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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3화 (3/69)

1층이 아니라고?(3)

1층이 아니라고?(3)

경비대원들과 만나고 4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제임스에게 계속해서 검술을 배웠다.

【말단 경비대원 제임스의 허술한 검술】

【현재 숙련도 10%】

숙련도가 오른 것과 더불어, 레벨은 17까지 올라 있었다.

레벨 1에 머물며 고작 고블린이나 잡던 일주일 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슬슬 훈련으로는 한계가 있는 건지, 숙련도와 레벨이 잘 오르지 않았다.

슬슬 다른 방법을 찾을 때가 됐다.

“그 전에, 집부터 다녀와야지.”

어느새 탑에 들어온 지 7일이 지나서 귀환 버튼이 활성화되었고, 더불어 챙겨온 음식이 거의 다 떨어졌다.

최대한 아껴먹기 위해서 경비대의 음식을 얻어먹은 적이 있긴 한데, 경비대원들의 음식 솜씨는 정말 끔찍했다.

간단하게 수프를 끓인다더니 웬 끈적한 보라색 액체를 내어주었는데······ 심각한 맛이었다.

처음 경비대장을 만났을 때, 지금껏 쓰레기 같은 걸 먹었다고 투덜거렸던 게 농담이 아닐 줄이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런 끔찍한 걸 다시 먹느니 잠시 집에 다녀오는 게 낫지.

레벨이야 정상적인 방법으로 1층부터 탑을 오른 등탑자들의 평균 레벨업 속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으니 급할 게 없다.

“급한 거라면, 역시 돈이지.”

그래서 생각한 게 있었다.

어차피 탑으로 다시 들어올 거라면, 남은 음식을 다 팔고 가자!

그리고 그걸 아이템으로 바꾼 뒤, 지구에 돌아가서 팔면 꽤 짭짤하지 않을까?

나는 남은 음식을 몽땅 싸 들고 나갔다.

“어, 정수!”

“뭔가 바리바리 싸 들고나왔구만. 어디 가나?”

“오늘은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잠시 모여주시겠어요?”

며칠 새 친해진 경비대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웃으면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검술을 연습하던 경비대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제가 여행 경비를 다 써버려서요. 아쉽지만 라면이나 초코바는 더 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뭐? 젠장! 오늘부터 다시 제임스의 오크 죽을 먹어야 한다고?”

“이건 꿈이야. 그래. 분명해. 이건 꿈일 거라고.”

“행복한 꿈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가는 거죠······.”

욕을 하는 경비대원부터 현실을 부정하는 경비대원까지.

나는 빙긋 웃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어떻게 방법이 없나? 아니면 우리가 남은 라면과 초코바를 돈 주고 사지!”

“아, 그러면 드릴 수 있죠! 하지만 값이 좀 나가는 물건들인지라······.”

“상관없어. 제임스의 오크 죽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남은 라면과 초코바를 털어드리죠.”

경비대원들의 눈빛이, 마치 전장으로 나가는 병사들처럼 비장해졌다.

잠시 눈을 마주친 경비대원들은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자네, 마누라 눈 피해서 비상금 모은 거 다 알고 있어. 그거 다 내놓게.”

“그건 이미 냈다고! 너야말로 새로운 활을 장만할 거라고 숨겨놓은 비상금이나 털어놔!”

모두가 다급하게 비상금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신발······ 에서 나오는 건 조금 만지기 거북하지만, 돈에는 죄가 없지.

촤르륵!

가격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경비대원들이 금화를 쏟아냈다.

요 며칠 사이 들은 바로는, 지구에서는 10만 원에 팔리는 작은 포션 하나가 이곳에서는 100골드 정도.

“몇 개야? 천 개인가?”

“더 없어? 좀 더 털어보라고!”

1,000골드면, 포션으로 바꾸어 가도 100만 원.

다시 말해, 별 노력 없이 98층을 열 번만 왕복해도 내가 일 년간 목숨을 걸고 벌었던 천만 원을 회수할 수 있다.

‘고작 라면 몇 개와 초코바에 이 정도를 벌 수 있다고?’

꿀꺽.

대체 몇 배의 이익을 남기는 건지, 머리가 굳어 제대로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잠시 굳은 채로 가만히 있자, 경비대원들이 실망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역시 너무 적은 거겠지?”

“젠장, 누가 비상금 좀 더 털어봐! 제임스의 오크 죽을 쑤셔 넣고 싶은 거야?”

경비대원들의 말에 상처받은 듯,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던 제임스가 한숨을 푹 쉬며 다가왔다.

“돈은 아니고, 작은 마법석이라면 남은 게 있는데, 이걸로 어떻게 안 될까?”

마법석이라면 어떤 옵션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치가 꽤 있는 물건일 것이다.

나는 가치를 대충 가늠해보기 위해 제임스에게 마법석을 받아 옵션을 살폈다.

【???】

【옵션 확인을 위해 Lv.50 이상의 감정 스킬이 필요합니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돋아올랐다.

레벨 50 이상의 감정이 필요한 마법석은 아직 희귀하다.

어떤 옵션일지는 몰라도, 가장 저렴한 물건조차 수백만 원에 거래되고 있으니까.

그러나 내가 놀란 것과 달리 경비대원들은 제임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야! 제임스! 그런 고블린 손가락만 한 마법석 하나로 되겠어?”

“젠장, 한동안 밥 다운 밥 먹기는 글렀군.”

경비대원들이 실망하며 돈을 회수하려 했고, 나는 다급하게 웃으며 컵라면과 초코바를 늘어놓았다.

“에이, 그래도 그간 재워주고 가르쳐준 은혜가 있는데, 너무 팍팍하게 굴 수는 없는 법이지요. 이거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이냐? 이야! 사나이답게 통이 크구만!”

“역시 데려오길 잘했어! 제임스! 앞으로도 정수에게 검술 잘 가르치라고!”

경비대원들이 기뻐하며 컵라면과 초코바를 챙겼고, 나는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는 게 너무 힘들다.

“여러분들이 기뻐해 주시니까 저도 기쁘네요. 그럼 조금 더 구해볼까요?”

“뭐? 더 구할 방법이 있어?”

“예. 조금 까다로운 방법이라 돈도 꽤 필요하고 마을로 내려가야겠지만, 제 고향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있거든요.”

며칠간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바, 경비대원들은 역시 지구에 대한 것에 무지했다.

내가 ‘귀환’을 써서 갑자기 사라지면 당황할 게 뻔했고, 돌아왔을 때 캐묻겠지.

그런 귀찮은 상황을 피하려면 혼자일 필요가 있었고, 이제 슬슬 마을에도 내려가 볼 때가 됐다.

성장이 더뎌지고 있으니, 레벨업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찾아야 하니까.

“그런 거라면, 우리가 도와줘야지.”

“마을에 괜찮은 여관이 있어. 안내해주지.”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괜찮으니, 꼭 구해 오라고. 그동안 돈도 더 준비해보겠어.”

경비대원들이 기뻐하며 나를 여관까지 안내해주었다.

또, 나를 데려다준 경비대원들이 여간 주인과 어떤 협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여관에 공짜로 투숙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가 된 나는 귀환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게 맞을까?”

꿀꺽.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면 어쩌지?

그래도 음식을 더 사려면 집에 돌아가기는 해야 한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귀환 버튼을 눌렀다.

【98층에 웨이포인트가 추가됩니다.】

【웨이포인트를 선택해주십시오】

【98층】

【0층】

1층으로 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탑의 입구가 있는 0층과 98층은 왕복 가능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0층을 눌렀다.

방 안에 임시 포탈이 생성되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0층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후, 돌아왔다.”

그런데, 0층이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시끌벅적했다.

“그거 들었지? 랭킹 1등이 바뀌었다는 거.”

“그 정보 없음이라고 찍힌 등탑자? 왜 이렇게 소문이 느려? 이미 랭커들이 혈안이 되어서 그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아무래도 길드에 영입하려는 것 같아.”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랭킹 1위를 빼앗은 정보 없음이 누구인지, 또 어떤 스킬과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지를.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랭킹에 갑자기 등장해서 98층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탑 위쪽 일이야 우리가 알 수 있나? 1층으로 올라가기나 하면 다행이지.”

“젠장, 사냥이나 가자고.”

98층?

“설마······. 나인가?”

식은땀이 흘렀다.

*

나는 일단 내 정체를 숨기기로 했다.

강해지기 전에 정체를 들키면, 어디 길드에 붙잡혀서 중개무역이나 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그 노다지를 빼앗길 수는 없지. 그럼, 그럼.’

나는 아직도 한국길드연합에서 내 피 같은 천만 원을 앗아간 것을 기억하고 있다.

놈들도 그렇게 독하게 돈을 벌었는데, 나라고 이런 특권을 넘겨줄 수는 없지.

그렇게 나는 조용히 탑을 빠져나와 고아원에 도착했다.

마당에 나와 있던 아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와아! 큰형이다!”

“오빠! 이번에는 돈 많이 벌어왔어?”

“하하, 녀석들. 그럼! 조만간,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자!”

“와! 오빠 최고!”

“형! 나는 피자! 피자 먹고 싶어!”

“장난감도 가지고 싶어!”

녀석들을 한 명씩 쓰다듬어주다 보니, 어느새 원장님이 나오셨다.

“돌아왔구나. 다친 데는 없니?”

“예, 원장님. 저도 이제 어엿한 98······. 아, 아니. 1층 등탑자예요.”

어릴 때부터 부모 역할을 해주신 분이라 그런 걸까, 순간 긴장이 풀어지며 실수할 뻔했다.

다행히 원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웃어주셨다.

“그래. 다행이다. 벌이는 좀 어떻고?”

“이번에는 꽤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너라도 괜찮으니 다행이다. 요즘 후원이 끊겨서 다른 아이들은······.”

원장님은 숨을 흡, 들이켜며 말을 끊었다.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미안하다. 너에게 할 이야기는 아닌데.”

과거에 대기업들이 보육 재단을 후원했듯이, 현재는 길드들의 후원을 받아 경영되는 고아원.

그러나 실상을 까보면, 등탑자로서의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우선 선별하기 위한 사육장에 불과했다.

내가 큰형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내 위로는 다 끌려갔으니까.

그 사실을 깨달은 후로 원장님은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거절했고, 후원이 줄며 이 지경까지 와버렸다.

언젠가, 내가 이 개 같은 시스템을 부수리라.

“아니에요. 이제 받을 때가 아니라 갚을 때가 되었죠. 그래도 이번에는 얻은 아이템이 있는데,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는 감정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저녁은 같이 먹을 거지?”

“예!”

나는 짐을 대충 던져놓은 뒤, 감정소로 향했다.

감정소는 탑에서 얻은 아이템을 감정해주고, 대신 처분해주는 일종의 전당포 역할을 하고 있다.

정체를 알리기 싫은 나 같은 사람이 이용하기 딱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지.

딸랑딸랑.

“어서 오쇼.”

감정소 주인은 신문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인사했지만, 혹시 몰라 나는 후드를 더 깊게 눌러썼다.

“아이템을 좀 감정받으려고 하는데요.”

“줘보쇼.”

감정소 주인은 그제야 눈을 돌려 손을 내밀었고, 나는 마법석을 내밀었다.

“에······ 이걸 진짜 감정받으려고? 이렇게 작은 건 보통 감정이 필요 없을 텐데?”

“일단 확인해주세요.”

“흠······ 쓸모없어 보이는데, 레벨 50짜리 감정 스킬이 필요하다고? 뭐야 이거?”

감정소 주인이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는 시선이 느껴졌다.

“종종 높은 감정 레벨만 필요하고 옵션은 별 볼 일 없는 함정 아이템들이 있지. 레벨 50짜리 감정이면 20만 원이요. 돈 낭비일 수도 있는데, 정말 하시려고?”

“예. 해주세요.”

“뭐, 나야 해달라니 해줘야지. 선불이요.”

나는 돌돌 말아 고무줄로 감싸놓은 지폐뭉치를 내밀었다.

입장료를 모으면서, 틈틈이 모아두었던 비상금 전부였다.

어차피, 지금 이 돈을 전부 잃어도 98층에 다시 올라갔다 오면 회수할 수 있는 돈이니까.

꿀꺽.

물론, 긴장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나라고 함정 아이템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저 마법석은 무려 98층에서 얻은 물건.

걸어볼 만한 도박이다.

감정소 주인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금고를 열어 내가 준 현금과 안에 있던 스크롤과 바꾸어 왔다.

일회성으로, 감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스크롤이었다.

촤아악!

스크롤을 찢자 감정소 주인의 눈이 잠깐 푸르게 빛났고, 잠시 말이 없었다.

“결과는요?”

대답은 없었다.

다만, 미세하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주인장의 손에서 마법석을 빠르게 빼앗아 직접 확인했다.

【볼품없는 싸구려 마법석(바람)】

─아이템의 소켓을 ‘1칸’ 소모합니다.

─장착한 아이템에 마력을 100부여 합니다.

─장착한 아이템에 바람의 축복을 부여합니다.

숨이 턱 막힌다.

높은 마력 수치와 함께 주어지는 바람의 축복은 여태 몇 번 등장하지 않았던 궁수들의 필수품.

바람의 축복이 담긴 활로 화살을 쏘면, 1km 밖에서 고블린 손톱만 한 표적도 맞힐 수 있다고들 한다.

다소 과장이 있겠지만, 대박이란 소리지.

“이, 이 물건! 대체 어디서 난 거요!”

정신을 차린 주인장이 목소리를 높였고, 나는 호흡을 다듬으며 마법석을 내려놓았다.

자, 진정하자.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그건 아실 것 없고, 이걸 매각하려고 하는데, 사실 겁니까?”

내 물음에, 주인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놀랐던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철저한 장사치의 눈이었다.

동시에, 꼭 마법석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탐욕이 담긴 눈으로 주인장이 말했다.

“사백 드리지.”

“사실 생각 없으면 갑니다.”

아이템에는 마법석을 박아 넣을 수 있는 ‘소켓’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마법석이 크면 클수록 소켓을 많이 잡아먹는다.

보통 사용할 수 있는 소켓의 개수는 세 개가 한계.

당연히 소켓을 덜 차지할수록 더 비싸다,

이런 옵션에 소켓 하나는 랭커들이 사용하는 아이템 수준.

그런 걸 400만 원에 사려고 하면, 양심이 없는 거지.

내가 마법석을 챙겨 떠나려고 하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사백 오십!”

“버스 떠납니다. 부릉부릉.”

주인장은 눈을 질끈 감고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백! 그 이상은 경매로 붙여도 안 남아! 진짜 인건비도 거의 못 떼고 주는 거라고! 그걸 찾는 단골 때문에라도 꼭 구해야 해!”

“오케이. 땡큐.”

주인장은 울상이 되어서 계좌이체를 준비했다.

나는 웃으면서 계좌번호를 알렸고, 곧 500만 원이 입금되었다.

“아이고, 내가 이걸 오백이나 주고 매입하다니······.”

“그래도 안 남는 장사 아니잖아요? 그럼 수고하세요.”

딸랑딸랑.

나는 통장에 생전 처음 보는 숫자가 찍혀있는 것을 보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감정소를 나왔다.

“얘들아, 기다려라. 오늘 저녁은 포식시켜줄 테니까!”

*

고아원에 돌아온 나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건네고, 삼겹살로 고기 파티를 벌였다.

“와! 형 최고! 나 변신 로봇 진짜 가지고 싶었던 건데!”

“새 인형이다! 오빠 고마워! 이제 은아랑 인형 가지고 안 싸울게!”

“고기 진짜 맛있다! 큰형 짱이야!”

“녀석들. 많이 먹고 무럭무럭 커라. 해나, 넌 특히 더 많이 먹고,”

“응, 오빠.”

박해나.

평범한 티셔츠를 오버 사이즈로 만드는 깡마른 체구.

푸석한 머리에다가 생기가 전혀 없는 창백한 인색.

언뜻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겠으나, 민희와 같은 나이였다.

아직 그리 춥지 않은 날씨.

옷을 껴입었음에도 해나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해나야, 추워?”

“아냐, 괜찮아.”

괜찮다고 말했음에도 몸을 움츠리는 게 눈에 밟혀, 나는 결국 겉옷을 벗어주었다.

밖이 추워서 그런 게 아니라, 해나의 몸이 차가워서 나오는 입김이었다.

저주.

탑은 단순히 사람을 잡아먹은 것뿐만 아니라, 거기서 죽은 사람들의 가족에게까지 전이되는 강력한 저주를 남겼다.

그 내용은······.

【B+등급 빙결의 저주 (패밀리)】

【저주에 걸린 당사자를 얼어붙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대상자가 사망할 경우, 가족에게 전이됩니다. (단, 그 효과는 일부 감소합니다)】

이러했다.

9살 때 발현된 저주의 주체는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해나의 부모님을 저주한 뒤 탑 안에서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탓에 몸이 약하게 자란 해나는 학교도, 간단한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보냈다.

내 수많은 아픈 손가락 중에서도, 가장 아린 녀석이지······.

나는 해나의 앞접시에 고기를 몇 점 더 덜어주고는 마저 고기를 구웠다.

“자, 다들 많이 먹고 튼튼하게 커라.”

“네!”

원장님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셨지만, 어차피 이러려고 버는 돈이다.

거기다 큰형인 나의 첫 월급이니, 더 뜻이 깊지.

몇 아이들은 오늘이 생일 같다며 울기까지 했으니,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리고 나는 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고아원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로 나왔다.

주위에는 건물 한 채 없는 텅 빈 평지에, 나뭇잎 하나 없는 거목 하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후우웅.

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나는 나무 곳곳에 파인 자국을 매만지며 웃었다.

“오랜만이네.”

이곳은 내가 사람 잡아먹는 탑에 들어가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던 곳이다.

탑에 들어간 이후로도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종종 들러 나무가 얼마나 파이는지 확인하기도 했지.

오늘도 같은 이유였다.

98층의 검술을 익히고 레벨 23이 된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했다.

달그락.

나는 오른손으로 거목 옆에 놓인 목검을 쥐었다.

나무와 마찬가지로 군데군데 파이고 뒤틀린 흔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쓰던 것이니, 슬슬 바꿀 때가 되긴 했지만, 몇 번은 휘두를 수 있겠지.

나는 자세를 잡고 호흡을 다듬었다.

“후우······.”

나무를 똑바로 바라보며, 제임스가 알려준 대로 검을 사선으로 휘두른다.

“말단 경비대원 제임스의 허술한 검술!”

부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목검이 거목에 닿는다.

그러자-

콰앙!

“어, 어라?”

콰직, 콰지직!

나무와 나무가 부딪치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음과 함께, 거목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뒤틀렸던 목검이 산산이 조각나며, 부러진 거목의 틈을 비집고 박혔다.

98층의 나무를 칠 때와는 다른, 너무나 쉽게 으스러지고 꺾이는 느낌.

쿵!

마침내 거목이 바닥에 부딪히며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나는 멍하니 목검의 손잡이와 거목을 번갈아 보았다.

“하, 하하······. 하하하!”

말단 경비대원 제임스의 허접한 검술의 숙련도는 10%.

고작, 고작 이런 성과로 이런 힘이다.

“정했다.”

내일 해가 뜨면, 곧장 98층에 돌아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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