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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4화 (4/69)

강해질 이유(1)

강해질 이유(1)

98층에 돌아가기 전, 나는 다시 가방을 채우기 위해 장을 보기로 했다.

빈 가방을 들고 나서려는 데, 아이들 몇 명이 따라나섰다.

“오빠 마트가? 나도 갈래!”

“형, 나도! 나도 가서 짐 들어줄게!”

녀석들의 마음이 빤히 읽혔기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

“이 녀석들. 과자 먹고 싶어서 그런 거지? 형이 모를 줄 알아?”

녀석들은 열심히 핑계를 생각하는지 도르륵 눈을 굴렸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웠던 나머지,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하! 알았어. 한 명당 하나씩이야. 가자.”

“와, 형 최고!”

“오빠, 나도 갈래.”

그렇게 말한 건, 고아원에서 나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민희였다.

“민희 너도? 넌 왜?”

“그냥 휴일인데 안에만 있기 좀 그래서.”

“그래 가자. 애들 좀 봐줘.”

장 볼 게 많으니 나 혼자 아이들을 전부 돌보는 건 힘들다.

민희가 따라와 주면 편하게 장을 볼 수 있겠지.

고아원을 나서려는 데, 뒤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오빠······.”

“어, 해나야. 일어나 있었어?”

“응. 나도······ 장 보러 같이 가도 돼?”

저주 때문에 여전히 해나의 입에서 입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녀석, 겨우 내내 방 안에만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차가운 몸이, 밖의 공기와 만나면 감기에 걸리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으니까.

요즘 날씨도 풀렸겠다, 오랜만에 밖을 구경시켜주고 싶긴 하네.

“그래, 해나도 같이 가자.”

“오빠.”

민희가 내 옆구리를 꼬집으며 눈치를 주었지만, 나는 이미 해나를 데리고 가기로 결심을 마쳤다.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와 잠시 눈싸움을 하던 민희가 낮게 한숨을 흘렸다.

“하아. 알았어. 오빠 똥고집을 누가 말려?”

“해나까지 가자.”

그러자 해나가 배시시 웃었다.

“응. 조심할게.”

저 녀석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마트에 가는 것에 설렐 정도로 일상생활을 못 해왔다는 뜻이기에, 나는 속이 쓰렸다.

결국, 장을 보기 위해 꼬맹이 셋, 나와 민희, 해나까지 여섯 명이 마트로 향했다.

“라면, 초코바, 초콜릿, 소시지, 통조림 햄······.”

나는 내가 먹을 음식과 더불어서, 98층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만한 물건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뭐, 현대의 가공식품은 가리지 않고 환장하겠지?”

그래도 10kg라는, 탑 반입 제한 안에서 최선의 효율을 위해서 가장 대중적인 것들로만 챙겨야겠다.

장을 보던 중, 아이들을 돌보던 민희가 은근하게 물어왔다.

“근데, 오빠, 그······.”

“응? 왜 안 어울리게 말꼬리를 흐리실까? 사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1층에 올라가 보니까, 어때? 진짜로 막, 무서운 몬스터가 많아?”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나 역시도 1층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가 98층에 있다고 밝힐 수는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

“뭐, 위험하긴 해도 마을은 안전하지. 사냥터는 따로 존재하고. 그런데, 그건 왜?”

“아니, 뭐 그냥 오빠가 어떻게 일하나 궁금해서······.”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너 설마······.”

“아니야! 탑에 관심 없어! 난 안 오를 거야! 그냥 오빠 일하는 게 궁금해서 그런 거라니까! 해나야! 우리도 간식 보러 가자! 너희도!”

민희는 거짓말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하게 말을 늘어놓고는 아이들과 함께 저 멀리 사라졌다.

불길한데······.

제 핏줄은 못 속인다고, 누가 목숨 걸고 탑 오르던 사람들의 자식 아니랄까 봐 고아원 아이들은 대부분 탑을 오르고 싶어 했다.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하지만 위험한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탑을 오르는 걸 막기 위해 돈을 벌려는 거고.

나는 애써 불길함을 털어내고는 쇼핑을 계속했다.

그렇게 쇼핑 카트 하나가 거의 다 찼을 때였다.

쨍! 쨍그랑!

쩌저적.

병 여러 개가 깨지는 소리와 무언가가 얼어붙는 소리, 고함이 들려왔다.

“아이고, 이걸 다 어떡해!”

“저 사람, 뭔가 이상한데? 설마 저주받은 거 아니야?”

“진짜네! 옮으면 어떡해?”

“빨리 좀 내보내요!”

저주? 설마······.

나는 쇼핑 카트를 버려두고 뛰어갔다.

거기에는 발만 동동 구르는 아이들과 쓰러진 해나를 부축하는 민희가 있었다.

“미, 미안해. 나 때문에, 미안해······.”

“괜찮아. 해나야. 괜찮아. 오빠 금방 올 거야.”

“저 사람들 빨리 내보내라고!”

“이게 얼마 친데! 책임질 거야?”

바닥에 깨진 유리 조각들과 흘러나온 액체가 조금씩 얼어붙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주가 발현되는 것이다.

자기 몸뿐만 아니라, 주변부까지 얼려버리는 막강한 한기······ 때로는 공격 스킬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하여, 철저한 통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점점 발현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해나를 살폈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응. 미안해, 오빠 나 때문에······ 내가 괜히 따라온다고 해서······.”

“다친 데 없으면 됐어. 일어날 수 있어?”

나는 해나를 부축해 천천히 일으켰다.

그러자, 마트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리를 둔 채 소리쳤다.

“그쪽이 그 사람 보호자야?”

“예. 맞습니다.”

“이거 어쩔 거야! 이게 얼마인데!”

“죄송합니다. 손이 미끄러졌나 봐요.”

깨진 병들을 슬쩍 살피니, 언뜻 봐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었다.

가격표를 보아하니, 십수만 원은 하는 양주들.

마트 직원은 씩씩대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오, 이것들 아까워서 어떡해?”

“죄송합니다. 변상하겠습니다.”

“하, 변상할 능력은 있고? 쯧, 딱 봐도 없는 것 같은데······”

직원은 나와 아이들을 위아래로 슥 훑으면서 말했다.

조금 화가 났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해나를 돌보지 못한 탓도 있는 데다, 마침 돈에 여유도 좀 있고.

“죄송합니다, 나갈 때 변상하겠습니다. 얘들아, 가자.”

그렇기에 조용히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서는 내 귀로 들리면 안 될 말이 들렸다.

“옷 입은 꼬라지들 보니까 거지새끼들 같은데, 저주에 걸렸으면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 왜 밖에 나와서 민폐나 끼치고 지랄이야?”

피가 식었다.

“민희야. 해나 데리고 가서 애들 챙겨.”

“어? 알았어.”

내 얼굴을 본 민희가 다급하게 해나를 데리고 아이들을 찾으러 갔다.

홀로 남은 나는 뒤를 휙 돌아 직원을 노려보았다.

“왜? 할 말 남았어?”

나는 진열장에 남은 술을 손가락으로 툭, 툭 치면서 마트 직원에게 다가갔다.

쨍, 쨍강!

“어? 어어! 미쳤어! 뭐 하는 짓이야!”

“미쳤냐고? 그래. 안 미치게 생겼어?”

나는 술 한 병을 쥐고 힘을 주었다.

까드득, 까득! 쩌적!

두꺼운 유리로 만든 병에 거미줄처럼 쩍, 갈라졌다.

마트 직원은 숨을 흡, 들이켜더니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힘을 꽉 주자, 술병이 퍽─ 하고 터져버렸다.

툭, 투둑.

바닥으로 뭔가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

“이것까지 계산해주시죠.”

·

·

·

내가 깬 술값까지 포함해, 장 한 번 보는 데 들어간 금액은 약 200만 원.

속이 좀 쓰리지만, 우리의 자존심 값이라고 생각하면 비싼 값도 아니다.

“미안해, 오빠. 괜히 나 때문에······. 흑.”

해나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고,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어깨 펴. 누구의 탓도 아니야. 돈이 문제면, 우리 이제 주눅들 필요 없어. 그리고······.”

나는 온몸에서 새하얀 한기를 내뿜고 있는, 해나의 어깨에 내 옷을 덮어주며 말을 이었다.

“······저주도 내가 반드시 풀어줄게. 어깨 펴.”

내 말에 해나가 울음을 참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졌기에, 나는 일부러 불안해하는 꼬맹이들을 데리고 장난을 쳤다.

“그리고, 너희. 과자 두 개씩 넣은 거 다 알아. 하나는 형이 다 뺏어 먹을 거야.”

“아앗! 큰형 치사해!”

“형보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과자 두 개 다 주지!”

“이익! 내가 먼저야!”

아이들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고, 뒤에서 민희가 소리쳤다.

“뛰지 마! 다쳐! 아휴, 못살아 진짜!”

민희도 내 뜻을 이해했는지,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래.

우리는 이제 주눅 들지 않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탑에 올라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98층에는, 분명히 저주를 해제하는 방법이 있겠지.”

현재 지구에서는 프리스트들의 ‘해주(解呪)’ 스킬 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해주 스킬 1회 비용으로 10억을 제시했으니······ 우리는 치료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프리스트 조합’의 갑질은 원체 유명하기에, 언젠가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접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프리스트들끼리 단합하여 돈놀이하는 놈들······ 심지어 봉사를 베풀려는 선한 프리스트들을 잔혹하게 견제한다지.

연금술 협회에서 해주약을 제조해보려고 연구 중이지만, 프리스트 단체가 쉽게 이익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협력 요청에 미적지근한 것은 당연하고, 방해 공작까지 펼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까.

때문에, 아직 해주약은 C나 D등급의 해주만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해나의 저주는 B+등급이라서, 아직 몇 년은 더 걸릴 거라고 했지······.”

하지만 98층에는 B등급 이상의 저주를 해독할 수 있는 약도 있지 않을까?

해나의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탑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가 더 생겼다.

나는 곧바로 짐을 싸, 탑으로 향했다.

우우웅─

98층으로 돌아오자, 심장에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손을 가져다 대니 웅─웅─하고 묘한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뭐지? 씁, 불길한데······.”

몸을 더듬어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디버프가 다시 걸렸다는 메시지도 없었고, 심장에 묵직한 느낌은 들지만, 몸은 오히려 더 가벼워졌다.

경비대원들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여관을 떠나 경비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내 얼굴을 본 경비대원들이 쌍수를 들고 반겨주었다.

“여어! 정수! 왔구만!”

“생각보다 일찍 왔군. 한참 걸릴 줄 알았더니.”

“고향과 연락할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이 있어서요.”

“그럼 우리야 다행이지만, 제임스가 슬퍼하겠군.”

“제임스가요?”

의문을 표하자, 경비대원들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푸하하! 글쎄, 네가 라면을 가져온 이후로 아무도 제임스의 밥을 먹고 싶지 않아 했더니, 요리 공부를 시작했지 뭐야?”

“근데 그것마저도 실패해서, 괴상한 음식이 나와버렸어. 대장님을 포함해 컵라면을 못 구한 몇 명은 하루의 반을 화장실에서 보내고 있다고.”

“하하하! 제임스가 이를 갈면서 네가 돌아오면 더 힘들게 훈련 시킬 거라고 하던데, 잘 해보라고.”

이것 참, 좀생이 같으니라고.

나는 피식 웃으면서 제임스를 찾았다.

슬쩍 초코바라도 하나 찔러주면 풀리겠지.

“제임스! 제임스 있어요?”

“여기 있다.”

초소 근처에서 쪼그려 앉은 채 나뭇가지로 바닥을 긁다가, 나를 째려보는 제임스.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젠장, 여기서 막내로 지내면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요리밖에 없었는데, 네가 온 이후로 잡동사니 제임스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제임스는 손에 쥔 나뭇가지를 던져버리면서 일어났다.

나는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내 건넸다.

“이거 받고 기분 풀어요. 그래도 제임스는 제 검술 스승이잖아요? 저번에 줬던 마법석으로 사 온 건데, 몰래 제임스한테만 주는 거예요.”

큰 비밀이라도 되는 듯 작게 말하면서 윙크까지 한 번 해주자, 제임스는 인상을 구기면서도 초코바를 낚아채 갔다.

“사내놈이 무슨 윙크냐? 말만 번지르르하기는······ 크흠! 그래도, 내가 검술 스승이 맞긴 하지. 실력이 얼마나 올랐나 한 번 볼까?”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직 화난 척하면서도 돌아서면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려고 하는 게, 단순한 사람이다.

“같이 가요!”

나는 검을 들며,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 혹시 가슴에 묵직한 느낌이 드는데, 이게 뭔지 아세요?”

혹시나 제임스의 검술을 배워서 생긴 증상인가 싶어서.

그러나 제임스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묵직한 느낌? 흠······. 나는 잘 모르겠는데. 몸이 안 좋나?”

“아뇨, 오히려 가볍기는 해요.”

“그럼 좋은 거지 뭐.”

“그럼 그런 걸 찾아볼 수 있는 책 같은 건 있나요?”

“책? 그런 건 영주성에나 있지 않을까? 경비대에는 전혀 없어.”

적어도, 경비대에는 없다는 말.

내 심장에 관한 거나, 해나의 저주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보려면 귀족과 친분을 쌓아야 하나?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고작 초코바나 라면으로 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 사람들은 조금 거칠지만 순수하다.

속이려고 한 건 아닌데, 나를 남부 귀족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로.

하지만 나름 세상 돌아가는 일이 밝은 귀족 앞에서는 신분을 속이는 건 어림도 없겠지.

내가 지구에서 왔다는 걸 충분히 설명하기 전까지 이 방법은 보류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제임스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던 나에게 말했다.

“다른 이야기로 새지 말고, 빨리 검술이나 보여 보라고.”

나는 검을 들고, 열심히 경비대원 제임스의 허술한 검술을 선보였다.

한참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임스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수, 너는 정말······.”

“허억, 헉. 어때요? 이제 꽤 괜찮죠?”

이제 숙련도는 10%를 넘겼다.

얼추 비슷한 모양새는 나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담고 물었고, 제임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정말 검술에 재능이 없구나.”

힘이 빠질 뻔했지만, 그래도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제임스의 눈에는 성장이 더딜지 몰라도,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레벨은 오르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레벨업이 느려졌지만, 여전히 1층부터 오르는 등탑자들과 비교하면 빠른 속도다.

그러나 말을 뱉고 난 뒤 잠시 고민하던 제임스는 손에 쥔 초코바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조금 낫네.”

“푸하하! 위로는 됐어요. 줬던 초코바 뺏을 정도로 쪼잔한 사람 아닙니다. 그보다, 할 말이 있으니 경비대원들을 모아주시겠어요?”

“할 말?”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뭐, 네 부탁이라면 대장님도 들어주시겠지.”

제임스가 경비대원들을 모았고, 나는 그들 전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 여러분들을 모은 건, 제가 만들 특별한 라면을 대접하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한 라면?”

경비대원 전원이 눈을 빛냈다.

경비대장까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먹잇감을 발견한 이리처럼.

조금은 두려울 정도로.

“네, 맞습니다. 그동안 드신 라면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기가 막힌 맛이 될 거라고 장담합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이들의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지금까지 컵라면만으로도 감탄했던 경비병들이 아닌가?

이번에는 무려 봉지 라면, 파, 햄, 계란을 가져왔다. 같은 라면일지라도 격이 사뭇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줄 생각이다.

사방에서 “오오─”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반응이 참 좋단 말이야.

“하지만, 재료가 충분하지는 않아서······ 아쉽게도 모두를 대접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아······. 아쉽구만.”

“라면보다 더? 대체 얼마나 귀하길래?”

“그래서, 그걸 누구에게 주겠다는 거야?”

이제 본론이다.

“공평하게 하죠. 혹시 ‘빙결의 저주’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빙결의 저주?”

“그런 건 처음 듣는데?”

역시 아는 사람이 없나?

그렇다면 계획대로 진행한다.

당장 내가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보다 이 세계에 더 빠삭한 경비대원들이 나서면 많은 정보를 가져올 수 있겠지.

나는 이들을 통해 해나의 저주를 풀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이번에 라면을 구해 오면서 알게 된 건데, 제 가족이 저주에 걸렸답니다.”

“아이고······.”

“저주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 오시는 분께, 특제 라면을 대접하겠습니다. 숲에서 저를 구해주신 은인분들께 이런 조건을 걸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밖에는······.”

소매로 눈물까지 콕콕 찍는 척을 하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정수의 가족이 아프다는데, 당연히 우리도 발 벗고 나서야지!”

“그럼, 그럼! 우리 가족과 다름없는데.”

“그냥 부탁해도 들어줄 판에, 특별한 라면이라니까 더 좋지! 한 번 해보자구.”

“오오오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감사하다는 말만은 진심이었다.

기다려, 해나야.

곧 낫게 해줄 테니까.

그리고 우리 모두 잘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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