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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선을 얻다.
열쇠는 다름 아닌, 유령선을 조종할 수 있는 열쇠였다.
일명 유령선 키.
옵션으로 ‘조종’, ‘보관’, ‘소환’ 이렇게 세 가지가 있었다.
“유령선이라.”
아쉽게도 유령선 키에는 보관된 유령선이 없었다.
새로 유령선을 얻으면 그때부터 보관과 소환 옵션을 사용할 수 있는 듯하였다.
‘그러고 보니 28층부터 유령선이 나왔지.’
딱 2층.
2개의 층만 오르면 이 아이템은 빛을 발할 것이다.
유령선은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태우고 다니는 거대한 함선이었다.
그런 거대한 함선을 아공간에 보관하고 원하면 아무 때나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니.
이 아이템만 있으면 더는 바다를 꺼리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바다가 나오는 것을 바라야 하지 않을까?
‘이것도 독점해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당장은 독점하고 싶어도 독점할 수가 없었다.
내 분신인 건일은 현재 안개 군주를 사냥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하윤이나 재영이를 이곳에 놔둘 수도 없는 노릇.
지금으로선 시간이 날 때마다 잡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다 오리진 길드의 길드원들이 26층까지 올라오면 그들에게 사냥을 맡겨야 하리라.
“정하윤. 여기에 좌표를 찍어놔.”
나는 곧바로 하윤에게 지시를 내렸다.
참고로 공간술사인 하윤이 찍을 수 있는 좌표는 겨우 세 개뿐이었다.
안개 군주의 리젠 장소에 하나 찍었고 여기다 좌표를 찍는다면 이제 찍을 수 있는 좌표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 아이템이 그렇게 좋은 아이템이야?”
“적어도 26층부터 30층까지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야.”
사용하기에 따라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30층 한정으로 깡패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6층도 그랬듯, 30층의 무대도 바다였다.
이 아이템만 얻으면 유령선이란 거대한 함선이 공짜로 생기는 격이었다.
그러니 좌표를 찍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
“대장, 드디어 보물 상자를 까는 겁니까!?”
해적왕이 있던 곳에는 10개의 보물 상자가 있었다.
사실 해적왕을 잡아 업적을 얻는 건 부차적이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노린 것은 바로 이 10개의 보물 상자였다.
‘물론 유령선 키 때문에 오히려 해적왕 쪽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지만 말이야.’
나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딱 10개니까, 각자 두 개씩 까보자.”
“그래도 되겠어?”
“왜?”
“삼촌의 행운 스탯이 가장 높잖아.”
하윤이 뜻밖에 합리적인 말을 하였다.
보물 상자를 깔 생각에 마냥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그럼 일단 하나씩 까보자. 만약 삼촌께 가장 좋으면 삼촌이 나머지 다섯 개 다 까는 거야.”
너무도 합리적인 제안이었기에 우리는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저부터 열어보겠습니다!”
재영이가 그리 외치고는 바로 상자 하나를 열었다.
“오···.”
그의 반응이 미묘하였다.
나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재영이 열은 보물 상자를 바라봤다.
보물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은 무려 영웅급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아이템 종류가 방패인데다, 외형은 조개껍데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개껍질 방패라니.
아무리 영웅급 아이템이어도 반응이 미묘할 수밖에 없었다.
“옵션은 괜찮은 거 같은데?”
바다에서 방어력이 더 강해지는 옵션이 달려있었다.
적어도 26층부터 30층까지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우리 파티에서는 탱커가 없어서 쓸 일이 없었지만.
다음은 휘니였다.
그녀도 영웅급 아이템이 나왔는데, 상어 이빨 단검이란 이름의 단검이었다.
조개껍질 방패와는 정반대의 옵션이 들어있었다.
수중 몬스터에게 더 강한 데미지를 주는 옵션이 들어있었던 것.
“분명히 나쁘지는 않은데, 우리 파티라서 애매하네.”
“우리 파티가 지나칠 정도로 부유해서 그래.”
다른 유저들은 이 정도 아이템을 얻었다면 득템이라 외쳤을 게 분명하였다.
단지 우리 파티라서 애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무휴르와 하윤도 보물 상자를 열었다.
하나의 공격 아이템과 해저탐지기라는 특수 아이템이 나왔다.
공격 아이템은 해파리 촉수 채찍이었는데 마비 옵션이 달려있었다.
‘해저탐지기라. 나쁘지 않은데? 미래의 나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야.’
솔직히 무휴르가 뽑은 해파리 촉수 채찍은 우리 파티에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반면 하윤이 뽑은 해저탐지기는?
내 3차 직업이 기간트 제작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파티에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수중 보물과 주요 광석 등을 감지해주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템을 활용하면 기간트 제작에 필요한 광석을 미리 알아낼 수 있었다.
그 광석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삼촌도 뽑아봐.”
내 차례였다.
나는 약간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와! 영웅급 반지다!”
“대박!”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윤의 말대로 행운의 영향이 있기는 한 거 같았다.
무려 영웅급 액세서리를 뽑은 걸 보면 말이다.
반지의 이름은 불가사리 반지였다.
옵션은 크게 세 가지.
민첩성 강화, 급속회복, 부식성 독이었다.
“부식성 독은 사람이랑 싸울 때 쓰면 좋겠다. 갑옷의 내구를 깎는다고 하니까.”
“그러게.”
꼭 부식성 독이 아니더라도 나머지 두 스킬도 PVP에 유용할 거 같았다.
민첩을 늘려주는 옵션과 자힐 옵션이었으니까.
“역시 나머지 보물 상자는 삼촌이 까는 게 맞는 거 같아.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녀의 말에 다들 별다른 이견 없이 찬성하였다.
결국, 5개의 보물 상자는 내가 직접 열기로 하였다.
‘이 중 하나쯤은 수중 몬스터를 소환하는 아이템이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 생각을 하며 첫 번째 상자를 까자, 삼지창 하나가 보였다.
심해의 삼지창이란 아이템이었다.
나는 무기 아이템이란 생각에 실망하며 삼지창의 옵션을 봤다가 이내 놀랐다.
‘이렇게 바로 나온다고?’
놀랍게도 삼지창에는 메가르돈이란 상어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옵션이 달려있었다.
참고로 메가르돈은 26층에서 처음 만났던 암초 상어보다 훨씬 강력한 몬스터였다.
“옵션이 뭔데 말이 없어?”
“대장, 저도 보여줘요.”
하윤과 재영이에게 삼지창을 건네주자 두 사람 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지금 써보면 안 돼? 궁금하지 않아?”
“상어를 여기다 소환해서 뭐 어쩌려고?”
“아. 빨리 보고 싶은데.”
나는 나머지 네 개의 보물 상자를 더 까기로 하였다.
이미 원하는 아이템을 다 얻었기에 사실 쓰레기 같은 아이템이 나와도 만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아이템들도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침반과 진주, 뿔, 그리고 호리병이 나왔다.
이중 진주는 인어의 눈물이란 이름의 아이템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쓰이는 재료처럼 보였다.
‘나머지는 지금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확실히 행운의 영향이 있기는 한 거 같았다.
이렇게 좋은 아이템만 뽑는 걸 보면.
하긴 내 행운 스탯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6층에 오면서 내 행운 스탯은 기어코 170을 넘겼다.
170은커녕 행운 스탯이 20 이상인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니, 운이 좋은 게 정상이었다.
***
휙휙휙!
오리진 길드의 유저들을 향해 쉴 새 없이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을 날린 이는 같은 유저가 아닌, 몬스터였다.
정확히는 켄타우로스라는 이름의 몬스터 무리가 화살 공격을 하고 있었던 것.
마치 궁수 유저가 날리는 화살처럼 켄타우로스의 공격은 한 방 한 방이 묵직하였다.
하지만 유저들의 방어는 그 이상으로 단단하였다.
전사들은 거대한 방패를 든 채, 자신의 뒤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전사들 덕에 마법사 유저, 프레야가 편안하게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
물론 나머지 원딜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스 월!”
프레야의 외침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장벽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 빙벽이 세워진 장소는 그들의 정면이 아닌, 켄타우로스 후미였다.
“지금이다! 근딜들 공격!”
“이 말박이 새끼들! 뒤져라!”
켄타우로스 후미에 빙벽을 세운 것이 계획된 일인 듯, 전사들은 방패벽을 열고는 켄타우로스 무리를 향해 돌진하였다.
서걱, 서걱!
원래라면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했을 켄타우로스 무리는, 빙벽에 막혀 이도 저도 못하였다.
결국, 전사들에게 근접전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원딜 성향의 몬스터인 켄타우로스였다.
당연히 오리진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탱커, 근딜 조합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십수 마리의 켄타우로스는 순식간에 전멸하였다.
“다친 사람?”
“없습니다!”
“그럼 잡담하지 말고 전리품 수습이나 해!”
파티에서 지휘와 탱커를 담당하는 알렉의 외침에 유저들은 픽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줍기 시작하였다.
방금 큰 전투를 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모습에서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19층도 이제 정복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프레야가 알렉에게 다가가서는 그리 물었다.
그러자 알렉이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정복은 옛적에 했어. 그냥 20층으로 걸어가는 게 귀찮을 뿐이야.”
“분명 얼마 전까지는 11층도 벽처럼 느껴졌는데 말이죠.”
그들이 10층에서 괜히 길드를 세운 게 아니었다.
탑은 층을 올라갈 때마다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랐다.
건우처럼 압도적인 스탯을 가진 유저라면 변화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건우는 미미한 변화라고 느끼며 오히려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기뻐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는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 수차례 죽을 위기를 넘겨야 했다.
히든 직업을 가진 프레야도 10층까지 오면서 몇 번의 위기를 넘겼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11층으로 향하는 것이 주저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선발대가 전해준 정보들도 그녀를 10층에 안주하게 하는 것에 일조하였다.
11층은 온통 정글이었다.
그리고 정글에선 가지각색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는데, 각종 독충부터 리자드맨 같은 인간형 몬스터까지 나왔다.
도중에 10층으로 복귀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런 기능도 없었기에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길드를 세운 것도 그런 이유였다.
10층에서 자본을 모아 선발대로부터 각 층의 완전한 공략법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정작 오리진과 합병된 이후에는 비싼 돈 들여서 공략법을 모을 이유가 사라졌다.
20층, 아니 그 너머까지 도달한 유저가 그들의 길마인데 다른 이에게 공략법을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에 길드 마스터가 준 공략법이 전부 맞았네요.”
“너는 설마 의심했던 거야?”
“의심까진 아니고, 조금 불안하긴 했었어요. 길드 마스터도 사람이니 놓친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각 층의 히든 피스까지 다 꿰뚫고 있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놓친 게 있을 리 없잖아?”
알렉의 태도를 보면 어느덧 그는 길드 마스터, 건우의 철저한 신봉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도 얼마 전까지는 블러드 군단이란 거대 길드의 주인이었는데도 말이다.
‘근데 어쩔 수 없긴 하지. 너무도 압도적인 사람이니까.’
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지면 경쟁심 같은 걸 느낄 수도 없었다.
프레야도 어느 순간 건우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감정은 어쩌면 단순한 존경이 아닌, 사랑일 수도 있으리라.
“드디어 20층이다!”
오리진 길드의 선발대는 어느덧 19층을 돌파하였다.
선발대라 불리던 다른 파티들이 한창 정글에서 헤맬 때, 그들은 정글과 초원 그 모두를 돌파한 것이다.
“아, 아름답네요.”
“저게 드워프들의 도시, 그라데시아인가?”
20층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도시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그 도시가 바로 드워프들이 세운 도시인 그라데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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