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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와의 첫 번째 전투.
수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신전은 하나의 작은 도시와도 같았다.
원래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던 신전이었는데, 유저가 10층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규모는 도시급으로 성장하였다.
“아, 일찍 왔는데도 줄 겁나 기네.”
“요즘은 퀘스트 완료하는 것보다 퀘스트 받는 시간이 더 걸리는 거 같다니까?”
“진짜 돈만 많았으면 그냥 자격의 증표 사는 건데. 그러면 이렇게 시간을 날릴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한두 푼으로 안 될걸? 나도 어디서 들은 건데, 자격의 증표 시세가 2,000 카르마 이상이라더라.”
신전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퀘스트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유저들이었다.
워낙 신전의 인기가 많다 보니, 이제는 신전을 출입하려면 이렇게 긴 대기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던 그때, 한 동양인 유저가 줄을 무시하고 신전 입구 쪽으로 향하였다.
“뭐야. 저 사람? 우리 줄 서고 있는 거 안 보이나?”
“또 중국인 아니야? 중국인들은 죄다 새치기하던데.”
사내의 태도가 너무 태연하기에 유저들은 순간적으로 신전 소속이 아닐까 하고 착각하였다.
하지만 복장을 보면 신전 소속은 절대 아니었다.
“이봐요. 여기 줄 안 보여요?”
한 여성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사내를 막았다.
“꺼져.”
“뭐, 뭐라고요?”
사내는 마치 하찮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여성이 사내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꺼지라고··· 꺄악!”
우당탕!
여성 유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사내가 그녀를 밀쳤던 것이다.
“저 새끼, 신전 앞에서 무력을 썼는데? 저래도 되는 거야?”
“되겠냐. 당연히 안 되지!”
유저들은 사내의 행동에 분노하였다.
안 그래도 새치기하려는 자였다.
그런데 더 경우 없는 행동을 하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유저가 나서기 전에 여성 유저가 먼저 나섰다.
“이 자식이! 예의를 차려주니까, 아주 개무시하네! 너 잘 만났다!”
“못생긴 년이 끝까지 상황 파악을 못 하는군.”
“뭐? 못생긴 년? 지는 오타쿠처럼 생긴 주제에!”
“그냥 죽어라.”
서걱!
여성 유저의 목에서 갑자기 피가 분수처럼 흘렀다.
“뭐야? 내 목에서 왜···. 끄르륵.”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벅거리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던 여성 유저는 이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바닥에서 발작하던 여인은 곧 움직임이 멎더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사, 사람을 죽였어!”
“이런 사이코패스 같은 놈!”
“저 새끼는 갑자기 왜 급발진한 거야? 이해가 안 되네?”
사내의 만행에 유저들은 더는 참지 않았다.
가장 근접해있던 유저는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고는 다짜고짜 사내를 공격하였다.
서걱!
하지만 사내를 공격하려던 유저 역시 허무하게 목이 베었다.
뒤이어 파티원으로 보이는 또 다른 유저가 목이 베인 듯, 피를 흘렸다.
그 유저는 방패로 정면을 막았는데도 마치 방어가 무의미하다는 것처럼 목이 베인 것이다.
“시발!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닥치고 도망쳐! 딱 봐도 미친놈이잖아!”
“제길! 퀘스트 받으려고 몇 시간을 날렸는데!”
사내, 켄타로의 손에 사람들이 연달아 죽자, 유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들에게 목숨이 중요할 뿐, 정의 같은 건 알 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의 주민들은 달랐다.
특히 신전 소속의 사제들은 켄타로의 만행에 강하게 나섰다.
“신성한 곳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신성하기는 개뿔. 탐욕의 냄새만 잔뜩 풍기는 곳이건만.”
켄타로는 조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항의한 사제를 향해 다가갔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격의 증표나 내놔. 죽고 싶지 않으면.”
“신을 모시는 사제인 제가 이런 협박에 굴복할 거 같습니까?”
“그래? 그러면 죽어서 가져가지 뭐. 어차피 죽으면 아이템을 토해내던데 말이야.”
서걱!
사제의 최후도 켄타로의 손에 죽은 유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유저의 평균 수준은 10층 주민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유저들도 감당하지 못한 켄타로를 전투 특성 하나 보유하지 못한 사제가 감당할 수는 없었다.
신전을 지키는 경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히 신전을 공격하다니!”
“이 악마 같은 놈! 용서하지 않겠다!”
서걱, 서걱!
경비들은 분노에 찬 얼굴로 켄타로에게 덤벼들었지만, 단 한 번의 검격도 막아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렇게 수십 명을 넘어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학살되었다.
“드디어 나왔네. 이게 자격의 증표 맞지?”
하지만 백 명을 학살한 켄타로는 여전히 태연하였다.
“서, 설마 그거 하나 때문에 신전을 공격한 것이오?”
“그런데?”
“···그대의 패악을 신께서 용서치 않을 겁니다.”
“신 따위의 용서는 나도 바라지 않아.”
서걱!
켄타로는 신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대사제의 말에 피식 웃어주고는 그가 천국에 갈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이 미친놈아!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러던 그때, 웬 소년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소년은 바로 채집가란 직업을 가진 최재영이었다.
***
부우웅!
거대한 팔이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지자 재영은 날렵하게 앞으로 달렸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팔의 주인공인 미트 골렘이 있었다.
미트 골렘 안쪽을 파고든 재영은 창으로 미트 골렘의 핵을 꿰뚫었다.
10층 최종 보스 미트 골렘은 그렇게 단 한 명의 유저, 재영에게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미트 골렘을 혼자서 잡은 재영은 전혀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수십 번도 넘게 경험한 일인데 새삼스럽게 기뻐할 이유는 없었다.
‘진짜 나 버린 거 아니겠지?’
재영은 드랍된 아이템을 주우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도 분명 파티가 있었다.
사실상 랭킹 1위라고 할 수 있는 유저가 포함된 파티가.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파티 사냥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파티 리더인 건우는 미트 골렘을 계속 잡으라는 지시만 내려둔 채 그를 방치한 것이다.
재영은 계속 투덜대다가 인벤토리를 확인하였다.
“아. 인벤 꽉 찼네. 어쩔 수 없이 신전에 좀 갔다 와볼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사냥을 계속 하고 싶어도 아이템을 주울 수 없는 상태라면 사냥하는 의미도 퇴색될 테니까.
그는 신이 난 기색으로 지하 던전을 지났다.
각종 좀비가 달려들었으나 그 어떤 좀비도 그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미친놈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신전으로 올라온 재영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였다.
마치 그의 고향처럼 느껴졌던 신전이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그를 늘 따뜻한 웃음으로 반겨주던 사제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유일한 사제, 대사제는 누군가의 손에 막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꺼져라. 죽고 싶지 않으면.”
“미친놈이! 사람을 죽여놓고 뭔 정신 나간 소리야!”
“이것들이 죽은 게 아쉽다면 네놈도 죽어라.”
대사제를 죽인 사내가 대뜸 재영을 향해 달려왔다.
재영은 순간적으로 사내의 움직임을 놓쳤다가, 뒤늦게 팔을 들었다.
그의 팔에는 방패가 들려있었다.
“컥!”
분명히 사내의 공격을 막았는데도, 재영은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강화가 안 됐는데 이렇게 세다고? 스킬인가? 아니, 아무리 스킬이라도 이게 말이 돼?’
당황스러웠다.
그의 방패는 드워프 족의 족장, 시그마가 만든 방패였다.
강화는 무려 7강까지 된 상태.
5강이어도 최강인데, 7강이면 10층에선 사실상 무적이었다.
실제로 지하 던전에서 몇 번 랭커들과 충돌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랭커들을 농락하다시피 하였다.
채집가라 공격 스킬이랄 게 없었는데도 그러했다.
‘그런데 저놈은 뭐냐고!’
또 다시 공격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재영은 반사적으로 막았다.
감각 스탯은 그리 높지 않아도 그는 감이 좋았다.
게다가 방패를 들고 있었기에 운 좋게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큭!”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이 엄청난 통증을 느껴야 했다.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이겨내기 어려웠다.
“또 막았다고? 너 뭐냐? 어떻게 내 공격을 막은 거지?”
“누가 할 소리를!”
“그러고 보니 네놈도 조센징인가?”
“그러는 너는 쪽바리고?”
상대의 도발에 재영은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후회하였다.
쪽바리란 말을 들은 상대가 살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 살기는 마치 스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재영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었다.
“네가 그 방패를 믿고 나대는 거 같은데, 과연 그 방패가 언제까지 너를 지켜줄 수 있을지 보자고.”
진심으로 두려웠다.
과연 이 방패로 적의 공격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
1분 버티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외쳤다.
“지랄! 방패 아니어도 넌 죽었어! 우리 파티장이 널 가만둘 거 같아?”
“파티장? 그놈도 조센징인가?”
“한국인이다! 사이코패스 같은 쪽바리 놈아!”
사내가 다시 움직였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재영의 뒤로 빠르게 이동하였다.
재영의 등을 노린 것인데, 이번에는 재영도 반응할 수 없었다.
“컥!”
“갑옷도 단단하군. 뭐 그래 봤자다.”
라그나의 갑옷이 다행히 재영의 목숨을 살렸다.
하지만 등에 상처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젠장. 1분도 못 버틸 거 같은데?’
그리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인벤토리에 있는 그의 약초를 사용하면 금방 치료할 수 있었다.
등에 생긴 상처보다 큰 문제는 사내의 공격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점이었다.
“프로스트 노바!”
재영이 스킬을 사용하였다.
방패에 달린 옵션이었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공격력이 낮은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약간의 시간만 벌어주길 바랄 뿐이었는데, 그 기대조차 배신당하였다.
상대는 분명, 몸이 갑자기 얼려지는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재영을 공격하였다.
재영은 방패에 의존한 채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였다.
‘살려줘요, 민건우 대장! 나 버린 거 아니잖아! 나 히든 직업 가진 귀한 몸이잖아!!’
그가 그렇게 위태롭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내 누군가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재영이가 그토록 바라던 민건우였다.
***
나는 신전이 어떤 유저에게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날아갔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신전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사제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구경꾼으로 보이는 유저와 탑의 주민만 멀리서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양주르 공작의 공작인가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신전 안에는 나의 파티원이 있었다.
연금술사라는 히든 직업을 가진 파티원이.
아니나 다를까.
신전 안으로 들어가니 재영의 모습이 보였다.
전신에 피를 흘리는 재영의 모습이 말이다.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했다.
거인의 검을 휘둘러 재영을 공격하는 이를 공격하였다.
“민건우 대자아아앙!”
내 덕에 목숨을 구제한 재영은 내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빠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저는 거인의 일격을 너무도 쉽게 피해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을 텐데 말이다.
“네가 이놈이 말한 그 대장이란 자인가?”
“당신은 누구지?”
“나? 세계 최강이 될 마스다 켄타로다.”
본인의 입으로 세계 최강을 운운하다니.
중2병 같은 자였다.
‘근데 원작에서는 이런 중2병 같은 놈들이 죄다 귀환자던데···.’
켄타로라는 자는 왠지 귀환자 같았다.
복장 상태만 봐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또 조센징이라니. 아주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나는 상대가 무슨 말을 지껄이든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적이었다.
그저 차분한 눈으로 상대와의 간격을 살폈다.
“검이 커지는 이상한 스킬을 쓰던데, 그거나 다시 써보는 게 어때?”
“말하지 않아도 쓸 생각이었다.”
콰아아앙!
내 거인의 일격을 이번에도 너무 쉽게 피해냈다.
크기만 거대할 뿐, 내리찍는 속도는 실로 엄청난데도 말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연속으로 공격을 날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상대도 피할 수 없었는지 제자리에서 검을 들어 거인의 일격을 막아내려고 하였다.
‘뭐지?’
나는 켄타로의 몸에서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마나가 검으로 향하는 것도.
‘오러···!’
켄타로의 검에 유형화된 마나를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러, 다른 말로는 검기라고 부르는 사기 기술이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저 스킬 하나로 30층 너머까지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그 뒤에는 검강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고 말이다.
‘만약 저게 오러가 맞다면 내 검은···.’