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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6화 (6/69)

강해질 이유(3)

강해질 이유(3)

윌리엄도 모르는 스킬, ‘아카식 아머리’.

그러고 보니, 탑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카식 아머리가 나를 인식한다는 메시지를 읽긴 했었다.

98층에 처음 도착해 주위에 몬스터가 가득한 상황이다 보니 잊고 있었는데, 무기를 소환하는 스킬일 줄이야.

윌리엄은 잠시 내 손에 쥐어진 단검을 보더니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정수, 그건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말게나······.”

“예?”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을 아무에게나 보여주고 좋은 꼴 본 사람을 본 적이 없네.”

“어······ 예를 들면요?”

“극단적인 예시지만, 마탑에서 알게 되면 생체실험이라도 하려고 달려드는 놈들이 있을 거야.”

소름이 돋아났다.

생체실험이라니, 이곳에도 그런 일이 있는 건가?

그간 너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다 보니, 이곳의 위험성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면이 있었다.

지구에서도 그런 인간들이 있는데, 이곳이라고 없을까.

그것도 탑의 최상부로써, 마왕을 잡는 게 메인 퀘스트이지 않던가?

되새겨보면 역시 위험한 곳이야.

확실히, 윌리엄의 말대로 조심해서 행동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히 받을게요.”

“허허. 그래. 무기를 소환하는 그 마법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조용히 알아보겠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며, 초콜릿을 꺼내 건넸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마법사님. 아니, 스승님!”

“허허, 이 사람 참. 내가 굳이 이런 걸 바라고 알아보겠다고 한 건 아니건만······.”

“아, 필요 없으십니까?”

내가 초콜릿을 다시 넣으려고 하자, 윌리엄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그렇다고 굳이 주겠다는 걸 거절하는 건 아니네.”

“하하, 그렇죠. 어떻게 맨입으로 부탁드리겠습니까. 드려야 제 마음도 편하죠.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물론, 사례도 하겠습니다.”

“크흠! 내 온 힘을 다해 알아봐 주겠네. 물론, 초콜릿 때문은 아니야.”

사례를 하겠다는 말에, 윌리엄의 눈에서 이채가 빛났다.

초콜릿을 위해서라도 빨리 알아봐 주겠지.

“자,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나 하트가 완성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마법을 배워야겠지.”

“예! 준비됐습니다!”

윌리엄은 나와 몇 걸음 떨어지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마법에는 단계가 있네. 그리고 힐링 마법은 생각보다 어려운 편이고.”

“그렇군요.”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짜는 다음에 이어졌다.

“그래서 먼저 상대적으로 쉬운 마법부터 시작해서, 마나를 어떻게 다루는지 이해해야 해. 그러니, 첫 단계로 ‘썬더 볼트’를 가르쳐주겠네. 마나의 성질을 결정하고 그냥 사출하면 되는 기본적인 공격 마법이라네. 물론 넓은 범위에 사용하면 그만큼 통제하기 힘들어지니 주의가 필요하고.”

윌리엄이 한 걸음 더 물러섰고, 나도 한 걸음······ 아니 두 걸음 물러섰다.

“잘 보게.”

파지직─!

윌리엄의 손에서 새파란 전류가 튀었다.

“오!”

“위험할 수도 있어서 아주 작게 피워 낸 것이라네.”

나 역시도 저 마법이 뭔지 알고 있었다.

전격 마법 계열의 첫 단계, 썬더 볼트.

그러나 파괴력으로는 화염 마법에 버금가는 전류 마법인 만큼, 고블린 정도는 통구이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이다.

물론, 이곳 98층에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래층에서 배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테지.

윌리엄은 몇 번이고 썬더볼트를 시연했다.

그리고 마나하트 덕분인지, 나는 윌리엄의 손바닥 위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마나의 배열들.

마나의 상호작용.

대충 그런 것들.

나는 눈을 감고 손바닥 위에, 제임스가 선보였던 마나 배열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도하자, 손바닥 위에서 간질거림이 느껴지더니······.

파직─!

내 손바닥 위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오오!”

【전격 마법사 윌리엄의 허접한 썬더 볼트를 익힐 수 있습니다】

【숙련도 100% 달성 시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숙련도 1%】

【레벨이 오릅니다】

윌리엄의 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크기였으나, 첫 수업에 곧바로 성공한 것이었다.

그것을 본 윌리엄이 흐뭇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역시, 마법에 재능이 있구만. 썬더 볼트를 이렇게 빠르게 사용할 줄이야.”

“하하, 좋은 스승님을 둔 덕분이죠.”

비록 허접한 썬더 볼트라고 할지라도, 무기가 하나 더 생긴 셈.

허접하다는 수식어에 실망할 필요도 없었다.

제임스의 검술도 허술하다는 것 치고는 고목을 터트려버리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나는 웃었다.

윌리엄의 말에 따르면 마법에 더 재능이 있으니, 검술보다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

다시 이틀이 흘렀다.

【전격 마법사 윌리엄의 허접한 썬더 볼트】

【현재 숙련도 10%】

썬더 볼트의 숙련도는 10%를 달성했고, 레벨은 25를 달성했다.

마법을 배우는 한편, 나는 단검 ‘그림자 암수’의 스킬도 사용해 보았다.

“그림자 분신.”

그림자 암수에 달린 두 개의 스킬 중 하나인 그림자 분신.

스킬을 사용하자, 내 그림자가 꾸물거리더니 나와 똑같이 생긴 녀석이 나타났다.

“······안녕?”

마치 거울이라도 보는 기분.

또 다른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이거 뭔가 찝찝한데······.

“자, 움직여 봐.”

그림자 분신은 충실히 내 명령을 따랐으며, 내가 가진 스킬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었다.

“썬더 볼트.”

파직─!

분신의 손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혼자 싸우면서도 두 명 몫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진짜 좋은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분신 녀석이 그림자 은신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림자 은신.”

녀석은 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소리.

심지어, 분신은 그림자 안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기습을 대비하기도 좋고, 기습하기도 좋다.

98층에 온 후 전투를 한 적은 없었지만, 인생사 유비무환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쓸 수 있는 무기는 많을수록 좋지.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단검을 소환 해제했다.

그리고, 남은 라면과 초코바, 소시지 같은 것들을 챙겨 경비 소초로 향했다.

귀환의 쿨타임이 끝나기까지 이제 고작 열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즉, 경비대원들에게 해주에 관련된 정보를 모아달라고 부탁한 기한이 끝났다.

소초에 도착하자, 경비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의 눈에 기대와 긴장감이 뒤섞여있었다.

“자, 정보를 얻으신 분 있으신가요?”

내 물음에, 경비대원들이 유치원생들처럼 손을 번쩍 들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드래곤의 심장을 삼키면 된다!”

“환상의 약초를 구해다 달여 먹이면 돼! 그게 뭐냐고? ······나도 모르겠는데.”

“아니다! 여자 고블린의 겨드랑이털과 오우거의 뒤꿈치 각질을 달여서······.”

여기저기서 정보가 쏟아져 나왔지만, 하나 같이 신빙성이 부족하거나,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결국, 쓸모없는 정보만 잔뜩 듣게 된 나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군.”

“아니에요. 다들 노력해주셨잖아요.”

그때, 저 멀리서 윌리엄이 걸어오고 있었다.

“정수, 여기 있었구만. 볼 일이 있다고 신나서 가더니만, 경비대 녀석들이 또 라면 달라고 못살게 구는 거야?”

“윌리엄,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긴, 주기적으로 와서 다친 녀석들한테 치유 마법을 걸어주거든.”

“아!”

“아?”

내가 왜 강력한 힐링 마법을 가진 윌리엄에게 저주에 관해 물어볼 생각을 못 했지?

“아, 윌리엄. 그게 말이죠······.”

나는 윌리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해나의 얼어붙는 저주와 경비대원들에게 해주 방법을 수집해달라고 부탁한 것까지.

설명을 들은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 걱정하지 말게.”

“설마! 윌리엄, 방법이 있는 거예요?”

“그 정도 설명으로는 확실하게 해결할 수 없겠지만, 증상을 호전시키는 물약 정도는 내어줄 수 있다네.”

나는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윌리엄을 끌어안았다.

“윌리엄! 고마워요!”

“허허. 자네의 그······ 마법에 대해 알아보면서, 저주를 푸는 방법도 찾아보도록 하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나는 윌리엄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해나의 저주를 풀 방법을 찾을 수 없을까 봐 걱정을 많이 한 만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으니까.

그런데 이 감격스러운 순간에, 경비대원들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근데, 이렇게 되면 특제 라면은 누가 먹게 되는 거지?”

“당연히 윌리엄이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잖아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경비대원들의 시선이 윌리엄에게 쏠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리 떼 같았다고 해야 할까?

“음? 허허······ 자, 자네들 눈이 왜 그러나?”

윌리엄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경비대원들은 홀리기라도 한 듯이 초점이 흐린 눈으로 윌리엄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특제라면······.”

“영감님······ 왜 우리의 낙을 빼앗아 간 겁니까······.”

“영감님은 부탁받고 정보를 모아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읊조린 마지막 말에, 경비대원들이 정신을 차리고 항의를 시작했다.

“맞아! 윌리엄 영감님은 해주 정보를 찾아오는 내기를 할 때 안 계셨잖아!”

“우리 중에 고르는 게 맞지!”

경비대원들의 억울함을 듣던 윌리엄이 턱을 쓸었다.

“일리 있는 말이야. 아쉽기야 하지만, 나 말고 저 경비대원 중에서 보상을 주게.”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뭐, 정 주고 싶다면 초콜릿이면 되네. 그걸 먹고 나니,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거든.”

윌리엄이 푸근하게 웃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경비대장 클라크는 이때다 싶었는지, 우렁차게 외쳤다.

“자! 영감님도 허락하셨겠다, 골라 보게! 우리 중에서는 누가 특제 라면을 먹을 자격이 있지?”

경비대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이번에는 나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경비대원들 중에서 그리 쓸모 있는 정보를 가져다준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누군가를 고르자니, 경비대원들끼리 싸움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미쳤다.

“하아. 어쩔 수 없네요. 다들 날이 서 있으니, 누굴 고르면 싸움이라도 나겠어요.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먹죠. 윌리엄도 포함해서요.”

“헛! 하지만, 라면은 귀한 음식이지 않은가. 우리가 다 같이 먹으면, 양이 장난이 아닐 텐데?”

“이거, 우리끼리 싸우다가 민폐만 끼치는 꼴이 되겠는데요?”

경비대원들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다가 주머니를 꺼냈다.

“좋아. 우리가 라면이 없지, 돈이 없나? 정당하게 돈을 내고 먹지!”

“그래, 좋아! 다들 주머니 좀 털어보라고!”

촤르륵!

순식간에 골드가 쌓이기 시작했다.

“언제 라면을 사게 될지 모르니까 다들 돈을 들고 다니는구만. 2,000골드야. 이 정도면 되겠나?”

처음 이곳에 와 남은 라면을 팔았을 때 얻었던 것의 두 배.

거기에 중간중간 경비대원들이 라면을 샀던 금액까지 합치면 내 수중에 있는 건 총 4,000 골드.

이 돈으로 마을에서 이것저것 산 다음 지구로 가져가서 판다면, 못해도 400만 원 정도 될 거다.

골드뿐만 아니라, 힘이 쭉 빠진 채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던 제임스가 다가와 마법석을 내밀었다.

“순찰 중에 찾은 거다. 저번 것보단 좀 나을 테니 부족해도 이해해 줘.”

마법석을 준 제임스는 다시 휘적휘적 구석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요리 담당인 제임스의 역할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라면을 팔아 400만 원어치의 골드에 더해 새로운 마법석까지.

어차피, 남은 음식들을 굳이 다 챙겨온 것도 탑을 내려가기 전 경비대원들에게 팔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라면, 남은 음식을 털어 손수 라면을 끓여주는 서비스 정도야 할 수 있지!

“자! 좋습니다. 이렇게 된 거, 특제라면, 만들어 드리죠!”

“우오오오!”

“정수! 난 네가 그런 통 큰 사나이인 줄 알고 있었다고!”

모두의 환호와 함께, 나는 나와 경비대원, 윌리엄의 것까지 라면 물을 계산해 충분한 양의 물을 끓였다.

거기에 98층에서 구한 파를 썰어놓고, 지구에서 가져온 햄 통조림을 뜯는다.

특제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남은 음식 중 라면과 어울릴 것들은 전부 털어 넣었다.

“자, 드셔보세요.”

후루룩─! 후룩─!

여기저기 면을 흡입하는 소리가 울렸다.

“어떠세요?”

“라면에서 또 한 번 새로운 맛을 느낄 줄이야!”

“특제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군! 정말 최고야!”

윌리엄까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하루가 끝났다.

남은 건 탑 밑으로 내려가서 팔 물건을 사서 내려가는 것뿐.

나는 날이 밝자마자 가진 금화를 다 털어 가방을 채웠고, 올라올 때만큼 묵직해진 가방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물론, 그 안에는 해나의 저주를 완화해줄 윌리엄의 포션도 섞여 있었다.

“기다려, 얘들아. 이번에는 더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귀환의 쿨타임이 끝났다.

*

고아원 앞에 세 남자가 나타났다.

그 중, 가운데 있는 남자가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고아원을 향해 가며, 침을 찍 뱉었다.

“시팔, 우리가 여기까지 와야 해? 얘들아. 오늘은 기강 좀 바로잡자.”

“예, 형님.”

세 남자가 고아원을 들어서자, 아이들은 자연스레 방 안으로 도망가며 속삭였다.

“어떡해, 어떡해.”

“형들 잡아갔던 사람들이 왔어.”

그 술렁거림을 듣고 방에서 나온 김민희가 그들을 보고 숨을 흡― 들이켰다.

“여, 민희. 많이 컸네?”

“여긴 대체 무슨 일로······.”

“왜 왔긴. 너도 이제 거의 다 컸으니까 알 거 아니야? 빚 받으러 왔지.”

남자가 씩 웃으면서 김민희의 전신을 훑어보았고, 김민희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이제 슬슬 여길 떠나야 할 나이지 않나?”

남자가 뻣뻣하게 굳은 김민희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부엌 쪽에서부터 원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만! 그만하게. 나랑 얘기하지.”

“아, 원장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귀찮게 여기까지 오게 하고. 민희 다음에 보자.”

세 남자는 원장을 따라 원장실로 들어갔다.

김민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원장실 문에 기대 대화를 엿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게.”

“아니, 원장님. 우리가 언제까지 기다려드려야 해요? 기부도 해, 돈도 빌려줘, 뭐가 문제냐고.”

“이자가 턱없이 비싸지 않나. 이번 달에는 이자라도 꼭 낼 테니 그만 돌아가 주게.”

쾅!

잠시 큰 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이자라도 낸다는 말만 몇 개월 동안 하시냐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겁니까? 그냥 좋게 말할 때 애들을 넘기시면 되잖아요?”

“······.”

“아니면 내가 애들 설득해볼까? 여기서 거지처럼 살 건지, 멋진 등탑자가 될 건지. 본인이 가고 싶다고 하면 원장님이 어쩔 건데?”

“애들은 건드리지 마!”

“어이, 원장님. 착각하지 마. 당신이 애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아니? 애들이 오히려 당신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바스락.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고, 남자가 말을 이었다.

“보세요. 고작 몇 년 사이에, 원장님이 애들한테 쓴다고 빌린 돈이 몇 배로 불었는지. 이거 갚을 능력 있으세요?”

잠깐의 침묵 후에, 남자가 말을 이었다.

“애들도 원장님을 망치고 있지만, 원장님도 애들 망치고 있는 거예요. 우리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취직해서 돈 벌고 사는 건데, 사람이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쯧쯧.”

“그렇게! 그렇게 너희들이 데려간 애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데!”

“거참. 탑을 오르다 보면, 사람 죽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걔들 부모도 그렇게 죽었는데, 애들이 모르고 따라올까?”

“이, 이 자식들이!”

우당탕!

몸싸움이 있는지, 원장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김민희는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원장님!”

원장이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으윽, 으으윽······ 미, 민희야! 나가 있어!”

“어쭈, 아직도 애들 챙길 정신이 있으신가 봐?”

퍼억!

남자가 원장의 복부를 걷어찼고, 김민희가 달려들었다.

“야!”

“어이쿠. 이 아가씨가 머리 좀 크더니, 이제 개기네?”

“꺄악!”

남자는 달려드는 김민희를 가볍게 피하며,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왜 사람이 좋게 말하면 말을 안 들어? 우리가 우스워?”

남자가 눈치를 주자, 덩치가 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원장실의 문에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나무로 만든 문이 형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조각났다.

“빚도 못 갚아놓고, 우리를 이렇게 푸대접하면 안 되지.”

“끄으······ 애들, 애들은 놔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네.”

남자가 다시 원장을 걷어차려고 할 때였다.

“뭐 하는 짓이야!”

문 쪽에서 들린 외침.

산산이 부서진 문 뒤에는 큰 가방을 멘 정수가 서 있었다.

“흑, 흐윽. 오빠······.”

정수를 본 김민희가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김민희의 머리채를 던지듯이 놓고는, 환하게 웃으며 정수를 향해 다가갔다.

“이야, 오랜만이네. 너도 요즘 탑 오르고 있다며? 몇 층이냐? 벌이는 좀 괜찮고?”

툭, 툭.

남자가 정수의 어깨를 가볍게 치자, 정수는 남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꽈득.

“이, 이 새끼 무슨 힘이······.”

남자가 당황하며 팔을 빼려 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잠시 김민희와 원장을 바라보던 정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 받으러 오신 거면, 저랑 얘기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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