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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15화 (15/69)

구세주 등장(2)

구세주 등장(2)

약초에 대한 출처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한솔이는 약초를 챙겨 그 길로 연금술사 조합을 찾아갔다.

포션 제조는 빠르게 끝났고, 쓰러졌던 길드원 전원, 하루 만에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다음 날 저녁.

한솔이의 형이자 투견길드의 마스터인 한수 형이 나를 찾아왔다.

부우웅, 끼이익!

고아원의 앞마당으로 SUV 네 대가 줄을 지어 들어왔고, 중간에 있던 SUV에서 익숙한 얼굴이 내렸다.

“정수야!”

차에서 내린 한수 형은 나를 향해 달려와 우악스럽게 포옹했다.

190cm에 가까운 키에 우락부락한 남자가 껴안으니 숨이 좀 막히긴 하네.

“아하하······. 한수 형. 오랜만에 뵙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럼! 네 덕분에 애들도 다 무사하다. 다들 인사해! 이 친구가 너희 목숨 살린 친구야!”

한수 형의 말에, SUV에서 우르르 내려 한 줄로 늘어선 정장 차림의 덩치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거 분위기만 보면 빚이라도 받으러 온 사람인 것 같네.

“아, 예······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네가 아니었으면 저 중 절반은 골로 갔을 거라고. 짜식, 고맙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들어오세요.”

나는 한수 형을 원장실로 안내했다.

“다시 한번, 정말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우리 애들 절반은 골로 갔을 거라는 말, 그거 농담 아니야.”

“괜찮아요. 이럴 때 돕고 사는 거죠.”

“그래도 그게 어디 한, 두 푼이야? 오늘은 그 빚 갚으러 왔다.”

괜찮다고 했지만, 당연히 대가를 바라고 있긴 했다.

한수 형 성격상 모르는 척 입을 싹 닦을 사람도 아니고.

또, 한수 형이 말한 대로 내가 아니었으면 <투견> 길드의 운명은 좋지 못한 곳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약초값은 쳐 줄 거고, 그 외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네가 필요한 거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좋고.”

정말 오랜만에 봤지만, 여전히 푸근한 한수 형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언제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우리를 도우려고 했던 사람이니까.

물론, 부담이 되는 건 싫어서 대부분은 거절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길드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으니, 떳떳하게 받아도 되겠지.

“그럼 약초값에 더해서 부탁이 하나 있어요. 한솔이에게 말해두긴 했는데······ 주기적으로 고아원 순찰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아원 순찰?”

나는 우리 고아원에 찾아와 깽판을 놓던 빚쟁이, 박대수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했다.

“아, 그 빚쟁이 놈들 때문이구만? 그래. 한솔이에게 듣긴 했다. 확실히, 조용한 게 이상하네. 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비번인 애들 몇 명 배치해주마.”

“감사합니다.”

이걸로 한솔이에게 맡기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고아원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거기다 항상 투견길드 사람들이 근처를 순찰하면 몬스터들이 터져 나오는 균열 상황에 대비하기도 좋겠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때,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수 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어떤 건데요?”

“그 해독초, 어디서 얻은 물건인지 물어봐도 되겠냐?”

그래.

형도 등탑자를 이끄는 길드 마스터로서 해독초 같은 물건이 얼마나 귀한지 체감하고 있을 거다.

내가 제공한 해독초는 한두 뿌리도 아니고 스무 뿌리.

그 정도의 양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가 약초가 자라는 군락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혹시, 10층의 미탐사 지역? 아니면 조금 더 위층인가?”

결국, 약초를 어디서 구했는지 추측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한수 형이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었다.

10층의 미탐사 지역이라······.

10층은 현재 러시아가 주도권을 잡은, 한반도 두 배 면적으로 추정되는 공간이자 마을이 있는 일종의 안전지대다.

그 층에서 나오는 것들 대부분을 러시아로 가져가지만, 그 녀석들도 모든 땅을 탐사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다.

아마 한수 형은 내가 그런 곳에서 약초를 찾아왔으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뭘 원하시는 건진 알겠네요. 33층 재도전을 위해서 해독제가 대량으로 필요하신 거죠?”

“그래. 독거미 지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네가 준 약초의 10배. 아니, 20배는 필요해.”

잠시 98층의 약초를 떠올려봤다.

경비대원들이 다 뽑아가라고는 했지만, 한 번에 뽑아 오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양.

그래도 약초밭이 워낙 넓으니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한수 형은 그 이상을 원했다.

“당장 필요한 게 그 정도라는 거야. 선발대가 통과하면 다음 팀이, 또 다음 팀이 올라가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대량의 해독초가 필요할 거다.”

결론적으로, 이후의 물량은 급한 게 아니지만, 길드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쌓아놓고 싶다는 말이네.

“정수야. 우리 투견길드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33층을 뚫고 대형 길드가 되느냐, 여기서 주저앉느냐 하는 갈림길 말이야. 덩치가 커지니, 대형 길드들의 견제가 시작되고 있어. 밥그릇 싸움을 하자는 거지.”

한수 형은 굳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 눈빛에서, 길드 마스터라는 자리에 앉은 남자의 야망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많은 양을 한 번에 드리기는 힘들지만, 주기적으로 공급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얻는지는 알려드리기 힘들겠네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만이 출입 가능한 장소라서요.”

내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봐왔던 그 어떤 때보다 한수 형은 해독초가 간절해 보였지만, 방법이 없다.

98층의 약초밭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일뿐더러, 이야기한다고 해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갈 방법도 없으니까.

다행히, 탑 안에서는 특정 등탑자만 출입할 수 있는 비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내가 핑계 댈 방법이 있다는 거지.

한수 형도 약초를 가져온 곳이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한들, 그런 황금 같은 땅을 꿀꺽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건 네가 얻은 기회니까. 그럼, 우리에게 해독초를 독점 공급해줄 수는 없겠냐?”

바라던 바다.

가끔 소량으로 약초를 파는 정도야 운이 좋은 놈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주기적으로 판매하기는 힘들다.

눈에 띄니까.

그렇지 않아도 서리 길드 소속의 한슬기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데, 이러다 대형 길드들의 이목을 끌어버리면 앞으로 곤란한 상황이 많이 나오겠지.

대형 길드 전부가 한슬기처럼 유순한 태도로 회유하려고 들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안정적인 판매처를 찾아서 좋고, 형은 길드를 키울 수 있어서 좋다.

가격만 잘 챙겨준다면 거절할 이유도 없지.

“그 정도는 당연히 가능하죠.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보다 형한테 파는 게 저도 편하고요.”

“고맙다! 네 덕분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어! 정말 고맙다! 공급가에 대한 건 나중에 우리 길드 재무담당자랑 이야기해보자. 단가는 서운하지 않게 잡아 볼게!”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래. 그리고, 혹시 길드 가입에는 흥미가 없는 거냐?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덩치가 커져서, 지원해줄 수 있는 게 꽤 많아. 한솔이에게 듣자 하니 길드가 없다던데, 혼자보단 탑을 빠르게 오를 수 있을 거다.”

다른 등탑자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제안.

하지만, 나에게 탑을 빠르게 오르는 건 의미가 없다.

탑을 더 오를 수도 없을뿐더러, 98층에서 전투를 배우는 게 그 어느 곳에서 배우는 것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길이니까.

그래서 대형 길드인 서리 소속의 한슬기의 제안도 걷어찼지.

한수 형은 나를 돕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관계는 딱 비즈니스 파트너까지다.

“죄송합니다. 길드에 들어가는 건 힘들 것 같아요.”

“흠······ 한솔이에게 듣기론 1층에 올라간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는데, 벌써 마나 하트까지 있고······ 혹시, 쉐도우 길드라도 들어가 있는 거냐?”

쉐도우 길드.

그건, 정체를 숨기려는 이들이 소수 정예로 구성해 움직이는 길드들의 총칭이다.

대형 길드와는 반대로, 지구의 이권 다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탑의 더 높은 곳에 오르고 강해지는 것에만 관심 있는 이들의 집합.

한수 형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오해를 풀어버리면 꾸준히 길드 가입을 권유할 것 같아 굳이 풀지 않기로 했다.

“예, 뭐. 비슷한 거예요.”

“녀석, 벌써 그런 곳에 들어가다니, 생각보다 더 능력 좋은 놈이었구만! 그래, 등탑자들은 하나씩 비밀을 가지고 있는 법이지. 아쉽지만, 해독초를 얻어가는 거로 만족한다.”

한수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호쾌한 사람이라 좋다니까.

나는 손을 가볍게 맞잡으며 웃었다.

이걸로 안정적인 약초 판매처를 찾았으니 한시름 덜었다.

“다행이네요. 바쁘지 않으시면, 오신 김에 식사라도 하고 가시겠어요?”

“그럴 생각으로 온 거야. 아마 밖에 나가면 우리 애들이 세팅해놓고 있을 거다. 가자.”

한수 형이 씩 웃으며 앞장섰다.

고아원 앞마당에 나가자, 투견길드 사람들이 곳곳에 바비큐 장비를 설치하고는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한수 형은 집게 하나를 빼앗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다들 많이 먹고, 부족한 거 있으면 더 얘기해! 아저씨들이 사다 줄 테니까!”

““네!””

아이들은 한참 전부터 고기를 먹고 있었는지 이미 배가 빵빵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젓가락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이는 게 예사롭지 않다.

누가 보면 평소에 굶긴 줄 알겠네.

“필요한 거 있다고 하면 다 사다 드려! 오늘 중요한 계약 하나 따냈으니까!”

한수 형의 고함에, 투견길드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중독되어서 사지를 헤매다 온 사람들이니까 반가울 만도 하지.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식사하시던 원장님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중요한 계약이라니, 그건 뭐니?”

“아, 지금은 저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약초가 있는데, 한수 형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그걸 독점 공급해주기로 했거든요.”

“네가 그렇게 귀한걸?”

“그렇게 됐네요. 운이 좋았어요.”

원장님은 나와 투견길드 사람들을 번갈아 보더니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셨다.

“마냥 어린아이 같기만 했는데, 이제는 큰 길드와 거래도 하고······ 대단하구나. 진짜 고아원을 이끄는 큰 형이 되었어.”

등을 두드리는 원장님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를 타고 원장님의 감탄과 응원이 전해졌다.

“그럼요. 이제 더는 고생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원장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다시 한번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그래. 믿음직스럽다.”

*

한수 형과 구두 계약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원장님과 함께 고아원의 낡은 시설을 점검하고 수리했다.

끼릭, 끼릭.

“후, 됐다. 빨리 돈을 쓸어모아서 리모델링을 해야지, 원.”

낡은 시설은 아무리 손을 보아도 말썽을 부리기 일쑤였다.

주기적으로 점검하고는 있지만, 문제가 생기는 빈도가 짧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고 나도 신경을 덜 쓰려면 돈이 좀 들어가도 리모델링을 하는 게 낫겠지.

그렇게 고아원을 한 바퀴 돌다 보니, 먹통이 된 CCTV가 눈에 들어왔다.

옛날에 달아놓았다가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장식품이 되어버렸지.

“이참에 바꾸자.”

대비는 아무리 많이 해놓아도 부족하지 않다.

투견길드 사람들이 고아원 근처를 순찰하고는 있지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이지.

아무래도 CCTV를 새로 달아 투견길드 쪽에서도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

“아, 네가 짜증 나게 했잖아!”

“네가 먼저 말도 안 되는 소리 했잖아!”

나는 저 멀리서 티격태격하는 두 남자애를 불렀다.

“민수! 광진이!”

“어, 형.”

“불렀어?”

민희 바로 아래, 고등학교 2학년인 녀석들.

나이가 있으니 심부름 정도는 잘하겠지.

“너희 그렇게 할 일 없이 빈둥거릴 거면 둘이 같이 가서 CCTV 설치하게 근처에 하는 곳 알아봐.”

“민수만 보내도 될 것 같은데.”

“광진이만 시키면 안 돼?”

상대에게 일을 미루려던 놈들이 서로 째려본다.

어떻게 생각하는 게 이렇게 똑같은지, 쌍둥이라고 해도 믿겠네.

“씁. 빨리 둘이 가서 해. 가는 길에 화해도 하고.”

“알았어.”

둘은 투덜거리면서도 내 말을 따랐다.

형제처럼 붙어 다니면서 잘 노는 녀석들이 틈만 나면 싸운단 말이지.

민수와 광진이에게 심부름을 시켜놓고, 나는 고아원을 마저 정비했다.

화장실에 물이 새는 곳, 삐걱대는 가구와 손잡이 교체······.

고아원의 시설을 정비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해가 저물어가자, 근처를 순찰하던 투견길드 사람들도 교대할 때가 되었는지, 여럿이 모여 있었다.

“이제 교대하세요?”

“아, 정수 씨! 이 친구들은 지금 투입이고, 우리는 퇴근. 오늘도 한잔하셔야죠?”

“하하! 좋죠. 저도 방금 일이 끝나서요. 씻고 바로 올게요.”

“안 빼는 게 참 좋다니까. 저녁 아직이죠? 사장님이 카드 주시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으니까, 오늘은 돼지? 애들도 좋아하겠죠?”

“고기면 다 좋죠.”

고아원에 순찰을 오는 투견길드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준 해독초로 목숨을 구한 사람들.

처음부터 굉장한 호감을 보이기도 했고, 다들 넉살 좋은 사람들이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그런 상황이니, 이제 순찰을 마친 투견길드 사람들과 술 한잔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약속한 듯한 일정이 되었다.

곧 탑에 올라가야 하니, 그때까진 잠깐 여유를 즐겨도 괜찮겠지.

“정수 씨, 참 어린 친구가 괜찮아.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잘해줄 수 있는데.”

“하하. 상황이 안 되네요. 죄송합니다, 팀장님.”

“보니까 양손 검을 쓰던데, 우리 팀에 들어왔으면 진짜 내가 사력을 다해서 키워줄 수 있는데······.”

계속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투견길드의 팀장, 강대성.

덩치에 맞지 않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대검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랭커 유망주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내가 양손 검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는 함께 해볼 생각이 없냐고 따라다니는 바람에 조금 난처하긴 하지만, 좋은 사람이다.

한수 형이 투견길드가 대형 길드로 발돋움을 앞두고 있다는 게, 괜한 말을 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오늘도 바비큐 파티에 맥주를 한 잔을 즐기고 있을 때.

아이들이 열심히 고기를 뜯고 있는데, 그중 민희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민희는 밥도 안 먹고 어디 갔어? 민수, 광진이. 누나 못 봤어?”

“못 봤어.”

“누나 아까 뒷마당 가는 거 같던데?”

광진이의 말에 나는 고아원의 뒤편으로 향했다.

밥도 안 먹고 뭘 하는 거야?

그렇게 뒷마당에 가까워질 때쯤이었다.

“후읍!”

부웅, 퍼억!

무언가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

뒷마당에서는 민희가 수련용 샌드백을 때리고 있었다.

퍽, 퍼벅!

몸을 움직인 지 꽤 시간이 지났는지, 땀범벅이 되었음에도 민희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녀석.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든 해내려는 열정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허억, 허억.”

나는 검을 휘두르던 민희가 지쳐서 잠시 호흡을 다듬을 때쯤, 조용히 다가갔다.

“짜식아, 너무 열심히 하면 부러진다. 쉴 땐 쉬어야지.”

민희는 화들짝 놀라 몇 발자국을 물러섰다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깜짝이야. 누군가 했네.”

민희는 옆에 둔 수건으로 땀을 닦고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투견길드 사람들이 순찰 중에 가볍게 몸을 푸는 걸 봤어. 움직이는 걸 눈으로 보는 것조차 버겁더라. 그런 등탑자들을 보니까 가만히 있기 힘들어서.”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탑의 마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진심이라면, 적어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게 가르치는 것도 내 일이겠지.

“좋아! 검술 봐줄게. 내일부터 시작하자.”

“진짜? 아싸! 근데, 지수랑 다른 애들 같이 와도 돼?”

“그래. 뭐, 내가 안 가르친다고 탑을 안 오를 애들도 아닐 테고.”

“진짜? 진짜지? 약속했다?”

“어? 어······.”

민희가 기뻐하며, 수련용 무기까지 던져놓고 스마트폰을 잡는 걸 보며 조금 의아했다.

이게 그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무슨 일 있었어? 되게 기뻐하네.”

“사실······ 오빠가 오크 잡은 거랑 서리 길드에 스카우트 받은 거, 지수가 소문냈거든. 그래서 다들 오빠를 보고 싶어 해.”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 언젠가 소문이 날 것 같기는 했다.”

“그래서 등탑에 관심이 있는 애들이랑 이미 길드에 스카우트 받은 애도 한번 와보고 싶대.”

“이미 길드에 스카우트 받은 애가 있어?”

“응. 각성도 끝났고, 종종 탑에 올라가는 유망주래. 이미 1층도 돌파했다나? 근데······ 솔직히 걔는 좀 데려오기 싫어.”

“왜?”

“지수가 오빠 오크 잡았을 때 얘기를 하니까 막 비웃더라고. 이거 봐봐. 황인철이라는 애야.”

민희는 나에게 스마트폰을 내밀며 단체채팅방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중에서 황인철이라고 적힌 아이가 보낸 메시지를 유심히 살폈다.

─황인철 : 등탑은 님들 생각보다 어렵고 위험한 일임. 그 형 1층에 올라간 지 얼마나 됐다고?ㅋㅋ

─황인철 : 길드에 들어가서 훌륭한 사람들에게 지도받는 게 좋은데... 야매로 배우면 잘못된 습관이 들 수 있음;;

─황인철 : 나도 같이 가서 이상한 습관 들진 않을지 한 번 봐줘야겠네.

“이 자식, 이미 2층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지가 본 것도 아닌데, 오빠가 오크를 잡은 게 말이 안 된다나? 오빠 바쁜 거 알아서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나랑 지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잖아. 진짜 너무 짜증나!”

나는 턱을 쓸었다.

확실히, 평범하게 탑을 오르는 등탑자 입장에서 나를 보면, 내가 강해지는 속도는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무려 레벨 100을 훌쩍 넘는 사람들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곤 없을 테니까.

골이 좀 아프게 되었지만, 98층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겠지.

거기다, 내 동생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다.

“뭐, 상관없어. 데려와.”

“진짜?”

“응. 너무 많이 데려오지 말고, 진지하게 탑을 오를 준비를 하는 애들만 데려와.”

“알았어. 황인철 진짜 죽었다!”

민희는 분노를 가득 담아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

평범하게 탑을 오르는 유망주라······.

여태까지는 그런 인물과 엮일 일이 없으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투자받는 유망주란 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나도 조금은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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