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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를 설립하다.
“호명된 분은 링 위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일반 경기장보다 훨씬 커다란 경기장 위에 나는 검 하나를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유저들은 그런 나를 보며 웅성거리기 바빴다.
“진짜 싸우는 거야?”
“싸우는 게 아니라, 실력을 측정하겠다잖아.”
“자기가 뭔데? 랭커도 아니면서.”
“내 말이. 곧 망신을 당할 거 같은데, 두렵지도 않나 봐.”
천자쥔이나 다른 랭커가 아닌, 무명의 신분인 내가 시험을 치른다는 사실에 유저들은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링 위로 올라온 멕시코 유저의 태도만 봐도 유저들이 어떤 생각으로 나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스킬을 써도 되는 거지?”
“물론입니다. 단, 저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크큭. 뒤지려고 작정했네? 지옥에 가서도 내 욕은 하지 마라. 아시안 보이.”
검사 유저였는지, 대쉬를 쓰며 접근하였다.
“민첩이 낮군요.”
그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 주고는 한마디 하였다.
전사와 검사는 분명 다른 직업인데, 이자는 전사에 가깝게 스탯을 찍었다는 사실을 한 번에 알아차렸다.
“이 자식이!”
“더는 못 봐주겠군. 불합격.”
“컥!”
스탯만 잘못 찍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 센스도 떨어졌다.
이런 자에게는 존대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앞으로 볼 일이 없는 자였으니까.
그렇게 멕시코 유저가 내 주먹을 맞고 한 방에 뻗자, 나를 보는 유저들의 표정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일반 유저 중에서는 나름대로 강자라 칭해지는 유저를 거의 갖고 놀다시피 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야마자키 씨. 올라와 주십시오.”
뒤이어 링으로 올라온 야마자키라는 일본인도 나에게 탈탈 털렸다.
당연하겠지만 이번에도 나는 스킬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를 압도한 것이다.
“도대체 레벨이 몇인 거야?”
“아니, 저 몸놀림이 스킬이 아니라는 게 말이 돼? 가끔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른데 말이야.”
“세상은 넓구나.”
***
나는 근거리 딜러와 탱커들을 대상으로 입학시험을 직접 주관하였다.
사실상 처음으로 내 정체를 전면에 드러낸 것인데, 반응이 실로 대단하였다.
워낙 10층에 있던 시간이 짧아서 나는 소문만 무성한 그런 존재였었다.
내 존재가 허구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모험가 아카데미 교장이란 거창한 신분으로 정체를 드러냈으니 유저들의 반응이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상인으로 활동했을 때 만났던 유저들의 반응이 특히 대단했었지.’
일개 상인인 줄 알았던 내가 까마득한 존재로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나를 일종의 NPC로 알고 있었을 테니, 더 놀랐을 것이다.
“너도 이제 완전히 유명인이 다 되었군.”
천자쥔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는 모르겠지만, 원래도 나는 유명인이었다.
저층에서만큼은 랭킹 1위였던 천자쥔보다 유명했을 정도니.
물론 그때 만났던 유저들은 내 얼굴만 알 뿐, 정확한 정체는 몰랐었지만 말이다.
“정식으로 랭킹 1위가 된 소감이 어때?”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써.”
“하기야, 처음부터 랭킹 1위였으니.”
어쩐지 나를 대하는 천자쥔의 태도가 조금 변한 거 같았다.
나쁜 변화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크게 개의치 않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히든 직업은 몇 명이나 뽑혔지?”
“여기 명단.”
천자쥔이 종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입학시험을 통과한 유저들의 각종 인적 사항이 적힌 종이였다.
이 인적 사항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이 다섯 개였다.
첫째, 레벨은 몇인지.
둘째, 직업은 무엇인지.
셋째, 전투 재능은 어떤지.
넷째, 스탯은 어떻게 찍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속이 어디인지.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소속은 개인이 속한 파티나, 길드 등을 말하였다.
‘히든 직업을 가진 유저가 의외로 많군.’
사실 말이 히든 직업이지, 히든 직업이라고 전사나 마법사, 검사 같은 직업보다 무조건 좋은 직업인 것은 아니었다.
희귀하기만 할 뿐, 오히려 일반 직업보다 안 좋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먼 훗날, 탑에서 100위 안에 드는 강자를 뽑는다면 대부분 히든 직업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만큼 히든 직업의 잠재력은 엄청났다.
그런 히든 직업의 소유자가 대거 모험가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니 나로선 반길 일이었다.
‘근데 20개가 넘는 히든 직업 중에서 내가 아는 직업이 없네.’
장의사, 장원사 등.
원작에서 나올 정도의 유명한 직업은 보이지 않았다.
1차 직업이라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직업 카드 자체가 안 나왔을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학교를 세우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이해 못 하겠단 말이지. 사실상 경쟁자를 키우는 일 아닌가?”
천자쥔이 문뜩 의문을 표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의문이었다.
하윤이나 재영이도 같은 의문을 표한 적이 있으니까.
“이유는 단순해.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야.”
“너의 사람? 이미 충분히 강한데 세력까지 키우겠다는 거냐?”
“개인으로서 강한데 세력까지 가졌다면 더 강해지지 않겠어?”
일인군단을 꿈꾸는 나로선 역설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직업은 드루이드나 네크로맨서가 아닌 기간트 제작자였다.
기간트를 다루려면 세력은 필수였다.
설령 무인 기간트 군단을 만든다고 해도 기간트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각종 재료는 세력을 통해 얻는 게 효율적이었으니까.
“여기 보면 알겠지만, 유저들 대부분이 이미 소속이 있어. 길드에 들어간 이들도 상당히 많고.”
세력이 있는 유저들을 어떻게 영입할 거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그런 천자쥔의 물음에 역으로 되물었다.
“가장 많은 유저를 보유한 길드가 뭐지?”
“10대 길드가 가장 많을걸?”
“네다섯 곳만 뽑아 봐. 각국 정부와 관련이 없는 길드들로 말이야.”
천자쥔은 잠시 생각하더니, 네 개의 길드를 말하였다.
금우 길드, 블러드 군단, 프로스트, 뱅가드.
이렇게 네 길드였다.
이들보다 더 강한 길드도 있었으나, 길드의 핵심 간부들이 중국이나 미국 등, 자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배제하였다.
“이 네 개 길드의 리더들을 모험가 아카데미로 불러봐.”
“죽이게?”
천자쥔은 아무렇지 않게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아마 그라면 진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죽이는 건 아니고, 항복을 요구할 생각이다. 정확히는 내가 세울 길드로 통합하려는 거지.”
여러 길드에서 내가 영입하려는 유저를 빼앗으려 한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나는 그 길드 전체를 합병하면 됐다.
그러면 인재도 내 것이 되고 길드도 내 것이 될 테니까.
***
모험가 아카데미 건물 내부에는 접견실이 있었다.
그 접견실에는 네 명의 유저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유저들 사이에서 거물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소속된 유저만 30명 이상인 대형 길드를 이끄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자가 갑자기 저희를 부른 이유가 뭘까요?”
프레야라는 이름의 여성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윈터 워록이란 별명을 가진 여성이었다.
히든 직업의 소유자이자, 프로스트 길드의 리더이기도 했다.
그러자 엄청난 체격의 소유자, 에릭이 콧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들먹이려는 거겠지!”
“지난번이라면 모험가 아카데미를 습격하려 했던 일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피해 보상을 요구하려는 목적인 게 분명해!”
알렉은 확신을 담아 그리 외쳤다.
하지만 그의 논리에는 한 가지 허점이 존재하였다.
“미안하지만 우리 길드는 그때 그 자리에 없었는데?”
뱅가드 길드의 리더, 알테아는 정색하는 얼굴로 그리 말했다.
실제로도 알테아는 그들의 무모한 계획에 동참한 적이 없었다.
“그럼 알테아 씨. 당신은 이 학교의 교장이라는 민건우란 사람이 저희를 부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애초에 나는 그 민건우란 유저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겠군. 도대체 그자는 누구지?”
“뭐 소문만 무성한 유저이긴 하죠. 네시아 왕국의 실세라는 소문도 있고, 세계 최강의 유저라는 소문도 있으니까.”
“죄다 믿기 어려운 소문들뿐이군.”
알테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그 역시 들어본 적이 있는 소문들이었다.
심지어 그가 들은 소문 중에는 영웅급 아이템의 공급자가 민건우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민건우는 그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유저였다.
그런데 레벨도 그보다 압도적으로 높고 아이템을 비롯한 자본도 풍족하며, NPC 왕국의 실세이기까지 하다니?
사람의 몸이 설령 두 개라도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많고 많은 소문 중, 확실하게 증명된 소문도 있어요. 한때 랭킹 1위였던 천자쥔이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문이죠.”
천자쥔은 유명한 인물이었다.
최초로 10층에 도달한 인물로 알려졌으니 유명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였다.
더군다나 최초의 현상수배범이라는 명성도 있었다.
별로 좋은 명성은 아니었으나, 유명해지기에는 충분한 요소였다.
“폭군이라 불리는 이바노프를 쓰러뜨린 사람도 민건우 유저입니다. 이건 제가 직접 봤습니다.”
그때, 금우 길드의 길드 마스터, 진동민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랭커인 이바노프를 압도하고 그를 감옥으로 끌고 갔던 유저가 바로 그 민건우였다니!
“그것 말고 모험가 거리의 건물들 이름 보면 그자의 이름이 들어간 이름이 많습니다. 대장간 이름도 건우 대장간이지 않습니까?”
“휘니나 하윤 등, 다른 이름들은 모두 그의 파티원 이름이라죠?”
그렇게 각 길드의 리더들은 민건우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하였다.
정보를 공유하면 공유할수록 놀라움은 커졌다.
현재 랭킹 1위는 15층까지 도달했다는 조던 매런이었다.
알려진 조던 매런의 레벨은 무려 27.
하지만 소문을 종합하여 만들어진 민건우라는 유저의 스펙은 그런 조던 매런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정도였다.
민건우의 레벨은 최소 30이 넘어야 했고, 20층 이상 진출했어야 했다.
물론 20층에서 10층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 의문은 도무지 해결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
소란스럽던 집무실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반갑습니다. 저는 민건우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금우 길드의 길드 마스터, 진동민이 내 인사에 답해주었다.
“오랜만입니다. 여기서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저는 프로스트 길드의 길드 마스터, 프레야예요.”
“알렉이다.”
“뱅가드 길드의 알레아입니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자리에 가 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꿀꺽.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내려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네 명의 유저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길드를 설립하였습니다. 제 길드에 들어오십시오.”
“에?”
“지금 뭐라고 하셨죠? 길드 마스터인 저희 보고 건우 씨의 길드에 들어가라고 하셨나요?”
내 말을 들은 네 사람의 표정은 황당함 반, 분노 반이었다.
하나의 길드를, 그것도 10층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다짜고짜 영입 제안을 했으니 모욕적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아니, 나라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쾅!
“들어줄 것도 없군! 나는 이곳에서 나가겠어!”
“앞으로 10층의 사냥터는 저희 길드에서 통제할 겁니다. 다섯 마리의 보스를 포함하여, 모든 사냥터를 말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알렉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나머지 세 명도 알렉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