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야 할 때(2)
싸워야 할 때(2)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각성자 경비원들이 출동해 오크들을 막고 있었고, 직원들이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안내에 따라 이동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오크들을 상대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긴, 등탑을 포기하고 경비 일을 하는 각성자들이, 탑의 장벽이라고 불리는 10층에서 나오는 오크를 상대로 버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잘못된 거겠지.
“크아아!”
“크악!”
퍼억─!
오크들이 도끼를 휘두르고 발길질할 때마다 경비원들이 허공을 날았다.
쿵!
바닥에 떨어진 경비원들은 일어나려고 했으나, 충격이 컸는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잠시 안도했던 사람들이 내달리고, 아비규환이 시작됐다.
통로는 꽉 막히고, 사람들이 넘어지며 다치는 사람이 생겼다.
오크의 도끼에 찍혀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 이제 어떡하지?”
민희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물었다.
우리는 고립됐다.
뒤는 벽이고, 통로는 사람으로 꽉 찼다.
창문을 통해 나가려고 해도, 오크를 뚫어내야만 한다.
“일단 상황을 보자. 이 구역 치안 담당 길드에서 출동할 테니까.”
그러나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오크 세 놈이, 고립된 우리를 포위한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으니까.
“오, 오빠!”
“어떡하죠?”
민희와 지수가 겁에 질려 나를 불렀다.
이거, 안 되겠는데······.
“······여기 가만히 있어.”
나는 호흡을 다듬으며, 옆의 매대에 전시되어 있던 연습용 브로드 소드를 쥐었다.
날만 없을 뿐, 0층에서 쓰며 손에 익었던 것과 같은 무게와 길이였기에, 다루는 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초등학생 정도 크기의 고블린만 상대하다 제대로 맞이하게 되는 첫 몬스터다.
180이 훌쩍 넘는 신장에, 터질 것 같은 근육.
가까이서 보니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고작 이딴 연습용 검으로 오크를 상대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나는 제임스의 검술과 새롭게 익힌 윌리엄의 썬더 볼트를 믿었다.
거기다 새로운 무기도 있지.
【스킬 사용】
-그림자 분신 : 본신이 가진 80%의 힘을 낼 수 있고, 5분간 유지됩니다.
-그림자 은신 : 10분간 유지됩니다.
나는 그림자 분신을 소환하는 동시에 그림자 은신을 사용해 내 그림자 안에 숨게 했다.
오크들의 방심을 유도해 두 놈을 먼저 처리해야 승산이 있을 테니까.
곧 놈들이 나를 포착했다.
“크아아!”
놈들은 무기를 든 나만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동시에 달려들었다.
멋지게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이야기지.
나는 왼쪽에서 달려드는 녀석의 도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J.H.식 검술!”
풀네임은 ‘말단 경비대원 제임스의 허술한 검술’이지만, 그건 좀 쪽팔리거든!
쾅!
검과 도끼가 부딪치자 오크가 씩 웃었다.
아마 힘으로는 자신이 압도하리라 생각했겠지.
그러나 오크의 기대와는 달리,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녀석의 도끼가 부러져버렸다.
“크아?”
오크의 얼빠진 울음과 함께, 나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오크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분신에게 썬더 볼트를 사용하게 했다.
뒤쪽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며, 도끼를 휘두르려는 오크를 향해서.
파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파크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두 마리의 오크가 동시에 쓰러졌다.
나는 몸을 비틀어서, 마지막 오크가 휘두르는 도끼를 피했다.
후웅!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렸으나, 나는 몸을 비트는 반동을 이용해서 놈에게 반격을 날렸다.
하지만 놈은 오른손에 쥔 도끼를 몸 근처로 붙이며, 내 일격을 방어해냈다.
쾅──!
“응?”
어느새 놈의 왼손이 바닥에 떨어진 동료의 도끼를 집어 들고 있었다.
저 자식, 다른 놈들보다 노련하다.
나는 옆으로 몸을 날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 머리가 있던 자리에 정확히 도끼가 내리꽂혔다.
“흡! 죽을 뻔했네.”
다급하게 일어서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순식간에 동료 두 놈이 당하는 걸 봤는지, 이제 오크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렇게 오크와 대치하던 중, 주위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쪽이다!”
“고립된 사람들 먼저 도와!”
이 구역을 지키는 길드 소속의 등탑자들이겠지.
한숨 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퇴로가 막힌 오크는 오히려 우리를 향해 돌격해왔다.
“크아아!”
뒤에는 아이들이 있으니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오크를 향해서 바닥을 박찼고, 놈과 맞부딪치기 직전 몸을 숙이며 슬라이딩했다.
놈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고, 내 검이 오크의 무릎을 후려쳤다.
뻐억!
오크의 무릎이 꺾이면서 그 큰 덩치가 휘청거렸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분신을 이용해 썬더 볼트를 사용했다.
파직―!
마지막 오크가 통나무처럼 굳어 쓰러졌다.
나는 쓰러지는 놈의 머리를 향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머리통을 깨부수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우······.”
가지고 있는 스킬과 아이템을 전부 이용한 첫 실전.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더 긴장했지만······.
“······그래도 성공적인 전투였네.”
오크 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했다.
고작 삼 주 전까지만 해도 고블린을 상대하는 데 절절매던 내가.
“제임스한테 수십 번 깨진 보람이 있어.”
홀로 소소한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길드 소속의 등탑자들이 다가왔다.
“뭐? 저 사람이 오크 셋을 쓰러뜨렸다고?”
“······10층 이상 등탑자인가?”
그들은 오크에게 당해 쓰러졌다가, 내가 싸우는 걸 지켜보던 경비원들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는, 내게 다가왔다.
“저기, 괜찮으십니까?”
“예, 뭐. 괜찮습니다.”
나는 브로드 소드를 던져놓고, 아이들을 살폈다.
“괜찮아? 둘 다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오빠 덕분에 살았어요!”
“이제 우리도 움직이자.”
아이들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이동하려던 때였다.
“저기 봐!”
“한슬기인가?”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가늘고 긴 레이피어를 들고 있는 젊은 여성이 백화점 안으로 들어왔다.
딱 봐도 고층의 랭커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드렸다.
“상황 끝입니다. 길드로 복귀하세요.”
“아, 팀장님. 알겠습니다.”
그녀가 우리를 쪽에 있던 길드 소속 각성자들에게 지시했다.
방금까지도 싸우다 왔는지, 그녀의 레이피어에는 미세하게 혈흔이 남아 있었다.
백화점을 채웠던 그 많던 오크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고, 각성자들이 백화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크 중 절반은 목에 구멍이 나 죽은 것으로 보아, 저 사람 실력인 것 같은데?
순수하게 감탄하는 중에······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잠시 대화를 좀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누구시죠?”
“아, 저는 서리 길드의 6팀장 한슬기라고 해요.”
“김정수입니다.”
“아까 싸우는 걸 좀 봤는데, 훌륭한 실력이더라고요. 혹시 몇 층 등탑자이신지 여쭤도 될까요?”
몇 층인지 묻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례하시네요. 그게 묻고 싶은 거였다면, 가겠습니다.”
어차피 층을 밝힐 수도 없지만, 0층부터 차근차근 층을 오르는 보통의 등탑자들도 층수를 밝히지는 않는다.
상대가 악의를 가지고 있다면, 위치를 특정 당해 살해당하는 일이 과거에는 빈번하게 일어났으니까.
때문에, 전광판에 표기되는 랭커들을 제외하고, 등탑자들끼리는 암묵적으로 층을 묻는 행위를 지양해왔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끼리 먼저 층을 밝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처음 보는 이 여자에게 몇 층 등탑자인지 답변할 의무는 없다.
날 선 답변을 들은 한슬기는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이거, 제 명함이에요. 혹시 지금 소속되어 있는 길드가 없거나, 이적을 원하시면 꼭 연락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한슬기가 내민 명함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98층밖에 가지 못하는 나는 길드를 들어가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 명함을 받아도 연락할 일은 없다.
하지만 민희는 어떨까?
탑을 오르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이 녀석은 탑에 들어오고 말 거다.
내가 어떻게든 말리려고 해도 그때뿐이겠지.
탑은, 각성자를 끌어들이는 마성을 지녔다.
비유가 아니라, 그 힘은 분명 실존한다.
그 시작을 만약 서리 길드에서 하게 된다면,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을뿐더러 지원도 빵빵하게 받지 않을까?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애초에 탑에 못 올라가게 만들어야지.
그래도, 나는 만약을 떠올리며, 명함을 받아 챙겼다.
“생각은 해보죠.”
*
김민희는 바닥에 쓰러진 오크들과 오빠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강해졌구나······.”
처음에는 가장 약한 몬스터라고 알려진 고블린을 상대하면서도 옷이 피로 젖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 탓에 걱정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오크 세 마리를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승리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어느덧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먼 곳까지 가버린 것 같은 큰오빠의 곁으로, 이 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서리 길드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중에, 화려한 갑옷을 입은 여자를 본 지수가 숨을 흡─ 들이켰다.
“헉, 저 사람!”
김민희는 김지수가 가리키는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김지수와 정확히 같은 반응을 보였다.
“헉! 저 사람, 그 사람 맞지?”
“맞아! 서리 길드 최연소 팀장, 한슬기! 실력으로도, 외모로도 유명한 그 사람!”
“나 얼마 전에, 저 사람이 36층에 도달했다는 뉴스를 봤어.”
탑에 관심이 생긴 이후로 종종 찾아보던 탑에 대한 정보.
그중 한슬기는 유명한 등탑자를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인물이었다.
김민희는 한슬기를 쳐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실물로 보니까, 사진이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음에도 화려한 갑옷과 그에 어울리는 미모에서 풍기는 우아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게. 저 언니, 실제로 보니까 사진보다 더 예쁘다. 사인해달라고 할까?”
김지수가 사인받기 위해 가방을 뒤져 종이를 꺼냈을 때쯤, 한슬기가 김정수에게 명함을 건넸다.
“헉! 미쳤다. 너희 오빠 서리 길드 스카우트 되나 봐.”
“······저런 사람이 오빠를?”
“그러니까 대박인 거지! 부럽다. 이제 지원 빵빵하게 받아서 순식간에 탑 높은 곳까지 올라가겠지?”
그러나 김지수의 생각과 달리, 김정수는 건조한 목소리로 답하며 명함을 품에 넣었다.
“생각은 해보죠.”
사실상 거절이었다.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 몰랐다는 듯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한슬기는 물론이고, 김민희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아직 탑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수준인 김민희조차도 알고 있을 정도로 서리 길드의 위세는 대단했으니까.
“헐. 정수 오빠 지금 스카우트 깐 것 같은데? 혹시 더 큰 길드에 스카우트 됐었어?”
“아니,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아냐. 확실해. 아니고서야, 저런 길드를 깔 리가 없어. 정수 오빠, 생각보다 능력 좋구나?”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김지수에게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김민희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고블린에게 큰 상처를 받고 돌아왔던 오빠인데, 어느덧 서리 길드의 스카우트를 거절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하긴, 아까 오크 사냥하는 거 보니까 장난 아니긴 했지. 정수 오빠 진짜 멋있더라. 나 소개해주면 안 돼?”
“어, 어어? 뭐라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
“왜 이렇게 기겁을 해? 어차피 친오빠도 아니잖아? 어? 잠깐······ 생각해보니까 친오빠가 아니잖아. 너 설마······.”
“아 진짜!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한마디만 더 해봐, 아주!”
버럭 화를 내며 주먹을 들어 올리는 김민희를 피한 김지수가 웃으면서 종이를 들고 뛰었다.
“꺅! 슬기 언니, 팬이에요! 사인해주세요! 언니처럼 강한 등탑자가 되는 게 꿈이에요!”
“고마워요. 강해져서 탑 위에서 만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김민희는 사인을 해주면서도 김정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한슬기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김정수를 째려보았다.
“갑자기 왜? 어디 다쳤어? 아파?”
“아니!”
바닥에 화풀이하듯 쿵쿵거리며 앞서 걸어가는 김민희를 보며, 김정수는 머리를 긁었다.
“다친 게 아니면······ 장비 못 사게 돼서 화가 났나? 녀석, 참. 다음에 사러 오면 되지.”
“그거 때문에 화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김지수는 묘한 눈길로 김정수와 저 멀리 사라져가는 김민희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야?”
“글쎄요. 민희야! 같이 가!”
김지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김민희를 따라 뛰어가 버렸다.
김민희가 대체 왜 화를 내는지 고민하던 김정수는, 저 멀리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기겁하며 뛰었다.
“야, 야! 같이 가! 또 몬스터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
서리 길드 최연소 팀장 한슬기.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드에 돌아와 한 사람의 정보를 요청했다.
“별일이네? 네가 길드 통해서 사람 뒤도 캐는 걸 다 보고.”
“빨리 조회나 해줘요.”
한슬기가 정보 조회를 요청한 것은 김정수라는 등탑자.
들어본 적 없으니, 루키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루키라기엔 실력이 너무 훌륭했다.
“혼자 날도 서지 않은 연습용 검으로 오크 셋을 홀로 상대할 실력, 그리고 마나 하트.”
그녀는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김정수가 오크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알 순 없지만, 가까이서 살펴볼 때 마나 하트까지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분명한 실력자다.
하지만, 김정수의 가치는 단순히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 보는 강력한 검술과 마법이었어.”
김정수가 가진 스킬.
화려한 그의 움직임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그가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스킬을 사용할 때 그 정도로 많은 마나가 응축되는 장면은, 한슬기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나마 단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었다.
“박진혁의 오러 소드.”
순수한 마나를 응집해 검을 강화하거나 검을 만들어내며, 박진혁을 1위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던 스킬.
수수께끼의 98층 등탑자 때문에 랭킹이 한 자리 밀렸을지라도, 한슬기는 직접 눈으로 본 그 스킬의 위력을 잊을 수 없었다.
마나로 만든 검이 춤을 추며 몬스터들을 두부 썰 듯 가를 때의 그 충격이란······.
한슬기는 김정수가 그런 강력한 스킬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또, 그런 스킬들을 마치 제 수족처럼 자유롭게 사용했다.
검을 휘두르면서도, 마치 눈이 뒤통수에도 달린 듯 정확하게 뒤를 노리는 오크에게 썬더 볼트를 사용했으니까.
가진 스킬 뿐만 아니라, 전투 자체에도 어마어마한 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저렇게 능력이 있으니 홀로 탑을 올라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스카우트 제안에도 시큰둥했던 게 분명하겠지.
물론, 여태까지는 말이다.
길드 마크가 없는 것을 보아, 아마 길드에 소속되지 않고 홀로 탑을 오르는 등탑자일 터.
몇 층을 오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홀로 탑을 오르는 것에 한계를 느낄 게 틀림없었다.
랭커는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얼마나 많은 지원을 받느냐에 따라 성장의 폭과 속도가 달라지곤 하니까.
한슬기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그 천재를 키우고 싶어졌다.
김정수는 빠르든 늦든 언젠가 랭커가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으니까.
“길드에서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질 거야.”
물약부터 장비, 가족들의 거주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원한다면 탑을 들어갈 때 무게 제한 때문에 가지고 가지 못한 물건도 배송해준다.
그녀 또한 길드의 지원을 통해 순식간에 성장했으니,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스카우트 제안을 걷어차인 만큼, 김정수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미 한 번 까였지만, 물지 않고는 못 배기는 미끼를 준비하면 되지.”
길드를 통한 정보 요청은 미끼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렇게 몇 시간 후, 목 빠지게 기다리던 김정수에 대한 정보가 도착했다.
한슬기는 빼앗듯이 종이를 잡아챘다.
“뭐야, 이게 다예요?”
“그래. 얼마 안 나오더라.”
한슬기는 갸웃거리면서도 정보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김정수, 고아원 출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고아원에 거주. 0층에서 이동한 지······ 삼 주 째? 잠깐, 이거 잘못된 정보 아니에요?”
“틀릴 리 없다는 거 알잖아. 길드 연합에 통행료 내고, 0층에서 포탈 이용한 지 이제 삼 주 된 거 맞아.”
호언장담하는 관계자의 말에, 한슬기의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겨우 삼 주라니······.”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김정수는, 그저 대어가 아니라 고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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