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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왕의 보물.
말라치가 랭커들의 시체와 영혼을 얻고 기뻐한 것과 달리, 대부분의 일반 유저들은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기 바빴다.
“설마 유나이티드가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깨질 줄은 몰랐어.”
“심지어 유저들은 나서지도 않았다며?”
“어. 행운이 하락하는 페널티 때문에 NPC들만 나섰는데도 그렇게 박살이 난 거야. 그것도 겨우 두 명에게.”
두 세력의 전투로 휘니와 무휴르는 탑의 주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오죽하면 양주르 국왕보다 더 유명할 정도.
“이제 오리진에 저항할 길드는 더 없겠지?”
“있겠냐. 그냥 오리진이 뭘 하든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어. 뒤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쾅!
“빌어먹을!”
마법사 유저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앞으로도 계속 세금을 뜯겨야 하는 거야? 오리진, 그 양아치 놈들에게?”
“영웅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리진을 박살 내줄 영웅이!”
“신전을 박살냈던 유저, 그 유저라면 우리의 영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무라이라고 불리던 그 유저 말이지? 근데 그 사무라이도 오리진 길마에게 죽었다며!”
유저들은 영웅을 바랐다.
그들에게 있어 빌런이나 다를 바 없는 오리진을 토벌해줄 그런 영웅을.
하지만 그때 한 유저가 나타났다.
“너희들은 아직도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거야?”
그는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저의 이름은 제임스.
10층에서는 나름대로 고렙이라 할 수 있는 18레벨의 유저였다.
“제임스, 넌 갑자기 왜 지랄이야?”
“쓸데없는 이야기라니! 이보다 건전한 토론이 어디 있다고!”
제임스는 그런 유저들의 모습을 보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10층은 오리진에 의해 평정되었어. 선발대처럼 11층으로 갈 게 아니라면 너희 같은 쪼렙은 오리진에 어떻게 들어갈지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오리진을 비난하던 제임스였다.
하지만 그런 제임스도 유나이티드 블레이드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한때 그를 동료라 믿었던 유저들은 제임스의 변화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신자 새끼!”
“역시 입만 산 놈이었어! 비열한 놈!”
유저들은 제임스를 배신자라고 비난하였다.
그러자 제임스가 같잖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에게 욕한 거 후회하지 않겠어? 나도 이제부터 오리진 소속인데?”
“뭐? 네가 오리진에 들어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레벨이 겨우 18인 네 따위가 오리진을 어떻게 들어가? 거기는 평균 레벨이 23이라고!”
“진짜 궁금한 거 맞아? 그딴 태도를 보이는데 내가 알려주겠어?”
제임스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던 휴고라는 이름의 유저는 합죽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 없어졌다.
휴고는 잠시 다른 유저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갑자기 제임스에게 저자세를 보였다.
“내, 내 말은 그냥 대단하다는 뜻이었어. 네가 실력 있는 유저란 사실은 나도 알지만, 오리진은 레벨만 볼 거 아니야.”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한 휴고의 모습에 다른 유저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유저들도 속으로는 휴고의 변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정말 제임스가 오리진 길드에 들어간 것이 사실이고, 그가 가르침을 줄 거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조언 좀 해줄게. 내 덕에 오리진 길드 들어가면 절대 은혜 잊지 마라.”
“물론이지! 자격의 증표를 구한다면 너부터 줄게.”
“자격의 증표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제임스는 마치 자격의 증표가 별로 대단한 아이템이 아니라는 양 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유저들은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임스의 말에 놀랄 시간도 아깝다는 듯,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오리진이 원하는 인재상이 뭔지 알아? 히든 직업? 물론 중요하지. 전투 재능? 그것도 중요해. 하지만 그런 건 우리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 히든 직업은 이미 놓쳤고, 재능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얻을 수 없으니.”
휴고는 씁쓸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네덜란드의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는 탑의 유저가 된 뒤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나마 오리진이 없었을 때는 워낙 사냥 수익이 짭짤하여, 꽤 많은 자산을 모았었다.
하지만 사냥터 입장료를 내게 된 지금은 탑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직장인 시절 받던 월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약 그에게 히든 직업이 있었다면?
전투의 재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자신이 운도 없고 재능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
“히든 직업이 없고 전투 재능도 가지지 못했어도! 방법은 있어.”
“그 방법이 뭔데?”
잠시 뜸을 들이던 제임스는 이내 자신의 팔 근육을 과시하며 말했다.
“방법은 간단해. 바로 나처럼 스탯을 잘 찍는 거야.”
“스탯?”
“밸런스 있게 찍으면 되는 거야?”
“그거라면 나는 딱인데.”
“아니지. 제임스 쟤는 근력에만 몰방했었지 않아.”
“어, 그러네?”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리진 길드는 돈이 많아. 돈이 많으면 당연히 룬도 많겠지? 주력 스탯 이외의 나머지 스탯은 룬으로 올리면 돼.”
“주력 스탯에만 올인하라 이거네. 근데 나처럼 이미 다른 스탯도 많이 찍은 사람은 어떻게 해? 방법이 없는 거야?”
유저들의 태도는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하였다.
이들이 조금 전까지 오리진을 비난했던 그 유저들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리진의 세력은 너무도 강했다.
저항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그런데 이렇게 오리진의 길드원이 될 기회가 생겼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오면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방법이 없긴 왜 없어? 네 레벨이 몇이나 된다고? 스탯이야 앞으로 잘 찍으면 되는 거야.”
“내가 완벽한 스탯을 만들 때까지 오리진이 기다려주지는 않을 거잖아.”
“아니. 오리진은 너희를 기다려줄 거야. 왜인지 알아? 앞으로 유저의 수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날 것이거든.”
탑이 열린 지 불과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2기 유저들이 탑에 들어온 것처럼 계속 유저들이 생겨난다면 최초의 유저인 그들에게는 기회가 열려있었다.
지금부터 스탯을 잘 관리한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언젠가는 오리진 길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제임스의 조언을 들은 유저들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오리진을 향한 적대감은 마치 씻은 듯 사라졌다.
그들은 이날 이후 마치 오리진 길드원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사냥터에 입장료를 낼 때도 오리진의 길드원에게 수고하신다면 덕담할 정도였다.
***
태도의 변화를 보인 것은 꼭 휴고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오리진은 이미 10층을 평정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길드를 확장하고 있었다.
10층의 유저들은 이런 오리진의 공격적인 확장을 보고 ‘나도 언젠가는?’이란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희망을 품은 유저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오리진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절대 가입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10층 어디에서도 오리진에 적대 행동을 하는 유저를 보기 힘들어졌다.
마치 모든 유저가 오리진을 인정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10층의 변화는 1층부터 9층까지 모든 저층에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10층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흔히 선발대라 불리는 랭커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드디어 포탈인가.”
조던 매런은 살짝 눈물이 맺힌, 그렁그렁한 눈으로 포탈을 바라봤다.
엄청난 고생 끝에 마침내 16층으로 향하는 포탈에 도달하였다.
지금 그는 그야말로 세상을 얻은 거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무슨 몬스터 주제에 검을 그렇게 잘 쓰는지.”
“리자드맨 검사와 다시 싸우라면 못 싸울 거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의 파티원들도 아마 그와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여기까지 도달했으니, 감동을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우리가 15층을 돌파했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겠죠?”
“당연하지. 다른 파티는 본 적도 없다고.”
“무조건 우리가 최초일 겁니다.”
그들은 새삼 뿌듯해지는 걸 느꼈다.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그 위기들이 그들을 ‘최고’의 자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니 자부심이 생겨났다.
“10층에서 꿀 빨고 있는 유저들은 절대 이 기분을 느끼지 못할 거야.”
오직 선발대.
각 층에 최초로 도달한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슬슬 들어가죠.”
“예. 갑시다! 16층으로!”
“혹시 모르니까, 마음의 준비하고 들어가요. 바로 공격이 올 수도 있으니까.”
조던 매런 파티는 다시 정신을 무장하고 포탈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지더니 이내,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초원이 나타났다.
“16층은 초원인가 본데요?”
“아쉬운데. 정글이 나에겐 딱 맞았는데 말이야.”
조던 매런은 아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재규어 전사라는 히든 직업을 활용하기에 정글만큼 좋은 지형이 없었으니 그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쉿! 무슨 소리가 들려요.”
궁수 유저의 말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싸우는 소리였다.
조던 매런 파티는 조심스럽게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곧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저건 딱 봐도 몬스터이고, 다른 한쪽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아요?”
“인간이라고?”
“우리보다 16층에 먼저 도달한 유저가 있다는 거야?”
“서, 설마. NPC겠지.”
인간이란 것을 봤는데도 그들은 현실 부정하였다.
자신들보다 16층에 일찍 도달한 유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보았다.
스킬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모습을.
‘우리 파티보다 먼저 16층에 도달한 유저들이 있다고?’
조던 매런은 아연실색한 채, 유저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
<대박. 오리진 19층까지 진출함.>
탑의 유저들이 자주 이용하는 한 커뮤니티에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다.
[와 ㄷㄷ. 벌써 19층?]
[오리진은 무슨 괴물들밖에 없는 거임?]
[그러게. 하루에 몇 개 층을 공략한 거지?]
[탑 공략은 조던 매런이 1등 아니었음?]
[조던 매런 ㅋㅋㅋㅋ. 언제적 조던 매런임?]
[ㄹㅇ. 순위표 다 무의미해짐. 그냥 1위부터 최소 10위까지는 죄다 오리진이라고 봐야 함.]
[10위? ㄴㄴ 50위까지다 ㅋㅋㅋㅋ. 오리진은 영웅급 아이템 뽑아내는 곳이야. 영웅급 아이템 두 개만 있어도 50위 쌉가능.]
오리진에 호감을 느낀 유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감보다는 불호 쪽이 훨씬 더 많았다.
이른바 세금, 즉 사냥터에서 입장료를 걷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오리진에게 호감을 보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적어도 오리진이 탑의 최강 세력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오리진을 싫어하는 유저들이라고 해도 만약 오리진에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면 망설임 없이 오리진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오리진 길드원 또 안 뽑냐? 제발 나 좀 뽑아줬으면.]
[너 같으면 너를 뽑겠냐?]
[레벨 15다. 깝 ㄴㄴ]
[ㅋㅋㅋㅋ 레벨 15가 아니라 20이어도 뽑힐까 말까다. ㅄ아]
[아 나도 오리진 들어가고 싶다!!!! 얼마면 돼! 돈 줄 테니까 나도 뽑아줘!!]
댓글들을 읽던 정성완은 기분 좋게 웃었다.
‘흐흐, 내가 바로 이 오리진 소속이란 말이지.’
늘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살던 정성완이었다.
그건 탑의 유저가 된 뒤로도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직업, 평범한 레벨, 평범한 길드···.
정성완은 무엇 하나 특색이랄 게 없는 유저였다.
하지만 그런 정성완의 인생이 한 가지 사건이 있고 반전하였다.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닌, 그의 길드가 오리진에 합병된 사건을 말하였다.
‘처음엔 길드를 잃은 거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는데 말이야.’
비록 다른 유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중소 길드여도 그가 소속감을 느끼던 길드였다.
그런 길드가 거의 강제로 오리진에 합병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쉬움과 슬픔을 느낀 것도 잠시뿐이었다.
오리진의 길드에 들어오고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첫 번째는 정보였다.
오리진은 탑에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길드원이 된 그는 10층에서 필요한 각종 정보를 얻어냈다.
두 번째는 아이템이었다.
오리진은 무기 상점, 잡화점 등에서 판매하는 각종 아이템을 30~40% 할인하여 판매하였다.
그리고 일반 유저들이 구할 수 없는 영웅급 아이템도 오리진의 길드원이 되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돈은 꼭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탑에서 오리진 길드원이란 직함은 ‘가오’를 살리기 좋았다.
지구의 그 어떤 대기업도 부럽지 않았다.
실질적인 수입도 그만큼 늘어났고.
띵동~
그때였다.
인터넷을 보며 시시덕거리던 그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경찰입니다. 정성완 씨 맞으시죠?”
“···제 이름이 정성완은 맞는데, 무슨 일이죠?”
그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이었다.
두 명의 경찰은 그에게 대뜸 이 같이 물었다.
“탑의 유저시죠?”
“그건 어떻게?”
“같이 서에 가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