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서 나 혼자 재벌-59화 (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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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선을 얻다.

    “정지! 너희는 누구냐!”

    그러던 그때였다.

    도시 성벽 위에서 총구가 튀어나오더니, 그들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리진 길드의 유저들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무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양손을 번쩍 들었다.

    이미 건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20층에 거주하는 탑의 주민이 총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건우가 지시하길, 20층의 주민과는 절대 충돌하지 말라고 하였다.

    드워프는 자신의 아군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말이다.

    사실 건우의 명령이 아니라도 총을 든 드워프 무리에게 덤빌 정도로 간 큰 유저는 별로 없었다.

    유나이티드 블레이드란 이름으로 결성한 반 오리진 연합은 총 하나 때문에 수십 명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아무리 오리진 길드에서 정예로 손꼽히는 이들이라 해도 총을 버텨낼 자신은 없었다.

    총의 위력을 아는 현대인이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오리진 길드 소속이에요.”

    “오리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잠시 의아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프레야는 그 모습을 보고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설마 우리가 올 것을 알리지 않은 건 아니겠지?’

    건우가 그렇게 허술한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낙 바쁜 사람처럼 보이니 ‘사소한’ 실수쯤은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실 건우 정도 되는 인간이라면 길드원 몇 명 죽는 것쯤은 사소한 일이 맞았다.

    “혹시 그 길드, 민건우라는 유저가 세운 길드인가?”

    다행히 프레야의 걱정은 우려에 그쳤다.

    드워프들은 오리진이 민건우가 세운 길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네, 맞아요.”

    프레야의 답변을 들은 드워프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돌변하였다.

    성벽의 총구를 모두 치우더니, 그들을 따뜻하게 환대하였다.

    “어서 오게. 드워프들의 도시, 그라데시아에.”

    “······.”

    그런 드워프들의 반응에 프레야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

    “휴식은 충분히 취했나?”

    족장, 시그마의 물음에 프레야는 감사 인사를 전하였다.

    “여러분이 편의를 봐주신 덕분에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보낼 수 있었어요.”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드워프들이 워낙 잘 대해준 덕에 단 하루 만에 피로가 싹 사라졌다.

    그들에게 제공된 숙소는 마치 5성급 호텔처럼 편안하였다.

    먹는 음식이 다소 형편없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

    그마저도 10층의 웬만한 여관보다는 훌륭했지만.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드워프 족은 모든 유저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하시나요?”

    “그럴 리가! 우리는 오직 민건우 대전사의 사람에게만 예의를 갖추네.”

    오리진 길드의 유저들은 새삼스레 감탄하였다.

    10층에 이어 20층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다니.

    마치 그 혼자만 다른 게임을 하는 거 같았다.

    ‘오리진에 들어오길 잘했어.’

    ‘후후, 창식이 놈. 오리진에 안 들어온 거, 엄청나게 후회하겠는데?’

    ‘도대체 길마는 뭐 하는 사람이야?’

    길드원들이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갑자기 시그마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바로 마경에 갈 거니, 준비하게.”

    “예? 마경이요?”

    프레야는 시그마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마경이 어떤 곳인지는 건우에게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트롤, 와이번, 아나콘다.

    이 무시무시한 보스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라고 하였다.

    “갑자기 마경은 왜 가자는 겁니까?”

    알렉이 묻자, 시그마가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자네들이 20층에 온 이유가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함이 아닌가? 나는 분명 대전사에게 그리 들었는데?”

    “죄송하지만, 저희는 아직 마경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10층에서 20층까지 오르면서 의외로 레벨 업은 그리 많이 하지 못했다.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것에 집중하여 몬스터를 많이 못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프레야 일행의 평균 레벨은 28 정도에 불과하였다.

    다른 유저들과 비교하면 무척 높은 편이지만, 마경에서 사냥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민건우 대전사는 이런 표현을 했다네. 버스를 태우라는 표현을 말일세.”

    “버, 버스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자네들은 그저 우리를 따라오기만 하면 되네. 마경은 우리가 전문가니까.”

    시그마는 호언장담하였다.

    자신들을 믿고 따르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프레야 일행은 얼결에 드워프들과 함께 마경으로 향하였다.

    작은 체구의 드워프들은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

    거대한 공중 몬스터, 와이번이 나타날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후퇴를 생각하였다.

    와이번이 내뿜는 아우라는 지금껏 만났던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탕! 탕! 탕!

    하지만 그렇게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던 와이번도 총 앞에서는 무력하였다.

    와이번은 수십 발의 마총을 맞고 하늘에서 추락하였다.

    “지금일세!”

    드워프가 그리 외치자, 파티의 근거리 딜러가 날렵하게 다가가 와이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평타였다.

    그런데 그 평타에 와이번이 죽었다.

    스킬 한 방 사용하지 않고 보스 몬스터를 잡은 것이다.

    “설마 NPC에게 쩔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프레야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오리진 길드의 최고 정예라 불리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정적 그들은 길드 마스터인 건우가 부리는 탑의 주민에게 쩔을 받는 신세였다.

    ‘이렇게 쉽게 20층 보스를 잡을 수 있는데, 길마는 이 기회를 버리고 어디를 간 걸까?’

    건우가 지금쯤 얼마나 대단한 몬스터를 잡고 있을지, 프레야는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

    우리 파티는 무려 이틀이란 시간을 26층에서 머물렀다.

    한 층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쓴 것은 오랜만이었다.

    물론 26층의 난이도가 높아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난이도 자체는 오히려 25층이 더 높게 느껴졌다.

    다만 얻을 것은 26층이 훨씬 많았다.

    시간을 많이 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여기서 얻은 업적만 해도 20개가 넘으니.’

    지형 자체가 바다라서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도 다양하였다.

    심지어 바다 안에서만 몬스터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무인도에서도 게 형태의 몬스터의 서식지가 있었고, 가끔 어디선가 공중 몬스터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나 혼자 얻은 업적이 12개.

    하윤과 재영이 얻은 업적은 11개였다.

    26층에서 총 23개의 업적을 얻은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히든 피스에서 얻은 아이템 중 나침반이란 아이템이 있었다.

    정확한 이름은 보물 사냥꾼의 나침반이었는데, 이 아이템을 써서 새로운 보물 상자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 외에 해저탐지기로 광물 조사까지 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이틀도 오히려 서두른 거지.’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장소도 많았다.

    당연히 히든 피스도 많이 숨겨져 있을 거다.

    보물 상자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모든 걸 독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포기할 건 적당히 포기하고 더 큰 보상을 노려야 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더 큰 보상은 업적을 뜻하였다.

    “가자. 27층으로.”

    포탈을 건너 27층으로 이동하였다.

    27층에 도착하니, 익숙한 업적 문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또 바다네.”

    “앞으로 계속 바다만 나올 거야.”

    문구를 치우니 26층에서 봤던 광경과 똑같은 광경이 보였다.

    온통 바다였다.

    “바로 28층까지 갈 거니까, 하윤과 나만 오틴을 탈게. 너희는 여기서 대기해.”

    하윤과 둘이서 오틴에 올라타고 주변을 정찰하였다.

    아쉽게도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는 잘 보이지 않았다.

    26층과 중복된 몬스터가 대부분이었다.

    대신 난이도 자체는 조금 높아졌다.

    한번에 더 많은 숫자가 출몰하였던 것.

    사냥하기엔 좋을 수 있겠지만, 업적을 노리는 우리 파티에겐 27층은 전혀 메리트가 없었다.

    몇 시간 정도 정찰한 끝에 28층으로 향하는 포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윤이 좌표를 찍은 장소로 가 일행을 불러왔다.

    포탈 앞에서 다시 재결합한 우리는 바로 28층으로 넘어갔다.

    ***

    “지루해. 또 바다밖에 안 보이잖아?”

    “예상했던 일이야.”

    “쩝. 업적이라도 얻게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하윤이 뒤에서 하품하였다.

    28층의 초반부는 26층, 27층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작은 무인도에서 처음 출발한 우리는 오틴을 탄 채로 쉬지 않고 이동하였다.

    몇 시간을 비행하였는데도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육지는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바다였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환경이 내게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다른 유저들은 나보다 몇 배, 몇십 배는 더 힘들 테니까.’

    현재 나는 압도적인 랭킹 1위였다.

    레벨이면 레벨, 세력이면 세력, 정보면 정보, 그 어떤 것도 밀리는 게 없었다.

    심지어 랭킹 2위, 랭킹 3위는 하윤과 재영이었다.

    그리고 최소 50위까지는 오리진 소속일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나는 경쟁자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28층에서 몇 주는 머물러도 될 정도로 상황이 여유로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방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 경쟁자는 같은 유저가 아니라, 괴물 그 자체인 귀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친 귀환자, 켄타로만 해도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었다.

    우연히 마력 방출이란 룬 문자를 얻지 않았다면 그를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근데 더 두려운 것은 그 켄타로도 이세계에서는 그리 대단한 강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용사라 불리는 이들과 비교하면 켄타로의 실력은 별거 아니었다.

    ‘심지어 켄타로가 본 용사 놈들도 원작에 나온 귀환자들과 비교하면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

    나는 바로 그 귀환자들을 경쟁자로 두고 있었다.

    그러니 28층까지 도달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당장, 원작 주인공이 탑에 들어오면 내 자리는 사실상 그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26층부터는 바다 맵이니, 귀환자들의 성장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바다를 보고 오히려 좋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어? 삼촌! 저기 배가 보이는데?”

    그때, 하윤이 무언가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바다에서는 한 척의 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지구에서 흔히 보는 철조선은 아니었다.

    목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목재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폐선’이었다.

    “유령선이다.”

    “유령선? 저게 26층에서 말했던 그 유령선이야?”

    “맞아, 그 유령선.”

    거리가 가까워지자 보다 확실하게 보였다.

    선체 일부가 바다에 잠겨있었고 돛은 너덜너덜하였다.

    갑판에는 시체로 보이는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어떻게 침몰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지 절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저것이 유령선이란 걸 안다면 굳이 의문을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유령선이 유령선의 외형을 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갑판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은 전부 몬스터들이겠지. 26층에서 해적왕을 잡을 때 졸병으로 나왔던 그 몬스터들.’

    내가 그리 생각할 때, 마침 유령선에도 반응이 나왔다.

    오틴을 발견한 것인지 갑판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사람들인데?”

    “사람이 아니다. 26층에서 봤던 해적왕의 병사들과 똑같은 놈들이야.”

    “응? 하지만 저것들은 스켈레톤이 아니잖아?”

    “햇빛이 있을 때는 저래. 빛이 사라지면 그때 스켈레톤이 되는 거지.”

    탑에는 별의별 몬스터가 다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는 설정이었다.

    ‘다만, 지능도 인간과 같다는 점은 꽤 신박하지.’

    16층부터 나왔던 켄타우로스는 말이 반인반마지, 지능 자체는 몬스터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저기 보이는 해적 몬스터들은?

    적어도 인간의 외형일 때는 인간의 지능을 보여주었다.

    이건 내게 있어 굉장히 유의미한 설정이었다.

    원작에서는 몬스터를 노예로 부리는 장면이 흔하게 나오고는 했다.

    어쩌면 나도 저 해적이란 몬스터를 노예로 부릴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바다의 각종 자원을 쉽게 채굴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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