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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아카데미.
‘일단 그전에 놈에게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켄타로는 처음으로 ‘생존’을 걱정하였다.
이때쯤 되자 켄타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건우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도망치던 와중, 그는 문뜩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유저들을 학살하던 중, 갑자기 유저 한 명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
사라진 유저의 파티원을 고문한 결과, 카르마만 있다면 지구로 귀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명히 1,500 카르마라고 했었지?’
현재 그가 보유한 카르마는 1만이 넘었다.
사람을 마구 죽였으니 카르마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는 모으기만 하고 소비는 아예 하지 않았다.
‘일단 지구로 가서 재정비하고 온다. 그러고 다시 탑으로 돌아와 나도 레벨을 올리는 거야.’
켄타로는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탑으로 돌아와서 건우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
무슨 일인지 놈은 가만히 서 있었다.
마법을 준비하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주저 없이 놈에게 달려갔다.
약간의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놈을 죽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8강 방어구라면 마법 한 방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
파바박!
놈이 눈을 부릅뜨며 놀라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곧 죽게 될 것을 직감한 것이리라.
서걱!
내 검이 놈의 허리를 베었다.
하지만 막상 확인해보니 놈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놈이 사라진 것이다.
죽은 것은 아닐 테니, 그가 갈 곳은 한 곳뿐이었다.
지구.
아마 상점에서 귀환 상품을 구매한 것이리라.
“헉헉!”
재영이 지친 듯, 헉헉대며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멀리서 상황을 지켜봤는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지구로 갔으면 더 쫓을 수 없는 거 아니에요?”
“놓쳤다고 봐야지. 당장은.”
물론 지구에서도 최대한 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원작의 주인공처럼 후환을 남겼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는 건 사용하고 싶었으니.
하지만 어찌 됐든, 탑에서 놈을 계속 쫓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미 지구로 가버린 자를 어떻게 쫓는단 말인가.
“그래도 놈은 언젠가 탑으로 돌아올 거야.”
“왜요?”
“나와 싸우면서 느꼈을 테니까. 탑에 오르면 미친 듯이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켄타로는 탑의 효용을 무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껏 해봐야 레벨이 20 정도 되는 초보 유저만 봤을 테니, 아이템이고 레벨이고 쓸모없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놈은 나를 만나 큰 위기를 겪었고 추잡하게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내가 만약 켄타로라면 더는 탑의 효용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 이용하려 들 테지.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거다.’
놈이 탑에서 레벨을 올리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없었다.
안 그래도 막강한 힘을 가진 놈이었다.
그런데 레벨까지 올린다?
최악이었다.
아마 그때는 오히려 내가 도망쳐야 할 것이다.
아무리 레벨을 높여도 스탯이야 업적을 독점한 내가 높을 거지만, 오러에 마법까지 사용하는 놈을 상대할 엄두가 안 났다.
“탑으로 돌아와서 레벨을 올리기 시작하면 어떡하죠? 그 쪽바리 놈이 직업에다 아이템까지 얻는다면 진짜 상대하기 까다로울 거 같은데···.”
마침 재영이도 나와 같은 우려를 했는지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리 말하였다.
말로는 까다롭다고 하지만 아마 본심은 까다로운 정도가 아니라 두렵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을 지켜야지. 어차피 놈이 지구로 돌아오면 이곳에서 나타날 테니까.”
“네? 계속 여기 있자고요?”
의아한 표정의 그에게 나는 설명 대신 스킬을 펼쳤다.
내가 사용한 스킬은 다름 아닌, 분신이었다.
“헉!”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나의 분신을 보며 재영이 입을 떡 벌렸다.
“여기서 대기하면 되나?”
“놈이 나타나면 최대한 접근해서 폭발을 사용해. 아무리 놈이라도 폭발은 견딜 수 없을 거야.”
20층 보스도 한 방에 죽이는 것이 분신 폭발이었다.
켄타로가 제아무리 강하다지만, 그게 내구가 단단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분신 폭발에 당한다면 즉사하거나 최소 중상을 입을 터.
11층은 유저도 별로 없고 탑의 주민은 아예 없었다.
만약 여기서 중상을 입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놈이 크게 다쳤을 때, 신속하게 11층으로 돌아온다면 놈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다시 지구로 도망칠 수도 있지만, 쿨타임이 있지.’
24시간은 길었다.
그 안에는 분명히 놈을 쫓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대장! 왜 대장이 두 명이에요?”
“스킬이다.”
“와! 이런 스킬도 가지고 계셨어요? 미쳤다!”
“감탄할 시간 없다. 이거 줄 테니, 20층까지 달려.”
나는 재영에게 오틴의 반지를 건네주었다.
재영은 이미 오틴을 타본 적이 있었기에 오틴의 반지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더 강해지라는 뜻이죠?”
“그래. 놈이 오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안 그래도 슬슬 재영이를 2차 전직시킬 생각이었다.
그가 2차 전직하면 약제사가 된다.
약제사로 전직하면 전투력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지만, 각종 약을 만들 수 있었다.
신전이 망한 이상, 그의 약은 필수였다.
아니, 신전이 멀쩡했어도 약제사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버프가 달린 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대장.”
오틴을 타고 포탈로 향하는 재영이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고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았다.
원래의 계획은 별거 없었다.
20층을 장악하는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 상태.
10층의 아이템 시장도 완전하게 장악하였다.
유저들을 상대로 장사하며 계속해서 카르마와 룬을 모은 뒤, 21층 공략을 시작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나의 계획을 추가해야겠어.’
계획을 크게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귀환자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더 많은 업적을 수집해야 했다.
켄타로를 상대하면서 증명됐듯, 압도적인 스탯은 언제나 옳았다.
다른 귀환자가 더 튀어나온다고 해도 스탯만 높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스탯을 높일 방법은 계속해서 탑을 공략하는 것밖에 없었다.
21층부터 30층까지 빠르게 돌파한다면 각 스탯이 최소 50 이상 오를 것이다.
한 층에서 평균적으로 업적 5개는 얻으니까.
‘나 혼자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력의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길드.
내게는 길드가 필요하였다.
히든 직업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길드원도.
그래서 세운 계획이 모험가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원래도 모험가 아카데미를 세울 생각을 했으나, 켄타로와의 전투를 경험하면서 보다 절실해졌다.
오러 엑스퍼트와 싸울 때도 위기를 겪었다.
만약 상대가 오러 마스터라면?
초절정 고수라면 어떨까.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다수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그 다수가 히든 직업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으리라.
[정하윤 : 삼촌! 빨리 10층으로 돌아와! 지금 모험가 거리가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어!]
그러던 그때 하윤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메시지였는데, 내용을 보니 그럴 만도 하다고 여겼다.
갑자기 근위대가 나타나 모험가 거리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모험가 아카데미를 설립하기 전에 우선 네시아 왕실부터 장악해야겠군.’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10층도 20층처럼 완전히 내 세력권 안에 두어야 할 거 같았다.
***
우당탕!
“이게 무슨 짓이오!”
건우 대장간의 총책임자, 장푸린이 노기를 터뜨렸다.
신전이 웬 미친놈에게 공격당했다는 소문이 돈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왕궁에서 신전을 공격한 범인이 민건우라면서, 모험가 거리로 근위대를 보냈다.
근위대는 건우 소유의 사업체를 불시에 습격하였는데, 당연히 건우 대장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놈도 끌고 가! 민건우라는 자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자다!”
“아니, 이런 폭거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오!”
장푸린이 목소리를 높였으나, 근위대는 강경하였다.
무기를 들며 강압적으로 그를 끌고 가려 하였다.
“막아!”
“스승님을 지켜!”
장푸린의 도제들이 나섰다.
하지만 일개 장인들이 근위대 병사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장푸린은 근위대 병사들의 손에 의해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모험가 거리 곳곳에서 벌어졌다.
환전소, 잡화점, 경매장, 여관, 무기 상점 등.
모든 곳에서 근위대의 습격이 있었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던 이들이 건우의 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끌려갔다.
상황이 이러하니, 모험가 거리는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
“황시안, 어떤가?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됐으니 아주 기분이 좋겠어?”
뒤룩뒤룩 살이 찐 돼지 귀족이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묻자, 황시안은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귀족은 드뇌브 궁중백이라는 자였다.
황시안이 지금껏 접촉한 귀족 중, 가장 신분이 높았다.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전혀 고위 귀족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약속을 지켰으니, 자네도 약속을 지켜야 해. 안 그러면 재미가 없을 거거든.”
“물론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번에 모험가 거리에서 유통되는 카르마 규모를 보니, 월에 10만 카르마는 너무 적은 거 같더군.”
두 사람의 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조합이었다.
드뇌브 궁중백은 네시아 왕국의 고위 귀족이었고 황시안은 10층에 온 지 2주 정도밖에 안 된 유저였으니까.
겨우 2주 만에 두터운 친분을 쌓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그런데도 두 사람이 이렇게 밀실에서 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의 관계가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모험가 거리.
즉, 엄청난 양의 카르마가 유통되는 모험가 거리를 노리고 둘이 힘을 합친 것이다.
황시안은 드뇌브 궁중백에게 제안하였다.
만약 모험가 거리의 주요 사업장을 몰수한 뒤, 자신에게 몰아준다면 월 10만 카르마를 바치겠다고 말이다.
처음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계획이었는데 마침 오늘 신전이 몰락하였다.
신전이 몰락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황시안은 기회라고 여겼다.
네시아 왕국의 권력자들이 모험가 거리를 건들지 못했던 이유는 신전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그 신전이 몰락했으니, 모험가 거리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예상대로 모험가 거리는 순조롭게 장악이 되었고, 이렇게 매물로 나왔다.
“자네도 당연히 알겠지만, 모험가 거리를 노리는 이가 아주 많아. 유저고, 귀족이고 간에 말이지.”
“원하시는 금액이 얼마입니까?”
“월에 30씩은 주어야겠어.”
“30만 말씀입니까···?”
드뇌브 궁중백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드뇌브 궁중백을 보며 황시안은 애써 조소를 숨겼다.
‘병신 같은 놈. 30만 카르마? 그깟 돈, 얼마든지 주마. 어차피 모험가 거리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높으니 말이야.’
월 30만 카르마는 분명히 큰돈이었다.
엄청난 재력가인 황시안이라도 30만 카르마를 매달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황시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모험가 거리는 드뇌브 궁중백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녔다.
30만 카르마는 소소한 투자비용이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드뇌브 궁중백을 비웃었다.
“반란이다! 양주르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
“저항하는 자는 죽여라! 신전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왕을 따르는 놈들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황시안이 놀란 얼굴로 창밖을 보니 병사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놀랍게도 병사들이 향한 곳은 왕궁이었다.
‘이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쿠데타라니.
곤란했다.
만약 쿠데타가 성공하여 왕이 교체된다면 드뇌브 궁중백도 예전 같은 권력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모험가 거리가 그에게 주어질 일도 없을 거란 사실을 의미하였다.
타타타탕!
“총? 탑에서 총소리가 났다고?”
이번엔 총소리까지 들렸다.
황시안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탑에서 총소리가 날 수 있단 말인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