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들수록 좋다(3)
보험은 들수록 좋다(3)
기사단장이 보내온 무기들에는 경비대원들에게 줄 보급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수 덕분에 우리도 무기를 바꾸게 됐군.”
“그러게 말이야! 슬슬 새로운 무기가 필요할 때가 되기도 했지.”
“일단 정수가 먼저 고르고, 남은 걸 우리가 고르자고.”
경비대원들의 동의하에, 나는 마차에 가득 실린 무기를 둘러보았다.
세상에, 대체 이게 다 얼마야?
꿀꺽.
침이 넘어가지만,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이미 마법석도 얻었으니, 너무 큰 욕심은 부리지 말자.
애초에 무게 제한 때문에 지구로 다 가져가지도 못하니까.
“어디 보자······.”
마차 안에는 내가 사용하던 브로드 소드와 비슷한 길이를 가진 검부터 단검, 장검, 창, 활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무기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용해본 적도 없는 창이나 활 같은 걸 골랐다간 몬스터 사냥은커녕 내 몸도 못 지키겠지.
나에게 가장 익숙한 길이의 한 손 검을 고르려던 순간, 제임스가 말했다.
“그런데, 정수. 너는 왜 한 손 검을 쓰는 거지?”
“어······ 가장 많이 썼던 거라서요.”
“대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임스의 물음에, 턱을 쓸던 클라크는 무기를 살피다가 양손 검을 하나 잡아 건넸다.
“종종 혼자 검 연습을 하는 걸 볼 때나 제임스와 대련하는 걸 보면, 한 손 검보다 양손 검이 더 나아 보이더군. 다른 손이 놀기도 하고, 중심도 안 맞아. 이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면 양손 검을 써보게.”
나는 클라크가 건넨 양손 검을 받아 살폈다.
확실히, 내가 골랐던 한 손 검보다 묵직하긴 하지만, 손에 착 감겼다.
거기다 더 품질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아, 대장님! 그거 제가 점찍어둔 거였는데!”
“이 중에서 제일 괜찮아 보였는데, 정수가 가져가게 생겼군.”
“그래도 정수 덕분에 무기도 보급받은 거니까, 불평하지들 말자고.”
【백작가의 보급형 양손 검(A)】
- 마법석 소켓 ‘0/3’
- 스킬
1) 충격 분산 : 충격을 일정량 분산하여 착용자의 육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어줍니다.
세상에, 고작 보급형 검이 A등급이다.
거기다 달린 스킬도 예사롭지 않았다.
양손 검의 특성상 공격과 방어를 대부분 검으로만 하기에 손목이나 팔을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충격을 분산해주는 스킬이라니.
“클라크, 감사합니다!”
“하하! 뭘. 자네 덕분에 우리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지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클라크는 눈을 찡긋하고는 자신이 쓸 무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도 여분의 무기 몇 개를 더 골랐다.
무기가 파손될 때를 대비하기도 해야 하고, 지구에 내려가서 팔아도 되고······.
그렇게 새로 얻은 무기를 살피고 있자, 마부가 다가와 편지를 건넸다.
“기사단장님의 서신입니다. 꼭 본인에게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편지를 받아 읽었다.
네 장 분량의 긴 편지 중 세 장은 라면과 아이스크림에 대한 감상과 찬양이었고, 마지막 장에 가서야 짧게 본문이 적혀있었다.
─ 하여, 입맛은 돌아왔지만 백작가의 요리사들이 차린 식사도 썩 만족스럽지 않더군. 벌써 라면과 아이스크림이 그리울 지경이야. 종종 방문하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이 정도면 백작가의 기사단장에게 연줄을 대는 데 성공했다고 봐야겠지.
앞으로 정보나 물건 수급에 큰 문제는 없어질 것 같다.
편지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자, 클라크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편지야?”
“기사단장님께서 보낸 편지예요. 종종 방문하신대요.”
“뭐?”
텅, 터덩!
클라크뿐만 아니라, 내 말을 듣던 모든 경비대원이 무기를 놓쳤다.
“기사단장님이······ 종종 오신다고?”
“라면이나 아이스크림이 목적이실 테니, 지금보다 더 자주 오시겠다는 말이겠지?”
아뿔싸.
나에게야 호재지만, 이 사람들은 달마다 사단장이 오게 생긴 거구나?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마차에서 멀어지다가, 냅다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경비대원들의 원망 섞인 통곡이 들려왔다.
“정수! 복덩이인 줄 알았는데 네가 우리를 이렇게 죽이는구나!”
“이건 꿈이야! 정수 이 녀석,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이 아니라 재앙이었다고!”
거, 미안하게 됐수다.
*
“흐읍!”
부우웅!
새로 검을 얻은 후, 나는 양손 검에 익숙해지는 데 집중했다.
클라크나 제임스의 눈썰미대로, 확실히 한 손 검보다는 양손 검이 더 손에 착 감겨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양손 검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 제임스를 찾아갔다.
“제임스, 다시 대련해요.”
“정수,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야?”
“저 정말 강해지고 싶어요. 이번에는 마음 단단히 먹었어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던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이 그렇다면야. 하지만, 이제 봐주는 건 없을 거야.”
“바라던 바예요.”
나는 씩 웃으면서 제임스를 따라 훈련장으로 갔다.
조금은 무리하더라도,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제임스와 대련하며 빠르게 강해지는 게 낫겠지.
빠르게 강해지지 않으면 박대수 패거리가 보복을 위해 고아원에 왔을 때, 이번에는 내가 당할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또 나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 한다.
“정수, 눈빛이 달라졌네?”
당연하지.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다.
내 가족들의 안전이 달려 있으니까.
“하지만 힘은 마음을 먹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야.”
“알아요. 늘 다짐했는데, 별로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다를 것 같아요.”
“그럼 어디, 입증해 봐.”
나는 양손으로 검을 쥐고 제임스를 살폈다.
제임스가 봐주지 않기로 한 만큼,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걸 이용할 생각이다.
나도 그간 레벨업을 했고, 스킬과 아이템을 얻어 강해졌으니까.
과연, ‘그림자 암수’까지 사용한 내 전력은, 레벨 100이 훌쩍 넘는 제임스에게도 통할까?
“선공만 양보한다. 와.”
“갑니다!”
나는 빠르게 달려 나가서 검을 내리쳤다.
“느려!”
캉!
제임스가 여유롭게 한 손으로 내 검을 막았다.
오히려, 공격한 내 손이 얼얼할 지경.
하지만, 노림수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내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분신에게 썬더 볼트를 사용하게 했다.
낼 수 있는 전력을 다해서.
그러나 썬더 볼트를 사용하기 위해 마나가 모이는 순간─
움찔!
제임스가 내 검을 튕겨 올리며, 그림자가 있는 바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설마, 이 정도 속도로 반응할 줄이야.
하지만 그림자에는 실체가 없지.
“엇?!”
반사적으로 대응했으나, 정작 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자 제임스는 당황했다.
파직!
제임스의 공격을 무시한 그림자에서 스파크가 강하게 튀었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정도로 강한 전격이라면, 제임스도 타격을 입지 않았을까?
“앗, 따가!”
“······따가워?”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제임스는 정전기라도 느낀 듯 가볍게 움찔거리는 게 끝이었다.
나름 오크도 일격에 기절시킨 스킬인데······.
하긴, 제임스의 레벨을 생각하면 오크 추장이 한 트럭이 와도 못 이기겠지.
전력을 다한 썬더 볼트였지만, 허무할 정도로 잠깐의 시간조차 벌지 못했다.
땅에 박힌 검을 회수한 제임스가 순식간에 내 품으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나는 이를 악물고 검을 비스듬히 세워 제임스의 검을 막았다.
카아앙!
검날이 울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느껴졌고, 팔과 손목에 시큰한 통증이 밀려왔다.
촤아악!
나는 발을 박아넣듯이 강하게 땅을 딛고도, 한참을 밀려난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크으으······.”
“이야, 정수. 아까 그건 뭐야? 요즘 마법 배운다더니 마법인가? 아니면 아이템? 어느 쪽이든, 신기한 기술을 사용하는군.”
제임스는 오늘 대련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는지 여유롭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멀쩡하니까 조금 열 받네.
이번에는 약간의 타격이라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커서 그런지, 괜히 퉁명스럽게 답했다.
“적에게 전략을 알려주는 사람이 어딨어요?”
“뭐? 하하! 맞는 말이지. 그래도 많이 성장했어. 이번에는 손목 안 돌아갔잖아? 뭐, 좋은 검을 쓰는 덕도 있겠지만, 전이었다면 그걸로도 모자랐을 텐데 말이야.”
확실히 시큰거리고 붓기는 했으나, 전처럼 탈골되지는 않았다.
무기에 붙어 있는 ‘충격 분산’ 스킬 덕분인가?
성능 한 번 죽이는데?
물론 제임스의 말대로 내가 성장한 것도 있겠지.
“검을 바꾼 것도 한몫할 거야. 확실히 자세가 전보다 안정적이군. 앞으로는 양손 검으로 검술을 익혀보도록 해.”
그래, 졌다고 심통이나 부리는 건 삼류나 하는 짓.
나는 생각을 바꿔, 더 강해질 궁리를 시작했다.
제임스의 공격을 버틸 수 있다는 건, 혼자 연습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겠지.
나는 제임스를 향해 외쳤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앞으로 대련 부탁드려요!”
“좋아! 실력이 늘어난 걸 보니, 앞으로는 더 굴려도 되겠어. 각오 단단히 하라고!”
*
다시 이틀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제임스에게 처절하게 깨졌지만, 숙련도와 레벨이 대폭 증가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은 35가 되었고, 썬더 볼트와 검술은 숙련도 20%를 넘겼다.
이 정도 레벨이면, 1층부터 탑을 올랐어도 벌써 15층 정도에는 도달했을 레벨.
대련을 시작한 것으로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이야.
물론, 혼자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레벨을 올리는 것에 한계가 명확했듯이, 대련을 통한 레벨업도 슬슬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탑에서 정석적인 레벨업 방법은 몬스터 사냥이니까.
“역시 사냥하는 게 가장 레벨업이 빠를 텐데······.”
하지만, 사냥을 나가기엔 98층에 있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너무 높아서 위험하다.
이곳에 처음 와서 봤던 자이언트 터틀만 해도 레벨이 105였으니까.
하지만 희소식이 있었다.
“경비대원들에게 듣자 하니, 자이언트 터틀은 이 근방에서도 레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몬스터라고 했지?”
그래도, 내가 혼자 나가서 사냥하다가는 끔살 당하기 딱 좋은 곳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경비대원들에게 부탁하면 사냥에 함께 나가주겠지만, 한두 명으로는 아차 하는 순간 내가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확실히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사냥을 시작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나는 경비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 이리 와서 이것 좀 드셔보세요.”
나는 지구에서 가져온 소시지 핫바를 나누어주었다.
이제는 포장을 뜯는 방법에도 익숙해진 경비대원들이 어림짐작해서 핫바를 뜯기 시작했다.
핫바를 이리저리 살피던 경비대원들이 한 입씩 크게 베어 물기 시작했다.
“고기인가? 오! 간도 적당하고 맛있는데!”
“그러게. 먹기도 편하고 말이야. 이런 게 있으면 근무 나가서 조지처럼 컵라면 먹다 걸릴 일은 없겠어.”
“하하! 맞아. 기사단장님이라도 이렇게 미세하게 나는 고기 냄새를 맡으실 수는 없지.”
예상대로 소시지는 호평 일색이었다.
적어도 이 경비대 안에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란 말씀.
진짜는 지금부터다.
“에이, 그건 반쪽짜리죠. 줘보세요.”
“이게 반쪽이란 말이야?”
“허, 이 친구 또 뭘 숨기고 있었군.”
이번에 가져온 신병기를 꺼낼 때다.
바로,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요리계의 혁명이지.
내가 플라스틱 통을 꺼내자, 경비대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뭔가?”
“신기하게 생겼는데.”
“소스입니다. 뿌려서 드셔보세요.”
그냥 소스가 아니라, 각종 재료를 섞고 화학조미료로 맛을 낸 소스 말이지.
나는 경비대원들이 내민 소시지에 케첩과 스리라차 소스를 뿌려주었다.
뽀드득!
경비대원들이 소스를 뿌린 소시지를 씹는 순간, 눈이 커졌다.
“세상에! 이런 맛이라니!”
“매콤한 소스도 장난 아니지만, 새콤달콤한 소스는 정말 혁명이야!”
“토마토인가?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는지 모르겠군. 정수, 조금만 더 뿌려주게!”
경비대원들은 연신 감탄하면서 소시지를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그래, 이 반응이지.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소스를 조금 더 뿌려주었다.
어느덧 소시지를 다 먹은 경비대원들은 소스를 더 먹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듯, 소시지를 끼웠던 나무막대를 쪽쪽 빨고 있었다.
좋아. 이제 본론을 얘기할 차례다.
“다들 아쉬워 보이는데, 팁을 하나 드릴까요?”
“팁? 어떤 팁?”
“또 비밀을 숨기고 있나 보군. 정말 신기한 친구야. 어떻게 이렇게 항상 귀한 음식과 먹는 방법이 나오는지······.”
“그래서 뭔데? 시원하게 빨리 얘기해 보라구.”
경비대원들이 닦달했고, 나는 웃으면서 숲을 가리켰다.
“이 소스들이 가장 빛날 때는, 갓 구운 고기에 찍어 먹을 때죠. 기름이 자글자글한 고기에 매콤, 새콤, 달콤한 소스를 찍어 먹는 맛이란······.”
내가 과장해서 환상적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자,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꼴깍, 꼴깍!
좋아. 다 넘어왔어.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다.
“그래서 말인데, 같이 사냥 가실 분이 있을까요? 저도 먹고 싶어서 사냥을 나가려는데, 혼자서는 위험해서요.”
내 계획은 명확하면서도 확실했다.
무려 100레벨이 넘는 파티에게 쩔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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