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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13화 (13/69)

보험은 들수록 좋다(5)

보험은 들수록 좋다(5)

약초류 아이템은 마나가 밀집된 장소에서만 자라며, 그중에서도 상등품은 탑 고층에서만 자란다.

얻기 힘든 만큼 당연히 효과가 좋지만, 몇몇 랭커들에게 몰아주기에도 부족할 만큼 귀하다.

그런 아이템이다 보니 덩치가 있는 길드들이 독점하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고가고.

약초 독점이 어느 정도로 심한지, 연금술 조합조차도 원활하지 않은 공급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던데.

“그래서 몇몇 대형 길드가 연금술사 조합을 쥐고 흔든다지?”

연금술사 조합 입장에선 상등품 약초를 다루어야 스킬 레벨도 오르고, 그렇게라도 약초를 구매해야 더 비싼 포션을 판매해서 이윤을 남길 수 있다.

한 마디로, 연금술사들은 상등품 약초를 인질로 잡혀, 울며 겨자 먹기로 길드의 포션 주문 제작을 헐값에 받아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

상등품의 약초는 모두가 원하는데, 공급이 굉장히 한정적이다.

다시 말해, 이 코를 찌르는 약초 냄새가 다 돈 냄새라는 말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해나 병을 고칠 약초는 떠올렸는데, 돈으로서의 약초는 생각지 못했었다.

입꼬리와 함께 광대뼈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고, 클라크에게 물었다.

“약초밭 좀 구경해도 괜찮을까요?”

“약초밭?”

“네! 제가 약초 재배에도 좀 관심이 있어서요.”

“그러지. 아직 저녁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는 데다, 누구 부탁인데 밥을 늦게 먹더라도 들어줘야지!”

“하하.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혹시 클라크가 말을 번복하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약초밭으로 발을 옮겼다.

멀리서 볼 땐 나무에 가려 채 살피지 못했는데, 약초밭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약초밭뿐만 아니라 약초의 크기들이 심상치 않은데, 종류도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약초밭을 살피는 사이, 클라크가 꽃을 맺은 약초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툭툭 털어냈다.

“생각해보니, 자네 몸이 허약했지? 자. 약초 씨앗이야. 씹어봐. 기운이 좀 날 거라고. 진작 이런 것 좀 먹일 걸 그랬군.”

나는 클라크가 건넨 씨앗을 받아 씹었다.

아작!

살짝 쓴맛과 함께 풋내가 올라왔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씨앗을 씹었고, 잠시 후, 단맛과 함께 씨앗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토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씨앗에 쌓인 거라곤 생각하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마나가 내 몸을 채웠다.

또, 아까 전투하며 잔뜩 긴장했던 근육들이 풀어지고 회복하며 몸이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 마나만 잔뜩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약초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효과 자체도 성능이 장난 아닌데?

내가 씨앗의 효과에 놀라고 있을 때, 클라크가 내 어깨를 팔로 감싸며 손가락으로 약초밭 끝부분을 가리켰다.

“자, 저쪽에 있는 보라색 약초가 해독초. 그 옆이 사냥에 쓰는 마비초. 그 옆이······.”

해독초는 말 그대로 몸에 들어온 독을 분해하고 배출하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수요가 넘쳐난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저릿한 느낌이 올라오는 마비초도 탑을 오르다 보면 나오는 생포 퀘스트 같은 곳에서는 거의 필수적이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헉! 상급 회복초!”

상급 회복 포션.

연금술사 조합에서 양산 가능한 물약 중 가장 높은 등급의 포션 중 하나.

팔, 다리가 잘려도 눈 깜짝할 새 붙여준다는 그 상급 회복 포션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약초가 바로 상급 치료초다.

이곳저곳에 귀한 약초가 즐비하다.

가방에 들어있는 소스와 맞바꾸면 되니, 이미 약초는 내 손에 있는 셈.

문제는 10kg이라는 제한에 맞춰, 지구로 어떤 약초를 얼마나 가져가느냐는 것이다.

어떤 약초가 가장 돈이 많이 될까?

아니.

이걸 그대로 가지고 가서 팔면 안 된다.

당장은 큰 돈벌이가 되겠지만, 더 미래를 보고, 더 많은 양을 팔 방법을 생각해야지.

그리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클라크, 이 약초들, 씨앗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더 가벼운 상태로 가지고 내려가 직접 길러 보는 것! 고부가가치지!

실제로 지구에도 약초 농장이 있지만, 마력 농도 때문인지 낮은 등급밖에 생산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무려 98층의 약초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마음대로 하게. 넘치는 게 씨앗이기도 하고, 어차피 금방 자라니까 말이야. 그 김에 약초도 필요하면 뽑아가라구.”

“저 진짜 약초밭 다 털어갑니다?”

“크하하! 뽑을 수 있다면 다 가져가! 어차피 한 달이면 다시 무성하게 자라니까.”

클라크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허락도 받았겠다, 이제는 나도 약초를 챙길 차례.

당장 지구로 내려갔을 때 돈으로 바꿀 것들도 필요하니 해독초와 상급 회복초 위주로 챙겼다.

거기에, 각종 약초 씨앗들을 챙겼다.

이걸 지구에 귀환할 때 가지고 내려가서, 고아원 뒷산, 내가 어릴 때 감자와 고구마 따위를 심던 작은 텃밭에 심을 예정이다.

이런 약초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나면, 근처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

해나 뿐만 아니라, 탑과 관련된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건강이 개선될 거다.

“문제는 마나의 농도인데.”

지구와 98층의 마나 농도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제대로 측정해본 건 아니지만, 내가 그동안 체감한 바로는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탑의 마나 농도가 짙다.

하지만, 무식하면서도 가장 효율 좋은 방법이 있지.

푸욱! 사라락.

나는 땅을 파서 푸른색이 섞인 흙을 퍼서 여분 주머니에 담았다.

“어, 뭐야! 정수! 약초 뿌리 캔다더니, 왜 흙을 퍼 담고 있는 거야?”

“고향에 약초를 심어보려는데, 제 고향은 마나 농도가 낮은 곳이라, 마력토를 보충해놓지 않으면 약초를 기르기 힘들 것 같아서요.”

약초를 기를 환경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건, 약초가 자란 환경과 똑같은 환경을 만드는 것.

당연히 이곳의 98층의 땅 중에서도, 약초를 기르는 이 푸르스름한 흙, ‘마력토’라고 부르는 흙을 가져가서 심는 게 최고다.

약초를 기르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아하, 마나 농도가 낮은 곳에선 가장 효과가 빠른 방법이지. 하지만, 마력토가 품고 있는 마나는 금방 흩어져서 주기적으로 채워줘야 할 텐데?”

“귀찮아도 기르려면 어쩔 수 없죠.”

클라크는 잠시 턱을 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다른 방법이 있는지 나중에 윌리엄을 찾아가 봐. 이 약초들도 원래 이 지역이 아니라, 서늘한 곳에서 자라던 것들인데, 윌리엄이 이곳에 가져와 기르기 시작했으니 말이야.”

“그럼 윌리엄에게도 가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죠! 슬슬 저녁도 먹어야 하니까요.”

클라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군데군데 흩어져 약초를 살피고 있던 경비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사냥에 나서려고 챙겨온 여분의 가방을 약초와 씨앗, 마력토로 가득 채운 채 경비대원들의 소초로 돌아왔다.

*

“좋아, 정수! 썬더 볼트를 사용해보게!”

“예!”

나는 윌리엄의 말에 따라, 사람이 없는 숲 쪽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썬더 볼트!”

파지직!

시퍼런 섬광이 줄기줄기 찢어지며 채찍처럼 바닥을 할퀴었고, 썬더 볼트의 끝이 5m 밖에 있는 나무에 닿으며 스파크가 튀었다.

파지직! 화르륵!

스파크가 튄 나무가 타오르기 시작했고, 윌리엄이 곧바로 물로 만든 구체를 던져 불을 끄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정말 훌륭해. 역시 자네는 검술이 아니라 마법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

“하하. 감사합니다.”

굳이 윌리엄이 말해주지 않아도, 나도 체감하고 있었다.

제임스와는 목숨을 걸고 대련까지 하는데도 검술의 숙련도는 아직도 25% 정도.

하지만 썬더 볼트는 윌리엄이 가끔 봐주는 정도인데도 벌써 30%를 넘었다.

숙련도가 오르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긴 하지만, 이 정도 파괴력이면 이제 파이터 래빗 정도는 골로 보낼 수 있을 정도.

짧은 시간에 이룬 성과로는 만족한다.

그 덕에 레벨이 벌써 37까지 오르기도 했고.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슬슬 더 심화 과정으로 들어가도 되겠어.”

“알겠습니다. 그 전에, 며칠 자리를 좀 비울게요.”

“고향과 연락하려는 게로구먼. 알겠네. 조심히 잘 다녀오게나. 초콜릿 잊지 말고, 크흠! 그, 아이스크림이라는 것도 기회가 된다면 구경이라도 좀 해보고 싶군.”

“하하! 알겠어요. 신경 써 볼게요.”

윌리엄의 헛기침을 들으며, 나는 귀환까지 남은 쿨타임을 계산했다.

“오늘 루틴을 다 끝내고 갈 수 있겠네.”

요즘 하루 루틴은 검술과 마법 연습 후, 약초 기르는 법을 배우는 것.

약초에 관해서는 윌리엄에게 꽤 많은 팁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는 약초 강의를 들은 뒤에 경비대원들과의 사냥이 있었지만, 오늘은 사냥 대신 짐을 챙겨 평소보다 빠르게 탑을 내려가려고 한다.

친구 한솔이에게 고아원을 부탁하긴 했지만, 무슨 일이 나진 않을지 걱정이 가시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밥은 챙겨 먹고 가야지.

나는 경비대원들이 미리 사냥해둔 사슴을 요리했다.

이제 식사는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챙겨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두근, 두근.

식사를 마치자, 마나 하트가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속도라면, 다음에 탑을 다시 오르면 마나 하트를 한 번 더 성장시킬 수 있겠지.

“좋아. 밥도 먹었겠다. 이제 출발해야지.”

나는 올라올 때만큼 묵직한 가방을 메고 발을 옮겼다.

뒤에서 경비대원들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수! 몸조심해서 다녀오고, 올 때 스리라차랑 케첩 넉넉히 들고 오라고!”

“그래! 이번에도 돈 될만한 건 잔뜩 준비해 놓을 테니까 말이야!”

“알았어요! 며칠 뒤에 뵐게요!”

가볍게 손을 흔들고 여관방에 들어오자, 타이밍 좋게 귀환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나는 각종 약초와 약초 씨앗 등 새로운 금광에서 캐낸 물건으로 채운 묵직한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했다.

이 투자가 우리 고아원의 빛이 되어 줄 거라는 굳은 믿음과 함께.

*

0층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탑을 나와 빠르게 걸었다.

버스 타는 곳이 탑에서 꽤 멀리 있으니 한 번 집에 돌아갔다 오는 것도 일이다.

보통은 길드에서 제공하는 셔틀이 있는데, 나도 나중에 통장이 여유로워지면 차라도 하나 사야 하나?

“그래. 까짓거, 차 한 대 뽑지 뭐.”

빚만 다 갚고 나면, 이제 돈에 허덕일 일은 없다.

돈 나올 구멍도 걱정 없다.

당장 내 가방에 들어있는 약초만 다 팔아도, 새 차 한 대는 가뿐하게 나올 테니까.

“발이 가볍구만.”

어깨를 누르는 10kg가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져 콧노래가 나왔다.

그러나 그 좋은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이야, 이게 누구야. 정수?”

“야, 정수 맞는데? 캬! 고아들의 왕, 정수를 여기서 보네? 너도 등탑하냐?”

“등신아, 등탑하겠냐? 가방 크기 좀 봐라. 딱 봐도 짐꾼이구만.”

“푸하하! 어릴 때나 커서나 하는 일은 별다른 거 없네.”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녀석들.

이 녀석들은 고등학생 때 같은 학교를 나왔던 양아치들이다.

선생들 눈을 피해 나 같은 고아들을 때리고 돈 뜯던 그런 질 안 좋은 놈들.

“쯧.”

나는 가볍게 혀를 차고 자리를 뜨려 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엮여봐야 인생에 도움이 될 게 없는 족속들이니까.

“저 새끼가 근데······.”

“정수 이 새끼 안 맞은 지 오래됐다고 정신 못 차리네? 쌩까냐?”

그러나 녀석들은 나를 쉽게 보내지 않겠다는 듯 내 앞을 막아섰다.

녀석들의 장비를 살펴보니 그리 큰 길드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길드 소속이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어쩐다······.

그때, 녀석들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수씨, 여기서 또 만나네요?”

번쩍이는 갑옷과 레이피어, 특유의 고고한 눈웃음.

한슬기가 아는 체를 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잘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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