공간이 일렁이는 착각이 들 정도의 큰 기류라고 했으니, 꽤 거대한 규모일 수도 있겠어.”

윌리엄은 지팡이로 바닥에 원 두 개와 그 사이를 잇는 원통을 그렸다.

“포탈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야. 서로 다른 마나 농도를 가진 두 공간이 이어질 때 마나의 격류가 일어나서면서 공간이 붕괴할 수 있거든. 그걸 막기 위해서 복잡한 안정화 주문이 필요하지.”

“그러니까······ 댐이나 보 같은 거란 소리죠? 갑자기 물이 불어나서 범람하는 걸 막아주는.”

“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편하겠군.”

제임스는 두 원을 잇는 원통에 그물처럼 선을 그었다.

“그 안정화 주문은 그물 형태네. 작은 그물이라면 격이 높은 존재는 통과할 수 없지. 피라미용 어망을 상어가 통과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그 그물의 크기를 늘리면서도 주문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포탈 주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아하.”

“한마디로,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고블린만 통과할 수 있는 포탈부터 드래곤이 통과할 수 있는 터널까지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세.”

드래곤이라는 말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하지만, 더 오싹한 건 그 뒤에 이어진 윌리엄의 말이었다.

윌리엄은 얼굴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

“진짜 문제는 이 포탈의 색이네. 보통 마나를 이용한 포탈은 푸른색인데, 검붉은색이라면······ 마기가 섞인 게야.”

마기라는 말에, 나는 왜 포탈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레드문.

마왕의 영향으로 강대한 마기를 품은 그 붉은 달이 떠오를 때 느꼈던 불길한 기운이, 포탈에서 똑같이 느껴졌었다.

“윌리엄, 잠시만요. 마기가 섞인 포탈이라면 그 목적은 설마······.”

“그래. 대부분은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이지. 그 정도의 규모에 하늘에 포탈을 열어야 할 정도라면, 강하고 큰 몬스터일 거야. 중간에 포탈의 생성을 막을 방법이 없을 수도 있네.”

그 말에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건, 균열을 통해 출몰한 오크를 때려잡거나, 납치 사건을 막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심 한복판에 강하고 거대한 몬스터의 출현.

대체, 사람이 얼마나 죽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윌리엄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좋지 않은 징조야. 고향에 생긴 포탈이라고 했나? 몬스터를 저지할 사람은 있는 겐가?”

“아······ 몬스터를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요.”

서울 외곽이지만. 그래도 가까운 곳에 랭커를 보유한 길드들이 즐비하다.

아마 몬스터가 출몰하면 길어도 15분 안에는 출동해서 대처하겠지.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그래도 조심하게. 뭐, 정수 자네도 이제 꽤 강해졌으니, 어쩌면 포탈을 타고 나오는 몬스터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허허.”

윌리엄은 사람 좋게 웃으며 흰 수염을 쓸었다.

그래, 한번 정리해보자.

마기가 섞여 몬스터가 소환되는 포탈.

“균열······.”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몬스터가 갑자기 소환되는 미스터리한 현상.

어쩌면 그것이 ‘포탈’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포탈의 징조를 보지 못할 뿐.

내가 어떻게 그걸 볼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이걸 설명하려 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겠지.

다시 말하면 나 혼자만이 균열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

균열은 재앙인 동시에, 큰돈을 벌 기회이기도 하다.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는 ‘마나 스톤’을 떨어뜨리고, 마나 스톤은 쓰임새가 많은 에너지원이니까.

즉, 충분히 대비를 마친 채로 균열을 맞이한다면,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긴장하면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네요. 어쩌면, 제가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대비해야겠어요.”

이건 꽤 큰 싸움이 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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